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송기원 宋基元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소설집으로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마음속 붉은 꽃잎』 등이 있음.

 

 

 

폰개 성

 

 

폰개 성에 대한 내 기억의 첫머리는 그가 큰아버지를 얼싸안고 애절하게 울부짖는 장면이다.

“아이고, 아부지이, 엉엉, 시상에 이거이 뭔일이다요, 엉엉.”

폰개 성은 금방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얼굴을 하고서도, 두 손으로는 쉬지 않고 큰아버지의 팔이며 다리를 주무르고 있다. 그러나 큰아버지는 비스듬히 모로 누운 자세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팔꿈치와 무릎을 서로 잇댄 채 한껏 몸을 웅크려 새우등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큰아버지는 영락없이 세상 모르고 깊이 잠이 든 모습이다. 옆에는 눈에 익은 나무궤짝과 함께 비료부대 종이로 싼 쇠고기 한덩이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큰골 방죽 바로 아래이다. 둑길에는 동네 아이들이 길게 늘어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내 눈길 또한 아이들과 같은 위치에서 폰개 성을 바라보고 있는 걸로 보아, 어쩌다가 나는 그만 아이들 편에 서 있게 된 모양이다. 아이들 중에 누군가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폰개 성더러 들으라고 넌지시 한마디 던진다.

“폴쎄 죽었는디……”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여 동조를 하고 나선다. 그러나 서 있는 위치가 뭔가 어정쩡하고 애매한 나는 아이들과는 달리 화들짝 놀라고 만다. 폰개 성이 큰아버지를 붙들고 애절하게 울부짖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내가 쉽사리 그에게 가세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아직껏 큰아버지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도무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열한살이 되는 설날 아침이다. 그리고 설날은 비단 나 같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넘쳐나는 음식과 세뱃돈과 화기애애한 얼굴로 주고받는 덕담만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런 설날 아침에 하필이면 큰아버지가 죽는 일 따위는 벌어질 리 없다. 나는 눈앞에 벌어진 사태가 거의 분하기까지 한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져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 기어코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고, 나는 얼핏 하늘을 바라보며 크게 숨을 들이쉰다.

새파랗게 얼어붙은 하늘을 겨울바람이 쌩쌩, 거칠 것 없이 내달리고 있다. 겨울바람에 휘말려 어디선가 방패연 하나가 수직으로 곤두박질친다. 그렇게 방패연이 곤두박질치는 새파란 하늘 어디선가 큰아버지의 술취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몬자 큰골로 올라갈 테여? 이 큰아부지는 오랜만에 동무를 만났는디, 시방 이 자리서 하늘이 두 쪽이 난다고 해도 기냥 갈 수가 없구만. 큰아부지가 딱 한잔만 걸치고 일어설 테닝께, 지달리지 말고 몬자 올라가더라고. 가서 큰엄니보고 나가 금방 뒤따라온다고 전해라잉.”

파장 무렵이 되어 서둘러 짐을 거두어 나무궤짝을 메고 일어선 큰아버지가 동무를 만난 것은 어물전 머리에서였다. 이제 막 푸줏간에 들러 쇠고기 한근을 끊은 다음에 어물전으로 해서 장터를 빠져나가려던 참에 동무를 만난 것이었다. 이미 전작이 있던 두 동무는 서로 얼싸안다시피 부둥켜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가까운 선술집으로 들어갔다. 큰아버지는 덩달아 함께 들어간 나를 구태여 등을 떠밀다시피 하며 선술집 밖으로 밀어냈다.

“공부하는 학상은 이런 곳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법도 몰른당가? 여그는 학상이 배울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데여. 만약에 어무니라도 이 꼴을 보먼 당장에 나를 우찌께 생각할 꺼잉고?”

혼자서 시오릿길이 넘는 큰골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막무가내로 버티다가 내가 그만 선술집을 나선 것은 어무니 운운한 큰아버지의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진저리를 쳐대는 어머니의 성정을 나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술이란, 나로서는 전혀 기억에도 없는 생부이거나 혹은 술이 취했다 하면 으레 주먹부터 휘두르고 보는 의부에 다름아니었다. 그런 어머니한테 비록 큰아버지와 함께라지만 내가 선술집에 어정거렸다는 소문이 들려서 좋을 일은 눈곱만큼도 없을 것이었다.

비단 술뿐만이 아니라 매사에 걸핏하면 어머니는 나에게 생부의 일을 걸고 넘어지기 일쑤였다. 내가 어쩌다 아이들과 싸우거나 학교수업을 빼먹어 말썽이라도 생기면 어머니는 숫제 두 눈을 허옇게 뒤집고는 했다.

“아이고, 서방복이 없는 년이 어디 자석복이라고 있을 꺼이여. 될 성부른 낭구는 떡잎부터 알어보드라고, 아직 귀싸댕이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우짜먼 그루코롬 지 애비가 허든 숭헌 짓만 골라 헌당가? 오메, 오메, 징헌 거, 허구헌 날 고주망태에다가 노름꾼에다가 쌈박질에다가 그것도 모질라서 난중에는 아편쟁이까지…… 시상에 숭악한 짓만 골르고 골라서 지 애비가 나를 골벵 들이등만 인자는 그 새끼가 나서서 기냥 내 멩줄마자 끊어놀라고 헌당께. 아나, 니 애비를 닮을 바에는 일찌감치 나를 쥑에라, 쥑에.”

선술집을 나온 내 귀에 이제 막 주모를 향해 호기롭게 외쳐대는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아짐씨, 여그 막걸리 한 사발씩만 주시요잉.”

큰아버지는 오일장을 돌아다니는 신기료 장수였다. 장날이면 싸전머리에서 헌 구두며 운동화를 수선했는데, 아무리 밑창이며 코가 너덜너덜해져버린 구두며 운동화일지라도 일단 큰아버지의 손에만 들어가면 금방 새것으로 둔갑을 하기 마련이었다. 터지고 구멍이 난 구두에 가죽을 잘라붙이고 밀랍을 입힌 실로 서걱서걱 꿰매가는 큰아버지의 잽싼 손놀림을 옆에서 보고 있노라면 무슨 요술을 보듯이 마냥 신기하기까지 했다.

큰아버지가 언제부터 떠돌이 신기료 장수가 되었는지는 자세히 기억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기 전부터였지 않나 싶다. 그렇듯이 나에게는 큰아버지 하면 으레 싸전머리의 전봇대 아래 까맣게 손때가 묻은 나무궤짝을 의자 삼아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큰아버지에게 어린 내가 불쑥 손을 내민다.

“큰아부지.”

나의 목소리에 큰아버지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주름투성이의 얼굴 가득히 함박웃음을 담는다.

“허어, 우리 세금쟁이가 이번 장도 안 잊어뿔고 찾어왔단 말이제?”

큰아버지가 주섬주섬 감색 한복 조끼의 주머니를 뒤지고, 나는 뒤쫓기기라도 하듯이 성급하게 재촉한다.

“빨랑 줘. 꾸물대다 들키먼 나는 맞어죽는단 말여.”

“아니, 우리 귀여운 세금쟁이를 누가 감히 쥑인단 말여?”

“치잇, 바로 엄니제 누구여? 한번만 더 큰아부지한테 돈 타내먼 때레죽인다고 했단 말여.”

큰아버지가 이윽고 십환짜리 지전 한장을 건네주면, 나는 혹시나 어머니한테 들킬세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힁허케 내뺀다. 언젠가 큰아버지에게 돈을 타내는 것을 목격한 어머니는 근래에 없던 매타작까지 해가며 혹독하게 나를 혼냈던 것이다.

“아나, 차라리 문딩이 콧구녕에서 마늘을 빼묵제 큰아부지한테서 돈을 뺏어야? 지끔 그 냥반 헹펜이 우짠 줄 알고 장마다 날강도같이 버젓이 돈을 뺏는 거이냐? 그 냥반 헹펜에는 니한테 뺏기는 단돈 십환도 속으로는 피눈물이 날 거이다. 이 속알탱이 없는 새끼야.”

“오메 엄니, 나가 뺏은 거이 아니고, 큰아부지가 아이스께끼 사묵으라고 줬단 말이여.”

“아이고, 이 싹퉁머리없는 새끼가 터진 입이라고 말 둘러대는 것 잠 보소. 오냐, 좋다, 그라먼 니가 손도 안 벌리는디 큰아부지가 일일이 쫓아댕김서 니한테 돈을 주더냐잉?”

어머니로부터 예사롭지 않게 혼쭐이 났지만, 그러나 가까스로 걸음마를 익힌 어린아잇적부터 뺀질뺀질한 장돌뱅이로 호가 난 나로서는 이 손쉬운 돈줄을 호락호락 포기할 수가 없었다. 몇년을 두고 큰아버지 말마따나 세금쟁이 노릇을 톡톡히 해온 나에게, 큰아버지는 어머니의 매타작 몇번으로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소중한 돈줄이었던 것이다.

어린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큰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였다. 어머니는 생부라면 혹시 꿈에라도 나타날까 두렵다는 듯이 치를 떨며 하나부터 열까지 비난으로 일관하면서도, 큰아버지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였다. 내가 보기에도 이건 두 사람을 너무 심하게 차별한다 싶을 정도로, 큰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는 어느 하나 없이 각별했다.

어머니의 태도 중에서도 이해가 안되는 또 하나는 바로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며 그리고 무슨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제삿날이면, 으레껏 나를 큰아버지한테 보낸다는 점이었다. 생부와 마찬가지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며 할머니의 제사에 가야 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뚱딴지같다 못해 뭔가 억지스럽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바로 나를 큰아버지한테 보내는 문제로 의부와 대판 싸움을 벌여 피투성이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년이 지금 누구 복장을 지르는 거여, 뭐여? 시방 니가 무신 맘으로 그놈 집 제사며 명절 때마다 버젓이 니 새끼를 보내는 거여? 나가 고자가 되야서 후사가 없기 땀시 죽어 귀신이 되야서도 물밥도 못 얻어묵을 거라는 것을 시방 니년이 나 앞에 우세하고 있는 거 아녀? 아나, 이년아. 지 새끼를 이만큼 멕에살레 키워논 것이 누군 중이나 알고, 시방 천벌 맞을 짓거리를 하는 거이냐? 오냐, 어디, 천벌을 맞기 전에 몬자 내 손에 뒈져봐라.”

의부가 대뜸 어머니의 머리채를 낚아채며 길길이 날뛰었다. 당시 어머니와 함께 해산물 도매상을 하던 의부는 서로간에 돈 계산이라도 틀려 시비가 붙는 날이면 곧잘 손찌검을 해서 어머니를 피투성이로 만들곤 했는데, 그런 의부의 손속도 이번에는 그 혹독함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 일찍이 어린 나이부터 둘 사이의 싸움질을 흡사 닷새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장날처럼 흔하게 보며 자란 나인지라 웬만하면 못 본 척했는데, 그런 나로서도 이번에야말로 어머니가 죽어나자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머니 또한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오냐, 때레쥑에라. 나가 이녁 손에 죽으먼 죽었제, 한나밖에 없는 내 새끼를 근본도 모르는 장갓 쌍것으로 맨들 수는 없어야.”

나로서는 무슨 근본 운운하는 어머니가 당연히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변덕을 부리는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마치 철천지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틈만 나면 생부 욕을 해대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부에게 피투성이가 되면서까지 기필코 나를 큰아버지한테 보낸다……

큰골은 큰아버지댁뿐만 아니라 둘째아버지며 사촌형제들로부터 당숙이며 육촌형제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자작일촌으로 벌족한 집안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벌족한 집안에서 웬일인지 큰아버지댁만은 달랑 방 두칸에 부엌 한칸뿐인 초가삼간이었다. 게다가 그 초가삼간마저 아직 새 이엉을 얹지 못한 낡은 지붕이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지고 있어서, 누가 보아도 궁한 살림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정경이었다.

내가 흉내뿐인 사립문을 혼자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큰어머니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아니, 우찌께 해서 혼자 오는 거이여?”

“잉. 큰아부지가 금방 뒤따라 온다고 함서 나보고 몬자 가라고 하등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어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장죽을 놋재떨이에 쨍 소리가 나게 내리쳤다.

“아이고, 이놈의 술구신이 보나마나 그새를 못 참고, 어린 아그를 혼자 보낸 것이겄제?”

“아녀, 아녀, 큰엄니, 그거이 아녀. 나랑 함꾼에 어물전을 나오는디 동무를 만났단 말여.”

“동무는 무신 얼어죽을 놈의 동무! 헌다 헌다 헝께, 이 영감탱이가 섣달 그믐날까장 넘의 염장을 지르고 있네. 글 안해도 그놈의 술 땜시 날레뿐 그 빤닷한 집이며 논밭만 생각하먼 시방 당장에 L바닥을 물고 자겔이라도 헤뿔고 싶은 마음뿐이여. 어디 오기만 해봐라. 나가 오늘은 시상 없어도 기냥 넘어가덜 않을 테여.”

큰어머니가 본격적으로 큰아버지를 구실삼아 잔소리를 늘어놓을 낌새를 보이자, 이윽고 폰개 성이 나섰다.

“엄니, 지가 한번 싸게 장터까지 갔다와볼께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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