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패스트트랙 위의 선거제도, 전망과 과제

 

 

하승수 河昇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저서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삶을 위한 정치혁명』 『껍데기 민주주의』(공저) 등이 있음.

haha9601@naver.com

 

* 이 글은 지난 5월 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선거제도 개혁, 패스트트랙 이후 전망과 과제’의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1. 글을 시작하며

 

선거제도 개혁은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선거제도 개혁이 뜨거운 감자이다. 2015년 칠레 국회에서는 삐노체뜨 독재정권의 유산인 중선거구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칠레는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한 것처럼 1선거구당 2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방식을 오랫동안 채택해왔는데, 그 제도를 버리기로 한 것이다. 칠레가 새롭게 선택한 선거제도는 비례성을 강화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다. 이를 위해 칠레는 120명이던 하원의원 숫자를 155명으로 늘렸다. 40%의 여성할당제도 포함된 개혁이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은 계속 제기되어왔다. 2015년 2월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국회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 개혁안으로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은 쉽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까지 있었지만 2016년 총선 전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2019년에 드디어 변화의 물꼬가 트였다. 지난 4월 29~3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신속처리대상 안건(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됐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대한민국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다른 의원들에 의해 의원실에 감금당했고, 국회사무처 사무실들이 점거당했다. 팩스가 부서지고, 팩스로 접수되던 법안이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국회는 며칠간 아수라장이었고, 국회선진화법은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이 과정에서 선거제도 개혁안과 공수처법 모두 쟁점이었지만, 자유한국당이 특히 반대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안이다. 선거제도 개혁안의 통과 여부에 따라 정치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논의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바뀌게 되면 국회의 구성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국회가 되고, 여성·청년·소수자의 정치적 대표성이 확보될 기회가 많아진다.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태도 바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시민들의 삶에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정쟁만 일삼아도 공천받고 재선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정치기득권 세력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단숨에 국회가 그렇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선거제도 개혁안은 온전한 ‘연동형’이 아니라 ‘준연동형’이라는 한계도 있다. 하지만 방향이 중요하다. 한번 개혁의 방향이 잡히면, 시간이 걸려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본회의 표결 전까지 지금 패스트트랙에 오른 안보다 더 나은 안으로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모든 것은 앞으로 하기에 달려 있다. 그래서 패스트트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2. 패스트트랙의 정당성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제도 개혁을 결정하는 것이 깔끔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헌법은 선거제도를 국민투표에 부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헌법개정을 제외하면,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해서만 국민투표에 부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헌법 제72조). 그래서 선거제도 개혁은 결국 국회에서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면서, 원내교섭단체 간에 합의가 안 되면 어떤 법률도 국회본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예외로 인정되는 절차가 패스트트랙이다.

패스트트랙은 전체 국회의원 5분의 3 또는 특정 위원회(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위원 5분의 3의 동의로 의결된다. 여기에 따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과 ‘유치원 3법’이 이미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사례가 있다. 공직선거법도 법률이기 때문에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패스트트랙 상정 과정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합의처리를 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직선거법은 합의처리해온 것이 관행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틀렸다. 1988년 소선거구제로 바뀔 당시 민주정의당의 ‘날치기’로 처리됐다는 것은 이미 언론의 ‘팩트체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또한 ‘선거법은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헌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타당하지 않다. 우선 헌법상으로는 “국회는 헌법 또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라고 되어 있다(제49조). 그런데 선거제도라고 해서 무조건 합의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 정당이라도 반대하면 그 어떤 선거제도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며, 이는 헌법 제49조의 내용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선거제도 개혁은 합의처리가 바람직하지만, 더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선거제도가 표심을 왜곡하고 있는데 정당들이 당리당략을 따지느라 합의가 안 된다면, 개혁을 포기해야 하는가? 정당 간의 합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민심이고 표심이다. 합의를 위해 노력하되, 도저히 합의가 안 되면 공직선거법도 다른 법률들처럼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처리를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필요한 선택이다. 그리고 패스트트랙은 최종 표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건을 상정하기 위한 절차일 뿐이라 안건 상정 후에도 협상이 가능하다. 그러니 패스트트랙 지정은 ‘강행처리’와는 다르다. 따라서 이번 패스트트랙은 헌법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정당하고 필요한 선택이었다.

한편 이번에 논란이 되었던 바른미래당 오신환, 권은희 의원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사·보임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자유한국당은 국회법 제48조 제6항을 들어서 임시회 회기 중에는 사·보임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완전히 틀렸다. 그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동일 임시회 회기 내에 특위 위원으로 임명했다가 교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입법한 것이었다. 즉 4월 임시회기에 오신환, 권은희 의원을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면 4월 임시회기 내에는 교체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신환, 권은희 의원은 2018년부터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국회법 48조 6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국회 회의록만 한번 살펴봤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을 잡은 것이다.

 

 

3.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내용에 대한 평가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에는 만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내용이 포함됐다. OECD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만 19세로 선거권 연령을 규정하고 있는 부끄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물꼬를 텄다. 만 18세 선거권은 청소년·청년의 참정권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공직선거법 개정의 핵심내용으로 포함됐다. 국회의원 숫자는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에서 225명을 뽑고 비례대표로 75명을 뽑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역구 따로 비례대표 따로 뽑던 방식과는 달리, 불충분하지만 ‘연동형’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그리고 정당별 의석배분을 할 때에는 전국단위 득표율을 기준으로 하되, 정당의 비례대표 명부는 전국을 6개 권역으로 나눠 작성하는 ‘권역별 명부’ 방식이다.

‘준연동형’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온전한 연동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준연동형’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편의상 계산방식을 단순화했다. 가령 A당이 20%의 정당득표를 얻었다고 할 때,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면 A당은 300석의 20%에 해당하는 60석의 의석을 우선배분받아야 한다. 그러나 ‘준연동형’은 정당득표율대로 배분되어야 할 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를 뺀 의석의 50%를 비례대표로 우선배분하는 방식이다. 위의 사례에서 A당이 지역구에서 20명의 당선자를 냈다면, 정당득표율에 따른 60석에서 지역구 20석을 제외하면 40석이 남는다. 그 40석의 50%인 20석을 A당의 비례대표 의석으로 우선배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A당이 얻는 의석은 일단 지역구 20석+비례대표 20석(50% 보장)이 된다. 그리고 각 정당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 다음에 남는 의석(가령 75석의 비례대표의석을 각 정당에게 준연동형 방식으로 배분하니 50석이라, 25석이 남는 경우)을 다시 한번 정당득표율대로 배분한다. 이 과정에서 A당은 추가로 비례대표 의석을 얻을 수 있다. 좀 복잡하긴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이런 ‘준연동형’ 방식도 지금보다는 비례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역구 당선자가 전혀 없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정당득표율의 50%만큼은 의석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이 도입되면 정당득표율이 중요해지므로 정당 간 정책 경쟁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소수정당들의 진입 가능성도 높아지고, 소수정당에게 배분되는 의석도 늘어나게 되므로 정치의 다양성은 증대할 것이다. 여성대표성도 일정 수준까지는 개선될 것이다. 비례대표 의석이 늘어나고, 권역별로 작성되는 각 정당의 비례대표 명부의 홀수번호는 무조건 여성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정당지지율이 중요해지기 때문에, 각 정당들은 청년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청년공천비율을 높이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준연동형’ 방식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온전한 연동형을 도입했다면 제도는 좀더 단순화될 수 있고, 표의 등가성(비례성)도 좀더 충실하게 보장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국회본회의 통과 때까지 ‘준연동형’ 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오른 안에서 긍정적으로 볼 점은 정당의 공천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을 보면, 각 정당은 “민주적 심사절차를 거쳐 전국단위 또는 권역별로 대의원·당원 등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절차”에 따라서만 비례대표 후보자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 선출절차를 당헌, 당규, 그밖의 내부규약으로 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선거일 1년 전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중앙선관위는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각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자를 선출할 때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미리 제출한 당헌 또는 당규 등에 따라 민주적 절차로 진행해야 하고, 후보자등록을 할 때에는 미리 제출한 후보자 추천절차에 따라 후보자를 선출하였음을 회의록 등을 통해 증명하여야 한다. 만약 이를 위반하면 후보자등록을 무효화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절차는 시민사회가 요구하던 ‘민주적 공천의 법제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그동안 밀실공천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비례대표 후보 공천절차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내용이다.

 

 

4. 이후의 전망: 두가지 시나리오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도 개혁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었다. 패스트트랙의 실질적 효과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본회의 표결이 반드시 진행된다는 것이다. 본회의 표결 전까지는 추가 협상과 토론이 가능하다. 이를 감안하면, 이후에 진행될 과정에 대해 두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시나리오 1은 자유한국당이 태도를 바꿔 선거제도 개혁 협상에 들어오고 새로운 개혁안에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이다. 그럴 경우에는 합의된 선거제도 개혁안을 먼저 본회의 표결로 가져가면 된다. 시나리오 2는 끝내 자유한국당이 협상을 거부하거나, 협상을 했지만 자유한국당과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본회의 표결로 가게 된다.

실제 본회의 표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변수가 있다. 국회법상으로는 해당 위원회에서 최대 180일, 법사위에서 최대 90일 동안 안건을 심사할 수 있게 되어 있고, 그후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최장 330일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본회의 상정 전 60일은 국회의장의 의지로 단축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270일 정도가 걸린다. 이 경우 내년 1월에 본회의 표결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원회 심사단계에서 안건조정절차를 거치는 경우에는 기간을 더 단축할 수도 있다.

시나리오 2의 경우에도 원안 그대로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도 있지만, 만약 추가협상을 통해서 수정동의안이 만들어지면 수정동의안부터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도 있다. 참고로 최초의 패스트트랙 사례인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의 경우에도 2017년 11월 24일 본회의 표결 전에 박주민 의원 등 43인으로부터 수정동의안이 제안되어 수정동의안부터 표결을 해서 통과가 되었다. 1987년 이후에 처음 맞은 선거제도 개혁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개혁을 바라는 측에서도 각 시나리오에 따라 긴밀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1) 시나리오 1의 경우

자유한국당이 협상에 나오는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 그러나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자유한국당이 지금 주장하는 ‘비례대표 폐지-전원 지역구에서 선출-의석수 270석으로 축소’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협상이든 토론이든 할 수가 있다.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는 ‘준연동형’보다 후퇴된 방안으로 협상이 이뤄져서도 안 된다. ‘준연동형’도 시민사회나 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그보다 비례성이 더 후퇴되는 방안은 곤란하다.

만약 자유한국당까지 포함해서 협상을 한다면, 기준점은 2018년 12월 15일에 있었던 5당 합의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5당 간에 유일하게 합의되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국회의원 숫자는 10% 범위 내에서 확대하는 것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이 합의문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우선 논의되어야 할 것은 국회의원 숫자 문제다. 현재의 300석으로 연동형 또는 준연동형을 할 경우에, 지역구 의석의 상당한 감축은 불가피하다. 선거구 획정에 있어서도 상당한 무리를 감내해야 한다. 통합되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반발만이 문제가 아니고, 해당 지역사회나 지역유권자들도 반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도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자기 지역구가 인근 지역구와 통합되거나 조정되어야 하는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에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 수 증원 논의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국민여론이 부정적이다. 또한 자유한국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의석수 증원에 부정적이었으므로 입장을 뒤집으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이 명분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와 강력한 국회개혁일 수밖에 없다. 의원 수 증원을 다시 논의하려면 강력한 국회의원 특권폐지법안(연봉 삭감, 개인보좌진 규모 축소, 투명한 정보공개와 예산낭비 근절 등)을 선거법 개정안과 동시에 통과시키겠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약속해야 할 것이다. 만약 10% 정도 의석을 늘려서 330석 정도로 하면, 지역구를 247~48석, 비례대표를 82~83석 정도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역구 선거구 조정의 폭은 대폭 줄어들 수 있다.

나머지 쟁점인 연동형 도입의 방식과 관련해서는 ‘온전한 연동형’과 현재 나와 있는 ‘준연동형’을 놓고 협상할 수는 있되, 현재의 ‘준연동형’에서 후퇴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비례성이 충분히 보장되는 방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구 대 비례 비율도 지금의 3 : 1(지역구 225 : 비례 75)에서 비례대표 비율을 더 줄이는 방향으로 후퇴해서는 안 된다.

 

2) 시나리오 2의 경우

끝내 패스트트랙으로 선거제도 개혁안을 처리하는 시나리오 2의 경우에도 변수는 있다. 우선 원안을 그대로 표결할 경우에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숙제가 있다. 본회의 표결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다. 현재의 국회의석 분포를 볼 때, 이번에 패스트트랙에 참여한 정당의 소속의원들만 찬성표를 던져도 과반수는 충분히 된다.

다만 개별 국회의원들, 특히 지역구가 통합·조정되는 국회의원들의 불만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 지도부들의 강력한 의지(선거제도 개혁에 반대표결을 하는 국회의원들은 공천 배제한다든지)가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시민사회는 본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이 찬성표를 던지도록 강력한 압력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선거제도 개혁이 무산되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도입만 무산되는 것이 아니라, 만 18세 선거권도 무산되고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도 무산된다. 제도개혁의 완전한 무산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사회도 모든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의 여론도 본회의 통과를 지지할 것이다.

한편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더 나은 개혁안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추가협상을 통해서 수정안을 만들게 되면 수정안부터 표결에 부치게 된다. 따라서 ‘준연동형’이 아닌 온전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지역구 축소의 어려움 때문에 의석수를 늘리자는 제안이 정치권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에는 비례성을 더 강화하는 내용의 수정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또한 국민적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국회의원 특권 폐지도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5. 정치권, 시민사회, 언론의 역할

 

이번에 패스트트랙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정치인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온 시민사회나 전문가들도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시나리오 가운데 어떤 쪽으로 흘러가든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정치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는 정치인들은 이후에 벌어질 정세의 변화에 긴밀하게 대응해가면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성사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 최초로 열린 정치시스템 개혁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도 본회의 표결 전까지 최대한의 힘을 모으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시민들에게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내용을 알려나가고, 다양한 영역의 시민사회조직들을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목표를 향해 모아나가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일 수밖에 없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주장하는 비례대표제 폐지-의석수 축소 주장에 맞서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당성을 알려나가는 것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할 몫이다. 언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여전히 선거제도는 시민들에게 어려운 주제다. 그러나 언론이 제 역할을 한다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도는 높일 수 있다. 언론이 정쟁 중심의 보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어떤 선거제도가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만약 선거제도 개혁이 성사된다면, 개헌 논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총선 전 개헌은 어차피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선거제도 개혁을 마무리 짓고, 개혁된 선거제도로 2020년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개헌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 그리고 2020년 총선 직후에 다시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개헌은 2020년 하반기 또는 2021년 상반기에 마무리하되, 개헌안의 적용 시기는 2022년 대선을 통해 새로 당선되는 대통령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지만, 1987년 이후 30년이 넘도록 헌법을 손보지 못한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다. 시민의 기본권을 강화하고, 지방분권을 제대로 추진하며, 직접민주주의를 헌법에 수용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불가피하다. 권력구조 개편 논의도 더이상 피할 수는 없다. 대폭의 개편이든 소폭의 권한 조정이든 논의를 해서 가능한 만큼이라도 손봐야 한다.

결국 모든 것은 첫 단추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에 달려 있다. 선거제도 개혁을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낡은 정치시스템을 교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