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주란 李珠蘭

1984년 출생.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통해 등단.

소설집 『모두 다른 아버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등이 있음.

dddddd28@naver.com

 

 

 

파주에 있는

 

 

네가 이 메일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혜화에 사는지 궁금해.

 

이틀 전 거의 이년 만에 들어간 메일함에서 현경은 재한의 이름을 보았다. 현경은 메일이 온 날짜를 확인했다. 두시간 전이었다. 재한의 메일은 들어간 메일함 맨 위에 있었다. 만약 현경이 그날 메일함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재한의 메일은 또다시 일이년 만에 읽혔을 것이고 재한이 다음 날 메일을 보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 어긋났을 것이다. 현경에게는 그 정도 간격을 두고 예전에 쓰던 메일함을 확인해보는 습관이 있었다. 다른 마음 없이 모니터를 바라보던 얼마간의 시간 동안에는 재한의 메일을 클릭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받은 메일함을 새로 고침했을 때 재한에게서 온 메일은 사라지고 없었다. 현경은 십이년 전의 기록에서 재한의 메일 주소를 찾아냈다.

 

재한에게

 

파주에서 지내고 있어.

 

현경은 그렇게 메일을 보냈다. 재한의 메일 외에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산업단지 안전 제안 공모제 안내, 의료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톤 대회 소식, 개인정보 이용내역 안내, 취업과 연계되는 국가공인 자격증 안내 메일 등이 와 있었다.

 

다른 건 아니고 근처에 갈 일도 있고 해서.

 

재한이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조금 전 메일의 발송 취소에 대한 얘기는 없이 그렇게만 쓰여 있었다. 어디 근처를 말하는 걸까. 현경은 짧게 그런 생각을 했고 두시간쯤에 걸쳐 쌓여 있는 메일들을 삭제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돌리자 문득 열이 나는 것 같았지만 더운 건지 감기 기운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베란다로 나가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 뭐 사 오랬지? 아파트 주차장에 선 아이가 고개를 들어 크게 외쳤다. 어느 층인지 베란다에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을 엄마가 너구리!라고 대답했다. 현경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고, 돌아서서 아파트 상가에 있는 편의점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았고 다시 나타난 아이가 묶음으로 된 너구리 라면을 들고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아이는 다시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러다 손에 쥔 잔돈을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뜨렸다. 으악! 아이가 소리치며 이리저리 다른 방향으로 굴러간 동전들을 주우러 다녔다. 손잡이가 없는 네모난 라면 묶음을 계속 잡고 있기 힘들 텐데 아이는 내려놓을 생각 없이 고개를 숙여가며 어두운 주차장을 돌았다. 다행히 그동안 주차장 안으로 들어서는 차들은 없었고 엄마! 나 다 찾았어! 아이의 외침을 들은 현경은 거실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언니, 저녁은요?〕

〔응, 먹었어〕

〔뭐 먹었어요?〕

〔너구리 한마리 몰고 갔어〕

〔오, 잘 몰고 갔나요?〕

〔그럼! 넌?〕

〔전 무진장 긴 갈치〕

〔잘했네. 좋은 거 많이 먹어〕

〔언니도 라면만 먹지 말고 끼니 잘 챙겨 먹어요〕

〔나 잘 먹어〕

〔거짓말. 참, 낮에 당근즙 보냈어요. 하나씩 꼭 챙겨 먹기!〕

〔아휴, 뭐 하러〕

〔구좌 당근이 너무 맛있더라구요. 싸게 샀어〕

〔고마워, 정원〕

정원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현경은 너구리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원은 거의 매일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현경이 밥을 먹었는지 묻고 챙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잘 챙겨 먹는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는 다음 날 또 묻곤 한다. 정원 말고 이제 현경에게 연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경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가 저녁을 만든다.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올린 다음 너구리 라면 봉지를 뜯어 면을 반으로 부쉈다. 물이 데워지는 것을 현경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았다. 물은 금세 끓었고 부순 면은 반만 넣었다.

열흘 전 정원의 아파트에 들어온 뒤로는 낯선 장소가 주는 기분에 다른 생각이 잘 들지 않았다. 정원은 현경의 대학 후배로 고향집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 해결이 될 때까지 당분간 제주에 가 있게 되었다면서 괜찮으면 여기 와서 좀 지내보는 건 어떠냐고 현경에게 물어왔다. 언니, 파주 좋아요. 정원이 덧붙여 말했었다. 현경이 그러겠다고 결정한 뒤 얼마간의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하자 정원은 그러지 말고 베란다에 있는 식물들을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아프리카가 고향인 식물들이어서 걱정이 많았어요. 또 우편물들 때문에 종종 부탁할 게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 예전에 저도 언니네 집에서 정말 많이 잤잖아요. 그런가…… 이십년을 알고 지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래도 지금 이 호의는 너무 큰 것이 아닌가 현경은 미안했다. 아직 정원이 무언가를 부탁하진 않았지만 그 열흘 사이 짧은 가을이 다 갔고, 다음 달이면 12월이었으므로 겨울옷을 미리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며칠 전 정원으로부터 막상 제주에 와보니 생각보다 일이 길어질 것 같고 아파트에 머무는 기간은 자유롭게 하시되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얘기를 들은 참이었다. 언니, 여기 바쁜 것들 좀 정리되면 초대할게요. 제주에도 와요.

현경은 그래,라고 정원에게 대답했었고 부엌의 어두운 조명 아래서 라면을 먹은 뒤에는 설거지를 하며 혜화에 남겨두고 온 일들을 생각했다.

 

밤부터 내린 비는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쳤다. 빗방울은 소리 없이 아주 약했다가 투두둑, 거세졌고 거세진 채로 오래 내리다가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주차된 차들은 먼지를 벗었다. 오늘은 종일 이렇게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할 예정이니 출근길에 작은 우산을 하나 꼭 챙기시라는 뉴스를 듣다가 현경은 잠들었고 그 뉴스 프로그램이 끝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