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토마스 만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창비 2017

사랑의 힘

 

 

류신 柳信

문학평론가, 중앙대 독문과 교수 pons@cau.ac.kr

 

 

179_409

“신은 사라졌다.” 1832년 3월 23일 괴테( J. W. von Goethe)가 서거했다는 부고를 들은 시인 하이네(H. Heine)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 말이었다. 괴테는 생전에 이미 신화적 존재였다. 그는 시·소설·희곡 등 문학의 모든 장르에서 탁월한 작품을 발표한 대문호였을 뿐만 아니라, 해부학·광학·광물학·식물학·색채론 등에서도 적지 않은 학문적 성과를 낸 자연과학자였으며, 바이마르공국의 추밀고문관으로 재직하며 국정에 참여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괴테는 인문학·자연과학·사회학의 통섭을 실천한 종합적 지성의 신(新)르네상스인이었다. 1824년 노년의 괴테를 방문한 청년 하이네가 그를 제우스에 비교한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괴테의 눈은 만년에도 청년기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신적이었다. 바이마르의 괴테를 방문했을 때 나는 정말로 그의 곁에 부리에 번개를 문 독수리가 있는가 보려고 나도 모르게 시선을 옆으로 돌렸었다.”(『낭만파』) 독일의 ‘제우스’ 괴테의 명예는 사후에도 불멸했다. 괴테의 필생의 대작 『파우스트』는 독일인에게 삶의 길을 제시해주는 ‘현세의 성경’으로 공인되었고, 뒤늦게 근대화의 전선에 뛰어든 비스마르크 시대 독일제국에서 괴테는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구현하는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되었다. 괴테가 활동하던 독일 고전주의의 심장 바이마르가 독일 최초의 민주주의 공화국의 국호로 선택된 역사가 입증하듯이, 괴테의 후광은 독일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담보하는 권능의 아우라로 늘 찬란했다.

그러나 거푸집으로 만든 기념비는 때론 무비판적인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신화에는, 신화가 이야기하는 대상을 부동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고착시켜 대상의 실체를 빼앗고 왜곡할 수 있는 위험성이 내재해 있다. 괴테라는 신화도 예외는 아니다. 히틀러(A. Hitler) 나치 치하에서 괴테상(像)은 극우 정치이념에 의해 오용되었다. 바이마르는 나치즘의 성소로 숭배되었고, 괴테는 ‘독일 민족은 위대하다’라는 나치의 인종적 우월주의를 선동하는 구호의 알리바이로 전락했으며, 괴테의 분신 ‘파우스트’는 끊임없이 노력해 결국 세계를 제패하는 게르만족의 호전적 영웅으로 조작되었다. 히틀러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부각하기 위해 니체(차라투스트라)와 더불어 괴테가 동원되는 어처구니없는 신화교정 작업이 자행된 것이다. 1939년 출간된 토마스 만(Thomas Mann)의 소설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Lotte in Weimar, 한국어판 임홍배 옮김)는 이런 야만적인 시대배경에서 집필되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을 떠나 미국에서 망명 중에 쓴 이 작품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괴테 신화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토마스 만의 문학적 응답이다.

소설에서 괴테는 결핍 없는 전인(全人)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의 모습은 바이마르 독일국립극장 앞에 월계관을 들고 실러(F. Schiller)와 함께 서 있는 위풍당당한 청동상의 포즈와는 사뭇 다르다. 67살의 노인 괴테는 류머티즘을 앓아 몸이 경직되어 있다. “아무리 시적으로 삶을 쇄신하고 회춘해봤자 당신이 서 있는 자세나 걸음걸이는 너무 뻣뻣해서 정말 보기에 딱하고”(528면)라는 로테의 지청구처럼, 노화(老化)는 시간을 초극하는 괴테 신화의 영속성을 수정하는 기제로 기능한다. 또한 일필휘지로 작품을 완성하는 괴테의 천재성도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늘 불만족스러운 회의(懷疑)로 갈등하고, 사유의 부침으로 고뇌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명사의 축시를 써야 하는 번거로운 수고도 엿보인다. “포이크트 재상 각하의 생신 축시 초안도 써야지. (…) 물론 이 시도 다른 수많은 생일 축시와 마찬가지로 그래 봤자 그저 조금 나은 잡동사니가 되겠지.”(350면) 한편 괴테는 기품 있고 고상한 인물로 그려지지 않는다. 자신이 쓴 『색채론』을 논박한 교수를 비방하기도 하고, 날씨와 비스킷의 재고를 걱정한다. 이처럼 토마스 만은 투덜대고 화내고 웃고 짜증내는 ‘인간’ 괴테의 일상을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디테일하게 복원해냄으로써 신화화된 괴테상에 균열을 낸다.

괴테 신화를 허물기 위해 토마스 만이 창안한 장치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년 괴테의 사랑이다. 토마스 만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의 여주인공 로테의 실제 모델인 샤를로테 부프(로테는 샤를로테의 애칭)를 바이마르로 호출한다. 1816년 하순 63세의 노부인 로테가 바이마르를 방문해 괴테와 재회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소설의 첫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16년 전 남편 케스트너와 사별해 미망인이 된 로테가 29세의 딸 클라라와 바이마르에 도착해 여장을 푼 곳이 엘레판트 호텔(히틀러가 바이마르에 방문할 때마다 투숙한 호텔이다)로 묘사되는데, 이 장면은 나치의 정치이념으로 오염된 공간을 순수한 첫사랑의 신화가 재점령하는 알레고리로 읽힌다. 그렇다면 토마스 만은 왜 로테를 바이마르로 초대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마스 만은 야만적인 독일을 구원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괴테의 휴머니즘을 생각했고, 그 휴머니즘의 본질은 바로 사랑으로 보았다. 로테와 재회한 노년의 괴테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때 당신을 향해 불탔고, 지금도 언제나 당신을 향해 불타서 정신과 빛을 발하는 거야. (…) 사랑하는 이여, 사물은 제각기 분리되어 생겨났다가 서로 교환하고 뒤섞이면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마찬가지로 인생도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고도 인륜에 합당한 모습을 드러내는 거야. (…) 우리 자신을 향해 눈을 뜨고, 세계의 통일성을 볼 수 있게 눈을 크게 떠보자고.”(535~36면)

 

토마스 만은 타자를 배제하고 박해하는 나치 독일을 구원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덕목은 세계의 통일성을 직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회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관계의 변화 속에서 지속을 추구하는 힘이다. 사랑을 통해 분리된 두 개체, 이질적인 두 집단은 서로의 경계를 지우며 하나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바이마르 여행의 목적을 묻는 괴테의 질문에 로테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가능성을 찾으러 온 거야.”(533면) 로테의 이 말은, 토마스 만이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를 통해 나치 치하 독일국민에게 전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로 읽힌다.

“문학적 전기의 가장 완벽한 예술형식”(슈테판 츠바이크)을 구현한 문제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괴테 전문가 임홍배(林洪培) 교수에 의해 국내 초역됐다. 번역이란 두 언어를 천칭에 다는 작업이라 한다면, 독일어 원문과 우리말 사이에서 생명의 리듬을 타고 움직이는 등가(等價)의 무게를 섬세하고 면밀하게 측정한 역자의 고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