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전철희

전철희 田哲熙

1986년생. 한양대 국어교육학과 4학년.

kjturi@hanmail.net

 

 

 

  • 이 글의 논지는 지금까지 단행본으로 출간된 박민규의 모든 소설에 적용된다. 그중에서 특히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은 다음과 같다.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출판 2003, 이하 『삼미』), 『핑퐁』(창비 2006),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 2009, 이하 『파반느』) 및 단편집 『카스테라』(문학동네 2005)에 수록된 「카스테라」 「헤드락」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이하 「너구리」).

 

 

87년체제의 문학적 돌파

박민규론

 

 

1. 87년체제의 복권을 위하여

 

1987년 6월, 100만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호헌철폐·독재타도를 외쳤다. 자유를 갈망한 국민들의 투쟁은 군부독재를 끝장내고 폐쇄적인 ‘체육관 선거’를 직접선거제로 변화시켰다. 그래서 87년은 권위주의 국가였던 한국이 자유민주주의국가로의 체질 개선에 성공한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분기점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소련의 해체와 함께 시작된 1990년대에는 변혁적 사회과학의 퇴조로 6월항쟁의 의미에 관한 사회학적 논의가 자리할 곳이 없었다. 시간 속에 묻혀가던 6월항쟁의 의미가 재조명된 것은, 97년 IMF 구제금융을 시작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드러나고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21세기의 벽두에 들어서였다. 형식적 민주주의(정치적 자유)를 쟁취한 ‘87년체제’의 사회에 남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은 이제야 조금씩 뿌리내리고 있다.

90년대에 6월항쟁의 흔적이 사라진 것은 문학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4·19와 5·18이 당시의 작가들에게 자유에 대한 갈망, 혹은 무거운 부채를 남겼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리얼리즘이 퇴조하고 개인의 내면에 탐닉했던 90년대의 한국문단 내에서는 6월항쟁도 별다른 자취를 남길 수 없었다.

그렇게 한국문학이 6월항쟁의 의미를 거의 잊어갈 무렵이던 2003년, 박민규(朴珉奎)가 문단에 홀연히 등장했다. ‘무규칙 이종 소설가’를 자처한 그는 묵직한 사회적 문제들을 경쾌한 알레고리로 그려냈다. 많은 비평가들은 박민규의 사회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 새로운 문체와 소재에 열광했다. 그의 소설은 문학의 사회성을 중시(리얼리즘)하는 사람에게도, 문학의 새로운 징후 포착에 예민(모더니즘)한 사람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이것은 바꾸어 말하면 박민규의 작품을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의 소설을 치열한 리얼리즘으로 평가하기에는 문체의 가벼움과 모호한 결말이 미덥지 못하고, 새로운 문학의 징후를 선고하는 데 그치기에는 소설에 잠재해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이 너무나 매섭기 때문이다. 이런 박민규 소설의 이중성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그가 어떤 시각으로 작금의 사회문제를 바라보는지부터 천천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계는 다수결이다. (…) 누군가가 인기의 정상에 서는 것도, 누군가가 투신자살을 하는 것도, 누군가가 선출되고 기여를 하는 것도, 실은 다수결이다. 알고 보면 그렇다.

 

따를 당하는 것도 다수결이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치수(주인공을 괴롭히는 동급생 무리의 우두머리-인용자)가 원인의 전부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둘러싼 마흔한명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다수의,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냉풍이 다시 폭포처럼, 송풍구에서 쏟아져내렸다.

-『핑퐁』 28~29면

 

그의 눈은 다수결사회에도 남아 있는 차별을 응시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한 6월항쟁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따돌림은 존재한다. 돈(직장), 학벌, 외모 등에 대한 차별도 지난 20여년 동안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심화되어왔다. 그렇다면 민주화 이후에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는 것은 과연 무엇 때문인가?

이에 대한 박민규의 대답은 “처음엔 치수가 원인의 전부라 믿었는데” “따를 당하는 것도 다수결이다”라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런 인식의 전환점은 87년 6월이었다. 그전까지의 실질적인 독재사회에서는 모든 억압과 착취를 지배자(치수)들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지닌 ‘87년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87년 이후의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다수의 동의에 기반해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다수결사회’에서 다수가 불합리한 차별을 거부한다면 차별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다수의 현대인들은 차별을 거부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다수 속에 자신을 숨긴 채 차별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박민규의 문제제기는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는 흘러가버린 독재 시대가 아닌, 형식적 민주주의를 얻은 87년체제의 문제를 치밀하게 논증해낸다. 그는 독재시대의 리얼리즘과 구별되는 다수결시대의 새로운 리얼리즘을 창조해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이 지닌 새로운 특징들(소재, 문체, 사회문제를 보는 관점 등)을 온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박민규가 87년체제의 문제를 논증하는 작가라는 관점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2. 루저의 탄생

 

박민규의 최근작 『파반느』에는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82면)가 살아가면서 받는 “남과는 다른 취급”(268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녀의 유년시절은 친구들로부터의 격리와 시비로 얼룩져 있다. 중학교로 진학한 뒤 눈에 보이는 시비는 사라지지만 더욱 은밀해진 조소가 그 빈자리를 대신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지만 면접에서는 항상 떨어지고, 간신히 들어간 직장에서도 상사나 남자직원들이 대화조차 거부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묵묵히 일만 하는 직원이 되”(279면)기를 강요받는다. 너나할 것 없이 사회 전체가 그녀를 따돌리고 있다. 작가는 이렇게 추녀들이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고, 그에 비례하여 미녀들은 환대받는 이유를 요한의 입을 빌려 설명한다.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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