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논단 | 제7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피안과 현실, 절망과 환상이 관계맺는 방식
최인석론
서영인 徐榮姻
1971년 울산 출생. 경북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현재 경북대 강사.
1. ‘마술’과 ‘리얼리즘’ 사이에서 최인석 읽기
최인석(崔仁碩)의 새 연작소설집 『아름다운 나의 귀신』은 최인석을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한편으로는 익숙하고 또 한편으로는 낯설다. 철거 직전의 민둥산 판자촌은 여전히 가혹한 절망의 세계이며, 죽지 않는다면 벗어날 수 없는 악무한의 지옥처럼 보인다. 철거촌은 삽차와 포클레인을 이끌고 진주한 철거반들에게 점령당했으며, 입주권과 프리미엄을 중간에 놓고 복부인과 부동산업자 그리고 철거촌 주민들은 거친 욕망에 들끓고 있다. 이곳은 경악할 만한 지옥이지만, 또 그리 낯선 곳도 아니다. 아비와 어미가 싸우다 서로를 죽이고 굶주린 아이들은 창백하고 거칠게 자라나 공장의 직공으로, 깡패로, 창녀로 뿔뿔이 흩어지는 이곳. 희망이란 도대체 어떤 틈새로도 엿볼 수 없는 이곳은 때로는 매음굴로, 때로는 감옥으로, 혹은 군대로 모습을 바꿔 최인석 소설 도처에 존재하던 세계가 아닌가.
이 지옥의 한켠을 고스란히 비우고 들어앉은 저편의 세계, 희망이라고 부르기에는 그것이 발딛고 있는 지상이 너무 끝모를 절망이어서 차라리 환상이라거나 신화라고 불러야 할 법한 저편의 세계는 또 어떤가. 무당과 신들의 세계, 이곳과는 전혀 다른 질서로 영위되는, 그래서 절망의 땅에 태어난 주인공들의 영혼이 거주하는 저편 세계의 존재도 그리 생경하지는 않다. 징후적이기는 했지만, 우리는 최인석의 전작(前作)들에서 절망의 끝에 이른 인물들의 눈앞에 언뜻언뜻 기적처럼 꿈처럼 나타나곤 했던 그 피안의 세계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사의 두 축이라 할 만한 절망과 환상의 세계 자체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라면 이번 소설집에서 최인석이 보여주고 있는 낯섦, 새로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대립된 세계가 각자의 몸을 최대한 부풀려 서로를 팽팽하게 맞대고 있는, 그 극적인 맞대기의 긴장이 창출하는 새로운 경험이 주는 낯섦이다. 쓰레기와 시궁창과 구더기와 온갖 악덕과 부패가 들끓는 철거촌은 여태껏의 절망을 한번에 응축시켜놓은 듯한 지옥의 형상을 이룬다. 그리고 나는 잘못 태어났다고 외치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저편의 세계는 이제 거대한 환상과 신화의 집결체로 구체적 형상을 이루어 절망과 지옥의 현실로 밀려들어오고 넘쳐 흐른다.
지옥의 현실과 천상의 환상을 넘나드는 그 비약과 하강의 순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사를 장악하고 있는 이 기괴하고 몽환적인, 때로는 섬뜩하기까지 한 장면들은 환상과 사실 사이에 움직일 수 없는 거리를 내정하고 있던 일반적 상식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상식적인 의미에서 환상이란 현실보다는 알 수 없는 신비감에 의존하는 세계지만, 이곳의 환상은 너무도 생생한 구체적 실감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반해 이곳의 사람들과 환경은 상상해보지도 못한 비참을 형상화하고 있기에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분명 최인석의 이번 작품집은 기존의 상식과는 다른 환상과 현실에 대한 모종의 관계를 따로 설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용어1는 최인석 소설의 핵심에 가까이 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취재형 인물’과 ‘가공적 인물’의 공존2이라거나 ‘이성적 비판’과 ‘광기의 세계’라는 유형구분3으로 이전부터 암묵적으로 동의된 해석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마술적 리얼리즘’ 혹은 ‘환상적 리얼리즘’이라는 명명법에는 환상과 사실이라는, 단순하게 화해할 수 없는 개념들이 맞붙어 있으며 이 개념들을 맞붙이고 의미부여하는 이면에는 서로 다른 비평적 입장이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 두 입장이란 환상의 편에서 사실을, 혹은 사실의 편에서 환상을 흡수하려 하는 비평적 욕망이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이처럼 상반된 입장의 비평적 욕망이 한 작품을 사이에 두고 첨예하게 공존하는 데는 아마도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와 소비사회가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욕망과 그에 따른 개인의 강조라는 시대 배경이 내재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최인석의 소설세계는 ‘비루한 것의 카니발’, “어떤 내용의, 어떤 품질의 삶이든지간에 개인 스스로 그 자신의 삶의 방식이나 모양을 만들려는” ‘진정성의 파토스’로 의미화4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객관적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권위와 억압의 형태로만 존재하며 오직 진실한 것은 개인의 주관에 의해 파악되고 재구성된 현실일 따름이라는 입장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논리를 통해 ‘사실’이란 개인의 환상과 내면 속에 존재하는 리얼리티라는 의미로 파악된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삶이 굴절되고 오염되어 그 근원과 주체를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여전히 개인의 주관과 욕망은 그 사회적 삶으로부터 떨어져나갈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 이른바 ‘개인적인 것의 정치성’이라거나 ‘육체의 사회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환상’은 개인의 심리와 정신과정이라는 혼탁한 거울의 깨진 틈으로 불안하게 내비치는 사회적 현실의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에서든 환상과 사실은 적극적으로 관계맺고 해석되어야 하는 비평적 대상이며, 그러므로 이 둘의 불안한 공존은 좀더 엄밀하고 촘촘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최인석의 소설이 오늘의 비평적 논점을 첨예하게 관통하고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 미묘한 입장들을 사이에 두고 최인석이 본격적으로 펼쳐내는 환상의 세계를 추적하는 일은 자못 흥미진진하다. 더군다나 최인석은 이미 독특한 시선으로 절망적 현실을 깊이 그리고 다면적으로 탐사해온 만만찮은 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문학과 현실의 관계라는 해묵은 화두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절박하다면, 그의 소설을 꼼꼼히 읽어보는 일은 분명 의미있는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2. 절망에서 환상으로 가는 길─주관적 리얼리티의 극한
그 달동네 꼭대기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하나 시커멓게 곤두서 있었다. 민둥바위와, 찰기라고는 전혀 없는 메마른 흙,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갖다 버린 온갖 쓰레기들, 망가진 세발 자전거나 구멍난 양동이, 소주병들, 담배꽁초, 본드가 말라붙은 비닐주머니, 찢어진 만화책과 고무신짝, 운동화짝, 빈 음료수통과 더러는 죽은 개나 고양이의 시체 따위가 널린 가운데에 소나무가 말라 죽어가고, 그 자리에 아카시아가 가시를 드러내고 끈질기게 뿌리를 틀어내리기 시작하는 빈터 쓰레기밭 한가운데였다. (「내 사랑 나의 귀신」, 『아름다운 나의 귀신』 9면)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찬 쓰레기밭. 이곳이 민둥산 판자촌의 현실이라면, 송전탑은 이 지상의 질서에 몸담고 싶지 않은 주인공들이 환상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위한 사닥다리와도 같다. 동네 어귀에 우뚝 선 천년도 더 된 느티나무(「직녀, 내 사랑」)나, 네온을 밝힌 교회첨탑(「내 사랑 나의 암놈」)을 환멸에 지친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기어오르며, 그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자신만의 환상의 영역을 만들어나간다.5 이 지상이 타락한 욕망으로 가득 찬 악귀의 세상이라면, 저편의 환상의 세계는 악귀들을 물리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신들의 세계이며 기형과 불구의 세계가 아니라 완벽의 세계이다. 그곳은 지상에 없는 것들로 만들어진 지도이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꿈의 속도, 영혼의 속도, 사랑의 속도로 만들어진 세계이다. 그리고 그 환상의 세계의 완벽성은 언제나 추한 지상과 대비됨으로써 의미를 가지기에 늘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다.
현실과 환상의 극단적 대립이라는 조금은 낯선 작품구도 때문에 우리는 동서양의 숱한 보조 텍스트(카프카라든가 『산해경』 같은)들과의 연관을 우선 떠올리게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일반론적 도식과 유추 이상을 넘어서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러한 강렬한 대비효과에 매혹되다 보면 모호한 인상주의적 얼버무림이나 찬탄으로 작품 읽기를 끝맺을 우려가 있다. 아마도 작품을 해석하는 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이분된 세계가 어떻게 관계맺고 있느냐일 것이다. 두 세계의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면 타락한 세상에 대한 묘사는 주관적 과장에 머물 수 있으며, 환상의 영역은 환멸적 현실에 대한 선험적이고 추상적인 대비효과 이상을 가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의 현실과 환상과의 관계, 더 구체적으로는 주인공들이 현실에서 환상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짚어보는 일은 다소 지루하더라도 작품분석과 의미발견에 필요한 과정이다.
「내 사랑 나의 귀신」은 이 연작소설집에서 서문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말하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