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논단

 

통일시대의 북한영화 읽기

 

 

이향진 李香鎭

영국 셰필드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

 

 

198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한 북한영화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분단현실이 갖는 억압적 측면과 열린 가능성으로서의 통일을 논함에 있어 문화적 접근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영화는 창작자와 수용자 간의 만남을 통해 완성되는 열린 텍스트이며, 영화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이들간의 상호작용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넓혀가는 대화의 과정이다. 따라서 비판적인 영화읽기를 통해 분단의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정치외교적·군사적 협상과 사회경제적 지원을 위주로 하는 대화과정에서는 수혜자의 위치에 머물기 쉬운 일반 대중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한다.

인간의 문화행위로서 영화는 그것이 생산된 사회 내부의 긴장관계를 드러내는바, 재현된 갈등구조 속에 다의적으로 표현된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수용자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읽어내기를 요구하는 한편, 언제나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1 북한의 대표적인 대중문화 형태인 영화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작품 속에 재현된 사회의 갈등 및 변동에 대한 문화적 대응양식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역동성을 전제로 한다. 이는 문화가 가진 역동성이 사람들에게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가치체계와 의미를 재구성하여 그들이 지향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추진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2

 

 

1. 좌절된 꿈의 기록─초기 북한영화와 정치적 목적성

 

북한에서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대중의 정치사회화이다. 국가의 절대적인 통제와 지원 아래 성장해온 북한영화는 현 사회를 지탱하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반복적으로 내면화시킴으로써 권력 중심부와 일반 주민, 그리고 서로 다른 사회집단 간의 갈등을 줄이고 이를 기반으로 현 체제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사상교육에 그 일차적인 중요성을 둔다. 따라서 북한영화가 보여주는 강한 정치적 성향은 영화의 또다른 중요한 사회적 기능인 대중오락적 측면이 사상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 기여하는 수단적 가치에 머물도록 한다.

정치적 목적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영화는 일제하 카프(KAPF)문예운동이 지향하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이론적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북한의 공식적인 영화사는 북한정권 수립 이후의 기간만을 인정하면서, 최근까지 일제하의 한국영화 생성이나 카프계열 영화인들의 작품활동이 갖는 의미마저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북한정부의 입장은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역사를 재단하고 이미 만들어진 작품의 사회적 존속 여부까지도 국가의 통제 아래 둠으로써, 과거 군사정권하의 남한사회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잔존했던 일제치하 영화정책과 너무도 흡사한 특성을 보여준다.

1903년 활동사진이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한국영화는 그 전반적인 상업적·오락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이를 대중 정치교육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정부·지배층의 개입과 이를 거부하고 밑으로부터의 저항을 모색하는 사회세력 간의 대립을 통해 성장해왔다. 첫 한국 극영화인 「월하의 맹세」(윤백남 1923)부터 일제당국의 직접적인 개입과 지원 속에 양산되던 친일영화에 맞선 나운규의 「아리랑」(1926)까지 꾸준히 맥을 이어오던 민족주의적 성향의 영화들의 출현과 이에 대한 대중적 호응은 식민통치와 경제적 탄압을 거부하는 피지배민족의 민중의지를 표현한 문화적 영역에서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북한영화의 실질적 기반과 이론적 토대를 발전시킨 카프계열 문학·예술인들의 일제하 작품활동은 이러한 역사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아리랑」 및 후속작품들을 두고 이어지는 나운규·이필우를 위시한 비(非)카프계열 영화인들과 안종화·윤기정·서광제·강호·김유영 등의 카프계열 평론가들 간의 논쟁은 카프계열 예술인들이 지향하던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위한 대중교육수단으로서의 영화에 대한 신념을 명쾌히 드러낸다.3

그러나 1928년 김유영의 「유랑」으로 시작된 사회주의 저항영화운동은 일제의 계속되는 검열과 사상적 통제, 그리고 연이은 흥행 실패와 경험 미숙 등으로 인해 미완성작 「지하촌」(강호 1931)을 포함한 5편의 작품을 끝으로 그 자취를 감추게 되고, 반제·계급투쟁을 위한 경향성 영화는 이들의 좌절된 꿈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임화·강호 등 일제하 카프문예운동을 주도하던 일단의 작가들이 해방 후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하의 남쪽이 아니라 또하나의 해방된 공간인 북쪽으로 향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 선택에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축적된 기술과 자본, 사회적 하부구조 없이 완성된 텍스트로 존재하기 어려운 영화의 매체적 특성상, 새로이 출범한 북한의 정치체제는 국가권력이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후원자로서 영화인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충족시켜주었다. 특히 공산정권의 출범과 함께 이루어진 영화산업의 국영화조치는, 주요 기계설비는 물론 거의 모든 영화촬영소와 영화인들이 서울에 집중해 있던 당시의 열악한 제작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영화가 태동, 성장해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일제하의 카프 영화인들이 겪은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작품의 한결같던 흥행 실패는 이들에 의해 주도된 초기 북한영화의 대중성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한다. 지난 10여년간의 북한영화계의 새로운 움직임, 즉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관객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 제작에 대한 모색은 문화적 엘리뜨주의에 입각하여 그동안 도외시한 대중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

전반적인 사회발전과정에 따라 구분되는 북한의 영화사는 다음의 5단계로 나누어진다. 평화적 건설 시기(1945년 8월〜1950년 6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 시기(1950년 6월〜1953년 7월); 전후 복구사업과 사회주의 기초 건설을 위한 투쟁 시기(1953년 7월〜1958년); 사회주의의 전면적 건설과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의 시기(1959〜66년); 그리고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튼튼히하기 위한 투쟁의 시기(1967년〜현재).

구(舊)카프계열을 주축으로 하여 북한영화계는 첫 두 단계인 1945년부터 1953년까지 본격적인 영화제작을 위한 산업적 여건을 형성해나간다. 이 시기의 가장 두드러지는 업적은 3·1운동을 기념하여 기록영화 「우리의 건설」(1948)과 극영화 「내 고향」(김승구 1949)의 제작한 것이다. 또한 1948년 10월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에 ‘북조선영화인동맹’이 조직되는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김일성의 교시는 북한에서 영화가 대중의 사상교육과 정치선동을 목표로 하는 국가 정책사업임을 분명히하고 있다.4 1947년에는 소련과 중국에서 도입한 기자재와 이들의 기술지원 등에 힘입어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설립되고, 주인규·강홍식·추민 등의 월북 영화인들이 그 운영을 맡으면서 북한영화는 서서히 모양새를 갖춰가게 된다. 그 결과, 첫 5년간 15편의 기록영화와 2편의 인민계관상 수상 극영화가 제작되었다. 또한 한국전쟁 기간인 두번째 시기에는 인민군 소속 영화제작소에 의해 70여편의 종군기록영화와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최익규 1952) 「또다시 전선으로」(천상인 1952) 「정찰병」(전동민 1953) 등 5편의 극영화가 만들어졌다.

휴전 이후 1958년까지의 세번째 시기에는 모두 20여편의 극영화가 제작되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빨치산 처녀」(윤룡규 1954) 「신혼부부」(전동민 1955) 「아름다운 노래」(전동민 1955)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은 대체로 전쟁의 포화 속에서 보여준 북한주민들의 희생적인 투혼과 전후 경제복구 노력 등을 주제로 한다. 또한 1955년에는 전쟁중에 파괴된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복구된다. 이 시기에 김일성은 영화관련 연설을 통해 자연주의나 형식주의 등을 내세우는 부르주아의 반동적 미학사상을 철저히 배격하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민족주의적 전통을 창조할 것을 일관되게 강조한다.5 1959년부터 1966년까지의 네번째 시기에는 ‘천리마 시대’에 걸맞은 혁명적인 작품의 창작을 독려하는 김일성의 교시와 함께 전체 영화계도 제작 편수의 증가추세를 보이면서

  1. R.A. Rosenstone, Visions of the Past: The Challenge of Film to Our Idea of History, Cambridge, MA: Harvard Press 1995, 7면
  2. K. Marx & F. Engels, Selected Letters, Peking: Foreign Language Press 1977, 92면.
  3. 이효인 『한국영화사강의 I』, 이론과실천 1992, 93〜150면.
  4. 김일성 「문화인들은 문화전선의 투사로 되어야 한다」(1946.5.24), 『김일성저작선집』 2,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79, 233면.
  5. 김일성 「영화는 호소성이 높아야 하며 현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1958.1.17), 『김일성저작선집』 12,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3, 13〜2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