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폭력을 상상하기
앨더먼의 『파워』와 페미니스트 판타지
일레인 쇼월터 Elaine Showalter
미국 프리스턴대학 영문과 명예교수. 국내 번역된 책으로 편서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 문학』이 있음.
* 이 글은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Daily 2018년 2월 26일자에 발표되었으며, 원제는 “Imagining Violence: ‘The Power’ of Feminist Fantasy”이다. From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Daily Copyright ⓒ 2018 by Elaine Showalter/한국어판 ⓒ 창비 2018
올해 남자를 해치는 여자들 이야기를 다룬 소설 한편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나오미 앨더먼(Naomi Alderman)의 베스트셀러 『파워』(The Power, 2017; 2016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에서 청소년기 소녀들은 자기 손이 강력한 정전기를 뿜어 남들에게 충격을 주고 고문해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기가 나오는 곳은 쇄골 근처의 횡문근인데, 경악한 과학자들은 갓난 여아의 MRI(자기공명영상)에서 그 부위를 확인하고 실타래라는 이름을 붙인다. 십대 소녀들은 나이 든 여성들이 자신의 ‘파워’를 활성화하도록 돕기도 한다.

나오미 앨더먼 『파워』
여성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출발해 여러 나라로 옮겨 다니며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고, 자기를 노예로 삼고 학대했던 남성에게 잔인한 복수를 감행한다. 여성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해방하기 위해 ‘파워’를 사용하며, 그 결과 여성들의 자아상이 바뀐다. 미국 공영 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앨더먼은 이야기한다. “만일 필요시 해를 가할 힘이 있다면, 설사 그 힘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해도 삶은 매우 달라질 거예요. 상시적인 두려움이 줄어들 테지요.” 소설에서 한 소녀는 자신을 상습적으로 강간한 양부를 감전사시킨다. “그는 경련을 일으키며 그녀에게서 튕겨 나갔다. 그는 요동치며 발작했다. (…) 그는 쿵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파워는 급속히 타락해 일부 여성들은 약한 이들을 괴롭히며 잔인해진다. 한 여성 경관은 경계근무 중 공격적인 젊은 남성 저항자에게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녀의 손이 닿자 그의 머리가죽이 바삭해졌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두개골 안 액체가 끓기 시작했다. (…) 파워가 지나간 자리가, 생각보다 빠르게, 흉터처럼 부풀어 올랐다. (…) 그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얼굴부터 흙 속에 처박혔다.” 남성들은 한층 더 잔혹한 방식으로 반격에 나선다. 그들은 파워를 외과적으로 파괴하거나 강탈하려 하며, 여성의 시력을 앗아 가두려 하고, 여성을 상대로 중화기를 사용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도 불구하고 앨더먼은 위해를 가하고 죽일 수 있는 힘이 여성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앞서의 인터뷰에서 앨더먼은 토로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약 더러운 지하실에 팔려와 성폭행당하기 직전의 여성들에게 갈 수 있다면, 내가 그녀들에게 감전사시킬 힘을 마음대로 줄 수 있다면, 설령 결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나는 그렇게 할 거예요.”
대담하고 충격적인 이 소설은 베일리스 여성 소설상(the Baileys Women’s Prize for Fiction)을 수상했고, 2017년 『뉴욕타임즈 북리뷰』(The New York Times Book Review)의 10대 소설에 선정되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도 이 소설을 그해 자신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 중 하나로 언급했다. 하지만 단순히 요즘 가장 잘나가는 작품이라는 뜻만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