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민규 朴玟奎

1968년생. 2003년 문학동네작가상으로 등단.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이 있음.

kazuyajun@hanmail.net

 

 

 

팅커벨

 

 

왼팔을 잃은 그리스도1

사막을 지나

광활한 황무지로 접어들었다.

세분화된 행정코드명이 존재하지만

나는 이곳을 브라질이라 부른다.

 

과거의 언어는 아름답다.

그런 이유다.

 

전혀

내 관할이 아닌데 농담처럼 이곳을 날고 있다.

대표적인 위험지역이다.

기상 상태를 보여주는 여러 수치들이

이를 증명하듯 불안하게 깜박이고

요동치는 그래프와 경고음…

본청과의 교신이 끊어진다.

나도 한동안

 

눈을 깜박인다.

예기치 못한 먼지 폭풍이다.

셔틀을 급히 감속하고

겸허히, 나는 셔틀의 고도를 낮춘다.

한껏 낮춘다.

크랙(crack)2이 발생한 현장까지

한참의 거리가 남아 있지만

먼지에는 장사가 없다.

 

장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정말이지

 

농담인 줄 알았다. 쑨으로부터 크랙 얘기를 듣는 순간 절로 든 생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적어도 내 관할에서는 지난 백여년간 한번도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체감상 고대의 전염병이 다시 돈다는 말을 들은 것과 진배없었다. 하기야 쑨이 농담을 할 리 없다. 파충류의 이마에서 털이 자라면 자랐지 쑨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 본청엔 주로 그런 인간들이 모여 있는데 쑨은 특히나 그런 인간이다. 업무 조율을 요청할 새도 없이 이미 발생 지점의 좌표와 자료들이 내게로 넘어온 상태였다. 긴급동원령이 하달된 셈인데 전송된 자료마다 최고 레벨의 중요도가 표시되어 있다. 처음 겪는 일이다. 퓨어3… 인명이 걸린 사안이니 당연하다 여길 수 있겠으나,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 상황이 농담이 아니라면 대체 뭐가 농담이란 말인가. 더는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착륙 레버를 당기며 긴 한숨을 내쉰다. 오늘은 2681년 7월 12일. 끝내 인류가 지구를 탈출하기 사흘 전이다.

 

여러 단계에 걸쳐

이미 상당수의 인류가 눌4로 이주를 마쳤고

이제 마지막

남은 사람들의 차례가 온 것이다.

동료들 사이에 떠도는 이런저런 말들은 있지만

물론 내게도

해당되는 사안이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내가(개별적으로) 학습한 고대어에는

사안이다, 사안일 것이다, 사안이어야만 한다 – 와 같은

여러 표현들이 있는데

이를 세밀히 판가름할 정도로 조예가 깊지는 않다.

고대어는 아름답다.

그러나 어렵다.

 

내 이름은 레띠씨아. 공무관이다. 정확히는 레띠씨아 E311451tx381s라는 긴 이름을 가졌지만 풀네임을 쓰는 공무관은 아무도 없다. 최일선에 배치된 하급요원이지만 민간인들과는 확실히 구분된 지위에 속해 있다. 그리고 역시나, 대이주(大移住)를 눈앞에 둔 인류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이틀만 넘기면 그만이었다. 정확히는 54시간 28분 36, 35, 34… 초가 남아 있다. 시간은 흐른다, 줄어든다. 내가 속한 S1A지구(地區)의 이주선이 날아오를 시간 말이다. 탑승을 위한 소집 등 절차를 따지자면 이틀도 남지 않은 게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 일정이

 

그래서 이곳의 마지막 임무가 될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본청에서 지령이 온 것은 RT091S기상관측탑의 수리를 끝내고 기지로 막 귀환하던 때였다. 느닷없이 크랙이라니… 긴급동원이라니… 아마 누구라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기운이 심상찮은 커튼5을 바라보며 나는 어렵게… 혹은 겨우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운명의 장난’이라는 고전 속 어휘를 생각해낸다. 안정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 이유다. 상냥한 대기와 온화한 기후, 곡물과 나무란 것이 자라던 푸른 들판… 축복의 시대를 누렸던 언어에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힘이 있다. 코드명과 상황번호가 대부분인 현재의 상용어에 비해 확실히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 몰라도 그래, 운명의 장난이야. 랜딩 기어를 내리며 문장을 읊조리자 거짓말처럼, 혹은 운명의 장난처럼 마음이 누그러진다. 매뉴얼은 간단하다. 눈앞의 저 커튼 너머… 어딘가 있을

 

자신의 요정을 잃어버린

한 인간을

어떻게든 찾아

생환시키는 것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눈앞의 저 풍경… 장엄한 폭포처럼 쏟아지는 회갈색의 분진과… 멀리서도 이를 꿈틀이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이게 하는 광풍과 난기류… 성난 혈관이 돋은 듯 군데군데 섬광이 내비치는 오렌지빛 하늘… E4 레벨로 측정되는 폭풍을 보고 있노라면… 마지막 임무라는 생각보다는, 이것이 마지막이란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쯔안이 떠오른다. 함께 고대어를 학습하던, 특히 고전에 조예가 깊어 내겐 매우 특별한 동료였다. 신앙을 가진 유일한 공무관이었고 매사에 앞서 성호(聖號)를 긋던 그녀였다. 그리고 어느날… TX314S지구의 기상관측탑 근처에서 셔틀과 함께 추락, 산화하였다. 갑자기 불어닥친 E2 레벨의 먼지 폭풍 때문인데

 

6년 전 일이다. 그러나 마치, 엊그제 일 같기도 한 6년 전의 죽음이다. 흥미 반 장난 반으로 기도를 배웠던 동료들은 그후로 누구도 성호를 긋지 않았다. 앵커 포지션6을 충분히 잡아주고 지진계의 수치를 확인한 후, 나는 폭풍의 동선을 다각도로 점검한다.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쯔안이 만난 E2 레벨엔 못 미치지만 포화도 및 몇몇 요소가 E2에 근접하는 엄청난 폭풍이다. 무엇보다 커튼이 드리워진 지역이 실로 광범위하고… 하물며 언덕과 협곡을 낀 지형이다. 오래전 도시라 불렸던 수많은 잔해들, 복잡한 장애물도 지나야 하는 거겠지…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설 자리가 없는 것이 공무관이다.

나는 세상의 오른손이다.

우리는 세상의 오른손이다.

 

공무관 선서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리며 나는 계속 분석을 이어간다. 쯔안은 말했다. 우리의 선서문은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난해한 경전 구절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이는 자취를 감춘 종교의 꼬리를 물었을 만큼 공무관의 역사가 깊다는 증거겠지만… 그래, 덕분에 그리스도란 존재… 고대의 흔적을 알아볼 수도 있는 거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곁에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내가 만난 그리스도에겐 왼팔이

 

왼손이 없었다고 말이다. 쯔안의 답변은 무엇일까. 쯔안이라면, 이 상황에서 또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오른손이란 무엇이며… 그녀는 왜 무리한 진입을 해야만 했던 걸까… 본청과의 교신 시도… 팅커벨의 위치 추적을 동시에 하고 있지만 어느 쪽도… 시간이 흐른다. 줄고 있다. 그리고 더는… 생각이 진행되지 않는다.7 아무것도 모르는 왼손처럼, 나는 오른손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진행한다. 중요한 건 시간이다. 폭풍이 유지될 예상 시간은 10시간 남짓, 그러나 느긋이 앉아서 기다릴 여유가 없다. 팅커벨의 신호는 끝내 잡히지 않고… 따라서 대상의 상태, 생사조차도 파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주선의 탑승 절차가 시작되기 전까지 복귀를 해야 한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답이 없다, 결국 나는 폭풍 속으로… 눈앞의 저 커튼을 뚫고, 가로지르기로 결심한다. 바이크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래, 매 순간 직관적인 주행이 가능한 바이크야말로 지금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일 것이다. 셔틀에 수납된 에어볼 바이크를 내리고 나 역시 땅으로 내려선다. 모니터맵8의 여러 수치에 경고등이 들어오지만… 시동을 건다, 그리고 에어볼이 예열되기까지 주어진

 

약간의 시간

바이크에 걸터앉은 채

나는 성호를 긋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년 만에 그어보는 성호다.

6년 전의 쯔안도

아마 이렇게

눈앞의 폭풍을 마주했을 것이다.

 

힘주어 나는

  1. 리우의 예수상. 23세기부터 시작된 기후대재앙으로 지구의 환경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예수상은 25세기 중순경 끔찍한 재앙을 겪었고 그후 줄곧 왼팔이 없는 모습으로 방치된 상태다.
  2. 외적 혹은 내적 요인으로 인해 팅커벨과 인간이 분리, 괴리되는 현상을 칭하는 말.
  3. pure. 생식을 통해 태어난 고전적 의미의, 순정 상태의 인간을 뜻하는 말. 27세기엔 크게 세가지 범주의 ‘인간’이 있는데 브레이너와 휴머노이드, 그리고 퓨어가 그것이다. 브레이너는 두뇌만 보존되어 있는 인간인데 25세기경 Rx13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인류의 지능이 저하되면서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남게 된 선대의 뇌들을 칭한다. 화자인 레띠씨아는 과거의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체형 휴머노이드에 속하는 인간이다. 대부분의 공무관들이 이 유형에 속해 있다.
  4. NULL. 인류의 이주지로 선택된 목성의 위성. 2543년부터 단계별로 6차에 걸쳐 이주가 이루어졌고, 화자가 말하는 2681년의 대이주는 마지막 7차에 해당한다.
  5. 포화 상태에 이른 미세먼지와 분진이 특정한 기압대를 형성한 지역 혹은 대기를 칭하는 용어.
  6. 정박한 배가 닻을 내리듯 지각변동이 심한 지역에서 기체의 랜딩 기어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는 작업이다.
  7. 공무를 목적으로 한 생체형 휴머노이드는 업무와 임무 완수에 반(反)하는, 혹은 지장을 초래할 사고(思考)를 할 경우 사고체계를 관장하는 회로에 일시적인 방화벽이 생성된다.
  8. 공무관들의 헬멧 내부에 장착된 복합정보기기. 대부분의 공무관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장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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