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손흥규

손홍규 孫洪奎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봉섭이 가라사대』 『사람의 신화』,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등이 있음. munhac@empas.com

 

 

 

투명인간

 

 

그가 내게 물었다. 여기에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 있는 것 같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 여기 오셨어요? 내 목소리는 허공에 풀려들어가 허공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지난해에 어떤 방식으로 아버지의 생일을 치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여느해처럼 그냥 슬쩍 넘어갔을 수도 있고 조촐한 파티를 벌였을 수도 있다. 패밀리 레스또랑에서 외식을 했을 수도 있고 영화를 관람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딱히 지난해의 오늘이 어땠는지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자는 건 농담이었을 뿐인데 어머니와 동생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생일을 기념하는 특별한 선물이 될 거라고 했다. 동생은 이 세상을 단조롭고 따분한 곳으로 여겼기에 여태 해보지 못한 일을 한다는 데 흥분했을 뿐이다. 우리는 효과적으로 아버지를 없는 사람처럼 취급할 수 있는 방법을 숙고했다.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돼! 몸이 부딪혀도 모른 척해야 돼! 이런 의견들이 나왔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면 안된다고 동생은 강조했다. 습관적으로 대답할 수도 있으니까. 동생과 나는 어린시절에도 대답은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어머니는 한번도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해본 적이 없다. 배우가 되었다면 일류는 아니더라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정도는 되었을 거다. 어머니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동생은 좀 걱정스러웠다. 웃음이 헤프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몇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아버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나는 동생에게 웃음이 나거나 짜증이 날 때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요법을 가르쳐주었다. 간단하다. 웃고 싶으면 슬픈 일을 떠올리고 짜증이 나면 기쁜 일을 떠올려라. 어차피 동생은 웃거나 짜증내거나 둘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동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빠나 실수하지 마셔. 동생은 내게 혀를 내밀었다. 알아듣는다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정작 연극이 시작되었을 때 나를 놀라게 한 사람은 동생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보며 눈웃음을 치거나 손가락질을 했지만 동생은 시종일관 최후의 전투를 치르는 군인처럼 무덤덤했다. 물론 동생의 엄숙함은 과장된 게 분명했다. 우리 식구가 아니더라도 동생의 얼굴이 부자연스럽게 뻣뻣하다는 걸 단번에 알리라. 얼굴 근육도 쓰는 대로 발달하기 마련이다. 동생은 그처럼 근엄한 표정을 여태 지어본 적이 없기에 당연히 누가 보더라도 꾸민 표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재치있게 동생의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윤색해주었다. 동생은 방금 남자친구가 바람둥이라는 걸 확인했다. 어머니는 동생이 통화할 때 옆에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오기 직전까지 남자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훈계했다. 이런 식으로 슬쩍 사연을 만들었기에 동생이 평소와 달리 과묵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 된 셈이다. 아마도 가장 당황한 사람은 나였을 테다. 나는 목구멍이 근질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심장이 딸꾹질을 하는 듯했고 입가에 미세한 경련만 일어도 온몸이 구겨졌다 펴지는 것처럼 강렬하게 느꼈다. 그래본 적이 없는데 맞은편에 아버지가 앉은 뒤로 아니 어쩌면 이 계획을 꺼낸 뒤로 다리를 떨었다. 다리를 떤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멈추긴 했지만 조금 뒤 다시 다리를 떠는 걸 알게 되는 식이었다. 마약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 네 식구는 초조하고 몽롱한 상태로 금요일 밤 생일잔치를 치렀다.

 

식탁 가운데 놓인 둥그런 케이크는 동생과 내가 돈을 모아 샀다. 초콜릿 시럽으로 그린 하트 문양 둘레로 딸기와 키위 조각을 얹은 생크림 케이크였다. 과일과 포도주는 어머니가 준비했다. 초를 꽂을 때 잠깐 다퉜다. 우리는 몇개를 꽂아야 할지 몰라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것도 모르느냐며 우리를 힐난하더니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슬며시 안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리고 마흔여덟이라고 말했다. 동생은 쿡쿡 웃었다.

“엄마, 아빠는 엄마 서방이지 제 서방이 아니잖아요.”

나도 덩달아 웃었다. 아버지에게 똑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 마누라지 제 마누라가 아니잖아요. 어머니도 내킨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쟤는 네 동생이지 내 동생은 아니잖니.

“서둘러라. 곧 오실 거다.”

케이크에 모두 열두개의 초를 꽂았다. 기다란 초는 십년을 뜻했다. 동생이 부주의하게 깊숙이 꽂는 바람에 짧은 초와 높이가 같았다. 내가 주의를 주자 동생은 우리 아빠가 열두살이네, 하며 손뼉을 쳤다. 나는 깊게 꽂힌 기다란 초를 뽑아 조심스럽게 다시 꽂았다. 하나에 십년씩 사십년을 꽂았다. 세월의 무게 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벽시계를 올려본 뒤 다시 재촉했다. 승강기 운행 소리가 들렸다. 초에 불을 붙인 뒤 거실 전등을 껐다. 어둠이 벌떡 일어나다가 식탁 주위에서 고꾸라졌다. 촛불에 비친 동생의 얼굴은 고혹적이었다. 나는 현관문을 열어놓은 뒤 동생 옆에 앉았다. 제법 긴장이 되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복도의 쎈서등을 뒤로 받은 채 씰루엣으로 섰다. 어머니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대단한 어머니였다. 이제 정말 시작인 거였다. 나는 실눈을 뜨고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검은 팔이 전등 스위치 쪽으로 향하다 멈췄다.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를 의식한 게 분명했다. 아버지도 생일잔치에 동참할 준비가 되었다.

 

아버지는 식탁에 다가와 손을 번쩍 들었다. 반갑다는 뜻이었다. 때로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지만. 하마터면 나도 손을 마주 들 뻔했다. 동생 덕분에 그런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

“아빠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오빠, 가서 문 닫아버려.”

동생은 흥분했는지 목소리 끝이 떨렸다. 아버지를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아버지를 스쳐 지나갔다. 내 오른팔이 아버지의 오른팔을 스쳤을 때 왠지 모르게 짜릿했다. 어쩌면 나는 이런 식의 상황을 오랫동안 꿈꿨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싶었던 욕망이 무의식 속에 잠복했다가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며 활개를 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부끄러웠다.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모종의 연극이 실연중임을 눈치 챈 듯했다. 아마도 그는 유쾌한 가족극을 연상했으리라. 그는 어머니 옆자리에 앉았다. 문을 닫고 돌아온 나는 아버지 맞은편, 동생 옆에 다시 앉았다. 아버지는 싱글벙글 웃었다. 그는 식구들이 무슨 일을 꾸몄는지 다 알지만 기꺼이 속아 넘어가줄 용의가 있노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듯했다. 나는 허공을 보는 것처럼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양복 윗도리는 하루의 노동을 증명하듯 후줄근했다. 어깨선이 구겨졌고 넥타이가 비뚤었다. 팔뚝에 잡힌 주름의 골은 촛불 탓에 더욱 깊고 어두웠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를 보는 게 아니라 딴 곳을 본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니까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하마터면 다 아시잖아요. 권태로운 식구에겐 이런 시간이 가끔 필요하다는 걸, 이렇게 말해버릴 뻔했다. 다들 나를 모른 체하기로 작정이라도 했니? 멋진 케이크구나. 생일축하 노래는 어떤 걸로 불러줄 거니? 내가 언제 촛불을 끄면 되는 거지?

아버지는 주연으로 발탁된 무명배우처럼 쑥스러워했다. 나는 지루한 척을 하느라 엉덩이를 의자 끝에 걸치고 거만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자세로 고쳐 앉았고 아버지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그의 특별한 주의를 끌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즈음에는 아버지도 동생이 지나치게 뻣뻣한 얼굴이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가 동생을 달랬다. 남자란 다 그렇다, 세상에 남자는 많다, 그 녀석보다 좋은 녀석을 만나게 될 거다, 이런 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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