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문학에 대한, 타자를 향한 변론

박민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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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호 康棟皓

연세대 경제학과 4. 1984년생. finhir@naver.com

 

 

 

1. 문학의 위기에 서서 박민규를 부르다

 

이 땅에서도 문학이 실종되었다는 괴소문이 횡행할 무렵 터져나온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의 한국문학에 대한 뇌사선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학의 힘겨운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역시나’라는 절망의 탄식을 뱉어내게 하였다.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근대문학의 종언』, 도서출판 b 2006, 86면)는다는 저명한 평론가의 체념적인 말 한마디가 그렇게나 큰 상실감을 안긴 이유는 어쩌면 이미 시대적 징후로 스며나오기 시작한 죽음의 징조를 애써 감추려던 이들의 자기기만과 그로 인한 무기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증상들은 한사람의 독자로서 요즘을 반추해볼 때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베스트쎌러 목록의 수위를 차지하는 작품들이 지닌 가볍고 피상적인 주제들, 그리고 유희 수준을 넘지 못하는 상상력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현실화하고 있다. 유명한 시의 제목을 빌리자면 실로 ‘쉽게 씌어진 시’와 ‘흔해빠진 독서’만이 남아버린 실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해 보이는 카라따니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내가 쉽사리 문학에 대한 고루한 기대를 거두지 않는 이유는 이제껏 문학이 점유해온 어떤 특수한 위치에 대한 향수와 냉혹한 현실에 대한 인식 사이에서 나 스스로도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나는 박민규(朴珉奎)를 이야기하려 한다. 왜 하필 박민규인가. 첫째는 그가 대중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는 작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서사가 기대고 있는 모더니즘적 비판의식이 카라따니 코오진이 문학에 기대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박민규의 작품이 카라따니의 흉흉한 선고를 전복할 만큼 완벽한 대답이 될 수도 없고, 박민규 스스로도 한국문학의 부활이라는 어쩌면 숭고하기까지 한 사명을 띠고 글을 쓰는 것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경쾌하게 때로는 힘겹게 써내려온 글들에 녹아 있는 현실 대항의 일관된 몸부림에서 문학이 뇌사상태에서 벌이고 있는 힘겨운 내적 투쟁을 읽는 것이 지나친 오독은 아니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 증거를 포착하기 위한 박민규 소설에 대한 접근법은 어떠해야 할까. 최근 대중이 ‘소설’가 박민규에게 보낸 열광에 가까운 관심의 배경에는 우선 쉽고도 개성적인 문체에서 오는 신선함과 전복성이 자리잡고 있다. 기존의 ‘리얼리즘’ 소설이 지닌 일상성의 엄숙함이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이 독자로 하여금 생각의 속도를 늦추게 한 것에 비추어볼 때 박민규의 텍스트가 지닌 문체의 개성과 서사의 속도는 확실히 지금의 대중에게 여러모로 매력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무규칙적 상상력이 지니는 키치적 감수성은 만화 주인공, 프로야구단, 대왕오징어, 야쿠르트 아줌마 같은 익숙한 캐릭터들을 소설공간으로 호출하였는데, 이런 점 역시 독자들에게는 엉뚱하면서도 엽기적인 코드의 일환으로서 퍽 인상적인 것이다. 게다가 기인(奇人)처럼 보이는 그의 외모와 삶의 이력마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얻게 된 소설‘’로서의 존재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박민규의 참신성에만 과잉 집중된 관심은 역으로 박민규 문학을 제대로 평가하는 데에 장애로 작용한다. 그의 문학이 일관되게 발화하는 주제의식이 깊이 논의되기보다는, 일반 독자층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평단에서도 그의 문학 혹은 작가적 이력이 지니는 무규칙성이라는 신선함에 촛점이 맞추어지는 듯한 인상이다. 이는 또 박민규의 작품 스스로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박민규가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박민규도 그것에 호응을 하면서 그의 도발적인 문체와 엽기적인 소재 선택은 계속되었다. 기존 본격문학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이같은 실험적 글쓰기는 단편집 『카스테라』(문학동네 2005)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는데, 이는 외계인, 야쿠르트 아줌마, 날 수 있는 오리배, 모든 것을 삼키는 냉장고 등의 소재들이 지닌 실험적 면모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더불어 그의 언어가 사고의 전복과 더불어 형식 혹은 이미지의 전복을 통한 ‘낯설게 하기’ 효과에 상당부분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낯설음을 경험하게 하는 소재와 서사방식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그 효과는 체감된다. 그러므로 낯설음을 형식적 차원에서만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문학이 소재의 문제에만 골몰하게 된다면 그 수명은 길지 않을 것이다. 같은 형식이 계속될수록 생동하던 언어의 생명력이 화석화됨으로써 언어는 공허한 기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민규 소설을 형식상의 차이나 신선함만으로 규정할 때 그것이 지닌 한계는 명백해진다. 아무리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해체와 회의주의가 지적 유행이 되었더라도 문학마저 표류하는 기표로 받아들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문학이 문학일 수 있는 기반은 바로 그것이 담고 있는 통렬한 자기반성적 사유와 자기호명적인 문제의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민규의 문학이 더 멀리 나아가고 오래 읽히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들에 담긴 일관된 주제의식을 잡아내어 비평적 사유의 지평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평에서 펼쳐지는 박민규만의 몸부림을 통해 그의 문학이 여전히 모더니즘적 현실의 모순을 전복하고자 하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음을 밝혀내야 한다. 이러한 소망이 독자의 눈앞에 현현(顯現)할 때 그리고 이 소망의 서사가 더 멀리 나아갈 가능성이 엿보일 때, 박민규 소설에 대한 온당한 평가와 함께 문학의 죽음에 대한 대답이 어렴풋하게나마 마련될 것이다.

 

 

2. ‘포스트모던’ 타임의 ‘포스트’ 「모던 타임즈」

 

근대자본주의가 태동한 이후로 자본주의를 비난하지 않은 문학의 시대가 있었을까. 자본주의로 인해 소멸해가는 인간성을 비판한 수많은 글쓰기는, 때로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을 고발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발기를 촉구했으며,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도피로 나아가기도 했다. 이 모든 경향이 문학이라는 영역 안에서 서사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카라따니의 말대로 근대 들어 윤리적 소명의 호출에 문학이 적극적으로 응답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적 상상력은 ‘공공의 상상력’으로 탈바꿈하여 현실의 모순에 대항적 포즈를 취함으로써, 플라톤적 언표를 빌리자면 이데아를 가리키는 서사적 의무를 안게 되는 것이다.

적어도 현실의 부조리함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박민규의 소설은 근대문학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의 머릿속에 각인된 일관된 대항체로서의 세계는 자본주의 질서와 그로 인해 파생된 약육강식의 모습이다. 『지구영웅전설』에서는 그것을 슈퍼맨과 배트맨 등의 ‘마운틴의 체계’로 상징하였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는 프로의 세계로 대변되는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의 프랜차이즈”(244면)가 서사의 안티테제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단편집 『카스테라』는 자본주의 내에서 소외받고 있는 개인들의 소소한 삶을 더욱 초현실적이고 자아분열적인 서사를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1

그렇다면 박민규의 눈에 비친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그가 인식한 세계는 흡사 ‘헐크 호건’처럼 우리에게 어느새 “와락, 헤드락을 걸어”(「헤드락」 248면)오기도 하는데, 그때 우리는 호건의 근육이 가하는 거대한 압박감에 “픕쁩 쁩 브쁩에 가까운 소리”(250면)만 낼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현존 앞으로 다가오는 방식을 우회적으로 그리고 그만의 독창적인 유머로 표현한 것인데, 급작스러운 호건의 등장에서 발현되는 비실재감은 우리의 실존의 부조리성을 압축하고 있다.

「너구리」는 자본주의로의 편입과정을 좀더 상세하고 친절한 방식으로 풀어놓는다. “닥쳐 개새끼야!”(50면)라는 전복적인 말 한마디로 일약 스타 로커가 되어버린 주인공이 어느새 ‘매사에 긍정적’인 인간이 되어간다는 서사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다. 그래서 인류는 이 자본의 관계망 속에서 적응하게 되는데, 그들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라는 “경제학의 아버지가 남긴 이 수려한 문장”(「야쿠르트 아줌마」 153면)에 안심하는 존재들로 탈바꿈한다. 그리하여 시장의

  1. 이 글은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이하 『지구』)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신문사 2003, 이하 『삼미』) 『핑퐁』(창비 2006) 이렇게 3편의 장편소설과 함께, 단편집 『카스테라』에 수록된 6편의 단편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이하 「너구리」)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이하 「기린」) 「아, 하세요 펠리컨」(이하 「펠리컨」) 「야쿠르트 아줌마」 「헤드락」 「갑을고시원 체류기」(이하 「고시원」)을 대상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