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특권과 공정 사이

 

 

김중미 金重美

작가. 장편소설 『모두 깜언』, 소설집 『조커와 나』,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종이밥』 등이 있음.

mansuk99@hanmail.net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다.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문장이었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 않았지만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청년과 노인의 빈곤은 더 심화되고, 장애인과 퀴어의 목소리는 공명되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약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혐오하도록 부추긴다. 허공과 땅 위에서는 여전히 해고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이 이어지고, 이주민과 난민의 인권과 사회적 지위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새해에 읽은 첫 책은 『아빠의 아빠가 됐다』(조기현 지음, 이매진 2019)였다. 스무살에 아빠의 보호자가 된 청년은 비교적 담담하게 대한민국이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사회인지 서술한다. 글을 읽다보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기초생활수급제도와 부양의무제가 외려 가난한 사람들의 자립을 막고 희망을 짓밟는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1987년부터 인천의 한 빈민지역과 농촌지역에서 공부방을 해오면서 만난 가난한 이들의 현실도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청년이 경험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의 불평등에 민감하다고 한다. 전 법무부장관 조국의 자녀들이 누린 특권에 누구보다 분노한 청년들은 다름 아닌 이른바 ‘스카이’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아마도 대체로 초등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했을 것이고,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수많은 학원과 과외를 거쳐 대학에 합격했을 것이다. 더러는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가 ‘리터니’가 되어 국내 대학에 입학하는 험난한 과정을 지나왔을 것이다. 자신들은 그렇게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대학에 입학했는데 누군가는 부모들의 특권으로 수월하게 합격했다니 분노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선행학습의 기회, 사교육의 기회, 유학의 기회, 거기에 더해 상위권 학생에 대한 학교의 아낌없는 지원과 특혜 역시 특권이라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능력이라고 믿는, 그래서 공정하다고 믿는 ‘실력’이라는 것이 어쩌면 남보다 많이 누릴 수 있는 ‘기회’ 덕분이었음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어차피 한정된 기회, 한정된 재화를 누리는 사람이 자기가 누린 것이 특권이라고 인정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 사회는 실력과 능력이 곧 공정의 잣대라는 신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방의 청년과 청소년들은 조국 자녀들의 특권에 냉소는 할지언정 크게 분노하지 않았다. 실제 조국 사태 이후의 여론조사를 보면 고졸 청년, 혹은 지방대 학생들은 스카이 대학 재학생들처럼 분노하기보다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았다. 장관급 공무원이나 교수 자녀 간의 경쟁은 텔레비전 중계도 되지 않는 완벽한 그들만의 리그다. 그러니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특권에 대해서 공감할 수 없고 분노도 더딜 수밖에 없다. 특권을 손에 쥔 유리바닥 위의 청년들이 그 아래에 있는 청년들의 처지와 고통에 대해 공감은커녕 무지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리처드 윌킨슨(Richard Wilkinson)과 케이트 피킷(Kate Pickett)은 공동저서인 『불평등 트라우마』(한국어판 이은경 옮김, 생각이음 2019)에서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언제나 강력하게 특권이 특권을 낳고, 불평등은 빈곤과 마찬가지로 세대 간 불이익을 대물림하는 현상을 초래하며 방대한 인간의 능력과 재능, 잠재력을 허비한다”(297면)라고 했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은 언젠가부터 해도 안 되는 것, 아무리 애를 써도 도달할 수 없는 곳을 꿈꾸지 않는다. 체념하고 냉소한다. 좌절된 욕망은 무력감을 키운다.

 

인천의 만석동과 강화 양도면에 있는 ‘기찻길 옆 작은 학교’(공부방)에도 2020년 1월 졸업을 한 고3이 네명 있었다. 공동체 후배들의 자녀 둘과, 주변에 살면서 공부방에 다닌 아이 둘이다.

공동체 아이 기역이와 니은이는 공부방에서 가까운 일반 고등학교에 다녔다. 공동체의 원칙에 따라 어릴 때부터 사교육은 받지 않았고 부모가 함께하는 공부방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다만 영어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 테이프와 책으로 혼자 공부하는 학습지를 허용했다. 두 아이는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면 공부방에 와서 한두시간씩 필요한 과목을 공부했다. 이곳 아이들은 정시보다는 수시, 그러니까 학생부종합전형 혹은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간다.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 기초생활수급자 전형, 농어촌 특별전형, 다문화자녀·다자녀 전형 등등. 학생부종합전형은 중심부에서 밀려나 주변부에 있는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의 기회를 많이 준다. 그 대신 성적 외에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자신의 진로에 맞춰 자율동아리를 만들고 모든 경시대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틈틈이 장애인 봉사, 지역아동센터 봉사 등 봉사활동도 해야 했다. 기역이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하루 네시간 이상을 자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고 내내 일이등을 도맡았다. 성적이 좋으니 학교에서도 특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니은이의 성적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갈 만큼은 아니었기에 학교의 지원 없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스펙을 만들어야 했다. 대학입시원서를 쓰는 3학년 2학기가 되자 두 아이의 생활기록부는 양과 질에서 크게 차이가 났다. 두 아이는 대학입시 위주의 고등학교 교육은 수시든 정시든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도 기역이와 니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공정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선(先)이 된 사회에서 이제 막 십대를 통과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기역이와 니은이는 예상대로 각각 서울의 상위권 대학과 중상위권 대학에 합격했다.

 

공동체 두 아이와 같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디귿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몸집이 왜소하고 내성적이라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디귿이에게는 공부보다는 친구, 가족, 돈이 더 큰 문제였다. 그래서 특성화고등학교에 갔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업보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디귿이의 공부를 도와주던 공부방 선배 비읍이도 디귿이에게 진학을 권했다. 비읍이는 2년 전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공부방 이모들은 대학 진학을 권유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취업을 선택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비읍이는 ‘선취업 후진학제’로 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갔으나 고졸로 갈 수 있는 직장은 늘 불안했고 공부는 쉽지 않았다. 비읍이는 디귿이에게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조언했다. 디귿이 역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리던 차였다. 기역이와 니은이는 자정이 넘도록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힘들어했지만 디귿이는 그마저도 부러워했다. 방학 때마다 공부방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초등부 동생들을 돌봤던 디귿이는 2년제 아동보육과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부방 이모들도 등록금을 마련할 길을 함께 찾아주며 격려했다. 길이 보이자 디귿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지병으로 오랫동안 일을 못하고 있던 어머니가 반대를 하고 나섰다. 아들도 전문대학을 다니다 말았는데 딸이 대학이라니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딸이 취직을 해서 집안에 보탬이 되거나 몸이 아픈 자신을 위해 집안 살림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고된 일을 하는 아빠는 자식들의 교육 문제에는 무관심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쉰이 넘을 때까지 빈곤과 가부장제에 짓눌려 살아온 디귿이의 어머니로서는 당장의 생계가 먼 미래보다 중요했다. 디귿이가 전문대학을 나와 어린이집에 취직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이고 수입도 많을 것이라고 설득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여성들 앞에는 여전히 경제적 평등을 가로막는 높디높은 장벽이 서 있다. 학력과 교양을 갖춘 일부 여성들에게 그 장벽은 유리천장이지만, 훨씬 더 많은 여성(과 그 아이)들에게 이 장벽은 바닥이 보이지 않으며 타고 올라갈 사다리 하나 찾기 힘든 깊은 구덩이다.”1

디귿이는 대학에 원서조차 넣어보지 못한 채 시들어갔다. 보다 못한 공부방 이모가 디귿이를 불러 따로 외출을 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까페에 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가장 하고 싶은 것과 제일 갖고 싶은 것을 물었다. 스무살 아이는 대학생들처럼 까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갖고 싶은 것은 뜻밖에도 롱패딩이었다. 디귿이는 그때까지 중학생 때부터 입던 낡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그날 디귿이는 유행이 지난 롱패딩을 사 입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청년배움카드를 통해 바리스타 교육을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면 까페에 취직하기로 목표를 세웠다. 디귿이는 며칠 전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다. 디귿이의 움츠린 어깨에도 스무살의 풋풋함이 피어났다. 공부방에서는 디귿이가 자신만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울 작정이지만, 가난한 청년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좌절과 낙오를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리을이는 보육시설에서 자랐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리을이에게 보육원 밖 세상은 늘 두려움이었다. 선생님들은 보육원에 산다고 기죽지 말라고 했지만,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정상가족이 되는 한국사회에서 보육시설에 사는 것은 그 자체로 결핍이었다. 공부는 항상 어려웠고, 사회성은 부족하고 외모에도 자신감이 없었다. 피부과에서 여드름 치료는 비급여라는 말을 듣고 되돌아 나오던 날, 리을이는 ‘피부미인’이 되는 기회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가능과 불가능으로 갈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보육원에서는 용돈이 늘 정해져 있었고, 친구들과 외출하는 일도 자유롭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이 되자 학교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롱패딩을 입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는 계절에 한번씩 옷을 살 수 있는 정부지원금이 나온다. 그 돈을 들고 리을이도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사러 갔지만 정부지원금만으로는 반 친구들이 입는 롱패딩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터넷쇼핑몰에서 싼 롱패딩을 샀다. 반 친구들은 싸구려 롱패딩을 입은 리을이를 비웃었다. 리을이는 옷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을이의 성장 과정은 다양한 결핍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리을이는 왜 패딩의 충전재와 브랜드로 자신의 인격까지 등급이 매겨지는지, 여드름이 왜 부끄러움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알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를 안다고 그 편견과 차별에 맞설 힘이 생기지는 않았다. 알면 오히려 더 우울해지고 불행해지는 지식이 많았다. 리을이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편할 때가 잦아졌다. 다행히 리을이에게도 꿈이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학교수업은 알아듣기 힘들고 지루했다. 공부방에서 하는 보충수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함께 방을 쓰는 보육원 친구들은 리을이가 공부를 할라치면 유난을 떤다고 비웃었다. 그래도 리을이와 같은 처지였던 보육원 선배들은 다 대학에 갔다. 중도 이탈하더라도 일단 지방에 있는 2년제 대학이라도 가야 자기 몸을 의탁할 수 있는 기숙사가 생기기 때문이다. 리을이도 이를 악물었고 원하던 2년제 아동보육과에 합격했다.

리을이는 얼마 전 만석동 공부방 바로 앞에 있는 20년 된 빌라 원룸을 얻었다. 집을 얻었으니 이제부터는 보육시설을 퇴소하고 자립한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기초생활수급권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리을이는 부양의무제 때문에 기초생활수급권을 빼앗긴 보육원 선배들을 자주 보았다. 그래서 연락이 끊긴 친모의 수입이 사회복지통합전산망에 잡혀 수급권이라도 잃을까 불안하다. 리을이의 보육원 선배들 중에는 대학을 그만둔 경우가 많았다. 대학을 그만두면 보육원에도 발길을 끊었다. 리을이는 그 선배들이 궁금했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겪었을 좌절과 절망의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회뿐 아니라 학교와 보육원에서조차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한 이들에게만 관심을 가졌다.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만 기록에 남았다.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하게 된 리을이는 그렇게 지워지고 싶지 않다. 보육원 선생님들은 퇴소할 아이들에게 복지에 의존하려 들지 말고 자립심을 기르라고 강조한다. 리을이는 그 말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오롯이 자신들에게 전가하는 폭력이라는 것을 모른다. 리을이는 꼭 자립에 성공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리을이가 자립에 성공하려면 그에 맞는 복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리을이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힘은 국가와 사회가 마련해주어야 한다.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해 빈민지역에서 30년을 산 공동체 식구들은 공부방의 다른 아이들네 집처럼 빌라나 낡은 구옥, 혹은 공부방 앞 LH아파트에 산다. 자녀들은 그곳에서 태어나 컸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한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과 함께 공부방에 다녔다. 공부방에서 똑같이 기초학습을 하고 함께 놀이를 하며 성장했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성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동갑내기 네 아이의 입시 결과를 놓고 보면 공동체의 자녀 둘과 다른 두 아이 사이에 애초부터 능력의 차이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은 그 차이를 개인의 능력 차이로 받아들였다. 가난을 선택해 살지만 공동체 가정의 부모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교사나 기업의 회사원 혹은 연구원이다. 몇명은 공부방 상근직을 선택해 더 가난한 삶을 감수했지만 그 가정도 주변의 빈민가정과는 교육적·문화적 환경이 달랐다. 공동체 아이들과 공부방 아이들의 차이가 사회적 위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아는 공부방 이모·삼촌들은 공동체 자녀들과 공부방 아이들의 간극에 예민했다.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공정이라 믿고 공부방 안에서만큼은 기회를 공평하게 주려고 노력하고 약한 아이들을 더 배려했다. 그런데 부모의 예민함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느낀 아이들은 공부방 아이들 앞에서 불편해했다. 기역이와 니은이는 디귿이와 리을이 앞에서 합격의 기쁨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것이 두 친구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두 아이도 디귿이와 리을이가 처한 어려운 환경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아이가 보기에 디귿이와 리을이는 모든 것에 부정적이었고 무기력했다. 두 아이는 친구들이 왜 더 노력하지 않는지 답답했다. 그 답답함은 자신들이 살아온 19년과 디귿이와 리을이의 19년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 두 아이는 디귿이와 리을이가 경험한 거부와 유기 폭력, 그로 인한 상실감과 좌절, 억눌림이 그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직 모른다. 그래서 자신들의 차이를 개인적인 능력과 마음가짐의 차이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기역이는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1등을 했을 때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태도와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했다.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려면 경쟁에서 이겨야만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내 성적이 오르려면 친구의 성적이 내려가야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현실에서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을 배려하고 함께 가야 한다는 공동체의 정신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불편했다. 공동체는 굳이 몰라도 될 약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라 하고, 약자들을 배려하라고 강조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혼자로도 벅찼다. 그런데 자꾸 내 안으로 타자를 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동체를 선택하고 공부방을 해온 부모들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 사회가 약자를 배려하고 지원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사회라면 공동체 아이들과 공부방 아이들의 간극은 이렇게 크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능이 낮고 인지발달이 늦는 사람들에 대해 그래서 가난한 거라 생각하지만, 반대로 가난한 상황과 조건이 사람의 인지발달을 늦추고 지능의 계발을 막는다는 사실이 이미 사회역학자나 심리학자의 여러 연구를 통해 드러났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들이 접촉하는 모든 것은 즉시 자신의 실존조건으로 된다는 점에서 인간은 조건 지어진 존재이다”2라고 했다. 스스로 그 조건을 선택했든, 저절로 주어졌든 인간은 그 조건 속에서 성장하고 어른이 된다. 부모들의 지위가 자신의 지위가 되고, 부모들의 부가 자신의 부가 된다. 그런데도 학교와 사회에서는 그 모든 것이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사회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임없이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가난한 노동계급의 부모들도 처음에는 자신의 가난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불안정한 노동과 환경, 주거 문제, 차별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이사라도 갈 수 있었지만 2020년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이사를 갈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부자와 가난한 이들이 사는 동네가 갈라지고 도시에도 위계가 생긴다. 한국의 도시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처럼 가난한 이들과 부자들을 가르는 장벽이 존재한다. 가난한 노동자계급의 부모들과 자녀들이 미래를 체념해가고 있을 때, 전문직이나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은 자신의 지위와 경제력을 자녀에게도 그대로 물려주기 위한 길을 뚫는다. 한 지인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경기도에서 서울 대치동으로 세를 들어갔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 번번이 남성 동료에게 승진 기회를 빼앗기고, 결혼해서는 경력단절을 경험한 그 지인은 여성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더 높은 학력과 지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녀 교육에 매달렸다. 지인의 자녀가 졸업생 대부분이 아이비리그로 진학한다는 자사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무렵, 강화공부방에 다니는 중학교 3학년 아이는 턱걸이로 강화 유일의 특성화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느라 아이의 교육 문제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공동체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인천 만석동에 있는 공부방 2층의 방 두개에서 공동체 또래들과 공동생활을 했다. 그중 둘이 올해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LH청년전세임대주택으로 방을 얻기로 했다. 처음에는 각자의 학교 중간쯤인 신도림역 부근에 방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LH에서 임대해주는 1억 2천만원 외에 추가로 낼 수 있는 전세금이 얼마나 있는지를 묻더란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전세금이 없다면 LH전세자금에 대한 이자 외에도 월세를 더 내야 하는 게 상식이라는 데에 청년들은 말문이 막혔다. 청년전세임대주택을 구하기 시작한 지 열흘째, 속상해하는 청년들에게 공인중개사가 말하기를 그나마 청년들은 장애인과 노인들에 비하면 집 구하는 게 좀 수월하니 기다려보라고 했다고 한다. 청년들은 지금 신도림역 부근을 포기하고 집값이 조금이라도 더 싼 2호선 신대방역이나 구로 쪽의 구옥 원룸을 찾고 있지만 개강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공부방을 졸업한 청년들은 대부분 LH청년전세임대주택에 살지만 직장이나 학교와 가까우면서 살기에도 적당한 곳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LH청년전세임대주택 당첨자로 선정되었지만 집을 구해야 하는 6개월 기한을 넘겨 할 수 없이 다시 월세로 사는 경우도 많다. 1년 전 서울지역 역세권에 LH청년전세임대주택을 지으려다 빈민들이 몰려오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주민들이 반대하는 일이 있었다. 청년들을 집값 떨어뜨리는 빈민으로 혐오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2년 전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읍이는 연말에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되어 집을 옮겨야 했다. 월세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아 있는 터라 보증금 3백만원을 되돌려받을 수가 없었다. 비읍이는 1년 동안 모은 돈을 포기한 채 직장 근처 월 40만원짜리 여성전용 고시원에 들어갔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휴거’ ‘빌거’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로 차별이 생기고 따돌림이 일어난다는 기사가 부쩍 많아졌다. 공부방 청소년들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니요, 처음 들어요. 그런데 좋은 아파트가 많은 동네에서나 그러지 않을까요? 우리 학교 다니는 애들은 다 휴거, 빌거, 이백충, 삼백충이잖아요.”

 

지난 연말 친구들을 만났다. 50대 후반인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당연히 자녀 문제다. 2년 전 아들 혼사를 치른 친구가 대출을 끼고 아들네 집을 사줬더니 2년 만에 2억이 올랐다며, 한국사회에서는 교육과 집이 가장 확실한 투자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공무원인 한 친구에게 말했다.

“너희 빌라 지금 2억도 안 된다며? 거봐, 내가 그렇게 아파트로 가라니까.”

10년 전 같은 시기에 서울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친구의 재산은 10억이 훌쩍 넘었고, 의정부에 빌라를 샀던 친구는 고작 1억 남짓 되는 빌라에 사는 ‘빌거’가 되었다. 대물림되는 ‘교육’ 특권, 투기가 되어버린 ‘주거’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게 만든다. 가슴 뛰던 취임사로 시작한 이 정부 아래서 공정과 정의에 대한 회의감이 더 깊어졌음을 느낀다. 그렇다 해도 그들이 당연하다 여기는 특권을 계속 용인할 것인지, 공정한 기회와 조건에 대한 잘못된 패러다임을 바꿀 것인지 그 결정은 특권을 가지지 않은 우리에게 있다. 불평등한 사회의 가장자리에 선 이들끼리의 연대가 없다면 공정한 사회는 이룰 수 없다. 이 불평등이 불편한 이들, 불평등으로 인한 차별과 억압에 분노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절실히 필요하다.

 

 

  1. 크리스 틸리·랜디 알벨다 「여성의 경제적 평등을 위한 전략을 향하여」, 낸시 홈스트롬 엮음 『사회주의 페미니즘』, 유강은 옮김, 따비 2019, 427면.
  2.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이진우 옮김, 한길사 2017, 5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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