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평화의 시각에서 다시 보는 일본의  ‘근세화’

탈아적 역사이해 비판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일본 토오꾜오(東京)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 역임. 주요 저서로 『양반』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 등이 있음. miyajima@hanmir.com

 

 


☐ 창비 독자를 위해서

 

이 글은 일본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잡지 중 하나인 역사학연구회의 『역사학연구(歷史學硏究)』 2006년 11월호에 게재된 졸고 「東アジア世界における日本の‘近世化’-日本史硏究批判」을 필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다. 내용은 원래의 논문과 똑같은데 독자의 편의를 생각해서 일본사 관련 용어 등 일부에 설명을 보충했다.

이 글의 취지는 일본 국내의 일본사 연구를 비판하기 위해 그 전형적인 예인 일본의‘근세화’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것이다.1 특히 그‘탈아(脫亞)’적인 일본사 이해에 촛점을 맞춰서 비판했는데, 한국 독자를 위해서는 약간의 부연이 필요하겠다.

원래의 논문은 게재된 잡지의 성격상, 일본 독자를 대상으로 일본에서의 일본사 연구를 비판한 것이므로 한국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이 글의 논의가 한국에서의 한국사 연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여기서 비판한 문제점 중 몇가지는 한국에서의 한국사 연구에도 해당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두가지 점에 대해서 말해두고 싶다.

하나는‘봉건제’의 문제이다. 일본사 연구에서의‘봉건제’론은 이 글에서도 지적한 대로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등장한 담론으로, 당초부터 극히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강했는데, 주지하듯이 한국사 연구에서도 한국사의 특정 시대를‘봉건제’시대라고 파악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것은 일제시대에 일본인 연구자가 주장하던 한국사 이해에서의 정체성론의 일종이랄 수 있는‘봉건제부재론’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것으로서, 1930년대 백남운(白南雲)의 연구 등이 그 선구적인 예이다.2

한국사에서의‘봉건제부재론’을 가장 먼저 내놓은 후꾸다 토꾸조오(福田德三)는‘봉건제’의 부재뿐만 아니라, 조선사회를 전(前)‘봉건제’사회(〓고대사회)라고 주장했으므로, 이것을 비판하기 위해 백남운이‘봉건제’시대의 존재를 제기한 것이었다. 따라서 백남운의 주장은 연구사적으로는 의미있는 것이었지만, 현시점에서 보면 일본‘봉건제’론과 같은 입장, 즉 유럽의 역사발전 과정을 모델로 일본이나 한국의 역사를 파악하려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에서 유럽적인 의미의 봉건제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과 한국사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유럽의 봉건제는 고대제국이 붕괴하는 가운데 출현한 아주 특이한 체제이자 분열적인 체제였다. 그에 비해 중국에서도 후한 이후 분권적인 경향이 계속되었지만 수·당에서부터 송에 걸쳐 과거제도 확립과 그에 따른 지식인 관료에 의한 통치체제의 실현, 문관 우위체제의 실현 등 수많은 혁신이 추진됨으로써 분권화의 극복이 가능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체제는 유럽의 봉건제보다 수립되기 훨씬 힘든, 그러나 일단 확립되면 훨씬 안정적인 체제였다.3 고려왕조와 조선왕조, 특히 후자는 이러한 중국의 국제(國制)혁신에서 많은 것을 배워 여러 곤란을 극복하면서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런 중국이나 한국의 역사를 유럽을 기준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전도된 방법으로서, 전형적인 유럽중심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사나 한국사에서 유럽적인 봉건제시대를 설정하려는 시도의 최대 문제점은 그렇게 함으로써 일본사나 한국사의 개성적 전개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현상이 유교, 특히 주자학에 대한 부정적 평가이며, 주자학 이념에 입각한 국가체제에 대한 관심의 저조함이다. 이러한 유교에 대한 부정적 평가, 즉‘유교망국론’이라 할 수 있는 관점이 일본사 연구에서보다 한국사 연구에서 더욱 심각하다고 여겨지므로 이 점을 두번째로 지적해두고 싶다.

조선왕조가 주자학 이념을 바탕으로 한 국가였기 때문에‘서양의 충격’에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인식은 일본인이 한국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주장하기 시작한 담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도 일본 학계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 일본은 유교의 영향이 적었기 때문에 재빨리 근대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교과서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현저하다. 이는 이 글에서도 지적한 대로 일본사 연구에서‘탈아’적 성격이 단적으로 표출된 것인데, 문제는 한국의 연구에서도 같은 경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에서‘봉건제’의 존재를 주장하는 연구도,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에 선 연구도 일찍이 일본인 연구자가 주장하던 한국사상(韓國史像)을 부정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지만, 그 방법 자체는 일본인에 의한 일본사 연구와 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점에 관해 자각하지 않는 한, 일본인 연구자가 주장하던 한국사상을 진정한 의미에서 극복하는 일은 어렵다고 보인다. (2007년 5월, 미야지마 히로시)


 

 

1. 들어가며

 

『역사학연구』 편집위원회가 이번 특집에 관한 기고의뢰문과 특집의 취지문을 보내왔다. 취지문의 내용을 보면서 역사학연구회도 크게 바뀌었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이 특집의 목적으로 “이 시기(16~18세기) 각 지역의 질서 형성의 다양한 모습에서 어떠한 공통의‘근세성’을 간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국제(國制), 시장, 풍속론 등 다양한 시점에서 문제제기”를 할 것이 명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구사적으로 본 특집의 위치 설정은 기술되어 있지만, 왜 지금 이러한 특집을 기획하는지, 오늘의 일본과 세계의 상황에서 일본의‘근세화’를 생각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현재 진행중인 이른바 지구화를 응시하면서 그 역사적 기점을 근대의 출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한층 더 거슬러올라가 탐구하려는 의도가 근저에 흐르고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는 있다. 따라서 이번 특집의 현재적 의의가 전혀 의식되지 않았다고 하면 과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전후체제(戰後體制)가 큰 위기, 전환점을 맞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것은 대단히 기이하게 느껴졌다.

전후체제의 기초가 된 평화의 이념이 위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오늘날의 가장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요즈음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 헌법이 구가(謳歌)하고 있는 평화라는 이념을 지키려는 결의가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 매우 의아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후체제 혹은 전후민주주의가 왜 현재 위기적 상황에 처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각도의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역사 연구의 입장에서는 전후의 시작에 즈음해서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평화의 이념을 내세우는 데 공감했던 경위 그 자체에 포함되어 있던 다음 두가지 문제점을 재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헌법이 추구하고 있는 평화이념은 주로 2차대전 혹은 15년전쟁(1931년‘만주사변’에서 2차대전 종결까지의 전쟁)에 대한 반성에 의거한 것이었지,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근대사 전체에 대한 반성에 입각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한층 더 거슬러올라가서‘근세’일본의 체제를 평화라는 관점에서 묻는 것은 의식조차 되지 않았다.

그 일례로 작년에 공표된 한일 양국간 역사 공동연구의 결과를 들 수 있다. 이 공동연구는 교과서문제를 계기로 발족한 것이었는데, 일본의 중세·근세를 대상으로 한 제2분과에서는 당연하게도 토요또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임진왜란)이 큰 테마가 되었다. 회의록을 보면, 한국측 연구자가 왜 이러한 전쟁을 토요또미가 일으켰는지 묻자 일본측 연구자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4 토요또미의 개인적인 성격 문제 혹은 전국시대의 통일과정 자체가 가지고 있던 필연적인 결과다, 무역의 이익을 요구했던 것이다 등 지금까지의 견해가 소개되고 있지만 일본에서의 무사의 등장과 무사에 의한 통일정권의 성립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까지 거슬러올라가 이 전쟁을 파악하는 논의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이 공동연구에 참가한 일본측 연구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본 내의 일본사 연구 전체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평화라는 관점에서 일본의‘근세화’문제를 생각하는 현재적인 의의 중 하나는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전후 평화이념의 또다른 문제는 앞서 말한 것과도 깊게 관련되겠지만, 2차대전을 연합국, 특히 미국과 영국에 대한‘패전’이라고 파악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침략전쟁이라는 측면, 일본의 침략자로서의 측면에 대한 반성이 결정적으로 미약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스스로를 서구 열강과 같은 입장에 놓고 자신들이 아시아를‘문명화’할 주체하고 인식하는 데서 기인한 것인데, 그러한 인식을 지탱하는 것이 일본사에 대한‘탈아(脫亞)’적인 역사인식이다. 따라서 일본의‘근세화’를 동아시아세계 속에서 검토하는 작업은 현재도 뿌리깊이 존재하는‘탈아’적‘근세사’이해를 비판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현재의 일본정부가 대미 일변도의 외교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것을 볼 때,‘탈아’의 문제는 낡았으면서도 새로운 문제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2. 현재도 계속되는 ‘탈아’적 일본사 이해와 ‘근세사’ 연구

 

일본사회의 역사적 전개를 중국이나 한국과의 이질성에 촛점을 맞추어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유럽과의 유사성에서 파악하려고 하는 일본사 이해의‘탈아’적 경향은 아주 뿌리깊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온 것이 일본‘봉건제’론이다. 일본‘봉건제’론이란, 일본의 역사에서 유럽적인‘봉건제’시대를 설정하면서‘봉건제’의 유무를 중국이나 한국과의 이질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함과 동시에,‘봉건제’시대가 존재했기 때문에 일본의‘근대화’가 가능했다고 하는 역사인식을 가리킨다.

이러한 일본‘봉건제’론에 대해 나는 이미 다른 글에서 비판한 적이 있다.5 즉 일본‘봉건제’론은 러일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등장한 담론이며, 처음부터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강했다는 점, 그리고 일본사 연구에서‘봉건제’론의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시모다 쇼오(石母田正)의 『중세적 세계의 형성』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비교는 대단히 문제가 많다는 것, 전후에 접어들어 이시모다는 중국에 대한 인식의 잘못을 자기비판했지만 그 비판은 표면적인 것이었지 일본사 이해에 대한 자기비판은 아니었다는 것 등이 졸고의 주된 내용이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일본‘봉건제’론에 대해 재차 비판하지는 않겠지만,‘봉건제’론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일본사 이해의‘탈아’적 경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그 전형적인 예로 아미노 요시히꼬(網野善彦)의 담론을 검토하고 싶다.

주지하다시피, 아미노는 198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이 가장 큰 일본사 연구자이다. 아미노는 자기 연구의

  1. 근세라는 말은 원래 일본에서 근대와 같은 의미로, 즉 현재와 같은 시대라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는데, 중세 및 근대와 구별되는 하나의 시대로서 근세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러일전쟁 시기부터이다. 16세기 토요또미정권 성립 이후를 근세로 보는 것이 현재의 주류적 견해인데, 근세를 근대와 전혀 다른 반동적 시대로 보는 이해와 근대를 준비한 긍정적 시대로 보는 이해가 대립적으로 존재해왔다. 최근에는 후자의 이해, 즉 근세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좌파적 연구자도‘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참가자도 이러한 점에서는 같은 입장에 있다.
  2. 백남운의 연구는 봉건제 문제만이 아니라 실학사상의 문제, 자본주의 맹아의 문제 등 여러 면에서 해방후 북한과 한국의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日本史·朝鮮史硏究における‘封建制’論」, 宮嶋·金容德編 『近代交流史と相互認識 II』, 慶應義塾大學出版會 2005 참조.
  3. 유럽의 봉건제가 고대제국의 붕괴과정에서 나타난 열악한 체제였다는 점, 중국과 같이 관료제에 의해 그 붕괴과정에 대응하는 것이 훨씬 어려웠다는 점에 관해서는,J. R. 힉스 지음, 김재훈 옮김 『경제사 이론』(새날 1998), 33~38면 참조
  4.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엮음 『韓日歷史共同硏究報告書』 제2분과 편(한일문화교류기금 2005), 특히 요네따니 히또시(米谷均)의 「조선침략 전야의 일본 정세」를 둘러싼 토론부분 참조.
  5. 졸고 「日本における‘國史’の成立と韓國史認識」, 宮嶋·金容德編 『近代交流史と相互認識 I』, 慶應義塾大學出版會 2001; 졸고 「日本史·朝鮮史硏究における‘封建制’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