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 2

 

통일시대를 위하여

2000년대 소설을 중심으로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전남대 교수. 주요 평론으로 「보들레르와 근대」 「최근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에 관하여」 「시와 시대, 그리고 인간—『만인보』론」 등이 있음. jatw19@chonnam.ac.kr

 

 

글을 시작하며

 

‘통일시대’라는 말에 때로 작은따옴표가 필요한 것은 2006년의 한반도에도 분단시대가 엄존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제목에서 따옴표를 걷어낸 것 자체는 분단을 온전히 극복한 미래에 대한 필자 나름의 확신과 희망을 표명한 셈이다. 그런 통일시대에 관한 한, 통일과 분단의 헛갈리는 상태가 하루아침에 명쾌하게 정리되기 힘들리라는—어떤 면에서는 그리 되어서도 안된다는—생각은 양식있는 시민들 사이에서 폭넓게 자리잡은 듯하다. 명쾌하지 못한 것은 문학분야도 다르지 않다. 2000년 6·15정상회담 이후 그야말로 요동치는 안팎의 파란 속에서도 남북·북남 문인들은 꾸준히 거리를 좁혀왔다.1 하지만 어렵사리 좁혀진 거리조차도 정세의 ‘변덕’에 좌우되는 형국이어서 우리 당대 윗녘주민들과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은 요원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교류가 극도로 제약된 형편이니, 그런 작품이 나오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일반시민의 쌍방향 접촉이 더 넓고 깊어지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 실감을 작품화하는 작가들이 등장하겠지만, 8·15해방 이후 심화되기 시작한 한반도 주민의 이질적인 근대경험을 무리없이 해체하는 동시에 포용하는 ‘고전’을 만나려면 우리는 아직도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런 작품이 씌어지기만 한다면, 그건 단순히 문학적 사건만은 아닐 것이다. 문학은 삶의 거울이기도 할진대, 남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까지 상이한 형상으로 똬리를 튼 상극의 근대사가 되돌릴 수 없이 종식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청신호가 작품으로 켜졌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요즘 항간을 떠도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언설에도 진지하게 대응해야 옳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남북 근대체험의 파괴적 이질성을 극복하는 문학의 꿈도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한국동란은 문자 그대로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요, 5·18 광주항쟁조차 유년시절에 풍문으로 접한 분단 2세대 작가들부터가 통일의 통념에서 벗어나 통일시대의 도래를 다양한 방식으로 예감하고 있다면 더욱이나 그렇다. 이산의 신고(辛苦)가 골수에 박힌 분단 1세대 작가들의 텍스트가 적잖이 축적된 상황에서 1.5 내지 2세대가 선배들의 작업을 이어받으며 앞시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2000년대 현실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문단의 실상이기도 한 것이다.2

 

 

통일시대와 비평담론

 

민족이나 계급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관성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단 2세대의 작품들이 분단 1세대, 1.5세대의 것들과 더불어 통일시대를 징후적으로 드러낸다면, 그것은 어떤 양상인가. 이 물음에도 통일시대가 뭇사람들의 오고감으로 다져지는 과정으로서의 시간대라는 전제가 포함된다. 인간의 희망으로만 모든 것이 실현되지는 않는 현실에서는 파국으로서의 ‘비약’이라는 최악의 가능성도 물론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일단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상정한다면 그것은 (1세대의) 해원(解寃)과 (2세대의) 상생이 겹치는 시간대일 수밖에 없다. 해원과 상생은 ‘타자’로 규정된 모든 대상들에 대한 인식과 공감의 지평을 넓히는 노력을 요구하거니와, 요즘 평단에서 회자되는 월경(越境)의 상상력도 그런 지평의 확대인 셈이다.

그에 비하면 통일시대의 징후들을 예표(豫表)적으로 포착하는 비평은 전체적으로 창작자들의 활력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비평가들의 노력이 없었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2005년에 열린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 자체가 ‘통일문학’을 향한 뜻깊은 전진이다. 이를 결산한 『실천문학』 2005년 가을호 특집 ‘다가오는 통일시대와 북한문학’도 남북 문인들의 상호이해에 반드시 필요한 정지작업에 해당한다. 또한 “소재주의적 관점을 넘어서 한국문학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6·15의 관점에서 되새겨보”면서 몇몇 비평가들의 입론을 비판한 한기욱이나, “‘통일’ 주제 소설쓰기는 통일보다 더 오래 지속”되리라는 믿음으로 ‘통일과정의 소설적 표현’을 점검한 황광수는 6·15시대를 맞는 2000년대 남측 작가들의 새로운 의식을 살핀 바 있다.3 거기서 방위(方位)를 좀더 확실하게 잡아 통일시대의 문학적 징후들을 모아들이면서 새로운 문학운동을 예감하려는 본고의 시도가 이런 선행작업들에 빚진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오늘의 남북현실을 분단시대가 서서히 잠식되어가는 ‘통일시대’로 규정한다면, 그 근거가 되는 문학적 징후들은 다른 어디서보다 2000년 6월 이후 부쩍 늘어난 직간접적인 방북체험, 2006년 7월 기준으로 8,700여명을 헤아리는 일명 새터민인 탈북자나 남파간첩, 비전향 장기수 등의 문제를 다룬 분단 1세대, 1.5세대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에 투영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향한 염원도 20세기의 마지막 30년간 무수한 가락으로 변주되어왔지만, 6·15 이후의 국면에서는 분명한 차별성을 띤다. 문제는 통일시대라는 제목으로 그러모은 작품들을 비평 본연의 자세로 얼마나 세심하고 공정하게 읽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렇다면 “문학이 그 본연의 모습으로 꽃피는 것 자체”를4 이런저런 단서를 붙이지 않고 더 강조해야 하겠다. 또한 그런 꽃핌을 우리가 희구한다면, 통일시대라는 ‘간판’도 보는 이가 수긍할 수 있게 바르게 거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회과학계에는 일체의 통일담론을 최소강령적 통일과 최대강령적 통일로 나누고 이를 한사코 평화담론과 배치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논자들이 상당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을 통하여 평화를 실현하는 평화공존론적 접근”을 옹호한다면서도 모든 통일담론을 한반도 평화에 해로운 것으로 단정하기 일쑤인데,5 그런 완고함이 비평담론에도 존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가령 ‘흔들리는 분단체제〓흔들리는 민족문학’이라는 등식을 이리저리 굴린 신승엽은 “백낙청이 주장하는 대로 분단체제 역시 흔들리고 있다면,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론’ 역시 그 생명이 한시적일 수밖에 없을 터, ‘흔들리는 민족문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학이념의 모색에 다시 나설 때가 오리라 믿는다”는 말로 결론을 맺었다.6 그간 민족문학담론의 부진과 문제점을 꼼꼼히 적시하고 대안적 문학이념을 찾아나서는 열정에는 필자도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흔들리는 민족문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학이념”을

  1.  이 글을 마무리하는 사이 남북 문인들이 10월 30일 금강산에 모여 ‘6·15민족문학인협회’를 마침내 발족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해방후 민간단체가 주축이 된 남북한 단일 문인조직이 처음 탄생한 셈이다.
  2. 분단의 ‘기원’을 외세 개입을 불러온 1945년 민족해방으로 잡으면 45년 전후 태생이 분단 1세대가 된다. 한 세대를 대개 30년으로 치니, 분단 2세대는 1975년 전후에, 1.5세대는 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들 세대간 감수성의 편차가 크리라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텐데, 1세대는 한국동란과 4·19가, 2세대는 1988년 서울올림픽과 IMF사태가, 1.5세대는 1980년 광주항쟁과 1987년 6·10항쟁이 ‘공적 감수성’을 형성한 결정적 사건이 될 듯하다.
  3. 한기욱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 황광수 「거미의 집짓기와 소화법: 통일과정의 소설적 표현」, 『창작과비평』 2006년 여름호 참조.
  4. 백낙청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창비 2006, 15면. 해당 문장은 이러하다. “특히 창작현장에서는 ‘역사적 임무’를 의식 않는 것이 도리어 ‘문학 나름’의 더 큰 이바지를 가능케 한다는 명제도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실제로 분단체제의 극복은 어떤 식으로든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만 이룩하면 된다는 단순논리가 아니라 분단체제 아래서의 삶보다 한결 낫고 멋진 삶이 가능해진 사회를 한반도에 건설한다는 뜻이니만큼, 문학이 그 본연의 모습으로 꽃피는 것 자체가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5. 최장집 『민주주의의 민주화』, 박상훈 엮음, 후마니타스 2006, 특히 8~9장 참조.
  6. 신승엽 「흔들리는 민족문학」, 『창작과비평』 2006년 여름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