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소현 鄭昭峴
1975년 서울 출생. 200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etwas94@naver.com
폐쇄되는 도시
삼은 C시로 가지만, 그곳이 이 나라의 어디쯤 있는지 모른다. 그녀는 열살 이후 단 한번도 집을 떠나본 적이 없다. 다시 돌아왔을 때, 집이 사라지고 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출근용 정장 차림에 짐가방을 하나 들고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삼의 직장인 은행과 점심을 먹던 식당,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앞을 지나칠 때, 그 풍경이 아주 생경하게 느껴졌다. 열살부터 지금까지 조용한 M시에서 보낸 세월이 버스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고, 삼은 오히려 아주 오래전 C시에서 보낸 짧은 시절만이 몸으로 겪은 유일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을 준비하며 습관적으로 켜놓은 텔레비전에서는 C시 시민들의 집단이주가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C시는 인신매매와 매춘, 강력범죄 등으로 늘 시끄러웠는데, 국가에서는 그곳을 친환경 관광신도시로 전면 재개발하기로 결정했다. 빈민연대와 세입자연합 등의 끝없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계획안은 통과되었다. 시민들에게는 보상금과 이주비가 지급되었고, 이주가 끝나면 도시는 폐쇄되고 곧 철거에 들어간다고 했다. 카메라는 도시 중심부에 삼십년째 C시의 상징처럼 버티고 서 있는 흉물스러운 시민아파트를 비추었다. 삼은 언덕 위의 아파트가 자신이 한때 살았던 곳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곳은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낡고 구질구질했다. 삼은 그 아파트가 C시에 있다는 사실을 뉴스를 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삼은 여섯살에 유괴되어 그 아파트에서 살았다. 할머니와 복이라는 또래 남자아이 그리고 많은 여자아이들과 함께 사년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이 인신매매 같은 일에 관여되었던 것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부모는 이미 헤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수염을 덥수룩이 기르고 이산 저산 떠돌아다니는 도인이 되어 있었고, 어머니는 한 신흥종교의 교인이 되어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다. 부모에게만은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용서받고 싶었으나 부모 모두 딸의 이야기를 들어줄 형편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업이라 생각하고 다 잊으라 했고, 어머니는 다 용서하고 잊자고 했다. 부모는 그러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줄 거라고 했다. 그녀는 부모 모두 자신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평화를 얻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둘 다 처음 만난 사람처럼 낯설어 그녀는 부모를 잘못 찾은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녀는 부모의 말대로 그 시절을 모두 잊어버리기로 했다.
삼은 유괴당하지 않고 자란 아이들보다 이년 늦게 초등학교에 갔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작은 집을 얻어주었고, 어머니는 가끔 찾아와 밥을 사주었다. 그녀는 가족이 헤어진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에게서 방치된 채로 자랐지만 그런 형편을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사년의 공백과 부모의 부재를 다른 이야기들로 채웠다.‘아버지는 항해사예요. 어머니는 선교사인데 씨에라리온에 가 있어요. 저도 사년 동안 엄마와 함께 그곳에 있었답니다. 너무 위험하다고 엄마가 혼자 돌려보냈어요.’삼은 그 거짓말이 반쯤은 진실에 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이 아프리카에서 본 굶주림과 고독, 밀림과 사막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그녀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좀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보다 책을 더 가까이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대학을 나와 직장에 다니며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도 결국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들킬까 두려워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이기도 했지만, 자기를 드러내 보일 대상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고 생각하면 끝없이 외로워졌다.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는 아파트를 보자 잊으려고 애썼던 그 시절의 감각이 모두 되살아나는 듯해 괴로웠다.
삼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C시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C시는 시외버스로 세시간 거리에 있었다. 어린애가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그때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외버스 안에서 꿈을 꾸었다. 집에 돌아온 후 주기적으로 꾸었던 꿈이었다. 골목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나는 사람은 항상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아 꼼짝 못하게 했다. 팔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다가 깨어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면 말할 수 없이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그 팔의 온기가 그리워 서글퍼졌다.
C시는 M시보다 규모가 작았지만 무척 시끄럽고 공기가 좋지 않았다. 터미널은 떠나는 사람으로 만원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작은 주택들과 오래된 저층 빌딩들로 이루어진 도시는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회사에서 이십분 간격으로 계속 전화가 왔다. 삼은 배터리를 뺀 휴대폰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터미널에서 택시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시민아파트가 있었다. 택시기사는 그곳에서 나오는 사람이 없다며 왕복요금을 요구했다. 그는 이 도시에서 기사 노릇 하다가는 언제고 흉한 꼴을 당할 것 같다며 다음주부터는 다른 도시에서 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버스정류장과 상점가가 있었고 번화했던 그 거리에는 가끔 차만 지나다닐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로 가는 오르막에 있던 아주 오래된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몇채는 부서져 있었다.
아파트 단지는 텔레비전에서 본 것보다 더 황폐했다. 오층짜리 복도식 아파트 네 동이 둘러싼 마당에는 주민들이 집을 떠나며 버려놓은 쓰레기들, 부서진 가구와 문짝들, 깨진 변기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칠이 벗겨진 외벽에는 철거반대, 세입자에게도 보상을, 같은 문구들이 씌어 있었다. 삼은 똑같이 생긴 네개의 건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자신이 살았던 곳을 찾아다녔다. 사람이 빠져나가고 텅 비어 있는 아파트 단지에는 이리저리 오가는 그녀의 발소리만 타닥타닥 울렸다. 그녀는 보일러실로 쓰이는 단층 건물을 보고 자신이 이곳에 처음 왔던 날을 기억했다.
그녀는 처음 보는 조그만 할머니의 손을 잡고 보일러실 지하의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그 할머니에게 어디서 어떻게 유괴되었는지,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그녀는 기억나지 않는다. 강당처럼 넓은 그 방에는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밀림 속 동물들이 아기자기하게 그려져 있었다. 온갖 장난감과 실내용 미끄럼틀, 그네 같은 것들이 가득했고 삼보다 어린 여자아이들 예닐곱명이 소꿉장난을 하거나 인형놀이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곳을 놀이터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우르르 달려왔고 삼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그녀는 할머니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며 울었다. 할머니는 삼의 눈물을 닦고 꼭 끌어안았다. 다른 아이들도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안아주며 가느다란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다. 얘들아, 엄마가 버렸어도 슬퍼하지 말아라. 할머니가 꼭 엄마 찾아줄게. 아이들은 할머니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울음을 멈췄다. 삼은 부모의 이름과 집주소, 전화번호를 할머니에게 또박또박 말하며 집을 찾아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연락해보겠다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초콜릿과 과자를 마음껏 먹고 텔레비전 만화도 마음껏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소꿉장난과 인형놀이를 하고 할머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하루가 금방 갔다. 자고 일어나면 가끔 아이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는 부모가 아이를 찾아갔다고 했다. 부모를 잃은 새로운 아이들이 계속 들어왔기에 놀이터는 늘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자기 부모가 곧 찾아올 거라고 믿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읊었고 할머니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함께 걱정해주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한달이 조금 넘게 머물다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들어가 함께 살았다.
그녀는 보일러실 문에 귀를 대고 안쪽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확인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그곳에 아이들이 없는 것 같아 안심이었다. 보일러실 옆동 일층에 그녀가 할머니와 함께 사년을 살았던 집이 있었다. 그녀가 살던 동의 현관 앞에는 쓸 만해 보이는 낡은 소파와 칠이 벗겨진 탁자 같은 것들이 여러개 놓여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할머니 두명이 소파에 앉아 삼이 하는 일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삼은 할머니들을 뒤늦게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할머니들은 앉아 있기도 힘들 정도로 노쇠했는데, 한명은 키가 작고 뚱뚱했으며, 한명은 머리카락이 온통 은빛이고 허리가 꾸부정했다. 가까이 가서 할머니들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그녀가 찾고 있는 할머니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유괴한 할머니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상상할 수 없었으나, 알아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지팡이를 든 뚱뚱한 할머니가 물었다. 누구고? 우리 쫓아내러 왔나? 이자 갈 데도 없데이. 여기서 다 죽을 끼다. 삼은 대답했다. 아니에요. 사람을 찾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