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혜경 李惠敬

1960년 충남 보령 출생. 198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장편 『길 위의 집』 등이 있음. pohon1@hanmail.net

 

 

 

피아간(彼我間)

 

 

“그래도…… 오래 고생하시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야지.”

고속도로에 접어들어 차가 속력을 높이자 남편이 침묵을 깬다. 남은 시간이 하루이틀뿐이니 가족을 부르라 했다는 의사의 말을 생각하면 맞는 말이었다. 이즈음엔 경은 또한, 더 고생하는 것보단 가시는 게 그나마 한 목숨으로서의 존엄함을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며칠 동안 내린 비에 씻겨 화창하진 않으면서도 극명하게 맑은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을 보면서 어머니의 상여 뒤를 따라가던 십여년 전의 그 맑디맑은 날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미 속으로는 아버지를 내려놓았다는 게 정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도 남편의 말은 날카로운 고드름처럼 경은의 마음에 꽂힌다. 한치 건너 두치라더니, 당신 아버지였대도 그런 말이 나오겠어? 뾰족하게 튀어나오려는 말을, 경은은 혀끝을 동그랗게 말아 가둬버린다. 왜 이렇게 마음에 날이 선 것일까.

팔순을 넘긴 아버지가 쓰러져 뇌출혈 수술을 받은 지 석달째였다. 지난주, 두문불출해야 하는 경은과 달리 차로 두시간 반 거리인 고향의 병원에 자주 들르던 큰언니의 전화를 받았을 때, 경은은 삶아 말린 기저귀를 개고 있었다. 삶아 말린 빨래 특유의 알싸한 냄새가 갇힌 공기 속에 번졌다. 텔레비전 기상 캐스터는 태풍이 남쪽 지방을 지나는 중이고 곧 장마가 시작되리라 예보했다. 신장기능이 거의 바닥이고 호흡이상도 오기 시작했대. 앞으로 한두 주 남았다는데…… 경혜랑 나는 그동안에라도 시간 나는 대로 가보려고. 이따 다시 통화해봐야겠지만, 내일쯤 내려갈까 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나도 갈래. 갈 수 있겠니? 힘들어도, 그래도 계실 때 한번이라도 더 뵈어야 할 텐데…… 같이 갈래? 큰언니가 반기자 경은은 얼른 뒤로 뺐다. 아니, 난 형편 봐서. 그리고 지금은 기차 타는 게 더 편할 거 같아.

부풀 대로 부푼 배,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철도 승강장의 계단을 내려가기는 힘들었다. 열차 안에선 배를 독서대 삼아 육아책을 읽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없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하늘이 나에게 준 은혜요 책임으로 생각해야 한다. 육아책 서문의 문구는 삼십대 후반에 처음으로 아이 엄마가 되는 경은에게 부적을 지닌 것과 같은 위안을 주었다. 어쩌면 아버지도 한평생 당신의 불완전함을 남몰래 견뎠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스멀거렸다. 경은은 책을 덮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집을 나설 땐 자박자박 땅을 적시던 빗줄기는 어느새 제법 굵어졌다. 차창에 부딪힌 빗방울은 가는 물방울의 꼬리를 만들며 발발 기었다. 꼬리를 달고 기어가는 생물체 같은 물방울. 삼십몇년 전 어느날 아버지는 어머니와 교합했다. 그날 아버지가 쏟아낸 무수한 정자들 가운데 하나가 난자에 닿아 수정한 생명, 그게 경은이었다. 그처럼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사람이고, 간발의 차이로 엇갈릴 수도 있는 게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다. 다른 정자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경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경은은 발발거리며 이합집산하는 물방울들처럼 갈피 잡을 수 없는 마음을 간추렸다. 이 나이면 남편을 여읠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식을 앞세울 수도 있는 나이야. 그러니 부모를 여의는 건 그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에 지나지 않아. 팔순을 넘긴 아버지가, 당신이 오신 곳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뿐이야. 그러자 마음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경은의 묵묵부답을 초조함으로 해석했는지 남편이 속력을 높인다. 100을 조금 넘었던 속도계의 바늘이 110을 거치더니 어느새 120을 훌쩍 넘어설 때, 경은은 여행가방을 꾸리다 받은 시어머니 전화를 떠올린다. 얘기 들었다. 너도…… 가야지? 가는 게 사람 도리이긴 한데…… 그래도 내 마음 같아선, 기왕 참은 거, 더 참았으면 좋겠구나. 경은이 가만히 있자 시어머니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조심조심해서 다녀오너라. 별일 없어야 할 텐데.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예사롭게 넘길 수도 있는 그 말이 마음의 날을 세운 것일까.

 

“네 마음이야 알지만, 그럴 거까지 있겠니? 다른 식구들도 많은데……”

소도시 종합병원 중환자실은 좁고 길쭉하다. 침상 일곱 개가 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하다. 침상과 침상 사이의 공간은 밭아서, 접의자 하나를 펼쳐놓으면 딱 맞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당연한 우려인데도 경은은 그 조심스러운 말투에서 몇달 전을 떠올린다. 첫아이 임신했을 때 수박이 그렇게 당겼다는, 태아의 눈처럼 까만 씨앗이 박힌 수박 속살을 떠올리면 목구멍에서 손이 뻗쳐나올 것 같았는데 제철이 아니라 비싸서 먹을 수 없었다는 큰언니가 어느날 경은의 집에 왔다. 농수산물시장에 갔는데 수박이 좋은 게 나왔더라고. 조심하라는 의사의 당부를 환기하며 도통 얼굴을 안 비치는 경은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제법 배가 불러 임부 티가 나는 경은이 수박을 받으려 하자 큰언니는 손사래를 치고 다용도실로 수박을 가져다놓았다. 어이구, 얼마나 잘난 아기가 나오려고 이렇게 엄마 꼼짝도 못하게 고생시키냐? 어디 이모한테 인사 좀 해봐라. 큰언니가 손을 뻗쳤을 때, 경은은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허공에 뜬 손이 무색해보였다. 미안해, 언니. 내가 좀 과민하긴 한가봐. 경은은 사과했지만 뒤로 젖힌 몸을 움직여 손을 대게 해주진 않았다. 하긴 얘가 원가가 좀 비싼 애니? 네가 말은 안했어도 시댁에서 어지간히 스트레스 받았나보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하면서 큰언니는 손을 거둬들였다.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가 바로 병원인데 이보다 더 안전한 데가 어디 있겠어? 염려 말고 언니나 가서 쉬어. 우리 그이 눈 좀 붙이라고 하고.”

복도에 놓인 의자나 병원측이 중환자실 보호자를 위해 마련해놓은 온돌방에서 토막잠을 자던 보호자들이 간간이 들여다볼 뿐, 소도시 외곽의 숲에 지은 병원은 밤이 깊을수록 적막해진다. 그 고요 속에서 밤이면 더 위태로워지는 환자들이 저마다 목숨을 건 싸움을 하고 있지만, 겉보기로는 그저 빗돌처럼 고요하다.

아버지, 그만 가세요. 한평생 가슴에 맺힌 거 다 풀고, 다 내려놓고, 그리고 훌훌 떠나세요.

경은은 환자복 앞섶으로 손을 넣어 아버지의 가슴을 쓸며 중얼거린다. 지난주에 왔을 때만 해도 아버지, 하고 부르면 눈을 떴는데, 이젠 빗장을 지른 듯하다. 다른 환자보다 뽀얘서 말끔하던 얼굴은 부풀 대로 부풀어 물주머니처럼 볼이 처졌다. 목엔 가래 제거를 위해 구멍을 뚫었고, 몸엔 오줌을 뽑는 호스며 심전도계 부속품들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손등은 시퍼렇게 멍들었고, 엉치등뼈 부위엔 리본 모양의 욕창이 생겼다. 설사 의식이 돌아온다 해도 남은 나날은 치욕일 것이다. 경은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아버지의 회생이 아니라 아버지의 편안한 임종, 평온한 종말이다.

이태 전, 경은은 지금처럼 병상을 지키며 아버지의 소생을 간절히 기원했다. 방바닥에 앉으려다 다리가 풀려 고관절골절상을 입은 아버지가 경은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한시간 떨어진 도시로 와서 수술을 받았을 때였다. 수술은 깨끗이 끝났는데 그 다음날 폐기능에 이상이 생겨 사선을 넘나들었다. 마침 남편은 4박 5일 출장중이었다. 밤비행기로 떠나는 남편을 보내고 병원에 갔다. 병실문을 열자 소주냄새가 떠돌았다. 밤당번이라는 큰오빠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다른 오빠들은 조금 전 돌아갔다고 했다. 밤새려면 술기운이라도 있어야지. 경은에게 변명처럼 말한 그는 보조침대에 누워 드렁드렁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끊어졌다 이어지는 코고는 소리에 놀라 아버지는 깜짝깜짝 깨어났다. 잠든 큰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길이 어찌나 슬프고 그 안에 서린 허망이 어찌나 깊던지, 경은은 가슴이 철렁했다. 생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아버지에게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다 내려놓은 이의 눈빛이었다. 잠든 사이에 사신이 나타나면 그냥 따라나설 것처럼 무력해 보이는 아버지 때문에 경은은 사흘 밤낮을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고 침대 머리맡을 지켰다. 사흘이 지나자 아버지의 눈빛은 체념이 가시고 다시 또랑또랑해졌다.

그러나 이제 경은은 회생을 바라지 않는다. 고관절 수술을 견뎌내고 팔순 생일상을 받은 아버지가 몇술 뜨고 일어나 방을 향하자, 그저 사람은 일흔살까지만 살고 죽는 게 딱 적당한 거 같다,고 말하는 큰아들, 교대로 병상을 지키며 수발을 들긴 하지만, 의식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장례에 대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아들들, 출가 전부터 집안 대소사에 발언권이 아예 없어 방관자가 되어버린 딸들, 그 모두에게 아버지의 회생은, 예의상 중간에 일어설 수 없어서 몸을 비틀며 본 연극이 막을 내린 뒤, 뻑뻑한 뼈마디를 놀리며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는 관객들에게 그 극이 단막이 아닌 이막극이고, 곧 이막이 시작되니 자리에 앉아 계시라는 안내방송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그때 관객들의 반응이,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경은은 두려웠다.

“할아버지, 또 이랬어? 자꾸 이러시면 안된다니까.”

간호사가 일어나 아버지 바로 옆 침상으로 다가가며 꾸짖는다. 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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