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문학이라는 커먼즈

 

페미니즘과 공공의 삶, 그리고 문학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1. 페미니즘과 문학의 공공성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은 페미니즘 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킨 오래된 표어이면서 현재적으로 많은 함의를 머금은 말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온 페미니즘의 실천적 논의들은 강남역 살인사건,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그리고 촛불혁명을 거치며 여러가지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냈다.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운동을 배경으로 사회 각계에서 성폭력과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공론화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역시 주목할 지점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구조적인 차별과 혐오 및 폭력의 문제를 공론장에서 제기하는 적극적인 행동 속에서 그동안 개인의 사생활 문제로 치부되었던 여러 종류의 불평등한 관계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처럼 페미니즘의 주제는 개인의 일상적 관계들이 궁극적으로는 정당한 권리와 자유를 위한 공공적인 질문들에 열려 있다는 점을 일깨운다.

페미니즘의 문화적인 확산은 출판과 강연, 학술과 교육의 공론장에서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현재 이들 분야에서 페미니즘은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대중적 주제이다.1 최근 제기된 초·중·고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 역시 교육현실에서 일상화된 성적 비하와 약자 혐오의 문제에 대응하려는 시민들의 적극적 의지를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인간 해방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두루 공유되었다는 점은 새삼 반갑게 다가온다. 국민청원에 대한 정부의 답변 역시 페미니즘 교육이 근본적으로는 인권교육의 맥락에 서 있음을 살피며 “여성뿐 아니라 종교, 장애, 나이, 인종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적 표현은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 차이를 인정하는 인권문제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2

캐롤 페이트먼(Carole Pateman)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이분법’의 문제야말로 거의 두세기에 걸쳐 여성주의적 글쓰기와 정치투쟁에서 핵심적인 사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3 근대적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인식틀은 정치적 공공성의 영역에 계급, 성별, 인종과 관련된 무수한 차별과 배제를 기입해왔다. 김영희(金英姬)는 이성적 존재로서 보편적 개인을 정의하는 자본주의 근대 특유의 논리가 특정한 주체를 이성적 존재로 호명하는 차이 내지 차별의 논리를 필수적으로 요청한다는 사실을 환기한다.4 젠더 문제가 작동하는 가족, 개인의 일상적 삶은 흔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는데 이러한 논리 자체가 타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가부장적·제국주의적 근대체제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백영경은 지금까지 이루어진 공적인 것, 공공성의 논의가 젠더 문제를 주요하게 다루지 못했음을 지적하며 “공(), 공(), 사() 영역 전반에 걸쳐 작동하”는 커먼즈(commons) 논의를 통해 국가나 특정한 조직과 공동체의 과제로만 제한되어 있던 젠더 문제 및 돌봄의 위기 현상을 돌파하기를 모색한다.5 공유지, 공유재, 공동자원으로 번역될 수 있는 커먼즈에 대한 적극적 해석은 여성 문제의 일부가 가족이나 사적인 차원으로 귀속되어 설명될 수 없다는 의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각한 시민들이 스스로의 삶과 위협에 놓인 자신들의 자원들을 스스로의 손으로 책임지겠다는 비전”6을 실천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문학예술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소통의 형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공공성(publicness)을 추구한다. 예술과 정치는 공공성, 혹은 공공 영역에서 근본적으로 만나며, 문학은 작품이라는 언어예술을 통해 삶의 문제를 포착함으로써 공공성의 가치를 묻고 구현한다. 물론 문학예술의 공공성을 논의할 때 다른 분야의 그것과 차별되는 지점 역시 짚어둘 필요가 있다. 예술 영역에서 공공성을 사유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공공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공공의 이익이나 공공의 가치, 공공 영역, 공공재 등과 같이 다른 용어나 개념에 내재하는 속성”7으로 제한되어 사용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국가나 제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적 지원 영역의 문제, 공적 지원을 받은 대상들이 그 활동에서 공공성을 가져야 한다는 논의, 제도적 검열의 문제, 매체의 혁신성 등의 문제로만 공공성의 개념과 범위를 제한한다면, 예술작품의 가치평가와 구체적인 실현 문제는 추상적인 당위의 확인에 머무르기 쉽다.8 문학작품이 공공성에 기여하는 방식은 사회적 담론의 형식과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 작품에 들어오는 사회적인 기록 역시 사물과 세계를 인식하는 특정한 문학의 형식과 관점을 통해 조직된다. 페미니즘을 다룬 문학작품의 예만 들더라도 폭력과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다. 여성과 소수자가 겪는 차별과 폭력의 문제는 별도의 주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삶 속에서 탐구될 때 깊은 감동을 주게 된다. 뛰어난 문학작품이 주는 감동은 계급과 젠더와 인종을 가로지르는 복잡다단한 삶의 양상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고민하게 함으로써 공공성의 주제와 연결된다.

더불어 문학과 연관된 공공성과 커먼즈의 개념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개방성을 지향하면서도 특정한 배제와 주변화의 힘 역시 갖고 있음을 거듭 환기할 필요가 있다. 커먼즈론에서도 지적되듯이 문화적·지적 자원들은 다른 자연자원처럼 희소성과 전용의 원리에 제한받지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만큼이나 진부하고 관습적인 방식으로 남용될 우려도 있다.9 사회 제반 문제뿐 아니라 문학의 영역에서도 “이미 존재하는 커먼즈를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서 공동의 것을 새로 만들어나가는 노력”10이 절실히 필요한 셈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공공성과 커먼즈의 논의가 열어 보이는 비평적 시야를 참조하면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여성의 삶과 시민의

  1. 「‘미투’ 확산에 페미니즘 출판·전시 꽃 피우다」, 노컷뉴스 2018.2.8 참고.
  2. 「靑, ‘초중고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 답변 살펴보니…」, 뉴스웨이 2018.2.27.
  3. 캐롤 페이트먼 『여자들의 무질서』, 이평화·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18, 189면.
  4. 김영희 「페미니즘과 근대성」, 이남주 엮음 『이중과제론』, 창비 2009, 122~23면.
  5. 백영경 「복지와 커먼즈: 돌봄의 위기와 공공성의 재구성」,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23면. 이 글에서 공공성과 공동체, 커먼즈의 개념적 논의에 대해 참고할 수 있다.
  6. Thomas Allan, “Beyond Efficiency: Care and the Commons,” 같은 글 30면에서 재인용.
  7. 김세훈 외 『공공성』, 미메시스 2008, 9면.
  8. 2015~17년 문학 영역에서 부각된 공공성의 주제 역시 문학권력과 출판사 상업주의 비판, 예술인 지원 문제, 매체 혁신 논의에 제한되어 다루어진 측면이 크다.
  9. 데이비드 하비 「커먼즈의 미래: 사유재산권을 다시 생각한다」,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58~59면.
  10. 백영경, 앞의 글 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