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솔뫼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겨울의 눈빛』 『우리의 사람들』 『믿음의 개는 시간을 저버리지 않으며』, 장편소설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 『머리부터 천천히』 『고요함 동물』 『미래 산책 연습』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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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오브 어스

 

 

이건 강주가 움직임연구회에 다닐 때의 이야기이다. 작년 이맘때 강주는 움직임연구회에서 진행하는 움직임워크숍을 8주간 들었다. 움직임연구회는 움직임연구회 중부지구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러니까 서울에 이런 곳이 몇군데 더 있을 것이다 아마도. 중부시장 근처라고 해야 할까. 중부시장 안에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중부시장 왼쪽 끝에서 동대문을 향하는 골목에 위치한 건물 3층에 연구회는 있었다. 시장 건물들이 전부 어디 하나 꼽을 수 없게 다 오래되었기 때문인지, 과장하지 않고 모두 최소 오십년은 넘어 보이는 것들이었고, 그래선가 연구회가 있는 건물은 지은 지 이십년이 넘어감에도 그 사이에서는 새 건물처럼 보였다. 움직임연구회는 개개인의 움직임을 스스로가 이해하고 각자 원하는 움직임을 찾아가도록 돕는다는 목표로 분기별 워크숍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간이었다. 강주가 좀더 다녔다면 개개인의 움직임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이곳 사람들이 하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겠지만 두어달 워크숍에 참가한 것으로는 대략적인 분위기만 읽을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였다.

워크숍 첫 시간에는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워크숍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이 절반쯤 되었고 이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나 기존 연구회 멤버들이 절반쯤 되었다. 자기소개는 평범하게 이름과 이곳에 오게 된 계기나 이유 같은 것을 말했는데 진행자는 이야기를 하다가 평소 자신의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어색해하면서도 걷거나 앉아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머뭇거리는 사람들 옆으로는 연구회 멤버들이 천천히 다가가 그 사람의 움직임과 연결된 보다 크고 분명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날 강주 옆으로는 보훈이 다가와 천천히 팔을 붙이고 흐르듯 느리게 움직이게 하였다. 강주와 보훈은 등과 등을 맞대고 팔을 움직였다. 강주는 자신의 움직임에 어색함을 느낄 때가 많았는데 그날 보훈과 함께 움직였을 때는 그간 느껴본 적 없던 편안함과 부드러움을 느꼈고 보훈과 만든 이 움직임 경험은 오래도록 강주에게 남아 이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게 했다. 애리는 첫날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두번째 시간부터 나왔는데 두번째 시간에 애리와 강주는 움직임 파트너가 되었다. 움직임연구회에서 만나게 된 애리와 강주는 그렇게 한동안 자주 만나고 함께 어울렸다.

 

첫날은 왜 안 나오셨어요?

첫날에는 뭐든 별거 안 하잖아요.(애리 웃음)

그렇기는 해요.(강주 웃음)

 

두 사람은 두번째 시간에 함께 파트너가 되어 서로의 호흡을 지켜보며 어떻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지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강주는 그 시기 저녁 8시에 동대문 상가 안 까페에 출근해서 동대문 여기저기에 커피를 배달한 뒤 아침에 퇴근했다. 일주일에 5일을 그렇게 근무하였고 수요일 오전에는 움직임워크숍에 참가했다. 워크숍에 참가하지 않는 다른 날에는 걸어서 근처를 걷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한 뒤 잠이 들었다. 워크숍은 즐거웠지만 일을 하다 와서인지 늘 조금 졸리고 피곤했다. 애리는 무릎 꿇고 앉아 강주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잠깐 멈췄다가 다시 내쉬는 것을 보고 강주는 어느새 잠이 들 듯 말 듯 반걸음 더 가면 잠이 들어버리는 곳으로 향해가고…… 애리는 고개를 돌려 주변에 조용히 하라는 듯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간다.

강주는 퇴근하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떨 때는 그 주변을 한참 걷다가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벤치에 누워 있거나 할 일 없이 거닐다 보이는 동대문 상가에 들어가 이곳은 왠지 유난히 조용하다고 생각하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거나 했다. 워크숍 두번째 시간 후에는 애리와 함께 근처를 걸었다. 애리와 강주는 러시아 빵집에서 치즈가 든 빵과 커피를 사서 공원에 앉았다. 빵은 크고 둥글고 마치 쿠션같이 안으면 안심이 되고 한참을 먹어도 절반도 다 먹지 못해 나중에는 무릎 위에 두었다. 햇빛이 반짝이고 공원은 둥글고 공원 안에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기 위한 여러 곡선으로 된 조형물 몇개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보더들이 곡선을 그리며 지나가고 넘어지고 이런 소리는 한참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며 여전히 덩어리로 남은 빵의 무게를 잠깐 의식했고.

애리는 작고 마른 체형에 긴 머리를 양쪽으로 묶고 있었고 팔다리는 유난히 길고 눈이 먼저 웃는 흰 얼굴에 덧니까지 있어서 강주는 보자마자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함께 손바닥을 맞대고 힘을 줘보거나 탄력 있는 끈을 잡고서 당기거나 하면 힘이 세서 신기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자세도 꼿꼿했다. 흐트러짐 없이 앉아 있던 애리는 저 근데 보드도 꽤 타요 말하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영상 몇개를 보여주었다. 영상 속 애리는 방금 회색 비니를 쓴 남자애가 계속 넘어지던 조형물 위를 가볍게 타 내려가고 있었다. 강주는 화면을 보다 애리를 보다 눈앞의 유유히 흘러가는 움직임들을 보다가 애리를 보다가 애리는 역시나 눈으로 생글거리고 있었다.

 

아, 그래서 이전에 여기 와봤다고 했었던 거군요.

네. 한창 탈 때는 뭐 맨날 왔어요.

 

그날 공원에서 보드를 타는 사람은 다섯명이었는데 모두 비니를 쓰고 있었고 모두 반스를 신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고 팬츠였고 나머지는 면바지였다. 셋은 외국인으로 보였는데 다섯명 모두 이곳에 익숙해 보였다. 약속도 하지 않고 매일 이곳에 와서 만나고 움직이고 구르고 부딪히는 사람들 같았다. 보드는 운동이라고 해야 할까 놀이일까. 움직임워크숍을 듣고 있어서인지 강주는 더 고민하지 않고 이걸 움직임이라고 치기로 했다. 너무 세상 모든 것이 움직임 같지만 아무튼. 이걸 움직임으로 보기로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스케이트보드는 왠지 조금 평등한 움직임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월등히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곳의 흐름이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고 다섯 사람 중 꼽자면 누가 제일 잘 타고 누가 제일 못 타고를 뽑을 수야 있겠지만 신기하게 잘하고 못하고를 굳이 구분하게 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그게 보드라는 움직임의 특징일까. 그 생각을 입 밖에 낸 건 아닌데 애리도 그런 말을 했다. 보드는 못하는 사람도 못한다는 생각이 막 들지 않아서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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