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통일운동과 여성주의

 

 

정현백 鄭鉉栢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1. ‘시비걸기’를 넘어서는 문제제기

 

6월 13〜15일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은 전국민을 흥분과 열기로 휘몰아갔다. 매스컴들은 엄청난 지면과 시간을 이 역사적 사건에 할애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을 괴수라고 우리 아이에게 설명했는데, 다시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요?”라는 어느 평범한 어머니의 평범한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답은 아직 나오지 못한 것 같다. 해묵은 반공이데올로기와 남북공동선언 사이의 간극으로 인한 이같은 국민들의 혼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스타’이미지와 언론의 가세로 증폭된 남북정상회담의 다분히 포퓰리즘적인 호소력에 의해 가려지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한층 강화된 민족주의 담론이 작동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에 국민이나 각종 이해집단은 자신들이 지닌 다양한 견해를 표출하기보다는 이를 자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어렵게 성사된 이 역사적인 사건을 훌륭한 결말로 유도하려는 국민들의 바람이 모든 ‘딴지걸기’와 ‘흠집내기’를 잠재운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 국민들이 남북문제에 대해 실용적인 입장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던 그간의 자세를 벗어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상회담을 전후해 국민이나 시민단체가 보인 신중함이나 실용주의적 태도는, 통일논의가 지나치게 정부주도로 흘러가면서 민간운동의 활동공간을 위축시키거나 공론의 장에서 제기될 수 있는 큰 문제들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염려를 갖게 한다. 실제로 정상회담 이후 민간단체들은 대북접촉이 어려워졌음을 토로하고 있다. 따라서 흠집내기나 시비걸기를 넘어선 좀더 심화된 문제제기와 전문적인 토론을 통해, 이 엄청난 역사적 도약이 초래하는 혼란을 국민들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게 하는 한편, 통일의 큰 방향을 잡아가는 데 있어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참여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여기에 여성운동이 담당해야 할 몫도 크다고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이 모든 이들의 대화주제가 되던 시기에, 한 통일문제 전문가가 ‘통일이 되면 가장 손해볼 집단’을 꼽은 일이 있다. 놀라운 것은 그 1순위가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통일이 되면, 남한남성들은 페미니즘이나 들먹거리는 남한여성보다 북한여성을 선호하게 되리라는 설명이었다. 반 농담조이기는 했지만 여성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위협적으로 들렸다. 남한사회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상업화의 물결과 결탁하면서 무성해지고, 이에 대한 남성들의 경계심도 대단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의 지위가 ‘노동력의 주변화’를 통해 더욱 열악해지는 현실을 감안할 때, 통일, 아니 최소한 남북교류의 활성화만으로도 노동시장이나 사회적 역할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간 여성계는 통일 후 급속히 열악해진 옛 동독 여성들의 현실을 접하면서, 또 동·서독 여성운동가간에 생겨난 갈등과 불화를 지켜보면서, 통일이 성(gender)과 연루되는 방식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통일 후의 미래사회와 관련해서도, 성문제가 성찰되지 않는 통일은 ‘온전한 내적 통일(Innere Wiedervereinigung)’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통일과정에 대한 여성의 적극적인 개입이 단순히 여성의 지분 확보를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간의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한 새 시도와 결합하는 과정이 될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2. 민족주의 담론, 민족국가 그리고 여성

 

남북정상회담은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언술과 함께 남한사회 내에서 민족주의 이념을 고양시키고 있다. 지난 반세기를 거치면서 나타난 남북한간의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는 데 한 민족임을 확인하는 일이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우리 민족처럼 거의 반만년 동안 외세에 위협받고 고통당해온 민족에게 민족주의 담론이 주권을 지키는 생존전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민족주의가 담고 있는 구체적 내용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민족주의는 혈통적 민족주의 혹은 문화적 민족주의에 근접했는데, 특히 남한의 경우는 분단 이후 극단적인 자본주의 경쟁사회 그리고 군사주의 문화에 의해 더욱 경직되었다. 이 이념이 통일문제와 결합될 경우 지니는 문제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민족의 생존’이라는 최고 가치를 위해 일반 민주주의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부독재를 물리치면서 간신히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우리 현실에서, 폐쇄적 민족주의와 통일운동의 결합은 민주주의의 실질적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남한의 민족주의는 남한사회의 경제적 발전 정도나 국제적 위상에 맞지 않게 폐쇄성을 지니고 있음이 학계에서도 종종 지적되고 있다. 우리 경우는, 역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약소국이지만, 외세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민족주의운동 단계를 넘어서 이제 민주주의 담론이 사회의 전면으로 등장한 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과는 대조적이다. 이제 우리도 강력한 민족주의적 호소력을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애호심으로 서서히 전환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독일통일은 서독인들이 성취한 사회적 시장경제, 개방사회, 민주주의혁명에 대한 체제 애호심(Verfassungspatriotismus) 때문에 반쪽의 성공이나마 거둘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

둘째로, ‘민족의 생존’이라는 거대담론 앞에서 여성이나 여타 소수집단의 인권침해 문제가 무시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대다수의 식민지 국가에서는 자율적인 민족국가를 구성하고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과제였다. 봉건적 잔재와 투쟁하면서 민족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했던 민족주의자들에게, 여성은 근대화된 민족의 이미지를 위해서 개화되어야 했고, 또한 민족해방이라는 과제의 달성을 위해서 민족주의운동에 통합되어야 했다. 식민지조선의 담론에서도 주권을 상실한 조국은 ‘어머니’로 상징화되면서, 모성이 찬미되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생계를 꾸려가는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이 강조되었지만, 이는 임시방편적이었다. 독립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회복되면서, 모성의 역할은 다시 수동적이거나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족주의와 여성의 결합은 민족주의운동 내에서 여성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민족주의자들의 어머니 담론은 민족의 이익을 위해서는 여성의 이익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학습시켰다. 식민치하에서 여성은 투옥된 남편과 아들을 말없이 뒷바라지하는 생계담당자이자, 식민지 자본주의의 값싼 노동력으로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로 살아갔고, 이는 여성이 민족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착취의 희생자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여성이 성차별의 희생자라는 점이 제대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식민지 해방 이후 생겨난 주권국가에서 민족주의는 좀더 위험한 방식으로 여성과 결합하였다. 독립 이후의 제3세계는 식민통치를 통해 구축된 법·관료·군대·교육제도 등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탈식민 기획에 실패하고 만다. 동시에 식민통치에 대한 반감은 ‘민족문화찾기’라는 명목 아래 가부장제의 봉건적 유제를 다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또한 식민지 유제와 봉건적 전통이 결합하면서 근대화과정에서 기묘한 동력으로 작용함에 따라, 여성에 대한 노동착취와 성차별이 강화되었다. 남한의 경우에도 7,80년대 공업화를 위한 값싼 여성노동력의 동원과 착취는 여성의 전통적인 미덕으로 알려진 충순과 희생정신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나이어린 여성노

  1. 한운석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과거: 독일인의 민족의식(1945〜1994)과 내적 통일의 문제들」, 『해외지역연구』 제1권 제1호(199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