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새로운 문학사, 어떻게 쓸 것인가

 

통일문학사를 다시 생각한다

모국어 내부의 타자를 만나는 길

 

 

김형수 金炯洙

시인, 소설가. 1959년 전남 함평 출생. 1985년 『민중시2』로 등단. 저서 『소태산 평전』 『문익환 평전』, 장편소설 『조드』 등이 있음.

millemi@hanmail.net

 

 

1. 모국어를 가꾸는 ‘한 태도’

 

통일문학사라는 낱말처럼 답답한 표현도 없다. ‘통일’문학은 너무도 자주 통일‘문학’에 방해가 된다. 매번 정신도 방법도 시대적 감수성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북한문학을 설명하는 장황한 일이나 민족현실과 윤리적 당위를 강조하는 일로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이 문학의 열정을 정치적 상상력의 늪으로 끌고 갈 때마다 나는 그같은 고민을 처음 독대했던 자리로 돌아가보고는 한다.

“나의 조국은 나의 모국어이다!”

태초의 자리는 이곳이었다. “나의 조국은 나의 모국어”라는 말에서 전해오는 경이롭고 감동적인 울림은 어떤 유장한 선율을 타고 있다. 나는 문단에 나와서 이 주제가 한국문학의 영혼을 이끌면서 우리의 지성을 세상사 속으로 널리 확장해가는 과정을 목격해왔다. 그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형성돼 있던 전통이었다. 가령,

 

이광수·염상섭 시대의 작품을 읽어보면 우리말이 문학 언어로서 아직 미숙하고 초보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어요. 장구한 세월 한문의 지배가 계속되었고 우리말은 주로 구비적인 형태를 취했기 때문에 부득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1900년대는 한국어가 근대적인 문학 언어로 막 출발하는 단계에 있었어요. 이광수는 염상섭이나 김동인보다 훨씬 능숙한 언어를 사용했어요. 한국어를 문학적 언어로 연마하는 과정에서 이광수는 개척자적인 공적을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1

 

이같은 발언은 「소니의 블루스」(Sonny’s Blues, 1957)를 쓴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이 『오셀로』(Othello)에서 인종차별을 느끼고 백안시했던 셰익스피어를 훗날 망명을 떠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언어에 대한 개척자로 재발견했던 순간을 연상케 한다. 한국문학의 선행 세대들의 가슴속에 타고 있던 숭고한 모국어의식은 우리에게 문학의 숙명에 대한 인식을 점화시키고, 그리 오래지 않은 식민지 시절의 추억담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일본어 이쪽에서 우리 모국어는 낡고 못난 것으로 버림받고 지극히 불온한 것으로 짓밟혔어. 아예 조선어는 조선지방의 낡은 사투리라고 여겼고, 어느 때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는 임종 직전의 위기에도 처했으나 끝내 사어(死語)가 되지 않고 우리 언어로 계승되었다네.2

 

그래서 그 시절의 작가들이 1945년 8월 15일을 ‘정치로서의 해방’이 아니라 ‘모국어 해방’이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전율이 인다. 내가 아는 훌륭한 문학은 모두 그같은 ‘운명의 자각’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물론 ‘모국어 해방’이 ‘정치로서의 해방’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언어는 출현하는 것 자체로 이미 정치가 된다. 그래서 염무웅은 다시 말한다.

 

예술가는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시대현실에 깊이 연루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윤동주와 신동엽의 시를 단지 쉽다는 말로 설명하는 것은 그들이 시에서 행한 사유의 깊이, 세상과 대결한 자세의 진정성을 외면하는 것입니다.3

 

혈기왕성한 스무살의 나이에 전쟁과 분단을 겪은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외치되 모국어의 남반부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한라에서 백두까지”를 사유의 대상으로 하였고, 문익환은 수천년 민중의 삶이 일군 생태공동체, 문화공동체로서의 언어공동체를 자연의 것, 신의 것으로 파악하여 기껏 몇십년짜리 체제들이 함부로 분할하고 훼손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막힐 때마다 김남주 같은 정신들이 다시 출현하여 추상같이 고하고는 했다.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에도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말에도 있고

수상하면 다시 보고 의심나면 신고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거동에도 있다

—김남주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분

 

선배 작가들이 고수한 이같은 ‘한 태도’를 그리는 일은, 문학사라는 것이 지극히 학구적인 정진을 담은 서술 행위만을 의미하기에는 너무 크고 지엄한 현실을 껴안은 것임을 간과할 수 없게 한다. 더러 눈앞의 작품 동정만 보고 작가적 생애의 실감을 몰각해도 어쩔 수 없이 문학의 행로는 좀더 커다란 궤도를 그린다. 한국현대사의 수난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황석영의 자전 『수인』(전2권, 문학동네 2017)은 그의 삶이 원고지가 아니라 모국어의 대지를 가로지르는 혈투 속에서 전개되었음을 보여준다. 그가 방북 때 밝힌 ‘분단시대의 작가로서 마지막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소감도, 또한 사석에서 자주 꺼내곤 하는 ‘나는 역사라는 엄처시하를 떠날 수 없었다’는 말도 모두 그가 지닌 모국어정신의 크기를 증명하는 것이다. 통일문학사라는 낱말은 이렇게 한국 근현대사라고 하는 엄처시하에서 숨쉬어온 모국어문학의 장엄한 족적을 내포한다.

 

 

2. 파도 소리에도 사투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수 있다. “나의 조국은 나의 모국어이다!” 이것은 한국문학에 내재된 결코 중단되지 않는 ‘독트린’의 하나였다. 위정자들을 긴장에 빠뜨리는 이 불온한 깃발은 통일을 논의할 때보다 인류 문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