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팬데믹 시대의 동물, 그리고 인간
남상욱 南相旭
인천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공저 『한국문학과 일본문학의 ‘전후’』 『전후의 탈각과 민주주의의 탈주』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등이 있음.
indimina@gmail.com
팬데믹 속의 동물권
지난 7월 19일 법무부는 브리핑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선언적 조항을 민법 제98조의2 1항으로 신설한다고 입법예고했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동물권에 대한 입법화가 이루어진 만큼 우리도 반대보다는 환영하는 분위기가 대세이다.
김지혜 변호사는 법 개정에 대해 “팔이 네개였다면 네 팔을 모두 벌려 환영했을 것”이라고 말하며 기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동물이 물건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앞두고, 어느 보호소에서 복날 즈음하여 평소라면 입양이 거의 되지 않는 대형견 십수마리가 입양을 갔고, 그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라는 소식을 전했다.1 복날이면 개를 먹는 문화가 아직 종식되지 않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전언을 접하면서, 서울올림픽을 즈음하여 개고기 문화가 서구에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했던 것이나, 불과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개고기를 먹는 문화를 야만으로 보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지 않는다고 성토했던 선배 학자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이제는 대도시 거리에서 ‘보신탕’이라는 문구를 보기보다는 동물과 연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더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7월에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칠성 개시장의 완전 폐쇄를 위해 녹색당 대구시당, 동물자유연대 등 15개 동물단체 및 진보정당이 ‘마지막 남은 칠성 개시장 완전 폐쇄를 위한 연대’를 결성했다. 이들은 27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칠성 개시장을 완전히 폐쇄해야 한다고 동의한 시민 약 1만명의 서명을 모아 대구시에 전달했다. 대구시는 “업소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내년 5월까지 칠성 개시장을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2
사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면서 어떤 동물들은 한층 더 우리에게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시기에 반려동물들과의 접촉이 우리의 격리생활을 위로해주면서, 그들을 단순히 돌봄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이 먹먹한 불안의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로서 인지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코로나 시기에 반려동물의 수가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추듯 8월 1일에는 전북 임실에 전국 최초의 공립 반려동물 장묘시설이 개장했고,3 육식을 기피하는 사람을 위한 대체육 시장의 성장에 대한 기사를 접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시행된 동물에 대한 입법은 어떤 모순도 없는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한국은 다채로운 육식 문화와 이에 대한 욕구를 실시간으로 실현시켜주는 배달 문화, 이를 뒷받침하는 축산업이 발달한 나라라는 점을 상기하건대 한국에서 동물권의 구체적 법제화와 실질적인 규제는 향후에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육식 문화가 단순히 개인의 취향 문제만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문제와 전염병, 다른 한편으로는 축산업과 노동권 등의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물건처럼 취급되는 일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지혜 변호사의 우려처럼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목소리는 언제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물에 대한 법제화는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른바 ‘선진국’의 일환이 되었다는 자기만족 속에서, 인간이지만 인간으로서 취급받지 못하는 존재들로부터, 혹은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되거나 집단 도축되는 동물들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지나지 않는 건가?
동물을 법의 테두리로 가져오는 것의 의미
동물권은 동물을 법의 테두리 안에 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법 없이 살아온 동물들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진행되어온 것일까.
앨러스데어 코크런(Alasdair Cochrane)의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Should Animals Have Political Rights?,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