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페넬로페의 복화술

공선옥 장편소설 『수수밭으로 오세요』, 여성신문사 2001

천운영 소설집 『바늘』, 창작과비평사 2001

윤성희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민음사 2001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llauper@hananet.net

 

 

1. 그리스 신화에서 페넬로페(Penelope)의 옷감짜기에 얽힌 이야기는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자주 인용되는 문학적 비유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던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를 짜는 일이 끝나면 청혼을 받아들이겠다고 남자들에게 약속한다.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남몰래 그 수의를 풀어버린 페넬로페의 모습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적 서사의 상징을 읽어낸다. 페넬로페는 밤동안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수의를 풀어버린다. 그녀는 자기의 본심이 담긴 진술을 숨겨둔 채 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페넬로페처럼 오랜 시간 동안 여성작가들은 자신의 경험과 삶을 진술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의미가 감추어진 텍스트 속에서 여성적 목소리를 창조적으로 읽어내야 하는 지난 시대의 작품들에 비한다면 근래 여성작가들이 전면화하는 성(性)과 사랑, 가족의 테마는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페넬로페의 후손들은 자신이 밤새 수의를 풀어버렸노라고 당당히 고백한다. 권위적인 아버지와 강인한 어머니의 담론을 넘어서 변화해가는 여성적 서사의 새로운 양상은 거침없는 자기노출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외형과 달리 여성적 글쓰기의 내부에는 여전히 모순과 균열이 존재한다. 문화상품이 넘쳐흐르는 이미지의 시대에 여성의 글쓰기는 육체와 욕망의 담론만큼이나 빠르게 번성해왔으며 그만큼 쉽게 오해되고 왜곡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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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수수밭으로 오세요』와 천운영의 『바늘』, 윤성희의 『레고로 만든 집』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여성적 글쓰기의 양상도 단일하지 않다.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기존의 가족서사로부터 벗어나려는 새로운 여성적 정체성의 탐구다. 공선옥 소설에서 탐구되는 모성은 전통적인 가족 형태와 힘겨운 싸움을 예고하는 갈등의 서사로 드러나며, 천운영 소설이 탐색하는 욕망의 담론은 여성 육체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탐색을 예고한다. 윤성희의 소설은 얼굴이 지워진 타자의 희미한 씰루엣 속으로 여성을 이끌고 간다. 또한 공선옥의 소설이 고백적인 서사에 가까이 가 있다면 천운영과 윤성희의 소설은 사적인 기록이나 근거를 배제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이들의 소설은 생존의 보호막이 파괴된 폐허의 현실 속에서 움트는 다양한 여성적 글쓰기의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고찰을 유도한다.

 

2. 공선옥(孔善玉)은 가난과 사회적 소외를 여성의 생존방식과 연결짓는 보기 드문 작가다. 80년대 광주체험의 여진 속에서 남은 가족을 부양하는 힘겨운 여성 가장의 삶은 공선옥의 초기작에서 자주 나타나는 소재였다.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1994)와 『내 생의 알리바이』(1998),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1993)과 『시절들』(1996)에서 드러나는 생의 절박한 몸부림은 공선옥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신작소설인 『수수밭으로 오세요』에서 공선옥은 경험적 어머니의 세계를 본격적인 장편 형식으로 풀어놓았다. 주인공 필순이 전 남편의 아이 한수를 데리고 이섭을 만나 아이를 낳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었다가 다시 ‘홀로어멈’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이야기의 뼈대가 된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과 해체를 소재로 한 이 소설은 기존의 여성소설에서 보기 힘든 재혼의 문제, 의붓아버지의 존재, 핏줄이 섞이지 않은 새로운 공동체로서의 가족 개념을 골고루 다룬다.

공선옥의 소설답게 가장 실감나게 묘사되는 부분은 아이를 건사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달래고 씻기고 먹이는 고단한 일상은 공선옥의 이전 소설에서도 익히 보아온 장면들이다. 필순이 친구 은자의 아이들인 소정과 소란을 데려와 자신의 아들 한수·산이와 함께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일상은 공선옥 소설에서만 풍기는 삶의 훈기를 느끼게 한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남자가 필순에게 찾아와 여동생 필례의 아이라고 봄이를 맡기고 가는 장면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누구의 아이면 어떠랴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눈물이, 제 가슴 가득, 눈물이 어룽져서 만들어낸 무늬가 사방 연속무늬의 도배지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는 것, 봄이를 놓고 가라 말한 그때 제 가슴 가득 눈물의 무늬가 어룽졌다는 것”(187면)이라는 필순의 고백은 핏줄을 넘어서 어린 생명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심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어머니 노릇에 대한 세부의 묘사가 자신감을 띤다면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사는 남편과 아내가 겪는 갈등은 다분히 일방적인 서술로 그려진다. 필순의 눈으로 바라본 재혼가정의 갈등은 아버지 노릇을 거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