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발제: 6·15 남북공동선언의 성격

 

 

강만길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 ·『통일시론』 편집인

 

 

정상회담과 협상통일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어떤 위치와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봐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분단 이후 논의된 통일민족국가 건설론 및 통일방법론으로는 어떠한 것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양군이 분할점령한 조건에서 남북 통일국가를 수립하기는 어려웠다. 한때 좌우익 연립정부나 극우·극좌세력을 배제한 중도파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으나 이는 실현될 수 없었고, 결국 남에는 친미 자본주의국가가, 북에는 친소 사회주의국가가 섬으로써 민족이 분단되고 말았다. 분단국가들이 성립된 직후에는 6·25전쟁을 통해 무력통일이 기도되었다. 처음에는 북쪽에 의해 통일될 뻔했으나 유엔군의 참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엔군의 38선 이북 진격으로 남쪽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질 뻔했으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후 자본주의체제인 서독에 의해 사회주의체제인 동독이 흡수통일되자 한반도의 경우도 자본주의체제인 남쪽에 의해 사회주의체제인 북쪽이 흡수통일되리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성급한 경우는 북쪽이 6개월 이상, 다소 길게 잡는 경우라 해도 3년 이상 견디지 못하리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6년이 지난 지금도 남쪽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은 희박한 것 같다. 한반도의 경우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불가능한 가장 큰 이유는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 때와 같이 한반도에서 대륙세력이 강화되는 경우는 해양세력이 불안하다는 핑계로 전쟁을 도발했고, 20세기 전반기와 같이 해양세력인 일본에 포함되는 경우 한반도는 대륙침략의 발판이 되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에는 양대 전승국, 즉 대륙세력 소련과 해양세력 미국이 이 지역을 분단함으로써, 대결 속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고 미·소 대결구도가 무너진 후 한반도지역의 주민들은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안되며 오직 협상통일의 길만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협상통일은 베트남의 전쟁통일이나 독일의 흡수통일에 비해 훨씬 더 긴 시간을 요하며, 따라서 인내와 양보가 따라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평화공존 과정이 필요하다. 한반도지역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간과 인내와 양보가 필요한, 세계의 현대사에 전례가 없는 협상통일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또 그것은 일단 평화공존 과정을 정착시키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상회담과 4강 그리고 남북

이번 남북공동선언에서도 7·4 남북공동성명에 이어 자주적 통일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다.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자주적 통일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역시 지정학적 위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6·25전쟁이 끝난 후 남쪽 정부는 한때 일종의 외세인 유엔의 감시하에 치러지는 남북총선거안 혹은 북쪽만의 총선거안을 평화통일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북쪽이 수용할 리 만무한 유엔개입 통일안은 옳은 의미의 평화통일 방안이 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7·4공동성명에서는 외세개입 없는 자주적 통일안이 제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외세개입 없는 자주적 통일안의 가장 중요한 과정의 하나는 남북정상회담이며, 특히 남북의 자주적 접촉과 교섭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상회담이라 할 수 있다. 분단 후 두번의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었는데, 그 하나는 1994년의 합의요, 두번째가 2000년의 합의다. 그러나 1994년의 합의는 남북간의 신뢰구축에 의한 자발적·주체적 합의라기보다 전쟁위험을 앞둔 외세의 개입과 주선에 의한 합의였다. 그 때문에 한쪽 정상이 사망하자 남북관계가 오히려 더 냉각되고 악화되었다. 그후 외세개입 통일안으로 4자회담 등이 제의되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그에 비하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전쟁위험보다 적극적 화해정책(포용정책)에 의한 신뢰구축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외세개입 없는 남북만의 합의에 의한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주변 4강의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클 수밖에 없었다. 분단은 외세개입의 결과였다 해도 통일은 남북의 자주적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반도의 분단이 지속된 것은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소 공조체제 지속의 결과였다. 조·중·소 공조체제는 중소분쟁 및 소연방의 와해 등으로 한·미·일 공조체제만큼 강하지도 지속적이지도 못했으나, 최근 러시아의 안정 회복으로 다시 조·중·러 공조체제가 성립되고 또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를 깨트리고 남북 공조체제를 이룸으로써 한반도의 통일을 성취해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를 유지하면서 남북 공조체제를 이루어가는 방향에서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의 강도를 점차 낮추어가는 한편 남북공조체제의 강도를 높여가는 그런 과정이 곧 현싯점에서의 자주적 통일의 방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남북 주민들이 20세기에는 특히 ‘해방공간’에서는 이를 이루어내지 못했으나─그래서 외세의 작용을 이기지 못하고 민족분단을 맞고 말았지만─21세기에는 외세의 작용을 서서히 이겨내면서 민족자주적 통일을 이룰 만한 역량을 갖추어갈 것이다.

 

정상회담과 연합제 및 연방제

7·4공동성명에서 자주적·평화적으로 통일한다 했지만, 사실 실존하는 두 개의 정부를 전쟁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어떻게 하나로 통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와서 북쪽에서 제시한 1국가 2정부 2체제 안으로서의 연방제와 남쪽에서 제의한 신뢰가 구축될 때까지 2국가 2정부 2체제를 유지하자는 연합제가 대립되었다. 두 안을 두고 생각해보면 통일의 최후 목적이 1국가 1정부 1체제의 달성에 있는한 1국가로 가는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근본적으로 다르거나 대립되어야 할 통일방안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1980년대와 90년대를 통해 연합제안과 연방제안은 전혀 다른 통일방안인 것처럼 대립해서 평행선상을 달려왔다. 두 안의 접합점을 마련하기 위해 절충안을 제시하거나 중간단계를 설정하자고 말하기만 해도 마치 이적론이나 되는 것처럼 탄압을 받아왔다. 현 남북의 두 정부 위에 군사·외교권을 관할하는 하나의 국가를 두자는 연방제안과 그것이 시기상조이니 남북 두 정부가 각기 군사·외교·내치권을 그대로 가지고 상당한 기간 신뢰를 구축해가자는 연합제안은, 당장 1국가제로 할 것인가 당분간 그대로 2국가제를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에는 차이가 있다 해도 상당기간 2정부 2체제를 유지하자는 점에서는 합치된 안이었다. 합치되지 않은 점보다 합치된 점이 더 많았던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 쌍방이 연합제안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는 데 합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의 남북 두 정부 위에 군사·외교권을 가지는 하나의 국가를 따로 두는 것을 미루고, 현 남북 두 정부가 그대로 각기 군사·외교·내치권을 가지되 앞으로 남북 정상회담과 각료회담 및 국회회담 등을 통해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갈 것인가를 토의하고 구체안을 마련하자는 데 합의한 것이다.

당장 군사·외교권을 가지는 국가를 남북 두 정부 위에 두는 일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연합제안과 연방제안으로 평행선을 그어갈 것이 아니라 두 안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감으로써 그 합치점을 찾아내자는 데 합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고집했던 비현실적 명분을 죽이고 현실적·실사구시적으로 통일이 가능한 방향을 찾아가자는 데 합의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요컨대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 집권당국자들이 전쟁통일은 말할 것 없고 흡수통일도 반대하면서 긴 시간이 필요한 협상통일의 길로 들어섰음을 말하며,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에만 속해 있던 한반도의 남북이 이제 조심스럽게 남북 공조체제를 이루어가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종래 평행선을 달리면서 대립했던 남쪽의 연합제 통일안과 북쪽의 연방제 통일안이 접합점을 찾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베트남식이나 독일식이 아닌 한반도식 통일이 이제 시작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