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생태정치 확장과 체제전환

 

플라스틱 중독 시대 탈출하기

 

 

김기흥 金起興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저서 『광우병 논쟁』 『기억하는 인간 호모 메모리스』(공저) 『로보스케이프』(공저) 등이 있음. edinkim@postech.ac.kr

 

 

1. 플라스틱 신드롬

 

언제나 그래온 것처럼 두가지 거대한 담론이 충돌하고 있다. 기술혁신과 죽어가는 지구 살리기. 전자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대두되고 후자는 ‘지구온난화’라는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풍족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경제성장률을 높이려 하고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라는 문제를 고민한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 일어나는 폭염, 홍수, 산불, 지진 같은 이상기후나 자연재해는 전지구적 규모의 위기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낸다.

이 두가지 상반된 방향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발전·개발을 향한 인간의 과잉된 욕망과 자연의 손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손실을 체감하기에 자연은 범위가 너무 크고, 따라서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최근 발생하는 이상기후나 자연재해는 그간의 관념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아마존 우림과 호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화재,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강타하면서 300만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킨 사이클론 파니, 남아프리카에서 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사이클론 이다이, 북극 지역의 기록적인 빙하 손실 현상 등 작년 한해에 벌어진 일련의 재난은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지구적 재난이라는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무한성장의 낙관적 미래에 대한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아 문제해결을 불가능하게 한다. 제어 불능의 상황을 가장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세상의 풍경이다. 플라스틱은 근대적 세계의 기반을 구성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대표적 물질이 되었다. 자연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물질이 지구 전체를 뒤덮는 데는 불과 백년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특정 물질이 문명 전체를 규정할 만큼 지배적인 지위에 오른 것은 인류 역사상 아마 플라스틱이 유일할 것이다. 석기, 청동기, 철기로 이어져온 문명은 플라스틱의 개발로 인해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19세기 말에 개발된 플라스틱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선언하는 최고의 발명품이자 동시에 최악의 물질이라 할 수 있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제 플라스틱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지구의 표면뿐 아니라 해저와 대기까지 플라스틱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 최근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구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한 연구팀은 해저 1만 미터에서 매우 흥미로운 관찰을 했다.1 직접 내려가본 사람이 역사상 단 세명뿐인 이 해저 심연에서 조사팀이 발견한 것은 플라스틱 봉지였다. 런던 같은 대도시의 공기에서도 엄청난 양의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매일 1제곱미터당 575~1008개의 플라스틱 조각이 공기 중에 섞여 있으며 비를 통해 지상으로 쏟아진다. 대기 중 미세플라스틱의 대부분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의 구성 성분인 폴리에틸렌이나 폴리스티렌에서 나온 부유물이다.2 한해 3억 3500만 톤(2016년 기준)의 플라스틱이 생산·배출되는 우리의 일상은 플라스틱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2. 신화의 시작

 

플라스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파크신(Parkesine)을 1856년에 처음 발명한 이는 영국의 알렉산더 파크스(Alexander Parkes)다. 그의 목적은 구하기 힘들고 값도 비싼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드는 것이었다. 파크신의 발명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수요가 늘어가던 고급 셔츠 버튼이나 빗 같은 장식품 시장에 변화를 일으킨다. 당시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 소뿔이나 진주, 거북이 등껍질, 그리고 상아로 만들어졌다.3 미국의 발명가 존 웨슬리 하이엇(John Wesley Hyatt)이 좀더 세련된 형태의 셀룰로이드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플라스틱에 가까운 물질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전기의 보급과 함께 전선을 절연할 수 있는 물질이 필요해지면서였다. 그에 따라 미국의 발명가 리오 베이클랜드(Leo Baekeland)가 새로운 합성 중합체인 베이클라이트(Bakelite)를 상용화했다.4

정치적인 변화도 플라스틱의 확산을 추동했다. 베이클라이트가 발명된 1907년은 반식민지운동의 확산으로 제국주의적 세계체계의 붕괴가 가속화하던 무렵이었다. 상아와 비단을 생산하던 식민지에서 일어난 저항으로 그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체재 개발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는 상황이었다.5

2차대전이 끝난 후 플라스틱은 새로운 소비사회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미 세계대전에서 무기와 비행기에 사용되면서 유용성이 증명된 플라스틱은 전후 민간분야에 적용되면서 수많은 제품의 형태로 시장에 등장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플라스틱 산업의 팽창과 함께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이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유연성과 다양한 형태로의 변신은 이것이 ‘기적의 물질’로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6 결국 전후 소비사회 확대 및 경제 호황과 함께 플라스틱의 지배력은 급격히 강화되고 전세계적으로 확대된다.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윌리엄 헤인즈(William Haynes)는 이 새로운 합성물질이 “히틀러나 무솔리니보다 우리의 자손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7 실제로 파크신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 이 새로운 물질은 불과 백년이 안 돼서 인간의 활동을 추동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자동차의 구성물 중 적어도 15퍼센트가 플라스틱이며, 보잉사에서 제조하는 비행기의 부품 가운데 50퍼센트가량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8 코카콜라사는 매년 1200억개의 플라스틱 병을 생산하고 있다. 늘어놓으면 지구를 700바퀴 돌 수 있는 길이가 된다.9

플라스틱이 인간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데 미친 영향은 결정적이다. 플라스틱은 무한성장과 소비의 유토피아적 미래를 현실화할 물적 도구로 인식되었다.10 자연의 제약에서 벗어나 완벽하게 깨끗하고 부드러우며 인간의 의지에 따라 그 형태와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이상적 질료가 플라스틱을 통해 현실화된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풍부함은 인류가 빈곤과 결핍의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 기적의 물질의 생산량은 1950년 200만 톤가량에서 2015년 3억 2200만 톤가량으로 약 160배 급증했다.11 플라스틱은 인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