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내가 사는 곳 ⑦
펭귄과 물범이 헤엄치고 지갑이 쓸모없는 곳
이원영 李元榮
동물행동학자,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지은 책으로 『펭귄의 여름』 등이 있음.
wonyounglee@kopri.re.kr
바람이 차가워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짐을 싼다. 쌍안경, 카메라, GPS, 노트를 가방에 담는다. 이제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 한국에서 1만 3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얼음의 땅. 남극은 내가 겨울을 사는 곳이다.
나는 극지에서 동물을 연구한다. 대학원에서는 까치가 새끼를 양육하는 행동을 연구했다. 겨울이 되면 나뭇가지를 물고 다니는 까치를 쫓으며 둥지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고 다녔다(까치는 한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번식을 시작하는 조류 중 하나다). 핫팩으로 손을 녹이며 나무에 올라가 까치 알이나 새끼를 꺼내어 번식상태를 조사하는 게 주된 일이었다. 졸업 후엔 펭귄이나 물범 같은 극지 동물의 생태를 관찰하는 일이 직업이 됐다. 추위가 꽤 익숙해졌다. 펭귄과 물범은 여름 동안 바삐 새끼를 키운다. 남극이 여름일 때 한국은 겨울이다. 이제 나는 까치가 둥지를 짓는 시기가 되면 남극으로 향한다. 남극의 동물에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지인들은 안부를 물어올 때 “지금 남극에 계세요?” 하고 묻는다(남극이라면 애초에 전화를 받지도 못했을 텐데). 나는 괜히 머쓱해져서 “아니요, 한국에 있어요. 남극은 가끔 다녀옵니다” 하고 대답한다. 실제 남극에 머무는 기간은 보통 한두달을 넘기지 않는다. 어딘가에 살았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그곳에서 진득하게 사계절을 겪으며 사람들과 긴 시간을 호흡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남극에서 월동대원으로 일년을 통째로 보낸 분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남극에 그렇게 오래 머무른 적이 없다. 한국의 겨울에 해당하는 12월쯤 떠나서 이듬해 2월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남극에서 ‘살았다’고 말하는 건 과장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약 십년째 남극을 오가면서 누적된 시간은 짧지 않다. 외부와 단절된 채로 동료들과 오롯이 하루하루를 함께 보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시간보다 훨씬 길고 압축된 듯 느껴졌고, 이제는 겨울이 되면 한국의 까치보다 남극의 펭귄과 물범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살이 에이는 눈바람을 맞으며 알을 품고 새끼에게 젖을 먹이던 녀석들. 언젠가 젠투펭귄 새끼 두마리에게 ‘겨울이’와 ‘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적이 있다.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 때부터 지켜보았는데, 여름이는 어떤 이유에선지 둥지에서 죽고 말았지만 같이 태어난 겨울이는 혼자 살아남아 둥지를 떠났다.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 눈바람을 이겨내며 두 발로 서 있던 겨울이. 지금도 잘 살아 있을까? 올 2월에 만났던 웨델물범 한마리는 눈 위에 배를 깔고 누워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바다 수온과 염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장비를 머리에 달아주려고 내가 옆에 다가가 누워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태평해 보였다. 나는 이 녀석에게 ‘코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고 남극을 떠나 한국에 온 지금도 위성신호를 통해 행동을 엿보고 있다. 코골이는 나와 처음 만났던 난센 빙붕(氷棚)으로부터 동쪽으로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섭씨 영하 1.8도, 염분 34.8퍼밀(‰)의 바다에서 600미터까지 잠수하며 남극의 겨울을 보내는 중이다.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