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페미니즘으로 문학을 읽는다는 것

 

페미니즘 비평과 ‘혐오’를 읽는 방식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 등이 있음. cyndi89@naver.com

 

 

1. 페미니즘 비평의 역사와 ‘래디컬 페미니즘’의 귀환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문제는 최근의 문학 논의에서 가장 뜨거운 비평적 쟁점 중 하나이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의 활동, 그리고 문학예술계 성폭력 문제, 다양한 개인들의 연합을 보여준 촛불광장의 혁명을 거치면서 우리는 삶의 현장과 만나는 여러가지 페미니즘 이슈를 접하고 있다. 문학계에서 세대론, 대중문화론과 결합되었던 페미니즘 논의는 작년 하반기 ‘성폭력 고발’의 참담한 사건을 통과하면서 더욱 직접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발화를 확산시키게 된 듯하다.1

돌이켜보면 한국문학에서 페미니즘 비평은 급격한 사회적 변혁의 시기와 맞물릴 때마다 정치적 동력을 입증하고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여성』(1985) 『또 하나의 문화』(1985) 『여성운동과 문학』(1988) 등 페미니즘 비평매체의 본격적 출현도 당대 민주화운동 및 여성운동의 활성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힘입은 것이었다. 초창기 페미니즘 비평이 민족·계급·성차의 관련성을 고려하면서 ‘평등’을 주제로 첨예한 토론과 논쟁을 벌였다면 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은 대중문화의 이슈와 만나 영역을 확장하며 여성 고유의 ‘차이’에 관한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생산해왔다. 200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성, 여성적 글쓰기의 제한된 범주를 비판하면서 정신분석학,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의 흐름과 활발하게 접속해왔다.2 작가의 성별이 아닌 텍스트의 성별, 복수적이고 중층적인 정체성들의 출현이 부각되면서 여성문학 연구와 비평에서는 페미니즘이나 젠더라는 용어보다는 섹슈얼리티, 성정치, 소수자,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 등의 분화된 키워드를 내세우는 경향이 점점 강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경향의 변화 과정은 “여성문학이론의 좌표가 상실된 채 텍스트 추수주의에 경도되거나 여성문학이론 자체가 과잉담론화”된다는 비판을 불러오기도 했다.3

페미니즘 비평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간략하게 돌아본다면 현재 세대적 변화를 선언하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출현은 달라진 소통매체를 배경으로 새로운 방식의 운동성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특히 SNS 공간을 중심으로 여성이 겪는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대중의 강력한 발화는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페미니즘 문학비평이 실제의 삶과 떨어져 어느 순간부터 자족적으로 순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4 양효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전세계에서 다시 래디컬 페미니즘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 자체가 “역사의 반복(유사성)으로부터 차이(새로움)를 끌어낼 필요”를 보여준다고 강조한다.5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서의 불평등의 심화, 뿌리깊은 여성 억압과 차별, 새로운 방식으로 펼쳐지는 광장의 민주주의, 소수자에 대한 다각도의 성찰 등 이제 페미니즘 비평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강한 실천성을 담보한 담론으로 거듭나기를 요구받고 있는 듯하다.

문학의 현장에서 제기되는 페미니즘 비평의 쟁점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먼저 ‘여성혐오’ 및 혐오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비평적으로 점검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그동안 여성혐오를 포함한 ‘혐오’의 문제는 정동(情動)과 이데올로기 연구, 문화정치, 도시성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페미니즘 비평의 문제의식과 결합하는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여성혐오 비판 담론이 문학사 속의 남성주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떤 비평적 시각으로 작용하는지의 문제, 신자유주의 비판 담론과 혐오 담론이 결합하는 과정, 그리고 실제 작품에 드러난 여성혐오 및 혐오의 주제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차례로 탐색해보려고 한다.

 

 

2. 여성혐오 비판 담론과 신자유주의 담론

 

여성혐오와 관련하여 최근 페미니즘 논의에서 자주 인용되는 우에노 치즈꼬(上野千鶴子)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첫 장은 일본 근대문학사 속 남성작가들의 ‘정전’에 잠겨 있는 지독한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6 저자는 요시유끼 준노스께와 나가이 가후우, 오오에 켄자부로오의 작품을 언급하면서 허구의 인물들이 드러내는 여성혐오의 양상과 작가의 실제 삶 및 여성의식을 과감하게 연결시킨다. 이 책은 “‘남성 됨’이라는 성적 주체화를 이루기 위해 ‘여성’이라는 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미소지니(misogyny)의 구조를 중요한 도식으로 부각한다. 이브 쎄즈윅(Eve K. Sedgwick)의 논의를 빌려 ‘호모소셜 호모포비아 여성혐오’의 도식으로 재구성된 여성혐오 구조 담론은 이성애 질서의 핵심에 여성혐오가 있으며, ‘나는 여성이 아니다’라는 정체성이 남성다움을 지탱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한다.

‘남성연대’를 이루기 위해 여성이 타자화되는 과정에서 여성혐오가 기원하고 있음을 강조한 우에노 치즈꼬의 논의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현재 한국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의 기원에 대해 부분적으로 명쾌한 해석을 내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개개인의 여성들을 하나로 환원해버리는 여자라는 기호에 탐닉하”는 남성주체에 대한 저자의 일관된 강조는 결과적으로 피해자를 여성으로 고착시키는 논의로 되돌아올 위험을 처음부터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여성혐오의 비판 담론은 ‘남성연대를 위한 여성의 대상화’ 과정 자체를 끊임없이 입증해내는 단일한 회로처럼 보인다. 물론 우에노 치즈꼬의 논의에서 핵심은 ‘여성혐오’ 그 자체가 아니라 ‘미소지니’라는 구조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김신현경은 “근대에 이르러 헤아릴 수 없이 복잡하고도 정교한 방식으로 여성이 배치된 원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미소지니의 구조적 측면”이 여성혐오라는 용어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미소지니라는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7 감정의 문제로 여성혐오 문제를 끌고 가기보다는 한국적 ‘미소지니’ 정서의 물질적 기원을 탐구하는 시도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소지니’라는 말을 쓰더라도 여성/남성과 피해자/가해자를 연결짓는 성별도식의 전제 자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현재 역시 여성혐오 비판이 갖는 정치적 힘에 동의하면서도 이러한 성별도식에 기반한 여성혐오 논의가 구조 바깥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혐오 비판 담론에서 핵심적인 것은 여성의 주체 되기, 여성의 행위자성을 어떻게 살려내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타자를 배제함으로써만 정립될 수 있는 주체가 되지 않고도 여성혐오를 벗어나는 행위자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여성들의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현재는 이를 ‘비체/abject 되기의 전략들’8로 설명하면서 젠더 패러디, 미러링, 가면 쓰기, 여성성의 재전유, 퀴어 되기 등의 다양한 수행전략을 제시한다. 그런데 ‘비체’의 전략으로 제시된 가면 쓰기나 미러링의 방식은 90년대 이후 우리의 여성문학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익숙한 방법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소설에서는 캐릭터와 관련하여 유령, 괴물, 좀비, 사이보그 등 다양한 존재들의 허구적 서사가 ‘비체’의 문법으로 해석된 바 있지만, 이미지의 유형화나 소재적 분석 이상을 뛰어넘기 쉽지 않았다. 살아 있는 현재로서 비체의 힘이 감각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식의 전략이 필요하다. 가령 메갈리아의 등장 이후 이전보다 급진적인 방식으로 행해지는 미러링의 전략과 혐오의 반사는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 내부에서도 소통되지 않을 수 있는 우려를 가져온다. 무엇보다 상이한 관점과 인식체계를 갖는 비체 전략들끼리 통일된 연대를 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저자 역시 언급하고 있다.

근대적 성별구조를 통해 ‘여성혐오’를 설명하는 틀에 대해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신자유주의 담론과 여성혐오 담론의 상관관계이다. 최근 여성혐오 논의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거세게 일어나는 여성혐오의 문제를 신자유주의적 시장체제에서의 무한 경쟁과 ‘자기계발주체’라는 흐름과 연결짓는 분석이다. 임옥희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중간계급 추락이 남성 가장에게 과도한 수치심을 안기고 이것이 젠더 무의식을 건드림으로써 폭력성으로 출현하는 과정을 주목한다.9 손희정은 직접적으로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적 자유화가 하나의 과정으로 진행되었던 87년체제와 그 체제의 정치, 경제, 문화적 실패”가 ‘혐오하는 스놉’을 등장시켰으며 주체는 “‘반동적 복고주의’를 따라 자신의 혐오를 구성”하게 된다고 주장한다.10 ‘혐오’가 결국 ‘87년체제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손희정의 단호한 진단은 미래의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고립되고 파편화된 개인들의 모습, 자기의 욕망을 깨닫지 못하고 쉼없이 달리는 속물적 주체와 여성혐오의 주제가 연결되는 지점을 부각한다.

신자유주의체제가 전면화된 이후 젠더갈등이 첨예화되는 과정 속에 혐오의 문제를 위치시키는 이러한 분석방식은 여성을 경쟁상대로 여기는 남성들의 심리현상에 관심을 둔다. 상당수 논의들이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왜소해진 남성성’의 수치와 불안이 야기하는 폭력과 혐오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논의의 바탕을 살펴보면 IMF 이후 근대문학 종언론과 스노비즘 분석에 입각한 특정한 인간형에 대한 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기시감이 드는 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좀더 비판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기계발의 주체, 왜소한 남성성에 대한 문화론적 분석은 페미니즘의 특정 논의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출구를 찾기보다는 지난 시대의 신자유주의 비판이나 속물 담론을 반복적으로 확산하고 재구성하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자유주의 비판이라는 처음의 기획에서 벗어나 혐오 현상을 읽어내는 문화정치의 담론을 신자유주의 담론이 보충하고 지원하는 형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정치경제 비판보다는 오히려 문화 비판을 전면화하면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비판을 약화시키는 과정이야말로 신자유주의체제가 의도하는 것이라는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의 지적은 서늘하게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여성혐오 비판 담론에서 종종 발견되는 젠더 이분법의 격화야말로 낸시 프레이저가 경계했던, 재분배(평등)와 인정(정체성 정치)이 분리됨으로 인해 페미니즘 운동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관심과 분리되는 바로 그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11

 

 

3. 근대적 남성성과 자기혐오: 김승옥 「무진기행」

 

리타 펠스키(Rita Felski)의 말처럼 페미니즘 비평은 ‘가장 다양하고 다면적이며 종종 논쟁적인 학문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으로 성차별주의를 비난하고 여성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요구하도록 가르치는” 것으로 종종 인식되곤 한다.12 실제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허구적 인물의 성별의식 속에서 곧바로 작가의 성별의식을 추출하고 단정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페미니즘 비평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여성억압의 현실을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읽어내고 함께 분노하는 것은 ‘저항하는 여성독자’로서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첫 단계이지만, 그것은 비평적 읽기의 시작일 뿐이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이 당연히 젠더 하나만은 아니며 그것이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젠더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26면)라는 리타 펠스키의 말은 이 점에서 여러모로 새겨지는 지적이다. 앞서 여성혐오 구조 담론이 보여주는 한계에서도 확인했지만 남성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여성인물의 형상화를 살필 때 흔히 작동하는 도식 중의 하나는 ‘근대적 남성 주체의 자기 정립’ 과정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여성혐오 문제와 관련하여 문학사를 다시 읽는 작업에서도 이러한 비평적 해석은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한 예로 강화길은 1960년대의 김승옥(金承鈺) 소설에 나타난 남성주체의 성장서사가 보여주는 폭력적 구도와, 철저하게 지워지는 피해자로서의 여성인물 형상화를 창작자의 입장에서 비판한다.13 이때 논의의 배경에 깔려 있는 ‘근대적 남성성’의 문제나 ‘훼손된 여성’의 표상에 대한 비판은 성별 도식의 단일한 해석을 넘어서 당대 현실과 작품이 맺는 길항관계에서 좀더 세심한 분석이 필요하다.

그동안 문학사 연구에서 김승옥 소설에 등장하는 ‘자기 세계’의 은유는 전후세대와 차별되는 근대적 남성의 성찰적 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많이 조명되어왔다. 소설의 자의식적인 남성인물은 대체로 여성인물들과의 온전한 소통에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의 누추함을 확인한다.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여성인물의 형상화 및 젠더의식을 읽어내는 초창기의 페미니즘 연구들이 아버지/남성의 부재와 어머니/여성의 대립구도에 주목했다면,14 최근 김승옥 소설에 대한 연구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주체 구성의 의미를 살피고자 한다. 정신분석학의 구도에서 남성인물의 우울증적 전략을 살펴본다거나 사회담론의 차원에서 1960년대라는 국가주의적 남성성이나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와 주체 구성의 연결관계를 짚어보려는 논의, 혹은 탈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여성인물들의 훼손된 양상의 의미를 고찰하거나 주변부의 남성성이 여성에게 혐오와 수치를 투사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15

김승옥 소설의 주요 배경으로 다루어지는 1960년대 도시 서울은 분단 이후 본격화된 개발 중심의 경제적 근대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 남성 주인공을 즐겨 다루는 그의 소설은 자본주의적 일상성을 향유하면서도 그것과 분열을 일으키는 인물의 갈등양상을 집중적으로 묘파한다. 자본주의 근대의 일상현실에 대한 섬세한 포착을 담은 김승옥 소설에서 여성인물의 존재는 종종 도시에 의해 상처받고 타락한 성으로 변모하거나 반대로 관습과 편견을 해방시키는 기호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양가성을 띤다. 김승옥 소설에서 여성인물이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자본주의 도시의 기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점이다. 어머니와 누이, 연인 등의 여성인물들은 남성인물과 마찬가지로 고향과 도시를 오가는 경계적 삶 속에서 모순적이고 균열적인 근대 도시의 일상을 고스란히 체감한다. 자본주의 근대가 해방과 억압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여성들의 삶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입증되는 것이다.

김승옥 소설에 드러나는 여성-남성의 관계 양상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일관된 틀 속에 잘 수렴되지 않는 점 역시 이러한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근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특히 여성은 가부장적 억압의 타자로만 온전히 환원되지 않는, 근대와 다층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서울, 1964년 겨울」(1965)과 더불어 현대 도시의 일상성을 섬세하게 포착한 수작으로 손꼽히는 「무진기행」(1964)은 여성인물의 형상화라는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고찰을 요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무진행을 권유한 아내, 기억 속의 어머니, 자기를 버리고 떠나간 옛 연인 희, 기차역에서 만난 미친 여자, 자살한 술집여자의 시체, 그리고 문제적 주인공 하인숙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윤희중의 여정에 동반하는 여성의 유형은 단일하지 않다. 이 중에서도 여성 주인공인 하인숙은 ‘훼손된 여성’ ‘버려지는 여성’의 표상으로 회귀되지 않는 다면적인 인물이다.

그동안 「무진기행」은 자본주의 세속도시의 기만적인 삶을 수락하고 합리화하는 지식인의 내면적 갈등을 드러내는 남성인물의 서사로 해석되어오곤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이 표현하는 남성인물의 위악과 자기혐오, 그리고 부끄러움의 감정은 여성인물과의 관련 속에서 현재적으로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윤희중이 하인숙에게 썼던 편지를 찢고 서울로 황급히 돌아오며 느끼는 ‘심한 부끄러움’의 실체는 무엇일까. 신형철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무진기행」을 재독하며 윤희중이 마지막에 느끼는 부끄러움은 죄의식이기보다는 멜랑꼴리적 우울의 변형에 가깝다고 본다.16 이러한 해석은 근대적 남성주체의 자기정립이라는 기존의 해석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주지만 남성주체의 근본적 불안과 욕망을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여성은 관계맺기의 욕망을 회피하는 남성의 전략적 실패에 의해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동경과 낭만의 대상으로 남겨진다.

상징계에 의해 억압된 무의식적 욕망 속에서 ‘무진’의 공간성을 음미하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소설 속의 하인숙은 때때로 그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을 깨고 나오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인숙도 주인공 윤희중처럼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지만 현재는 자기를 만족시킬 수 없는 지방 소도시 무진에서 권태로운 교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윤희중 못지않은 욕망과 세속적 꿈을 가진, 주변부의 삶을 살고 있지만 나름대로 소시민적인 엘리트이다. 그녀는 경제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결혼제도에 대해 실리적인 생각을 지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낭만적 사랑의 감정에 그때마다 충실한 사람처럼 보인다. 윤희중에게 ‘서울 냄새’가 난다고 말하며, 서울로 데려다달라고 말하지만, 곧 말을 바꾸어 일주일만 멋있는 연애를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소설은 만남의 엇갈림, 대화와 추측, 하인숙에게 편지를 썼다가 찢는 윤희중의 행동을 통하여 인물들의 단절 양상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핵심적인 것은 남성들 중 하인숙의 욕망과 제대로 소통하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후배 박은 속물들 사이에 함부로 둘 수 없는 대상으로 하인숙을 이상화하고 반대로 세무서장 조는 하인숙을 성적 유희의 대상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주인공 윤희중은 어떤가. 청년 시절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떠올리며 바닷가 집을 찾아가 하인숙과 정사를 치른 그는 단박에 여성의 마음을 얻은 유일한 남자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 자신의 착각일 수 있다.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그것을 찢는 윤희중의 행동은 하인숙과의 연애관계를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하는 내면적 갈등과 분열을 드러낸다.

「무진기행」의 윤희중이 느끼는 ‘심한 부끄러움’은 하인숙과의 불분명한 약속을 저버리고 서울로 귀환하는 것에서만 일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서울에서나 무진에서나 그는 갈등과 균열의 삶을 살아간다. 그의 내면에는 재력을 지닌 처가와 아내에게 휘둘리는 현실에 스스로를 매끄럽게 일치시킬 수 없는 자괴감과 동시에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무진에 올 때마다 고향 사람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흐뭇한 마음도 있지만 세무서장 조의 조롱이나 문학청년 박의 순수함 앞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떤 면에서 그 부끄러움은 무진에 갈 때마다 그가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기도 하다.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하여튼 무언가 새출발이 필요할 때”17마다 감행되던 무진행에서 그는 자신의 맨얼굴을 보는 부끄러움을 감당한다. 이때의 그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소시민적 지식인의 위악이라는 한계와 윤리적인 성찰의 가능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불편한 감정에 가깝다. 「무진기행」을 읽는 평자마다 주인공의 여행과 그 의미를 다채롭게 해석하게 되는 것도 남성주체의 자기혐오와 수치심이 반드시 현실의 적응이나 반성을 촉구하는 결말로 고정되지 않기 때문이다.18

「무진기행」은 남성인물의 부끄러움과 자기분열의 갈등을 통해 현실 저 너머에 타자로만 놓아둘 수 없는 여성의 존재를 깊이있게 각인한다. 그것은 폭력적 세계에 전면적으로 노출되어 타자화되는 여성의 모습에서 자유롭지 않은 「생명연습」(1962) 「건」(1962)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 등과 비교해서도 진전된 면모를 보여준다. 「무진기행」이 이러한 작품들의 한계를 벗어나 일정한 성과를 거둔 지점이 있다면 근대의 분열과 모순을 감당하는 입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현재화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4. 혐오를 새롭게 읽는 방식: 김애란 「가리는 손」

 

성과 인종, 계급을 가로지르며 복잡하게 얽히는 혐오의 문제를 성찰할 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성찰의 자리를 만들 수 있는가. 최근 발표된 김애란의 「가리는 손」(『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은 어머니의 불안을 통해 혐오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작품을 읽으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도식을 가장 고통스럽게 성찰하게 하는 부모의 윤리적 위치를 드러낸 최근의 여러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인종차별, 청소년폭력, 중산층 계급의식 등을 다층적으로 포착한 헤르만 코흐(Herman Koch)의 소설 『디너』(은행나무 2012)나 모성불안과 자녀의 폭력성을 치밀하게 고찰한 라이오넬 슈라이버(Lionel Shriver)의 소설 『케빈에 대하여』(알에이치코리아 2012), 콜럼바인 총격사건의 실화를 어머니의 입장에서 기록한 수 클리볼드(Sue Klebold)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 2016)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김애란의 「가리는 손」 역시 ‘어머니’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사회적 윤리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예민한 시대적 쟁점을 드러내고 있다. 소설은 모성의 갈등, 인종차별, 청소년폭력, 노인혐오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들을 엄마와 아이의 생일파티라는 일상의 순간 속에 녹여놓는다. 주인공은 대학 시절 동남아에서 온 남성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게 되었지만 결국 헤어진 채 홀로 아이를 키워온 모성이라는 구체적 현실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성찰하게 된다.

소설에서 주인공 스스로 실감하는 ‘어머니’의 자리는 어떤 것인가. 사랑했던 남자와 헤어져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된 그녀는 친정어머니의 ‘돌봄노동’ 덕분에 따뜻한 밥을 먹으며 아이를 맡겨두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들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의 감정은 그동안 어머니가 거들어주었던 ‘모성’의 역할을 단독적으로 해나가야 하는 긴장과 낯설음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상실감을 벗어나 스스로 어머니-되기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의 열다섯살 생일을 맞아 주인공이 미역국을 끓이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우럭의 뼈를 가르고 국물을 정성껏 고아내는 요리의 과정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주인공에게 해준 생일상 차림과 해산 뒷바라지의 기억을 재현하는 효과를 낳는다. 우럭 비린내와 뜨거운 국물은 “비리고, 뜨겁고, 미끌미끌한 덩이”(209면)의 감각적 구체성을 통해 남편과 헤어져 어머니와 함께 아이를 키워온 힘든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생일 저녁식사가 사실은 아들이 연루된 폭력사건의 진실을 짚어나가는 자리라는 점일 것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이와 엄마의 심리적 갈등은 내밀한 방식으로 고조되고 혐오의 문제에 다층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다문화’ ‘아빠가 동남아’라는 수군거림 속에서 아이를 키워온 주인공은 “차가움을 견디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언어를 택하는 곳”(210면)에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음을 체감해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아이가 겪은 차별의 시간은 어머니의 자리에서 온전히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편의점 앞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폭력사건을 우연히 목격한 아들 재이는 가해자들과 CCTV에 함께 찍히게 되고 그 낯선 모습을 통해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남몰래 겪었을 차별의 시간과 혹시 자신이 알지 못한 그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고 불안하게 상상한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오히려 감지하기 어려운 낯선 타자로 만나게 되는 재이의 모습은 “엄마, 나 아니에요”라는 대답 속에서 더욱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재이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로서 겪게 되는 차별과 배제에 조금씩 익숙해져왔다. 피부색을 감추기 위해 비 오는 날에도, 저녁 외출할 때도 선크림을 하얗게 바르는 재이의 모습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공동체 속에 동화되어 눈에 띄지 않으려는 욕망이 스며 있다. 재이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라는 소수자의 정체성과 더불어 십대 청소년으로서의 정체성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인형뽑기 기계에서 뽑은 라이언 인형을 가지러 폭력의 현장으로 되돌아간다거나, 폐지 줍는 노인을 폄하하는 ‘틀딱’이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짓는 재이의 무심한 행동은 십대 청소년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은밀한 폭력들을 섬세하게 직조한다.

어머니의 자리에서 주인공이 실감하는 불안의 감정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눈감아왔던 과거를 새로 들여다보게 한다. 그녀는 또래집단에서 차별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재이야, 너희 아빤 여기 일하러 오지 않았어. 공부하러 온 사람이었어. 고향집에 하인도 있었대”(220면)라는 말을 들려주며 또다른 차별의 시선으로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려 했던 자신의 허위적 행동을 돌아본다. 버는 소득을 모두 아이의 교육에 쏟아부음으로써 아이를 경쟁의 시스템에서 살아남게 하려 했던 그녀의 노력은 생계가장으로서의 어머니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었지만 그 결과는 서서히 재이와의 관계에서 단절의 층들을 만들어온 것으로 드러난다. 폭력의 현장에서 보여준 재이의 방관적 행동이 차라리 “보복이 두려워 그랬”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마음과 달리 재이는 인터넷에 떠도는 사건 동영상의 존재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소설의 제목인 ‘가리는 손’은 그런 점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의례가 그 허위의 껍질을 벗고 진실의 한 국면과 맞닿는 놀라운 상징이 된다. 타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라는 명분 속에 감추어진 불안과 폭력은, ‘4인용’으로 마련되어 있지만 모자가 단둘이 마주 앉은 식탁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모성의 불안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얽어놓은 이 소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도식으로 쉽게 분별되지 않는 혐오의 문제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이 끝까지 유지하는 서늘한 서사적 긴장은 가장 가깝고도 먼 자리로서의 어머니의 자리를 윤리적으로 실감하고 되묻는 주인공의 분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혐오를 이야기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라는 틀을 벗어나서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특히 여성혐오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다수의 비평적 논의들은 혐오하는 적대자, 그리고 혐오 대상이 되는 존재 혹은 피해자라는 대립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소지니로서의 메커니즘을 강조할 때 여성혐오는 주체의 어떤 가능성도 탐문하기 쉽지 않은 닫힌회로 속의 순환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트랜스젠더 퀴어와 바이섹슈얼의 위치에서 혐오의 양가성을 탐색하는 루인의 시도는 다른 방식의 성찰을 열어주는 듯하다.19 루인은 가해자-피해자, 혐오자-혐오 대상이라는 구도 속에서는 혐오의 문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혐오는 “분명한 어떤 감정을 야기하는 사건이 아니라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적대적 대립으로 설정해서는 결코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하고 양가적인 얼굴을 지닌 혐오의 문제는 특히 트랜스젠더 퀴어와 바이섹슈얼에게 몸에 대한 감정과 인식을 새롭게 탐문하는 계기가 된다. 이때의 혐오는 “적대관계가 구축하는 얼굴이자 형상이기도 하지만,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날카롭게 인식하는 과정”이 된다. 루인은 존재를 학살/삭제하려는 혐오자의 의도에 갇히지 않으면서 혐오로 인한 고통을 부인하지도 않는, 감정이 축적된 몸, 아카이브적인 몸을 탐문하려는 시도 속에서 혐오가 열어놓는 새로운 성찰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존재를 지우지 않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절박하게 혐오의 문제를 성찰하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혐오의 담론과 분투하는 비평의 시선을 자극하고 새로운 길을 고민하게 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1. 『문학과사회』 2016년 겨울호(기획 ‘#문단_내_성폭력’), 『문학동네』 2016년 겨울호(좌담 ‘문단 내 성폭력과 한국의 남성성’), 『21세기문학』 2016년 겨울호(좌담 ‘2016년 한국문학의 표정’), 『문예중앙』 2016년 겨울호(특집 ‘#여성혐오_창작’), 『릿터』 2호(커버스토리 ‘페미니즘’), 『더멀리』 11호(‘#문단_내_성폭력’ 증언1~5) 등이 좌담, 비평, 고발과 증언의 수기, 창작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페미니즘’을 기획 특집으로 다루었다.
  2. 90년대 이후 여성문학 비평담론의 전반적 흐름과 개인의 내면성 담론 및 여성적 글쓰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은 졸고 「비평의 질문은 어떻게 귀환하는가」(『창작과비평』 2015년 겨울호)와 심진경 「2000년대 여성문학과 여성성의 미학」(『여성과 문학의 탄생』, 자음과모음 2015) 참고.
  3. 김양선 「탈주체, 탈중심 시대의 여성문학 비평」, 『오늘의 문예비평』 2008년 봄호.
  4.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가 출현하는 과정과 운동사에 대한 간결한 기록은 다음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권김현영 손희정 박은하 이민경 『대한민국 넷페미史』, 나무연필 2017; 류진희 「금기를 넘어서는 여성들의 패러디」, 『말과활』 2016년 가을 혁신호.
  5. 양효실 「페미니즘 선언물들, 미국 래디컬 페미니즘‘들’」,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 409면.
  6. 우에노 지즈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나일등 옮김, 은행나무 2012, 14~30면.
  7. 김신현경 「미소지니를 넘어서기 위해 더 물어야 할 질문들」, 『말과활』 2016년 가을 혁신호 115~16면.
  8. 이현재는 줄리아 크리스테바 등이 설명한 바 있는 abject 개념을 여성혐오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지어 강조한다. “경계를 넘나드는, 그래서 더럽다고 여겨졌던 것이며 잡힐 수 없기에 공포스러운 것”으로서의 비체는 특정한 사회적 질서와 동일성을 강화하려는 자들에게 공포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현재 『여성혐오, 그 후』, 들녘 2016, 34~35면)
  9. 임옥희 「수치의 얼굴」, 『젠더 감정 정치』, 여이연 2016, 162~65면.
  10. 손희정 「혐오의 시대: 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 『여/성이론』 2015년 여름호 14~15면.
  11. 낸시 프레이저 「인정을 다시 생각하기」, 케빈 올슨 엮음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문현아 외 옮김, 그린비 2016, 202~20면.
  12. 리타 펠스키 『페미니즘 이후의 문학』, 이은경 옮김, 여이연 2010, 11면.
  13. 강화길 「농담」, 『문예중앙』 2017년 봄호.
  14. 황도경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남(男)-성(性)의 부재」, 이화어문학회 엮음, 『우리 문학의 여성성·남성성』, 월인 2000.
  15. 관련 논의로 차미령 「김승옥 소설의 탈식민주의적 연구」(서울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학위논문 2002); 김영찬 「김승옥 소설의 심상지리와 병리적 개인의식의 현상학」, 『비평극장의 유령들』, 창비 2006; 신형철 「여성을 여행하(지 않)는 문학: 「무진기행」의 정신분석적 읽기」, 『한국근대문학연구』 제5권 2호(2004); 김은하 「이동하는 모더니티와 난민의 감각: 김승옥 소설에 나타난 지방 출신 대학생의 도시 입사식(入社式)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제60집(2017) 참고.
  16. 신형철, 같은 글 228면.
  17. 김승옥 「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문학동네 1995, 128면.
  18. 이혜원은 「무진기행」에 나타난 ‘자연’에 대한 의식이 자연을 도구화하는 전형적인 근대적 자연관뿐 아니라 타자화된 자연에 대한 이질감과 공포, 치유의 공간, 그리고 근대적 시간에 대한 일탈과 반성 등 다양한 함의를 내장하고 있다고 본다. ‘자연’은 작품에서 형상화된 여성의 존재와 연결된다. 윤희중이 무진에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고 현실의 자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무진의 자연이 제공한 치유와 성찰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논지이다(이혜원 「「무진기행」에 나타난 자연의 양상과 의미」, 『문학과환경』15(2), 2016.6).
  19. 루인 「혐오는 무엇을 하는가」, 윤보라 외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현실문화 2015, 167~6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