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페미니즘으로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

여성주의 언어와 감성적 혁명의 모색

 

 

김영희 金伶熙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불온한 미(美)와 다른 현실: 정한아 김성규 서대경의 시」 등이 있음.

yhorizon@naver.com

 

 

1. 은폐된 것과 물어야 할 것

 

‘여성혐오’는 여전히 현재 한국사회의 일면을 가장 날카롭게 관통하는 말 중 하나이다. 이는 ‘혐오의 시대’를 가장 앞서 반영하는 증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근대의 억압적인 구조를 드러내는 말인 동시에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의 경제적・문화적 임계를 표출하는 말이기도 하다. 여성혐오의 대척점에 있는 것은 흔히 예상하는 바와 달리, 남성중심적 권력의 위기이며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몰락이다.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표현은 주로 성과 결혼의 문제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이제 한국사회에서 남성들의 데이트, 섹스, 결혼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1

N포세대’나 ‘흙수저’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이들 담론 속에 담겨 있는 청년세대의 불안과 분노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여성혐오가 발화되는 현상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세대에 한정짓지 않고 확장해보면, 현재의 여성혐오와 젠더갈등의 이면에는 IMF 이후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의 불모 속에서 남성성이 ‘양극화’되는 한편,2 여성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남성들의 위기감과 열등감이 매설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혐오의 메커니즘은 빈곤, 불안, 폭력의 인과적 연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혐오의 전략은 주체를 혐오 이면의 역사적 맥락과 정치적・경제적 구조에 무관심하게 만들며, 주체로 하여금 혐오를 배태시킨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회피하도록 한다. 혐오가 재생산될수록 혐오를 생산하는 근본 구조는 오히려 은폐되는 것이다.3

‘양성평등’은 2017년 현재 한국사회의 일면을 가장 효과적으로 특징짓는 말 중 하나이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성평등 및 젠더 문제 등에 대한 정책에 거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등에 대한 논의가 주로 여성의 사회 진출, 특히 소수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리 천장 깨뜨리기’로 손쉽게 비유되는 이같은 현상은 문화, 비즈니스, 정치의 영역에서 이미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엘리트 여성을 대상으로, 그들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지니곤 한다.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같은 여성운동의 수혜자는 주로 고등교육을 받은 특권층 여성으로 한정된다.4

양성평등 논의와 관련하여 정희진(鄭喜鎭)은 성역할, 젠더 언어에서 작용하는 남녀 간의 위계 문제나 비정규직 비율, 임금 격차에서 드러나는 ‘빈곤의 여성화’ 문제 등, “젠더가 작동하는 근본 구조는 변함이 없는 상태에서 자유주의 차원의 평등은 남성에게는 오해와 반발만을, 여성에게는 허울뿐인 평등을 약속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의 분담 같은 ‘사적 영역’의 변화 없이는 평등의 구현으로 ‘오해되는’ 여성의 사회 진출은 오히려 여성에게 부과되는 ‘이중노동’일 뿐이라고 비판한다.5 흔히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고 인식되는 평등주의의 이면에는 여성이 처한 과도한 노동 상황이 효과적으로 은폐되어 있는 것이다.

혐오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고 평등은 지향해야 할 가치임에도, 여성을 둘러싼 혐오의 재생산은 현재 통용되는 차원의 평등주의를 통해 해소되거나 봉합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젠더 문제는 경제위기와 경쟁체제가 완화된다거나 사적 영역에서 성역할의 차별성이 개선된다고 해서, 다시 말해 두 영역 중 한편의 해결만으로는 극복 가능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무엇보다 ‘이가적(二價的) 집단’ 양식이라는 젠더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에 따르면, 젠더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문화평가의’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는 집단 양식이다. 젠더를 중심으로 한 부정의는, 부불노동이나 핑크칼라가 지시하는 ‘경제적 불평등’과, 성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 규범에 내장돼 있는 ‘차이의 불인정’이라는 두 차원에서 동시에 작동한다.6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여성혐오와 양성평등의 이슈들과 이들이 은폐하고 있는 것, 젠더라는 집단 양식의 특수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는 페미니즘 비평이 어떠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젠더에 대해 말할 때, 혹은 페미니즘 비평과 여성주의운동에 대해 논의할 때, 평등과 정체성, 계급과 섹슈얼리티를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학의 현장에서 젠더 프레임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젠더를 둘러싼 복합적인 모순을 넘어 여성주의 언어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그를 위해 페미니즘 비평은 어떻게 씌어져야 하는 것일까. 이같은 질문과 함께 이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2. 여성주의 언어와 부조리한 문장

 

“프랑스 여자도 프랑스인인가?” 이같은 질문은 부조리하거나 터무니없어 보인다. 랑시에르(J. Rancière)에 따르면, 19세기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역설적으로 성의 불평등성에 대해 폭로하고 대항할 수 있

  1. 김신현경 「미소지니를 넘어서기 위해 더 물어야 할 질문들」, 『말과활』 2016년 가을 혁신호 117면. 이는 근대 자본주의 재생산 구조의 남성중심성이라는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해석 가능하다. 김신현경은 여성혐오가 결혼을 통해 여성의 재생산노동, 즉 가사노동, 감정노동, 성노동을 소유할 수 없는 남성들의 ‘소유권 박탈’과 연관된 감정이라고 설명한다.(같은 글 121면)
  2. 앞에서 남성성의 위기와 몰락으로 표현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남성성은 단일하다기보다는 양극화·복수화되어 있고, 이 구도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하지 못한 남성들의 열등감과 위기감이 여성혐오로 표출된다는 설명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엄진 「전략적 여성혐오와 그 모순」, 『미디어, 젠더&문화』 31권 2호, 2016, 6면)
  3. 여성혐오와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의와 그 한계에 관해서는 『창작과비평』 2017년 여름호 특집 ‘페미니즘으로 문학을 읽는다는 것’에 실린 백지연의 글을 참고할 수 있다. 백지연은 「페미니즘 비평과 ‘혐오’를 읽는 방식」에서 페미니즘 비평의 역사와 여성혐오를 둘러싼 담론들을 검토하면서, 신자유주의 담론과 여성혐오 담론이 결합한 논의들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특히 페미니즘 논의에서 신자유주의 경쟁체제에서의 자기계발주체, 왜소해진 남성성 등에 대한 문화론적 분석이 지니는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페미니즘 운동이 ‘문화정치’ 담론에 집중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와 분리되는 지점이 신자유주의체제가 의도한 것이라는 낸시 프레이저의 지적을 되새겨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4. 낸시 프레이저는 신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의 위험한 관계(“제2물결 페미니즘과 신자유주의가 동시에 번창한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였을까?”)를 적시하면서, 현실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페미니즘 운동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전진하는 페미니즘』, 임옥희 옮김, 돌베개 2017, 302면) 이에 근거하여 본 글에서 사용하는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극복이라는 표현은 소수 엘리트 여성의 이익에 집중하는 종류의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 양성평등 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 등에 주목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든 여성과 가난한 여성과 흑인 여성들과 노동자계급 여성 등등을 위한 페미니즘” 운동을 지향하는 말인 동시에 젠더를 둘러싼 사회 메커니즘의 변화와 다른 현실로의 이행을 강조하는 말이다.(낸시 프레이저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도래」, 문순표 옮김, 『말과활』 2016년 가을 혁신호 175면)
  5. 정희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정희진 엮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교양인 2017, 50~53면.
  6. 낸시 프레이저 「재분배에서 인정으로?」, 케빈 올슨 엮음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문현아 외 옮김, 그린비 2016, 42~4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