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현수 李賢洙

1959년 충북 영동 출생. 1991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1997년 『문학동네』 신인공모로 등단. 장편소설 『길갓집 여자』가 있음. hyunsu415@hanmail.net

 

 

토란

 

 

1

 

그녀는 평생 자기 부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여자다. 젊어서는 시집살이를 했으니 당연히 시어머니의 부엌이었고, 살림을 따로 난 후에는 셋집을 전전하며 살아온 터라 그 또한 남에게 빌린 부엌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부엌이 생겼지만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스스로 부엌을 부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부엌을 가질 생각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 그녀의 방에서 모델하우스 광고지가 무더기로 쏟아져나왔을 때도 노인네의 별스런 취미 정도로만 여겼다. 그녀가 잘 꾸며진 모델하우스의 주방을 신발이 닳도록 보고 다닌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요리의 달인인 그녀에게 부엌이 없다는 건 대장장이에게 대장간이 없는 것과 같다.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그녀만의 부엌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와 그녀, 즉 나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화해를 해야만 가능했다.

“속창시 빠진 인간이 비오는디 차를 몰고 너희 성 회사까지 갔다왔디야. 쓸쓸하고 고독혀서 못살겄다고. 이 시상 인간들 중에 고독하지 않은 인간이 워디 있간디.”  

버럭, 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물방울 위에 오롯이 맺혀 있다. 처진 눈밑에 세로로 잡힌 주름과 길쯤한 얼굴에 도드라진 광대뼈, 그를 욕할 때마다 보이는 의치까지. 손가락으로 식탁 위에 떨어진 물방울들을 하나씩 문지른다. 오늘따라 손톱이 이물스레 느껴진다.  

“팔자가 늘어져서 안 그냐아. 지난달엔 김제로, 익산으로, 정읍으로 한 바꾸 돌고 왔디야. 그람서 뭐라는 중 아냐? 추억여행이랴. 풍신에 허고 다니는 짓이  빌어먹을 짓만 골라서 헌다니께. 때마침 친구들이 집엘 왔는디, 누가 그 꼴난 사진을 보자고 했간? 히히히, 웃음서 거그 가서 찍은 사진을 꺼내놓는디 억장이 탁 맥혀야. 너희 성 회사에 갔다오던 날, 빗길에 또 사고낼 뻔했다누만.”

물 끓는 소리가 젖 보채는 애보다도 성가시다. 벌떡 일어나 들썩거리는 냄비뚜껑을 열고 끓는 물에 시금치를 넣었다가 찬물로 헹궈낸다. 시금치는 잘 데쳐졌다. 시금치를 데치는 법도 그녀에게서 배웠다.

“시금치 데치기가 쉬워 보이쟈. 알고 보면 시금치를 데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어야.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소금을 한줌 집어넣고 시금치를 넣었다가 금방 찬물로 헹궈야 써. 백지 익혀야 헌다고 휘휘 젓다가는 물러터져 못쓰는 것이 시금치여. 끓는 물에 넣었다가 금방 찬물로 헹구려면 불안허쟈. 과연 시금치가 익었나 싶기도 허고. 시금치란 것은 가만둬도 제물에 익는 것이여. 지 성질을 못 이겨 파르르 넘어가는 자발없는 사내를 생각하면 돼야. 안 있냐? 느 시아버지 겉은 사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비유가 어찌나 현란한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면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비유의 종착지가 언제나 그여서 문제이긴 하지만.

“느 시아버지가 워떤 사람인 중 아냐. 머언 일을 시작하면 석달을 못 닝기는 인간이 바로 그 인간이여. 시금치보다 더하면 더했제 덜할 인간이 아니랑게.”

그렇게 말할 때의 그녀는 투우 같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붉은 보자기를 쳐든 투우사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소. 그와 그녀가 견원지간이 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오늘 저녁 두 사람은 화해를 할 수 있을까. 바위처럼 단단해진 그와 그녀의 마음을 한꺼번에 녹일 묘약은 없는 것일까. 작은 틈새라도 보이면 얇은 모시바늘이 되어 두 사람 사이를 들락날락하겠건만…… 시금치를 건져내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다.  

 

 

2

 

요리는 그녀의 종교다. 요리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노라면 탄성이 새어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불꽃 앞에 선 그녀. 빨갛고 파란 가스레인지 불빛이 수시로 그녀를 비추고, 불꽃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열 손가락들. 양념의 배합을 어떻게 해야 맛이 나는지, 어떤 순서대로 넣어야 하는지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녀는 먹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는 어떤 노고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처음 그녀에게 타박을 맞은 것이 파전과 알타리무 김치를 상에 낼 때였다. 흔히 총각김치라고도 부르는 알타리무 김치는 통째로 들고 아작아작 씹어먹는 게 별미인지라 나누어지기 쉽게 무에 칼집만 내서 상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통째로 내놓으면 먹기가 꺽정시럽지 않겄냐. 이런 것은 한입에 싹 들어가게 탐박탐박 썰어 올려야 혀.”

그녀가 말한 ‘이런 것’들 중엔 둥글게 부쳐서 그대로 내놓은 파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전이란 따뜻할 때 젓가락으로 쭉쭉 찢어 먹는 게 아니던가. 뜨거운 전을 네모 반듯하게 썰어보면 쉽게 썰어지지도 않을뿐더러 기름기가 묻은 칼과 도마를 씻어내는 일 또한 잔손을 요하는 일이었다. 알타리무 김치와 파전을 통째 상에 낸 데에는 가만히 앉아서 먹기만 하는 사람은 파전을 젓가락으로 찢는달지 알타리무 김치를 이로 잘라 먹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된다는 내 심술도 얼마간 작용한 게 사실이었다.

“요리를 맹그는 사람의 기본 마음가짐이라는 기 있는디, 그건 말이여, 먹는 사람이 황제다, 허는 맴을 갖고 있으믄 돼야. 그러면 요리는 지절로 되는 것이여.”

그런 그녀에게 기름기 묻은 칼과 도마를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히 말할 수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 요리가 그녀의 종교인가 하면 아무리 식구가 없을 때라도 상을 차리기 위해 상 앞에 서게 되면 대강이 없기 때문이다. 먹어줄 누가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마지막 남은 한줌의 힘과 시간과 정성을 알뜰히 긁어모아 상을 차렸다. 남편은 이런 그녀를 말하지 않고 어째서 수박 깨는 그녀를 말했을까. 결혼 전, 어머니는 어떤 분이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수박을 깨던 그녀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여덟살쯤 되었을 때라니까 그녀는 삼십대 초반이었겠다. 수줍고 고운 기가 남아 있던 한 시절, 그녀는 무슨 투사처럼 수박을 시장바닥에 패대기쳤다. 코흘리개 두 아이에게 먹일 수박을 벼르고 별러서 샀더니 수박 속이 분홍색이었던 것. 수박을 바꾸러 다시 시장으로 간 그녀. 그날따라 매상이 시원찮았던지 수박장수가 깐죽거리며 염장을 질렀다. 이래도, 이래도 안 익었냐구? 그녀가 수박의 한 귀퉁이를 도려내 분홍색인 걸 확인했는데, 수박장수는 수박의 다른 쪽을 세모꼴로 도려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눈이 있으면 봐. 어디 와서 생떼야. 수박장수가 내민 빨간 수박 속을 보고 어린 남편은 가슴이 졸아붙는 것 같았단다. 수박을 실은 리어카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남편은 그만 갔으면, 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는데 젊은 그녀는 자신의 머리보다 큰 수박을 치켜들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더란다. 여기저기로 튀어 흩어지는 수박의 분홍색 파편들. 이래도 익었어? 두 손을 탁탁 터는 그녀. 새로 한 덩이 갖고 가슈. 맥빠진 수박장수의 말에 씩씩한 그녀의 대답. 일없어. 남편은 그 말이 서운했다고 한다. 분홍색 수박이라도 한 쪽만 먹었으면 했는데. 코흘리개 아들의 마음을 뻔히 아는 젊은 어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일없어.

시집에 첫인사를 하러 갔을 때. 그녀의 화사한 홈드레스나 고개를 숙일 때 얼핏 드러나던 진주목걸이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얼굴에 도드라진 광대뼈만 보였다. 그리고 파편처럼 튀는 수박 쪼가리들, 푸른 겉껍질 속의 핏빛 수박살이 그녀의 얼굴 저편으로 어른어른 비치는 거였다.

그녀에 비하면 그의 인상은 부드러웠다. 낯선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난 내게 그가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했다. 엉거주춤 다가앉는 내 손을 잡고 느닷없이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는 시를 읊조리는 게 아니고 외웠다. 당신의 급한 성정 탓에 어찌나 시를 빨리 외우던지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줄줄 외우는 구구단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시에는 나름대로의 맛이란 게 있다. 특히 「국화 옆에서」 같은 시는 굵직한 목소리로 힘을 주어 천천히 읊어야만 시 본래의 맛이 살아난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그리도 시를 빨리 외워 뜻이 이상하게 변질되어 들리는 와중에도, 아하 지금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외우고 있구나 하고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가 그 유명한 시를 모를 리야 없겠지만 장래 며느릿감 앞에서 시를, 다른 것도 아니고 시를 줄줄 외울 줄이야. 시를 다 외운 그가 한결 깊어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널 보려고 그 긴 세월을 살았는갑다.”

그에게 난 한송이 노란 국화꽃이었던 것이다. 아직은 생채기가 나지 않은 노오란 꽃잎. 무서리 내리는 긴긴 밤을, 천둥과 먹구름 속을 헤쳐온 그에게 기어코 다가가고야 마는. 결혼식장에서 그를 본 친정 백부님은 “베레모를 빼딱하게 쓴 것이 우째 좀 걸리더라”며 시아버지 자리를 두고 내내 찜찜해하셨지만 나는 「국화 옆에서」를 외우던 그를 생각하곤 고개를 저었다. 시를 아는 것과 직접 외우는 것의 차이는 크므로. 그는 다른 아버지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물론 뒷날 그가 다른 아버지들과 다른 것이 시를 외우는 것 외에도 많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렇게, 그는 부드러운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그런 반면에 그녀의 인상은 최악이었다. 남편에게 수박 깨던 얘기를 미리 듣지만 않았어도 인상이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라고 어찌 투사 같기만 했으랴.

“어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따라간 요리학원이 한두 군덴 줄 알아.”

그랬다. 젊은 그녀, 그에게 넌더리를 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장롱 서랍에 착착 개켜진 채로 들어 있는 앞치마들. 그땐 어땠을까. 색색의 앞치마를 준비하고 상 앞에 앉을 황제를 위하여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요리학원을 드나들었을 그녀. 앞날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양볼이 발갛게 물들었을 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시방 생각혀봐도 차암 어리석었어. 우째 혼사를 결정함서 신랑을 보지 않았일까. 느 시할아버지의 소문난 인품만 믿은 것이여. 그 하나뿐인 아들인게 여북 닮았을 꺼이냐고 그러고 시집갔어야. 신랑을 볼 생각은 허들 않고. 뭣에 씌었는개비. 안 봐도 한낱두 껄쩍지근허지 안터먼.”

그녀의 입에 붙어버린 이 푸념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데친 시금치는 물기를 짜내고 나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나물은 상에 올리기 직전에 무쳐야 씹는 맛이 있다. 다음엔 새우를 손질할 차례다.

“바가지 쓰기 질로 좋은 것이 대하여. 시장에 나온 생물 대하는 백이면 백, 냉동새우를 녹인 거라고 알면 돼야. 생물이 더러 있기야 있겄지만 잡은 즉시 유명 음식점으로 빠져버린게 우리 손에 들어올 턱이 없는 게 대하라는 물건이여. 아예 첨버텀 냉동새우를 사는 게 현명한 일이제.”

재료구입도 그녀의 충고대로 하면 싸고 좋은 걸 살 수가 있다. 새우의 내장은 배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등에 붙어 있다. 등 쪽으로 이쑤시개를 밀어넣어 내장을 뺀 새우를 접시에 담는다. 내장을 지고 다니느라 고단했을 새우. 내장이 털린 열 마리의 대하가 접시 안에서 각각 등을 돌리고 꼬부장하게 누워 있다. 새우의 누운 모양새가 눈에 거슬린다. 저녁 잘 먹고 나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고 받고 싸우다 등돌리고 자는 형제 꼴이 아닌가. 열 마리의 대하를 꼬부장한 등이 바깥쪽으로 향하게끔 나란나란 누인다. 그제서야 사이좋은 형제들 같다. 한 사람 앞에 두 마리씩, 오늘 저녁 주요리는 대하쌜러드로 낼 참이다. 저녁 상차림이 그녀의 마음에 들기나 할는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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