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토머스 핀천과 1960년대

 

 

이정진 李廷進

영문학 박사. 역서로 『불한당들의 미국사』 『축구의 세계사』(공역) 『친밀한 적』(공역) 등이 있음. godard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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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에 출간된 토머스 핀천(Thomas Pynchon, 1937~)의 두번째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The Crying of Lot 49)에는 주인공 에디파 마스(Oedipa Maas)가 1960년대 미국의 진보적인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버클리 캠퍼스를 방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1950년대의 안정적이되 폐쇄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주부인 그녀는 자유와 활력이 넘실대는 그곳의 분위기에 이질감과 아울러 강렬한 매혹을 느낀다.

 

때는 여름이었고, 주중의 오후였다. 에디파가 생각하기에 대학의 교정이 시끌벅적할 때는 아니었지만, 이곳은 그랬다. 그녀는 휠러 홀에서 언덕길을 걸어내려가 새이더 게이트를 통과해 한 광장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은 코듀로이와 데님 바지, 맨다리, 금발, 뿔테안경, 햇빛을 받는 자전거 바퀴살, 책가방, 흔들리는 사각탁자, 땅바닥까지 끌리는 긴 서명용지, 해독이 어려운 FSM, YAF, VDC(자유언론운동을 위시한 여러 학생운동단체들—필자)의 포스터들, 분수의 물거품, 코를 맞대고 대화하는 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녀는 두꺼운 책을 들고 그곳을 통과할 때 끌림을 느끼면서도 불안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 어울린다고 느끼고 싶었지만, 그러자면 평행우주(alternate universe)들에 대한 얼마나 많은 탐구가 필요할지 아는 이방인 같았다. (…) 이곳 버클리는 그녀 자신의 과거에서 떠올린, 잠에 취한 한적한 대학과 전혀 달랐고, 언젠가 읽은 적이 있었던 극동이나 라틴아메리카의 대학과 더 닮았다. 가장 사랑받는 전래신화들이 의심되고,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며, (정부를 붕괴시키는 종류의) 목숨을 내건 헌신을 결의하는 그 자율적인 문화의 근거지 말이다.1

 

이 인상적인 대목은 상당한 정도로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줄곧 은둔작가로 살아온지라 정확한 시기와 장소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핀천이 첫번째 소설인 『브이』(V.)를 출간한 1963년 이후부터 꽤 자주 캘리포니아주에 머물며 당시 그곳에서 폭발적으로 전개되던 신좌파와 히피들의 새로운 정치활동과 여러 하위문화를 관찰하고 경험했다는 증언이 제법 있다. 그것은 역사의 현장에 가까이 있고자 하는 작가적 의지의 발현이자 개인으로서의 성장을 위한 자기교육 과정이기도 했다.

1984년에 출간된, 습작기의 단편을 모은 『느리게 배우는 사람』(Slow Learner)에 붙인 작가서문을 보면 핀천이 1950년대의 순응적인 문화에 얼마나 갑갑증을 느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연령의 하위문화에는 전반적으로 소심함이, 자기검열하는 경향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1950년대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 중의 하나는 그 시기에 성장했던 사람들에게 그 시기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게 했다는 것이다. 이상한 머리모양을 한 잘나가는 어린 상원의원으로 여겨졌던 존 케네디가 상당한 주목을 받기 전에는 방향성을 상실한 분위기가 만연했다.” 모든 것은 1960년대의 시작과 함께 달라진다. 핀천은 케네디(John F. Kennedy)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의 흥분과 활력 속에서 마침내 그간 웅크렸던 “몸을 뻗어 발걸음을 내딛기”로, 즉 직전 시기의 비트(beat) 세대를 포함하여 다수의 위대한 미국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출판된 자료에서 눈을 돌리고” “책 밖의 미국의 현실”을 두루 살피기로 결심한다.2

이렇듯 핀천은 본격적인 창작활동의 기원을 1960년대에서 찾는 작가인데, 실제로 그는 그 시대, 특히 청년세대의 세계인식과 감수성에 호응하는 혁신적인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곧 1960년대적 현상의 일부가 된다.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SDS)의 초대회장이었던 토드 기틀린(Todd Gitlin)이 쓴 『1960년대: 희망의 시대, 분노의 세월』에는 당시 핀천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케 하는 구절이 나온다. 기틀린은 핀천이 특히, 1963년 워싱턴행진 이후에 SDS로 대거 유입된 이른바 ‘초원’(prairie)세대에게 자신들의 개인적 경험을 미국사회 전체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시키는 일종의 정치 교과서 노릇을 했다고 말한다. SDS의 기존 구성원(Old Guard)들과는 달리 진보적인 사회운동 전통이 미약했던 중서부나 남서부 출신인 그들은 “제국을 건설하려는 미국의 경향성”을 짐작조차 못했고, “미국의 제도를 믿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민자의 자손들과는 달리 처음에는 〔주류사회로부터〕 소외되려는 마음이 없었다.” 그들이 반전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절연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 “소외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칼 맑스보다는 토머스 핀천을, V. I. 레닌보다는 존 레논을 찾았다.”3 기틀린은 이 2세대 신좌파의 지적인 기율 부족과 그와 연관된 감상적인 무정부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핀천을 언급하지만, 당시의 핀천이 밥 딜런(Bob Dylan)이나 존 레논(John Lennon)과 더불어 1960년대의 최전선(이 아니라면 그 가까이 어디쯤)에 위치한 창작자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핀천은 1960년대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소설가이고, 차차 확인하겠지만 최근작을 포함한 그의 모든 창작활동은 1960년대의 자장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작가라는 그간의 지배적인 평판이 핀천의 이런 핵심적인 면모를 가렸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초기작들이 1960년대 세대에게 그토록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정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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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작부터 형식의 여러 층위에서 두드러졌던 핀천 소설의 새로운 요소들은 1960년대의 정치적·문화적 분위기와 공명하는 것이었고, 그런 요소를 통해 구현된 그의 주제의식은 1960년대 신좌파를 위시한 미국의 진보진영이 도달한 정치적 발견이나 깨달음과 맞닿아 있었다.

  1. 한국어판 『제49호 품목의 경매』, 김성곤 옮김, 민음사 2007, 133면. 인용은 필자 본인의 번역이다.
  2. 토머스 핀천 『느리게 배우는 사람』, 박인찬 옮김, 창비 2014, 각각 13, 25, 36면. 인용은 역서를 참조한 필자의 번역이다.
  3. Todd Gitlin, The Sixties: Years of Hope, Days of Rage, A Bantam Books 1987, 1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