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페미니즘 소설의 감정지도 그리기

 

 

이선옥 李仙玉

숙명여대 교수. 주요 논문으로 「1960년대 과학주의 담론의 신체화」 「한국적 칙릿의 특성」 「박완서 문학의 여성성」, 공저 『내 안의 여성콤플렉스7』 등이 있음. sun-oklee@hanmail.net

 

 

1. 페미니즘 리부트와 문학사기술의 쟁점

 

요즘 강의실에 민얼굴에 짧은 커트머리의 여자대학생들이 많아졌음을 확연히 느낀다. 불과 이삼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학생이 긴 생머리를 고수하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하얀 얼굴과 긴 생머리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소녀성으로 여성성을 센티멘털리즘1으로 구성하는 외모적 요소이다. 여성성 중에서도 어머니, 아내, 애인의 역할 중 애인의 역할에 대한 요소로 감성과 낭만을 몸으로 구현하는 여성에 대한 오랜 문학적 클리셰이기도 하다. 그런 소녀들이 변하고 있다. 투블록의 짧은 머리에 여성적 곡선을 강조하는 의복을 벗어던진 탈코르셋운동은 여성성의 가면을 더이상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탈코르셋’을 스스로 말하는 그녀들을 보면 최근 여성들의 변화를 체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역시도 기시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어딘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그녀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 역시 짧은 커트머리에 유니섹스 모드의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시대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비슷했다. 그러나 1980년대의 그녀들과 2018년의 그녀들은 확실히 달라졌다. 남성들과 같아지려 했던 1980년대 평등운동의 이념은 일상의 여성성을 지우고 민주화의 주체로 거듭나려 했다는 점에서 여성성의 문제가 잠복되거나 미끄러지거나 혹은 침묵되는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외모 변화는 명확히 탈코르셋, 즉 억압적 여성성을 벗어던지는 젠더적 주체의 선택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다른 지점에 서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에서 시작해 미투운동과 탈코르셋운동, 메갈리안의 미러링과 불꽃페미액션의 혜화동 시위로 이어진 여성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리부트(reboot)라는 용어로 명명된다. 영화의 시리즈물 제작에서 전작의 기존 설정 등을 갈아엎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리부트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이삼십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페미니즘운동의 자기정체성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2 최근의 페미니즘이 리부트하고 싶은 시리즈물의 전작은 무엇일까. 왜 전 시대와 연계하기보다는 갈아엎는 쪽을 택한 것일까.

이런 질문들은 페미니즘 문학이 지금 제기하는 쟁점들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치적 올바름과 미학성은 관점이론(standpoint theory)이 지니는 오랜 고민이었고, 페미니즘을 표방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문학사를 여성의 관점에서 다시보기(re-vision)하는 작업들 역시도 정치적 올바름과 미학성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을 표방하는 작품들에 대해 도식적이라고 평가하는 미학적 기준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여성문학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연구자들이 고민하는 리부트의 지점은 미학성에 대한 질문으로 보인다.3 최근 출간된 페미니즘 시각으로 문학사 다시쓰기를 시도한 책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볼 수 있다.

 

정체성정치에서 발원하지 않은 진보와 연대의 정치란 성립할 수 없으며, 다원적 성별 및 섹슈얼리티 체계와 무관한 ‘정치적 올바름’이나 ‘미학적인 것’이라는 개념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최근 ‘페미니즘 소설’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미학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규준 외에 ‘젊은 독자들의 새로운 ‘상식’과 정치적·문화적 역동’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마땅한 제안과 함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입체적 논의 또한 요청되는 이유다.4

 

이 글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정체성정치에서 발원하지 않은 어떤 연대도, 정치적 올바름도, 미학적인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서사적 시민권이나 독자들의 정치적·문화적 역동 등의 새로운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고 있지만 민족과 계급, 젠더의 복합성을 고민했던 초기의 여성문학 논의에서도 제기되었던 부분이다. 이후 집합적 주체(collective subjectivity) 개념을 거쳐 교차성(intersectionality) 논의까지 여성주체 개념에서도 복합성과 연대에 대한 문제는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의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논의의 신선함은 정체성정치를 명확히 중심에 두고 연대의 개념이나 미학적 개념이나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의 명료함 때문일 것이다.5 기존의 여성문학 논의에서는 민족민중문학의 동일성 주체에 대한 과잉 상상력에 균열을 내고 복합적 주체에 대한 상상력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면, 지금의 논의들은 명백하게 전복적 상상력을 보여주려 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점이 있다면 선명성에서 오는 단순화에 대한 우려이다. 오혜진의 글에서도 그런 우려가 보이는데, ‘이야기꾼’에 대한 재평가가 그러하다.

앞서 인용한 오혜진의 글은 천명관과 정유정의 작품에 대해 고평의 기준이 되었던 ‘이야기꾼’이라는 미적 규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간의 리얼리즘 문학론에서 강조해온 이야기꾼, 즉 장편서사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사실은 복고적인 과거로의 회귀를 욕망하는 남성중심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 때문에 소수자들에 대한 서사적 시민권이 억압되거나 무시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장편서사성에 대한 민족문학사의 미적 규준이 남성중심의 공동체에 대한 회귀적 욕망과 관련된다는 비판은 일견 공감되지만6 이야기성 자체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간의 남성중심적 미적 규준에 대한 비판은 1990년대 후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 보여주었던 선명성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호미 바바(Homi K. Bhabha)의 제국주의 모방서사(mimicry)에 대한 이론이 수용되면서 최정무 등의 이론가들이 보여주었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7은 식민지민족해방문학이 기실은 제국주의 모방서사이며, 훼손된 남성성의 회복을 위해 여성을 혐오하고 계몽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계몽자의 위치를 획득하는 남성중심적 서사임을 밝힌 바 있다. 이상의 「날개」가 보여주는 여성혐오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식민지 민족주의도 제국주의의 민족주의도 가부장적 남성동맹이라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민족주의가 성별화되고(gendered), 성애화된(sexualized) 관계를 재생산한다고 비판한다. 특히 식민지를 거치면서 훼손된 남성성을 회복하기 위해 여성에 대한 계몽자로서의 위치(식민지를 계몽하는 제국주의

  1. 우리나라에서 감정과잉과 센티멘털리즘을 소녀성으로 본격 구성하고 이것이 애인의 요소로 재구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년대로, 『여학생』이나 『여원』 등의 잡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
  2. 페미니즘 리부트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포스트페미니즘의 신자유주의적 판타지의 실패에서 출발했으며, 페미니즘 리부트의 중요한 의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공적 영역의 재편에 중심을 둔다. 이들은 포스트페미니즘의 자장 안에서 등장한 소비주체로서의 여성, 자유주의적 주체, 온라인 주체의 특징을 지니면서 87년체제의 젠더무감성을 재수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 나무연필 2017, 47~50, 87면 참조)
  3. 심진경 외 좌담 「미투시대 페미니즘 문학은 어떻게 전개되는가」, 『자음과모음』 2018년 여름호 참조. 페미니즘 문학뿐만 아니라 정치성과 미학성에 대한 고민은 1980년대 민중문학에 대한 재평가 역시 마찬가지로 보인다. 랑시에르의 감각의 분할 개념을 노동소설을 재평가하는 데 적용하기도 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장편 수기에서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투쟁 실패담의 패턴을 분석하면서 노동자들의 연대 가능성을 비통한 감정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분석하기도 한다.(배하은 「1980년대 문학의 수행성 연구: 양식과 미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논문 2017, 164~66면)
  4. 오혜진 「‘이야기꾼’의 젠더와 ‘페미니즘 리부트’」, 권보드래 외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 민음사 2018, 363면.
  5. 황정미 「젠더 관점에서 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공공 페미니즘과 정체정 정치」, 『경제와사회』 114호, 2017, 41면. 2000년대 이후 대중적 페미니즘 담론은 개인적 삶과 일상생활에서 체감하는 차별과 억압을 정치적 문제로 상승시키고 젠더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정체성 정치의 흐름을 보여준다고 분석하면서 지금까지 여성운동이 충분히 의제화하지 못한 채 이면에 남겨져 있던 부분을 정치화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6. 방영웅의 『분례기』(1967), 이문구의 『우리 동네』(1977~81) 같은 토속적인 작품들, 농촌공동체성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애수와 자본주의 비판을 담고 있다는 작품들을 다시읽기하면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젠더무감성을 확인했다.
  7. 일레인 김·최정무의 『위험한 여성』(박은미 옮김, 삼인 2001)에서 보여준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호미 바바 등의 탈식민주의 이론 중 민족국가는 불가능한 통일성에 대한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주장을 참고하고 있다(Homi K. Bhabha, Nation and Narration, Routledge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