특집│새로운 현실, 다른 리얼리즘

 

토니 모리슨의 현재성

 

 

김미현 金美賢

아주대 영문과 교수. 공저 『토니 모리슨』, 논문 「『서기 바틀비』: 공감의 규율성과 책임의 공포」 등이 있음. miehkim@ajou.ac.kr

 

 

1. 새로운 기억

 

미국의 작가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이 지난 8월 5일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모리슨의 별세 소식에 학계, 비평계, 출판계뿐만 아니라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언론인 오프라 윈프리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다. 모리슨은 1970년 『가장 푸른 눈』(The Bluest Eye, 한국어판 들녘 2003)을 발표하며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2015년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God Help the Child, 한국어판 문학동네 2018)까지 총 11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그의 소설은 미국 흑인의 정체성, 기억과 역사, 가족과 공동체 관계에 대한 심리적이고 철학적인 탐구이자 인종주의에 물들지 않은 언어와 비전을 찾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1973년 『술라』(Sula, 한국어판 문학동네 2015)와 1977년 『솔로몬의 노래』(Song of Solomon, 한국어판 들녘 2004)를 발표하며 정교하고 시적인 문체, 흑인 역사와 경험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 상상력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20세기 후반 미국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부상했고, 그의 최고작이라 할 수 있는 『빌러비드』(Beloved, 1987, 한국어판 문학동네 2014)로 198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93년 흑인 여성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미국 흑인작가 중에서 모리슨만큼 생전에 비평계와 학계는 물론 대중의 인정과 존경을 받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는 소설 외에 다수의 에세이, 평론을 발표했고 희곡과 오페라 대본도 집필하여 무대에 올렸다. 아들 슬레이드 모리슨(Slade Morrison)과 함께 아동문학 작품도 출판했다. 그는 흑인 지성으로서 미국의 정치적·사회적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미국사회의 인종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멈추지 않았다.

모리슨은 1931년 2월 18일 미국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지 워포드(George Wofford)와 어머니 라마 워포드(Ramah Wofford) 모두 남부 출신이나 어린 시절 북부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토니 모리슨의 본명은 클로이 아델리아 워포드(Chloe Ardelia Wofford)이다. 모리슨은 고향 로레인이 흑인뿐만 아니라 멕시코나 이딸리아 출신의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섞여 사는 곳이었고, 학교에서도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과 같이 공부했다고 회고한다. 1 모리슨은 워싱턴에 있는 하워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55년 코넬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58년 자메이카 출신 건축가 해럴드 모리슨(Harold Morrison)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지만 1964년 이혼했다. 그는 1965년 뉴욕주 시러큐스에 있는 랜덤하우스 계열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출판계에 몸담았다. 1968년부터 뉴욕시 랜덤하우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해 1984년 뉴욕주립대 교수직을 맡기 전까지 십오년이 넘도록 흑인작가의 작품 출판에 주력했다. 그는 편집자로 일하면서 대학 강의도 했고, 첫 소설을 발표한 후에도 편집과 강의를 병행했다. 모리슨이 첫 소설을 발표한 것이 마흔 무렵이었는데, 세번째 소설 『솔로몬의 노래』를 출간한 후에야 자신이 작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대학 시절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해 세례명 앤서니(Anthony)를 줄인 ‘토니’라는 별명을 사용했다. 2 『가장 푸른 눈』 원고를 출판사에 투고할 때 편집자가 자신을 토니 모리슨이라고 알고 있어서 그 이름을 쓰게 됐지만 3 그때 토니 모리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의 이름은 클로이 앤서니 워포드라고 한다. 4 모리슨은 1989년부터 프린스턴 대학 문예창작 전공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 은퇴했다.

나는 내심 그가 백살 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했다. 모리슨이 그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 죽지 않고 계속 살면서 과거 이야기를 해주는 여인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한 예가 『솔로몬의 노래』에 등장하는 써시(Circe, 키르케)이다. 써시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 일행을 동물로 변하게 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법사이기도 하다. 모리슨의 소설에서 이 인물은 산파로 등장하는데, 할아버지부터 손주에 이르기까지 마을 사람 전부를 받아냈다고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여인이 백살의 나이로 이미 오래전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숲속의 큰 집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십대 여자의 목소리로 아버지 고향을 찾아온 주인공 밀크맨(Milkman)에게 그의 조부모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밀크맨은 금을 찾으러 이곳에 왔는데 그의 여행은 결국 써시와 그 지역 사람들이 기억하는 조부모, 증조부모의 삶을 알아가는 여정이 된다. 또다른 예로 2003년 발표한 『러브』(Love, 한국어판 들녘 2006)의 엘(L)이 있다. 엘은 살아서는 주인공 코지(Cosey)의 호텔 요리사로 일하며 그 가족의 삶을 지켜보았고, 죽은 후 목소리로 등장해 등장인물들도 몰랐던 이 가족의 과거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해준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인데, 등장인물들이 알 수 없거나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 새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모리슨은 이 여인들처럼 새로운 기억을 전해주는 사람이다. 모리슨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인물들은 공통적으로 과거 기억과 씨름하면서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모색한다. 모리슨의 작품은 잊힌 과거, 알려지지 않은 과거, 고통스러운 과거, 잊고 싶은 과거, 되살리고 싶은 과거에 관한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거를 향한 감정들, 특히 회한, 두려움, 슬픔, 그리움 등을 주제로 삼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감정을 동인으로 새로운 기억이 전개된다.

첫 소설 『가장 푸른 눈』에서는 어린 시절 친구를 기억하는 화자, 클로디아(Claudia)의 안타까움과 죄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불러내는 과거는 아홉살 무렵 일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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