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민규 朴玟奎

1968년 울산 출생.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kazuyajun@hanmail.net

 

 

 

장편연재1

핑 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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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왜 그래요 오비원?

 

 

그 아저씨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술대의 로비 한켠을 점거한 채 검고, 두껍고, 묵직한 일련의 책들을 늘어놓은 것이 영업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 책의 전질(영인본)을 신청했다. 이걸 읽지 않고선 문학을 논할 생각도 하지 마. 안경을 끄덕이며 선배들은 얘기했다. 학생도 문창(文創)인가? 아저씨가 물었다. 아니라고, 나는 대답했다. 사람들은 그를 창비(創批)아저씨라고 불렀다.

 

아니라고, 내가 대답한 이유는 한가지였다. 수십권의 『創作과批評』(금박이다)은 열아홉살의 나에겐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리고, 정말 어려웠다. 어떤 자괴감 같은 것이 그래서 생겨났다. 학생도 문창과라며? 낯을 익혀버린 창비아저씨를 끝끝내 피해다니며, 나는 겨우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문학을 논하지 않았다.

 

바로 그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연재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무려 19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창작과비평이라구요? 창작과비평입니다. 마치 창비아저씨와도 같은 창비 직원의 목소리에 또다시 나는 가슴을 쓸어야 했다. 왜, 창작과비평이 나에게 왜? 한마디로 불안하고, 한마디로 불쾌했다. 학생도 작가라며? 저쯤에서 웃고 있는 창비아저씨의 영혼 같은 것이, 그래서 그 순간 강한 포스로 다가왔다. 왜 그래요 오비원, 제국의 역습이라도 시작된 건가요? 이 연재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이야기는 두 명의 중학생에 관한 것이다. 학생들의 얘기라고 해서 부모나 선생 같은 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재의 이유는 단 한가지다. 지금 이 얘기가 미치도록 쓰고 싶다. 그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고, 쓰고 싶은 대로 쓸 것이다. 이것은 〈창비〉다,라고 당신은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창비〉란 걸, 나도 알고 있다. 여성지에 연재하는 걸로 여기겠습니다. 백낙청 선생을 뵌 자리에서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걸로 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포지션이다. 여성지도 창비도 작가에겐 하나의 지면(紙面)일 뿐이다.

 

탁구계(卓球界)에 들어설 두 명의 중학생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기 바란다. 할일이 많은 중학생들이다. 뭐 어차피 박수를 칠 수밖에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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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판의 중심에는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랬다. 그리고 낡은 소파가, 탁구대의 옆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가죽이 죄 벗겨진, 노파와 같은 느낌의 소파였다. 소파의 방향은 언제나 달랐다. 대개 남쪽을 향해 있지만 때로 동쪽을, 때론 꼭 동쪽이라 하기도 힘든 곳을 향해 소파는 놓여 있었다. 소파의 방향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지만, 그래서 왠지 누군가가 앉았던 느낌이었다. 그 뒤엔 녹슨 캐비닛이 기우뚱 서 있었다. 움직여지지도, 움직일 이유도 없는데다, 문까지 열리지 않아 누가 뭐래도 버려진 게 확실했다. 동물이나 새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있다면 이따금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띄엄띄엄 수북한 각목과 모래 더미, 저 멀리의 중장비. 말하자면 그것이 벌판의 생태계였다.

 

벌판 끝에선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상복합(住商複合)의 아파트 공사였다. 끝도 없이 땅만 파대는 걸로 봐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단지임이 확실했다. 소파에 걸터앉아, 모아이와 내가 처음 본 것은 그래서 하늘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크레인이었다. 크레인은 척 보기에도 수십 미터가 넘는 철골구조물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대단한 풍경이었지만, 우리는 놀라거나 와아 소리치지 않았다. 비교적 무감하거나 그래서가 아니라, 즉 말하자면, 너무 많이 맞아서였다.

 

와아

 

라니. 얼마나 행복하면 그런 환호성을 지를 수 있을까. 굉음과 함께 수평이동을 시작한 크레인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나는 생각했다. 옆구리가 욱씬, 했다. 아무래도 옆구릴 잘못 맞은 모양이었다. 소파 깊숙이, 나는 몸을 묻었다. 성급히 일어섰다간 더 큰 고장이 생긴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끼익. 괴로운지 모아이도 몸을 뒤척였다. 소파의 스프링이 더 괴로운 소리로 끽끽거렸다. 초여름의, 토요일 오후였다.

 

와아

 

오늘은 정말 많이 맞았다. 특별히, 많이 맞는 날이 있다. 한달에 두세 번은, 꼭 그렇다. 어쩔 수 없다. 간단히 넘어가려 해도 이유가 내게 있는 게 아니니까. 끼익. 다시 쇳소리가 났다. 녹이 슨 소파의 스프링은, 그 자체로 천식을 앓는 노파의 기관지 같다. 기침이나 골골거리게, 나도 빨리 늙었으면 좋겠다. 확 늙어버리면, 따 같은 건 당할 일도 없겠지. 아니 마흔살만 되어도, 서른살, 아니 스무살만 되어도 좋아지겠지. 스무살. 스무, 살. 스무살까지, 그런데 살아 있기나 할까? 제발, 살았으면 좋겠다. 높고, 원대한 꿈.

 

모아이와 나는 한 세트다. 한 세트로 당하고, 한 세트로 불려나가고, 한 세트로 맞는다. 맞는 장소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교실에서, 화장실에서, 옥상에서, 바로 이 벌판에서 매일 맞는다. 언제부턴가, 모아이도 나도 그것을 일과로 여기게 되었다. 그다지 좋은 일과라곤 할 수 없지만, 그 외의 일과를 가져본 적이 없어 좋다 싫다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사는 게 이런 것 같다. 나는 열다섯인데, 또 열여섯인 모아이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한 세트로 맞는다고 해서, 꼭 그런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모아이는 말이 없다. 다른 학교를 다니다 1년을 꿇고 이 학교로 왔다.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다. 예전 학교에서도 따였는지 어떤지, 아무튼 말이 없다. 별명을 붙여준 건 담임이다. 이야, 완전 이 느낌이네. 그리고 담임이 남태평양 어느 섬에 있다는 수수께끼의 석상(石像) 사진을 보여주었다. 다들 넘어갔다. 그러니까, 완전 그 느낌이었던 것이다. 석상의 이름은 모아이였다. 모아이는, 그래서 모아이가 되었다. 언제 들어도, 공교로운 이름이다.

 

저 정도면 하나의 신앙 아니니? 여자애 하나가 그런 소릴 하는 걸 엿들은 적도 있다. 나로선 뭐라 할 처지가 못되지만, 그만큼 모아이는 초자연의 신비- 거대 얼굴이다. 그렇다고 모아이가 얼굴 때문에 따를 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은 돈 때문에, 또 말이 없고, 따 체질인데다 초능력을 가진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초능력. 그러니까 언젠가 그런 프로가 화제였는데, 스푼을 문질러 엿처럼 구부리는 초능력자가 방송에 나왔다. 집중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장, 구부리기에 성공했다는 제보가 줄을 이었으므로, 다음날 교실은 시끌벅적 그 자체였다. 야, 너도 한번 해봐. 누군가 모아이에게 스푼을 내민 게 화근이었다. 오오. 스푼이 정말 엿처럼 구부러졌다. 야, 일루 와봐. 그리고 치수가 모아이를 불렀다. 다시 한번 해봐. 다시 한번, 모아이는 스푼을 구부렸다.

 

한동안 치수는 심심찮게 모아이를 불러냈다. 너 와보래. 말을 전한 것은 언제나 나였다. 장소는 주로 치수패가 모이는 창고 뒤였고, 모아이는 또다시 스푼을 구부렸다. 우와 캡숑. 이따금 밤에도 호출이 있었다. 쎄븐일레븐 옆의 공터에서, 치수패와 패들이 어울리는 여자애들 앞에서 다시 모아이는 스푼을 구부려야 했다. 꺄아. 더 큰 건 안돼? 더 큰 건, 되지 않았다. 모아이의 초능력은 그래서 점점 시들한 것이 되었다. 씨발 니 좆이나 구부려. 여자애 하나가 하루는 그렇게 말했다. 혹시 너 돈 좀 있냐? 빗질을 하며 치수가 물었다. 공교롭게도, 모아이의 주머니엔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혼자 오면 어떡해? 다음날 창고로 나가자 치수가 찍, 침을 뱉으며 말했다. 너 와보…라는데. 와보래와 와보라는데가 확실히 다르듯, 호출의 목적도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한 세트가 되었다.

 

함께 맞고 함께 불려다니지만, 모아이와 나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오라는데, 와보라는데. 서로의 교실을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나누는 호출의 변이 대화의 전부라면 전부였다. 모아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처음엔 사실 그지없이 기쁜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친구가 생긴 느낌이랄까, 그랬다. 그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단짝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세트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새낀 보면 볼수록 이상하네. 무표정한- 초자연의 신비, 거대 얼굴이 아무래도 치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넌 감정이 없냐? 그리고 툭툭, 모아이를 때렸는데 역시나 모아이의 얼굴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거참 이상하다니까. 간질여도 보고 별짓을 다하더니 이윽고 놈의 변태끼가 발동했다. 키득키득, 패거리들이 웃기 시작했다. 야, 못! 모아이의 하의를 벗긴 놈이 나에게 얘기했다. 빨아. 처음엔 망설였는데 두어 차례 눈에서 불똥이 튀고 나자 나도 모르게 놈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하지만 실은 입에 물고만 있었을 뿐이다). 눈물을 흘린 것은 오히려 나였다. 초자연의 신비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자 이윽고 놈이 어깨를 으쓱했다. 관둬. 포기다 포기.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한 세트이긴 해도, 그랬다.

 

못. 나는 못이다. 그렇게 불린다. 쿵 쿵. 치수가 내 머릴 때릴 때 멀리서 보면 꼭 못이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야, 못! 하면 이상하지만, 그 외의 별명은 가져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좋거나 싫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지 않는다. 쿵 쿵. 하지만 정말 못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벽에 기댄 채 머리를 맞다보면, 절대로 그렇다, 기도한다. 다음엔 못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못이라면, 일생에 한번만 맞으면 그만일 테니까.

 

아닌게아니라 두개골에 금이 간 적도 있었다. 날아온 돌에 맞았어요, 엑스레이를 찍고, 돌에 맞은 거라니까요, 인화된 엑스레이를 보면서도, 돌이 확실해요-라고 주장했다. 의사가 지적한 부위에는 정말 못이라도 박힌 듯 살짝 금이 가 있었다. 두개골이 아물 때까지 치수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언어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것은, 말하자면 그때부터다.

 

나는 따의 전형이다. 허약하고, 겁이 많고, 눈에 띄지 않고, 공부도 못한다.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다. 없을 수,밖에. 무관심, 무신경, 무감각, 무소유, 그리고 평소엔 박테리아처럼 숨어 있다가 야, 못! 소리에 반응한다. 화들짝, 절로 몸이 움직인다. 치수의 음성일 경우엔 더더욱이다. 그래서 더 쪽팔린다. 모아이와도, 그래서 다르다. 모아이가 이른바 물주(物主)에 가깝다면, 나는 확실히 따까리라 말할 수 있다. 더 하위(下位)다. 예전엔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그래서 딱히 인간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대충, 못과 인간의 중간 정도라고나 할까. 핑. 그래도 가끔 눈물이 도는 걸로 봐서, 뭐 그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따는 이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유 같은 건 없다. 치수와 한반이 되고, 치수의 눈에 띈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우선 맞았다. 팔 올려. 그리고 겨드랑이 밑을 몇십번이고 때리는 것이었다. 얼굴은 깨끗한데 끙끙 며칠을 앓을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싹처럼 돋아 있던 인생의 날개 같은 것이, 그때 꺾여버린 느낌이었다. 하얀 깃털이나 솜털 같은 것이, 그래서 맞을 때마다 보풀처럼 떨어졌다. 그런, 기분이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니, 걸 수 없었다. 나는 오로지 치수의 독점, 꼬붕, 밥, 오르골, MP3플레이어, 경보기, 애완곤충, 핸드백, 쌘드백이 되었다. 아무리 맞아도 아무렇지 않게 되기까지는 꼬박 일년이 걸렸다. 어느 순간,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더 나빠질 게 없다고 느끼는 순간, 불안이란 감정 자체가 사라진 것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삶이 그래서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심하게 맞은 날엔 얼굴에도 상처가 생겼지만, 나의 대답은 일관된 것이었다. 싸웠니? 넘어졌어. 처음엔 보복의 두려움 때문에, 또 나중엔 더 나빠질까봐 입을 다물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니? 아무렇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삶이 그런 식으로 이어졌지만, 아무렇지 않다고 할 수 없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손톱이었다.

 

열 손가락의 손톱 모두가 절반가량 닳아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물어, 뜯어서였다. 죽어버려. 치수를 죽이고 싶을 때마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손톱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아무리 아파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손톱의 그런 면이 언제나 나를 안심시켰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이 대개 그렇듯, 나의 부모도 자식의 손톱검사 같은 건 한번도 하지 않았다. 너 손이 왜 이러냐? 깨진 사금파리 같은 손톱을 발견한 건 오히려 치수였다. 으응, 원래 그래,라고 둘러댔는데, 찍 침을 뱉으며 속삭였다. 너, 나 죽이고 싶냐?

 

어떻게, 알았을까?

 

그후로 놈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더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다. 치수에 관해서라면, 노트 백 권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할 말이 많거나, 아예 할 말이 없거나, 그렇다.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울 만큼 악(惡)하고, 존재 자체를 의심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하다. 모든 면에서, 그렇다. 입밖에 꺼낸 말은 언제든 그대로 해버린다. 머릴 다 뽑아버린다, 그러면 정말 머리칼을 다 뽑아버린다. 칼로 배를 딴다, 그러면 정말로 배를 딴다(빨리 병원에 실려가 죽지 않았다). 죽인다, 그러면 정말로 죽일 것이란 생각이, 그래서 누구나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누구나, 치수의 말을 들었다.

 

고교의 일진들도 치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폭력조직의 실력자들이 이미 치수를 점찍었다는 풍문도 설득력이 있었다. 뭐랄까, 무서울 정도로 월등한 면이 확실히 있기 때문이다. 저 많은 걸 언제 다 익히고 배웠을까, 나로선 납득이 가지 않았다. 완력과 폭력, 기만, 조장, 장악, 이용, 유지, 회유, 진압, 설득, 친화, 조종… 그러니까 악하다는 단순한 말로는 치수를 설명할 수 없다. 이를테면 놈이 자상한 농담을 건네거나 친구 그 자체인 뉘앙스로 안부를 물어올 때가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때마다 핑, 눈물이 도는 것을 나도 어쩌지 못한다. 무서운 재능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세상을 끌고 나가는 건 2%의 인간이다.

 

입버릇처럼 담임은 그런 얘길 했는데, 역시나,라는 생각이다. 치수를 보면, 확실히 그런 인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출마를 하고, 연설을 하고, 사람을 뽑고, 룰을 정하는- 좋다, 납득한다. 이 많은 인간들을 누군가는 움직여야 하니까. 수긍한다, 나머지 98%의 인간이 속거나, 고분고분하거나,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거나- 그것은 또 그 자체로 세상의 동력이니까. 문제는 바로 나 같은 인간이다. 나와, 모아이 같은 인간이다. 도대체가

 

데이터가 없다. 생명력도 없고, 동력도 아니다. 누락도 아니고, 소외도 아니다. 어떤 표현도 어떤 동의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살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치수의 패거리는 모두 다섯이다. 어중이떠중이를 합치면 수십명은 되겠지만, 이 다섯이 패거리의 중심이다. 실은 오래전 국가의 모 기관에서 개와 인간을 결합, 인간의 전투력을 극대화하는 실험을 했다. 무슨 SF도 아니고 그런 실험이 성공할 리 없었다. 연구기관은 문을 닫고, 남은 건 결국 개와 인간의 잡종아기들이었다. 실패작들은 여기저기 싼값으로 팔려나갔다.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에 걸맞은 바보 부모들이 이 잡종들을 오냐오냐 길러왔다-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더러운 놈들이다.

 

여자애들은 그보다 더하다. 원래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태어난 분들인데, 어찌어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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