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평등한 세상은 평등한 과정에서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현장운동가다. 특유의 재치 있는 글쓰기로 일부 남성들의 ‘맨스플레인’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해 전세계적인 공감과 화제를 몰고 왔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둠 속의 희망』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있으며, 구겐하임 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 문학상, 마크 린턴 역사상 등을 받았다.

 

백영경(白英瓊)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문화인류학. 주요 논문으로 「지식의 정치와 새로운 인문학: ‘공공’ 연구의 확장을 위하여」 「사회과학적 개념과 실천으로서의 ‘위기’」 등과 공저로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 등이 있다.

 

 

왼쪽부터 백영경, 리베카 솔닛.  ©이영균

왼쪽부터 백영경, 리베카 솔닛. ©이영균

 

 

백영경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The Mother of All Questions, 2017, 창비 2017)의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서울을 방문하셨습니다. 이곳에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리베카 솔닛(이하 솔닛) 서울에 오게 되어 저도 기쁩니다.

 

백영경 여러 저작이 한국어로 이미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한국에서 당신이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역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 2014, 한국어판 창비 2015)와 ‘맨스플레인’(man+explain)이라는 단어를 통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한국어판 출간이 한국의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과 맞물리면서, 이 책의 대중적 인기와 페미니즘의 확산은 서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당신에 대한 관심은 우선 페미니즘과 떼어서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솔닛 그럼 거기서 시작하도록 할까요.(웃음)

 

 

페미니즘과 반핵·환경운동 사이에서

 

백영경 당신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활동을 해왔고, 작가 외에도 언론인, 활동가, 역사가 등 다양한 역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당신이 해온 활동 가운데 얼핏 페미니즘과 관련이 적어 보이는 부분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솔닛 흥미로운 말씀입니다. 여기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먼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페미니즘을 인권과, 모든 존재의 해방을 추구하는 흐름의 일부로 정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투쟁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여성혐오와 젠더불평등, 그리고 전통적인 역할로부터 여성을 해방함으로써 나아가 인권과, 모든 존재의 해방을 추구하는 투쟁으로 봐야 한다는 말이지요. 여성들 사이에는 인종적·계급적 차이가 존재하고 성적 지향의 문제도 있으며 그밖에 다른 이해관계도 있기 때문에, 사실 여성들의 투쟁과 다른 투쟁들이 분리되어 진행된 적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성차별은 내가 태어난 이래 자라온 가정에서, 살아온 세상에서, 일하는 과정에서, 사생활의 영역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내게 성차별이란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나는 미국 원주민 권리운동과 기후변화방지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만, 페미니즘은 책을 쓰기 이전에도 언제나 내 저술활동의 일부였습니다. 1985년 무렵 한 펑크록 잡지에 첫 페미니스트 기사를 썼지요.

 

백 영 경 (白英瓊)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문화인류학. 주요 논문으로 「지식의 정치와 새로운 인문학: ‘공공’ 연구의 확장을 위하여」 「사회과학적 개념과 실천으로서의 ‘위기’」 등과 공저로 『프랑켄슈타인의 일상』 『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 등이 있다.

백 영 경 (白英瓊)

백영경 그렇군요. 당신의 여러 저서를 보면 환경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반핵운동에도 여전히 관여하고 계신지요?

 

솔닛 여전히 반핵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요즘은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원자력이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발언을 할 일은 종종 있습니다. 후세에 기후변화라는 끔찍한 문제를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 원자력폐기물이라는 또다른 끔찍한 문제를 떠넘길 수는 없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아무튼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 및 폐기물에 대한 나의 예전 활동, 그리고 그와 연결된 많은 일이 여전히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친구인 카우프먼(L. A. Kauffman)이 최근 미국 좌파의 역사에 대한 책(Direct Action: Protest and the Reinvention of American Radicalism, 2017)을 출간했는데, 거기에 놀라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직운동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았던 계기가 바로 반핵운동이었다는 사실이죠. 1970년대 반핵운동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전면에 등장했고, 퀘이커파나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투쟁방식을 차용함으로써 정치적 조직운동 과정에 새로운 수단을 제공했으며, 새로운 종류의 부드러움과 평등을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전의 조직운동이 권위주의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들에 의해 지배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안겼다면 반핵운동을 계기로 조직운동은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로, 다시 말해 정치는 스스로 표방하는 가치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변화해가게 되었습니다. 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으면 그 과정도 평화적일 필요가 있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나고 싶다면 그 과정도 평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 반핵운동에서 적어도 일부는 단지 핵무기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서로 소통할 것인가, 조직운동과 정치권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그 영향은 그동안 세계 곳곳의 여러 운동을 통해 확인되어왔습니다. 카우프먼은 직접행동에 대한 당시 그러한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데, 바로 그것이 내가 『어둠 속의 희망』(Hope in the Dark, 2004, 한국어 초판 2006, 개정판 2017, 창비)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전술을 만들어낸 바로 그 운동은 1970년대에 씨브룩(Seabrook)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씨브룩 원전은 결국 지어졌으니, 그렇게 보면 “운동은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달리 보면 그들이 만들어낸 운동은 수백개의 원자력발전 계획을 폐기시켰으며, 원전과 핵무기, 핵전쟁의 위험을 부각시켰고, 많은 운동의 촉매가 되었을 뿐 아니라 이후 많은 운동의 일부가 된 테크닉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직접적으로는 작은 실패를 낳았지만, 간접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막대한 일련의 성공을 만들어낸 셈입니다. 나 역시 그 운동들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러한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만적인 꿈』(Savage Dreams, 1994)에서 다뤘던 그 반핵운동이 나를 네바다 핵실험장으로 인도했습니다. 내가 글 쓰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것도, 미국 원주민운동가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내 삶이 좋은 쪽으로 크게 바뀌었던 것도 바로 그곳에서였지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반핵운동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운동이 내게 무엇을 주었는지는 확실합니다.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히 동참한 현장운동가다. 특유의 재치 있는 글쓰기로 일부 남성들의 ‘맨스플레인’ 현상을 통렬하게 비판해 전세계적인 공감과 화제를 몰고 왔다.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어둠 속의 희망』 『멀고도 가까운』 『걷기의 인문학』 『이 폐허를 응시하라』가 있으며, 구겐하임 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 문학상, 마크 린턴 역사상 등을 받았다.

리베카 솔닛 (Rebecca Solnit)

 

백영경 최근에는 기후변화방지운동을 활발하게 해오신 것으로 아는데, 이 운동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솔닛 지난 십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해온 것이 사실입니다만, 얼마 전 드디어 국제석유대체기구(Oil Change International)에 이사로 합류하면서 이제는 뭔가 직접적이고 분명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많은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있는데요, 기후변화는 어디에서나 모든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로 압도적인 사안인데, 현재 큰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해결책이 없다”고 보는 입장이 지배적이었지만, 그새 혁명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변화 가운데는 더이상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