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팬데믹 시기는 새로운 의료를 예비하는가

 

 

최은경 崔銀暻

경북대 의과대학 교수. 공저 『감염병과 인문학』 『의학의 전환과 근대병원의 탄생』 등이 있음.

qchoiek@gmail.com

 

 

1. 들어가며

 

코로나19의 발발은 그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로 전화되었고 그간 구상으로만 그쳤던 미래를 성큼 다가오게 만들었다. 사상 초유의 사회적 거리두기와 온라인 개학, 그리고 스마트-역학조사에 이르기까지, 일견 인류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노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신종감염병 자체가 예상하지 못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1980년대 HIV/AIDS가 등장한 이래, 감염병은 현대 의학이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위기로 늘 거명되었다.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인력과 생물체의 실시간 이동 강도가 늘어나고 메가시티 등 도시 인구의 집적이 전세계적으로 커지면서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전염병이 새로운 숙주 환경을 찾아 전파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사스(SARS), 메르스(MERS) 등 그간 전례가 된 신종감염병은 그 등장만으로도 큰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신종감염병 중 전세계적인 팬데믹으로 단기간에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코로나19가 처음이다. 초연결사회가 된 글로벌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 그리고 현재로서는 백신이나 치료제 등 뚜렷한 의학적 대응물질이 부재하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인류사회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되고 있다.

유명한 저술가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위기에 관하여 인류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1 하나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와 시민적 역량 강화 사이의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주의적 고립과 글로벌 연대 사이의 선택이다. 누가 어떤 방식의 선택을 할 것인지는 아직 알기 어려우나, 팬데믹하의 일상이든 향후 전망이든 ‘선택의 시간’ 속에 놓여 있음은 분명하다. 평화 상태에서 늘 인식의 저편에 머물렀던 분배의 논리와 통제의 논리는 위기 국면에서 전면화된다. 모두가 선택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의 주체로 내몰리거나 호명된다. 팬데믹의 가장 치열한 현장인 의료 현장은, 그 자체로 위기의 대상이거나 구원의 자리이다. 이 흐름은 참여한 의료진의 영웅화(혹은 소진)로도, 또는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호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치료의 일선에 있는 의료진에게는 또다른 긴밀한 고뇌의 순간과 시간이다.

이 글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의료의 시간을 살피고 팬데믹이 호출하는 의료의 형태를 되짚고자 한다. 코로나 사태는 소위 ‘선진의학’의 후발주자로 간주되었던 한국 의료의 위상을 선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서구 국가들의 의료의 민낯과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 의료가 직면한 과제는 한국이든 서구 국가든 동일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의료자원을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 다른 하나는 감시와 개인 자유 제한이라는 문제, 마지막은 의료인에게 부과되는 부담의 문제이다. 이외에도 의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가 있으나, 우선 이 세가지 문제에 초점을 두어 논하고 향후 과제를 고려해보고자 한다.

 

 

2. 의료자원의 분배 결정 문제

 

공중보건 위기는 치료 시스템의 역량과 한계를 노출한다. 평상시에는 의료 시스템에 그렇게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하나의 침상, 한명의 의료진이 중요해진다. 팬데믹 준비(pandemic preparedness)에 관하여 안내하고 있는 WHO(세계보건기구), CDC(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등 국제사회 지침은 이러한 상황을 가정하여 팬데믹 상황에서 운용할 수 있는 계획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하고, 팬데믹 대비를 위한 역량 강화 및 주요사항 점검을 미리 준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매번 팬데믹의 규모와 전파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고 치료 기간 등 신종감염병 관련 정보도 희박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원이 미리 필요한지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기존의 병·의원 자원을 활용하되 팬데믹 상황에 맞춰 물량과 인력이 충분히 가용 가능하도록 전환하고 경증·중증 환자 분류에 맞추어 시스템을 재배치하는 것이 치료자원 분배의 요체이다. 그러나 병·의원 자원 준비가 충분하더라도, 팬데믹 규모에 따라 희소한 자원의 분배를 최전방에서 결정해야 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충분하지 않은 침상과 인공호흡기를 이용하여 누구를 치료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속출한다.

한국에서는 초기 대구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확산 초기 무렵 환자들이 몰렸을 때 대구시의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상은 부족했다. 확진자 중 최대 2300명까지 집에 머문 적이 있었고 전체 사망자 중 23퍼센트가 입원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2 2월 말 대구시의사회의 호출에 대구로 달려온 자원봉사자 의료진이 아니었다면 환자 폭증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약 팬데믹이 대구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번졌다면 자원봉사 운영 여력은 금방 한계에 달했을 수 있다. 또는 중증질환을 동반하지 않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상황이어서 사망률이 낮아 의료자원의 비상적 운용이 가능했을 수 있다.3 아직 팬데믹이 종식된 상황이 아니며 언제든 제2차, 제3차 유행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원 역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구가 역량 한계를 노출할 뻔했으나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던 사례라면 이딸리아와 뉴욕의 경우 자원의 한계로 인한 임상적 의사결정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딸리아의 경우 급박한 환자 급증이 발생하자 중환자의학회에서 ‘사회적 유용성’을 기준으로 환자를 분류해 받을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4 이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재난적 상황에서는 공리주의에 입각해 기대 여명이 높은 이, 동반질환이 없는 이에게 우선적으로 응급의료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뉴욕의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