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은영 崔恩榮

1984년 경기 광명 출생.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장편소설 『밝은 밤』,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 등이 있음.

euni153@naver.com

 

 

 

파종

 

 

우리는 작은 텃밭을 함께 가꿨다.

소리의 글은 그 문장으로 시작했다.

소리가 학교 교지에서 개최한 글짓기대회에서 상을 받은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읽고 싶었지만 아이는 고집을 피우며 글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에게 일기장을 보여주고 싶은 자식이 어디 있겠냐고 따져 물으면서. 그녀도 그 말에 동의했기에 더는 소리에게 글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기장이라고 할 만큼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글로 써서 교지에 낸 소리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어떤 글에서도, 어떤 인터뷰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부분에 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이주일 전, 소리는 그녀에게 학교를 관두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소리는 망설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야, 엄마. 소리는 그렇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소리가 더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도 다시 그 주제를 꺼내 묻기가 어려웠다. 그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가 학교를 관두고 싶어할 만한 상황을 가정할 때마다 그녀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러던 중에 소리의 담임교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그녀는 가지고 있는 옷 중에 가장 단정한 감색 투피스를 입고 옅은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

담임교사는 소리를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봐왔다고 했다. 신중한 아이여서 자퇴하고 싶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덧붙이면서. 그녀는 소리가 학교를 관두고자 하는 이유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사가 모든 사실을 다 알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학교에서 아이가 상처받은 일이 있었는지도 물었다. 그녀에게는 딸과 아주 가깝지는 않다는 자격지심이 있었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와 아직 그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느냐고 곧 질책당할 것 같아 두려웠다.

“쉬고 싶다고 해요.”

교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쳤대요. 자기가 이십사시간 내내 돌아가는 컴퓨터 같다고, 잠시 전원을 꺼두고 싶다고요.”

교사는 소리가 매사에 성실했다고 말했다. 무엇 하나 대충하는 법이 없었다고 했다. 교사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는 어려서부터 그런 아이였으니까.

“집에서는 어떤가요.”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르는 동안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놓였다. 침묵이 길어지자 교사는 화제를 바꿨다.

“관두기로 마음을 정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아이 마음이 그렇다는 건 어머니도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소리에 대해 당신이 뭘 그렇게 많이 안다고 엄마인 나에게 충고하는 거지, 하는 반발심조차 들지 않았다. 교사의 말대로 그녀는 소리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으니까. 소리는 학업도 잘 따라가고 있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모두 소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그녀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을 다 믿고 싶었다.

면담이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교사가 입을 열었다.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소리가 어머니 자랑을 많이 해요. 이번 작품도 꼭 보라고.”

“소리가요?”

“네. 어머니에 대해 쓴 글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저번 교지 공모에 낸 거요.”

“보지 말라고 해서……”

“여기 한권 있는데 드릴게요.”

교사가 책꽂이에서 교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속이 깊은 아이예요.”

칭찬이 분명한 교사의 말에 그녀는 익숙한 슬픔을 느꼈다. 교사와 헤어지고 나서 그녀는 차 안에서 소리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글에 빨려 들어갔고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소리는 그와 그녀와 함께 텃밭을 가꾸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셋이 같이 텃밭에 가서 일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새참을 먹던 시절을 기록했다. 따뜻하고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 이후에 더는 텃밭에 가지 않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소리는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소리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소리에게 지난 오년은 자신의 과거가 아주 자그맣게 보일 정도의 거리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고작 오년 전의 자신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그때의 일을 꼭 꿈처럼 느낄 시기였다. 그런 소리가 어린 시절에 그와 함께 텃밭을 가꾼 이야기를 잊지 않고 붙들고 있었다. 자기 언어로 그 작은 순간순간들을 복원했다.

소리는 언제부터인가 더는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인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소리의 그 모른 척이, 침묵이 좋았다. 자꾸만 과거를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고,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소리는 어리니 금세 잊을 것이다. 그냥 모른 척하면 돼. 자극하지 말자. 사라질 거야. 그녀는 자신의 그런 주문에 어느정도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는 무너지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 감정에 흔들려 주어진 일을 그르치는 상황 따위를 만들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얼마간 안심했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그가 자신에게 바란 모습일 거라고도 믿었다. 그를 계속 떠올리면서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가장 바라지 않을 사람은 그일 테니까.

 

그는 그녀보다 열다섯살이 많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그는 그녀가 여덟살 때부터 실질적으로 그녀의 부모 역할을 했다. 아침마다 밥과 반찬을 해서 도시락을 싸주고 숙제를 봐주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웃는 얼굴로 들어줬다. 그래서 그녀가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웃을 때 그의 얼굴이었다. 웃을 때 입가와 눈가에 지던 옅은 주름…… 소리 내어 웃던 목소리. 밖에서 어떤 일이 있든지 집에 돌아와서 그에게 말하고, 그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봐주면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여러 말은 필요 없었다.

‘삼촌은 나를 귀여워해서 자주 웃어줬다.’

그녀는 소리의 그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마지막으로 그의 웃는 얼굴을 봤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봤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가 떠난 뒤 그녀는 오래도록 그의 마지막 모습에 머물렀다.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던 모습도, 젊었을 때의 모습도, 중년이 되어서의 모습도, 한지가게에서 일하던 모습도, 텃밭에서 일하던 모습도, 소리와 잘 놀아주던 모습도 모두 그 야위고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이 어려워졌다.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그를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리의 글 속에서 그는 삽으로 능숙하게 깊이갈이를 하고 이랑을 만들었고, 호미를 들고서 김을 매고 단단하고 향기로운 토마토를 수확했다. 흙장난을 좋아하는 소리를 말리지 않았고 감자를 소리의 손으로 땅에 심게 했다. 삼촌, 물 뿌리고 싶어, 하면 물뿌리개를 잡고서 마치 소리가 물을 뿌리는 것처럼 연출해줬고 샌드위치며 얼음을 넣은 미숫가루, 주먹밥 같은 것을 해 와서 소리와 나눠 먹었다.

“민주야, 나 좀 도와줘.”

처음에 그는 그녀의 도움을 구하며 소리와 그녀를 데리고 텃밭으로 갔다. 남편과 이혼하고 다섯살짜리 소리와 그의 집으로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잠시만 신세를 지고 나갈 거라고 약속했을 때, 그는 언제까지고 그곳에 있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어렸을 때처럼 장을 봐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고 찌개를 끓여 그녀와 소리를 먹였다. 그녀가 어째서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대신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

그 이후로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 텃밭에 가는 건 그들만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는 수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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