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새로운 문학사, 어떻게 쓸 것인가

 

페미니즘의 눈으로 읽는 문학사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1. 문학사의 ‘여성’을 호명하다

 

문학출판계에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들이 활발하게 출간되는 가운데 여성작가와 그들이 쓴 작품을 새로운 비평적 시각으로 읽고자 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역사 속의 여성 인물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조명하려는 기획들이 풍성한 가운데 교육현장과 일상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을 통해 여성작가와 작품을 접하려는 대중적 관심도 꾸준히 지속되는 듯하다. 성별의 경계성을 통찰하며 여러 소수자의 삶을 주목하는 페미니즘의 문학사는 다양한 장르 간의 경계와 시대적 구분을 돌파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문학사를 기술할 경우, 글읽기를 포함해 문자행위로서의 글쓰기의 전과정과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연속적 문학사 구상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주의 깊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1 최근 중고교 교육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소개되는 고전 여성영웅서사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쉽지 않았던 봉건사회의 금기를 뛰어넘으려는 대담한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방한림전』(작자 미상)은 당대의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동성혼을 상상적으로 구현한 각별한 작품으로 눈에 들어온다.

조선 후기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방한림전』은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지닌 여성 방관주가 성별을 숨기고 영혜빙과 결혼까지 한 후 공직에 진출해 남자로 행세하며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개의 여성영웅서사가 남장을 하더라도 정체가 밝혀진 후 본래 여성의 삶을 살아가는 구조를 취한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동성혼 후 하늘이 내려준 자식까지 키우며 명예와 복을 누린다. 물론 소설은 동성혼을 금기로 여기는 시대적 관습을 의식해 몇가지 서사장치를 동원한다. 중국 명나라로 배경을 설정하고, 두 사람은 원래 천상의 부부였는데 일을 돌보지 않고 애정에 몰두한 벌을 받아 지상으로 쫓겨났다는 사연을 말미에 소개한다. 방관주가 평생 성별을 속인 것을 황제에게 고백한 후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도 파격적인 상상력을 완화하는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다양한 퀴어서사의 창작과 소개가 활발한 흐름 속에 고전작품인 『방한림전』도 당대 사회의 금기에 저항하는 ‘퀴어 로맨스’의 맥락에서 관심을 끄는 듯하다. 등장인물인 방관주와 영혜빙의 당당하고 개성적인 캐릭터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각각의 형태로 저항하고자 한 여성들의 성공적인 만남이라는 점에서 놀랍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킨다.2 차갑고 도도한 매력을 풍기는 영혜빙은 “나는 본래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가 되어 그의 통제를 받고, 눈썹을 그리며 남편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것을 괴롭게 여겨왔다. 그래서 평소 금슬우지와 종고지락을 원하지 않았는데, 뜻밖에 이런 일이 생겼구나. 이를 어찌 우연이라 하리오? 반드시 하느님께서 내 뜻을 헤아리신 것이리라”3라며 방관주와의 만남을 기뻐한다. 영혜빙은 방관주의 남장과 사회적 활동을 감싸면서도 부부생활에서는 평등한 관계를 강조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시대적 관습을 감안하여 성적 교감보다는 ‘지기’의 순수한 우정과 형제의 정으로 그려지지만, 은유적으로 서로에 대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다.

남장 신분을 고수하며 제도 속에서 성공하기를 열망하는 방관주와 그를 지지하며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도모하는 영혜빙의 삶은 봉건적 제약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세계에 대한 여성의 열망을 분명히 보여준다. 더불어 두 인물의 위장된 동성혼은 당대의 젠더 규범과 성별체계를 교란하는 삶이 감당해야 하는 불안함도 드러낸다. 소설의 동성혼과 인물의 페미니즘적 의의가 다양한 현대적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이 소설이 지닌 매력일 것이다.4 조선사회의 젠더 규범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금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욕망과 꿈을 환기한다.

페미니즘 비평이 문학사의 읽기와 쓰기에 기여하는 창조적 덕목이 있다면 삶과 역사를 읽는 새로운 관점이라 할 것이다. 최근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 속에서 급진적 흐름을 띠는 문학사 연구 역시 독자의 향유 활동을 강조하며 연구영역과 감수성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연구대상 범위도 잡지, 신문, 미디어 등으로 넓어지면서 젠더 연구는 문학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 분야의 최신 흐름을 껴안는 적극적인 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여성의 역사 쓰기와 정전 해체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페미니즘 문학사 연구의 흐름과 더불어 최근 급진적 정체성 담론과 결합된 문학사 연구의 방향을 비평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수많은 차이와 갈래를 지닌 광범위한 페미니즘 연구의 현황을 포괄하는 것은 제한된 지면에서 가능하지 않기에 최근 페미니즘 문학사 연구의 경향을 드러내는 주요 논의들을 검토함으로써 문학사 서술의 가능성을 진단하는 단초로 삼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문학사 서술의 작업 역시 대화와 해석을 통해 쇄신되는 문학비평의 작업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논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여성의 역사 쓰기, 정전 해체의 의미

 

페미니즘 문학사 연구의 첫걸음은 여성작가의 작품을 발굴하고 조명하는 작업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여성작가문학’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하고 여성작가의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연구시야를 확장해간다. 이봉지는 여성을 역사 속에 복원하고자 하는 여성사 기술의 시도가 여성문학사 기술의 시도와 맞물려 있다고 설명하며 여성사 연구자들이 품는 질문을 여성문학사에도 던질 수 있다고 말한다.5 이미 존재하는 문학사에서 누락된 부분만을 모아 보충하는 것으로 여성문학사의 소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여성의 경험이 남성의 경험과 변별되는 고유한 역사를 이루며, 특유의 집합적인 작품 미학을 지닌다는 여성문학론의 정체성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 예로 해방 후 ‘한국여류문학인회’의 기획 아래 총 6권으로 출간된 ‘한국여류문학전집’(삼성출판사 1967)은 식민지 이후부터 전쟁과 분단을 거쳐 1960년대 등단한 신예작가까지 아우르는 여성문학의 주요한 계보를 보여준다.6 전집의 주요 편집자인 박화성은 머리말에서 “사십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에서 줄기차게 뻗어 내려온 남존여비의 완강한 관습과 지극히 인색한 사회의 모든 여건에도 꺾임이 없이 꾸준히 자기의 문학을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