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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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정 張銀庭

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riyunion@naver.com

 

 

 

기하학적 아우라의 착란

김행숙·이근화·하재연의 시들

 

 

1. 시적 흐름의 판단중지

 

우리는 최근에‘흩날리는 시’들의 목록을 갖게 되었다.1 이 시들에 대해 자아의 해체와 다양성, 환상의 분출, 분열증적 시 구조 등의 관점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 논의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서정시’와‘젊은 시인들의 시’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대립구도의 논의가 도출하는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다. 이 흩날리는 시들은 기존의 서정시가 지닌 여러 요소들을 전복하고 해체한다는 것이다.

권혁웅(權赫雄)은 김행숙(金杏淑)의 시가 “정확히 감각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2고 했다. 이장욱(李章旭)은 이근화(李謹華)를 두고 “무언가를 말한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다르게 느낀다”3고 썼다. 생각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논리를 통해 무언가를 다르게 느낀다는 것은‘이데아의 전제’와‘코기토의 전제’를 전복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데아와 코기토로 일컬어지는‘본질’에 대한 거부는 이들의 시 구조 자체를 새롭게 배치시켰다. 신형철(申亨澈)은 이 낯선 구조들에 집중한다. “시적 소실점은 근원적으로 진리가 발생하는 장소다. 그래서 시적 소실점이 흔들리거나 사라질 때 가장 중요한 현상은 세계의 진리를 파악하고 전달하겠다는 의지의 소멸이다.” 그는 서정적 원근법을 벗어던진 “이들의 시에서 시적 소실점은 없거나 최소한으로 약화되어 있다”4고 말한다. 시적 소실점이 사라지는 자리에서는 신념과 의지의 뜨거움이 사라지고 나른함이 그것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흩날리는 시’들의 해체와 전복을 단지 기존 서정시들에 국한된 반발로만 본다면 그것은 너무 협소한 규정이다. 서정시와 젊은 시인들의 시의 대립구도는 전통 예술작품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대립구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예술작품은 관람자에게 근원적인 형태의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그 무엇을 투영하고 있어야 했다. 그 무엇을 투영한 작품들은 교감을 가능하게 하므로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몰입을 제공하곤 했다. 이런 교감을 가능하게 하는 작품들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아우라는 무의지적 기억에 자리잡은 어떤 지각대상의 주위에 모여드는 연상작용이다. 작품을 둘러싼 아우라의 이 신성한 빛을 단 한번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그 빛 속에서 관객들은 무한한 연상작용을 통해 작품과의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잊을 수 없는 지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서정시는 대상을 끊임없이 낯설게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이 낯설음은 잊혀져온 은폐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아무리 사물을 낯설게 보더라도 그 사물과의‘교감’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에 서정시는 여전히 전통 예술작품에 속한다. 주체가 대상을 응시하고, 대상이 일상성을 벗어던지고 내밀한 본질이 드러난 상태로 주체를 바라볼 때, 대상과 주체 사이가 이어지면서 세계의‘전체’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우리가 서정시에서 느꼈던 기쁨은 일종의‘합일’체험이었다.

벤야민(W.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복제기술의 두가지 표현양상인 예술작품의 복제와 영화예술이 이런 전통적 형태의 예술에 각각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피고 있다. 복제기술은 사물을 언제나 현재화한다. 이러한 현재화는 사물의 역사성을 제거함으로써 대상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와 현존성까지도 제거해버린다. 복제사진이 바로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그림에서 존재하던 일회적·지속적 성격은 사진에서 일시적·반복적 성격으로 대체된다. 즉 “대상을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로부터 떼어내는 일, 다시 말해 분위기를 파괴하는 일은 현대의 지각작용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5 흩날리는 시들은 바로 이 아우라와 현존성이 벌어지는 틈에서 시작한다.

 

두 명의 아이가 손바닥을 맞추며 놀고 있을 때

세번째 아이는

 

담장에 장미넝쿨이

장미화, 장미화, 장미화를 팡 팡 터뜨렸을 때

 

두 명의 아이가 줄을 잡고 돌리며 들어와, 우리 집에 들어와, 우리들은 재밌다는 듯이 부를 때

세번째 아이가 줄을 넘을 때

네번째 아이는

 

너희 집은 어디니? 어른이 물을 때

다섯번째 아이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요

 

이 구슬은 누가 흘리고 갔을까?

구슬을 굴리면 색깔이 바뀔 때

두 명의 아이가

세번째 아이를 골목이 사라질 때까지 쫓아갈 때

 

골목이 사라진 후에

두 명의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마주 보았을 때

-김행숙 「두 명의 아이」(『이별의 능력』) 전문

 

이 시는 두 아이가 손바닥을 맞추며 노는 것으로 시작해서 팔을 늘어뜨리고 마주 보는 것으로 끝난다. 그동안에 세번째 아이와 줄넘기를 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 대해 어른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두 아이는 세번째 아이를 “골목이 사라질 때까지” 쫓아가는데, 놀랍게도 정말 골목이 사라져버린다. 우연히 공간을 잃어버린 두 아이는 손바닥을 맞추며 놀던‘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둘은 “이상하다는 듯이” 서로를 우두커니 보게 되는 것이다. 손바닥을 맞추며 놀던‘연결’이 끊어진 채로 두 아이는 각자

  1. 이 글에서 주로 다루는 시집은 다음과 같다. 김행숙 『사춘기』, 문학과지성사 2003; 김행숙 『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사 2007; 이근화 『칸트의 동물원』, 민음사 2006; 하재연 『라디오 데이즈』, 문학과지성사 2006.
  2. 권혁웅 「감각의 논리」,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24면.
  3. 『칸트의 동물원』에 실린 이장욱의 추천사.
  4. 신형철 「미니마 퍼스펙티비아minima perspectivia」, 『문학과사회』 2007년 가을호 285면.
  5.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2008, 2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