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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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빈 朴荷彬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4학년. 1994년생.

mintvin@naver.com

 

 

 

* 이 글은 최은영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문학동네 2016) 『내게 무해한 사람』(문학동네 2017)과 안희연의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의 수록작을 대상으로 한다.

 

 

이제는 남겨진 당신의 얼굴을 마주할 때

 

 

1. 얼굴의 숨겨진 표정

 

얼굴을 본다는 것은 단지 한 사람을 마주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얼굴 아래 깃든 표정을 읽는 일, 표정 아래 감추어진 무수한 시간의 행적을 좇는 일이다. 누구나 한번은 타인을 마주한 뒤 잔상처럼 남은 얼굴에 붙들려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타인의 얼굴은 표정으로만 기억되지 않고 시공간을 압도하는 하나의 영역으로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며 언제고 “불쑥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안희연 「백색 공간」 10면)와 불현듯 우리 앞에 또 하나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한참이나 서 있던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의 얼굴이 더 많은 표정을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때의 세계가 흰 종이같이 비어져 있는 것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으로 채워진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은영의 작품 속 인물들은 어떤 오해나 사건 앞에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묻지 않고 얼굴을 본다. 이들에게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미끄러지면서/계속해서 미끄러지면서” 끊임없이 타인의 “내부로 들어”(안희연 「백색 공간」 64면)가기 위한 시도다. 최은영의 소설에서 종종 발견되는 얼굴은 안희연의 시에서도 “그리다 만 얼굴”(「백색 공간」 10면)로 더 많은 표정들을 지니고 우리와 마주치게 된다. 얼굴과의 만남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물을 만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행위다.1 타자는 나로부터 완전한 초월성과 외재성을 지니고 있기에 친밀한 관계라 하더라도 결코 서로에게 용해되지 않는다. 타자의 얼굴은 그와 마주한 이만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과 결속되어 있는 무한한 형태로 현현되며 우리의 삶에 개입한다. 상처받을 가능성, 외부적인 힘에 대한 저항의 불가능성을 내포한 타인의 얼굴은 그 자체로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에 우리는 그의 표정을 헤아리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때껏 많은 얼굴을 마주하고 지내왔으며, 많은 얼굴을 한곳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일을 겪기도 했다. 바다 아래로 세월호가, 수백명의 목소리가 허망하게 잠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슬픔과 비통한 마음을 안고 광장으로 나가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그후로도 더 나은 세계를 다시 꿈꿀 수 있길 바라며 염원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최은영 「손길」)므로 부디 이 빛이 더 잘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광장에서 마주한 이들의 얼굴에 슬픔이 깃들 때, 우리는 그 슬픈 얼굴을 보느라 그 안에서 서로 미세하게 다른 표정들을 하고 있음을 살펴보지 못했다.

이들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은 ‘연대’라는 긍정적인 가치에 집중해,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는 것에 가장 큰 의의를 둔 해석들로 논의되어왔다. 물론 끝내 함께하여 어둠을 밝혀낸 연대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스름이 어느 정도 걷히고 난 이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것은 모임이 아닌, 모여 있는 동안의 무수한 고투와 그 사이로 끼어든 “몸을 벗듯이 색색의 모래들이 흘러내리는 벽”이 아닐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이들 사이로 생겨난 벽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해보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나의 두 손으로 너의 얼굴을 가려보”(안희연 「파트너」)는 것뿐이다. 이렇게 감춘 얼굴은 아직 짓지 않은 타인의 무수한 표정들을 헤아려보며 “몸이 바닥 쪽으로 기울 때 한꺼번에 쏟아지”기를 자처해 “바닥으로부터 다시 몸을 일으키는 동작”을 통해 타인에게 무해한 방식으로 “나의 최대치가 되어”(안희연 「러시안룰렛」)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무해한 방식은 자칫 타인에 대한 거리감을 지레 형성하여, 또 하나의 벽을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안희연과 최은영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벽’의 현전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벽에 감춰진 겹겹의 얼굴을 살펴보아야 할 때이다.

 

 

2. 사라졌다고 믿는, 사라지지 않는 벽

 

안희연과 최은영의 작품에서 벽은 타인의 얼굴이 된다. 다시 말하자. 타인의 얼굴은 종종 가닿을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벽의 모습으로 인물 앞에,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는 모자를 벗는 척하면서 얼굴을 벗고

벽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 앞에 하나의 벽이 놓인다

 

(…)

 

우리를 가로막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끝없이 미끄러지는 음계를 통해서

나는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성대 잘린 개들을 위한 발성법

빛이 한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안희연 「트릭스터」 부분

 

타인이 얼굴을 벗을 때,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생겨나는 것은 벽이다. 벽이 있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한 뒤에 그들 앞에 생겨나는 “하나의 벽”의 배치에 주목해야 한다. 안희연의 시에서는 벽의 이미지가 빈번하게 삽입된다. 예컨대 「벽」에서는 벽이 계단을 감추고 있으며 「포르말린」에서는 춤을 추고 있는 우리의 상(相)이 벽에 비쳐 목격된다. 위의 시편에서 안희연은 또다시 “벽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벽이 아닌 벽의 ‘시작’이다. 벽은 단지 무언가를 가로막는 대상이 아니라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동반한다. 비가시화된 영역인 타자와 나의 간격은 주체의 인지를 통해서만 이미지로서 가시화되어 나타난다. 벽 너머에 있는 타인(의 얼굴)은 그 살갗 자체로 나를 “가로막은 것”이자 결코 주체에게 종속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다.

두 작가의 첫 작품집 해설은 공통적으로 서로가 한데 있어 생겨난 연대와 그 안에서 형성된 윤리적 실현(가능성)에 주목했다. 안희연 시집 해설(김수이)의 경우 수평적 구도의 ‘옆’의 존재론에 주목하면서 이들이 생산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기존 세계의 부정적인 운동성까지도 내포하고 있으나, 비록 실패할지언정 연대의 함께하고 있음 그 자체로서 의의와 가치를 지닌다고 밝힌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 무엇이 자라나고 있는지를 미처 확인해보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안희연과 최은영의 작품 속 화자 및 인물들은 자신의 옆에 있는 이들에게서, 타인의 얼굴에서 벽을 발견할 줄 아는 이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 역시 누군가에게 타인이기에 자신의 얼굴 또한 벽이 될 수 있음을 안다. 비가시화된 연대의 틈을 보여주는 최은영의 서사는 안희연의 ‘벽’의 이미지와 함께 더욱 첨예한 ‘연대’의 형상으로 그려질 수 있기에 둘의 작품은 동시대 안에서 같은 주제를 공유하며, 화소를 상호 보완해준다.

최은영이 그리는 인물들은 행위 안에서 나와 타자 사이에 벽 같은 것이 놓여 있음을 감지한다. 이토록 민감한 시선을 가진 인물의 등장은 등단작 「쇼코의 미소」(이하 『쇼코의 미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소유는 쇼코와 자매학교 행사를 통해 만나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며 그의 얼굴에서 꾸며낸 부끄러움과 상대를 편하게 해주려는 포즈를 발견한다. 이후 소유는 쇼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동네의 천변을 걷다 팔짱을 끼기도 하는데, 이는 관계에서 형성된 유대감과 친밀감에 서로 거리가 좁아졌다고 믿으며, 일시적으로 상대방의 일부를 장악하고 향유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는 이가 취하는 표정이자 자세다.

 

여름

우리는 아름답게 눈이 멀고

그제야 숲은 자신의 호주머니 속에서

눈부신 정원을 꺼내주었던 것입니다

 

색색의 꽃들 아름다워 손대면

검게 굳어버리는 곳

 

아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멀찌감치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니 거기서 무얼 하고 계세요 왜 그런

굴러떨어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계세요

 

무심코 둘러보았는데

 

모두들

자신을 꼭 닮은 돌 하나를

말없이 닦고 있었습니다

—안희연 「돌의 정원」 부분

 

얼굴이 벽임을 아는 인물들에게도 “아름답게 눈이 멀”었다고 믿으며 타인이 내게 “눈부신 정원”과도 같은 세계를 꺼내 보였다는 착각의 순간은 예외 없이 일어난다. 이는 종종 타인을 이해했다는 인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얼굴은 이해되거나 어떠한 인식의 매개가 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빛’이 있을 때 우리의 시야에 들어와 일시적인 현전으로 포착될 뿐이다. 얼굴은 무방비한 상태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나, 외부로부터 빛이 투사되기 전에도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이미 헤아릴 수 없는 무한과 초월을 내재하고 있다.2

쇼코는 이후 소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14면)으로는 단정 지을 수 없는 보다 다층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펜팔 중에 돌연 연락이 끊기고 나서 몇년 뒤 소유는 일본으로 찾아가 오랜만에 직접 쇼코를 만나고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는다. 소유는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26면)여 쇼코의 할아버지 간병과 진학 문제를 건드리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27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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