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해진 趙海珍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이 있음.

glala95@hanmail.net

 

 

 

하나의 숨

 

 

그 전화를 받기 전, 나는 부암동에 있는 퓨전식당에서 기현씨와 함께 주문한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에스엔에스에 빈도 높게 올라오는 식당이라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올 수 있는 곳이라고, 기현씨는 은근히 칭찬을 바라는 소년처럼 싱긋 웃으며 말하고는 내 컵에 물을 따랐다. 물 따르는 소리가 둥글고 투명했다. 그가 우리 각자의 집에서 거리가 먼 유명 식당에 굳이 예약까지 해놓은 이유라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즈음 몇번의 시도 끝에 김포에 들어서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그는 내년 여름쯤에 내가 가구와 가전제품, 그리고 여러 생활용품을 장만하여 자신과 함께 그 아파트로 입주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상할 건 없었다. 비혼주의자가 아닌 삼십대 중반의 여자와 남자가 소개로 만나 세 계절 동안 데이트를 해왔다면 그 상식적인 귀결이 결혼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휴대전화가 울린 건 애피타이저로 게살수프가 나온 직후였다. 휴대전화 액정에 뜬 하나의 이름을 본 순간, 나는 조금 의아하긴 했다. 하나는 뭐랄까, 오해로 야단을 맞거나 피해를 입어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다가 그 오해가 풀리면 그제야 뚱한 얼굴로 아니랬잖아요,라고 투덜대고 말 학생이었다. 아무리 용건이 분명하대도 교사가 퇴근한 시간에 전화를 거는 행동은 내가 파악한 하나의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기현씨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 휴대전화를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하나와 통화를 길게 할 것 같지는 않아 외투는 의자에 그대로 둔 채였다.

하나는 잔업을 끝내고 회사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고 매일 같은 길을 걷는 게 때로는 심심해서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곤 하는데 오늘 저녁엔 내가 당첨되었다고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랬구나, 나는 대답했다. 나는 하나가 하려는 말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 내용도 짐작됐지만, 가능한 한 그 화제에서 비켜나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런 화제에 이미 조금은 질려 있었다. 1학기 기말고사 이후부터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중소 규모의 여러 회사에 취업이 되어 학교를 떠난 학생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은 내게 전화를 걸어와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거나 다른 회사를 알아봐줄 수 없는지 직접적으로 묻곤 했다. 그럴 때 당장 때려치우고 학교로 돌아오라고 멋지게 말하는 건 내 몫이 될 수 없었다. 일단 학생들이 흡족해할 만한 회사가 희소했고, 설혹 조건이 맞는 새로운 회사를 찾는다 해도 단기이력은 재취업에 방해가 되곤 했으므로 입사가 보장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그때 나는 학교 일에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 무렵 학교로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은 나로선 노동의 열도랄지 밀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아니, 내 인격으로는 불가능했다. 평소에는 학폭위 구성이니 전교생의 전출입 현황조사니 하는 피로한 업무만 맡기다가도 회식 날이면 다음 계약 때는 정교사도 가능할 거라고 교사들마다 돌아가면서 말해놓고선 계약해지라니, 사람을 쓰라리게 하는 해고방식이었다. 여러 고등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전전하던 나는 삼년 전 그 학교에 기간제교사로 채용된 뒤부터는 일년 단위씩 재계약을 해온 상태였다.

하나와 연결된 휴대전화 저편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종종 퇴근시간 넘어서도 잔업을 시키는 공장, 공장에서 일정 거리를 걸어야 나오는 기숙사, 기숙사로 이어지는 길 양쪽에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그 풀잎들 사이에서 통신하는 벌레들…… 그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유추한 범위는 그 정도였다. 하나가 일하는 공장이 휴대전화가 유일한 낙인 황량한 곳에 위치했다는 것이나 공장에서 기숙사를 오가는 길에는 환한 조명을 밝힌 상점이 전무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환경이 열아홉살 하나에게는 테두리가 투명한 감옥과 다를 것 없다는 데까지는 생각을 확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나가 내게 절박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날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때는 하나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쓸모가 없어진 시점에 도착한 아주 크고 무거운 수하물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뒤늦게 내게 온 그 이야기를 나는 내 머릿속 창고에 정연하게 보관할 수는 없었다.

“샘, 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안 될까요?”

잦아들었던 귀뚜라미 소리가 또다시 크게 들려온다고 생각한 순간, 한동안 말이 없던 하나가 그렇게 불쑥 물었다. 난감했다. 학교를 떠난 학생들한테서 늘 듣는 말이고 예상한 질문인데도 평소보다 더 난감했던 건 사실이다. 하나는 이미 회사 적응에 실패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여름방학 때 취업됐던 그 의료기구 만드는 공장 말이야, 벌써 잊었어? 너 거기서도 고작 한달 일했잖아. 한 회사에서 적어도 일년은 이력을 쌓아야 더 조건 좋은 데로 갈 수 있다는 거, 하나야, 너도 알잖아.”

“……”

“남의 돈 받는 게 원래 쉽지 않아. 그건 남들도 다 똑같아, 하나야.”

“……”

“하나야, 좀 참아봐.”

“……”

하나는 조용했다.

다음 달에 공장으로 현장점검을 나갈 테니 그때 보자고 말하려는 순간, 하나가 성의 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다 알아들었다고 연이어 대답했다. 자신의 일에 곧잘 싫증을 내는 학생에게라면 해줄 만한 충고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나는 이내 단념했다. 예민한 십대와 마음을 다쳐가며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고, 더욱이 하나에게 이제 나는 고작 두달짜리 선생이었다.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 뒤 통화를 종료하고 식당 쪽으로 돌아서자, 그새 여러개의 접시가 놓인 테이블과 흐뭇한 얼굴로 테이블을 내려다보는 기현씨가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에서 떠나가는 기차의 식당칸을 건너다보는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고, 먼 나라의 입국 심사대 앞에 혼자 선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식당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열리면서 딸랑, 하는 방울소리가 울려 퍼졌는데 적어도 내 기억 속에선 명료한 금속음이 아니라 메아리가 번지는 몇겹의 엷은 소리였다.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잔, 잔, 잔, 울리는 그 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중에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식당 안이 텅 빈 암흑이 된다거나 내가 그 암흑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상상이 이어지리란 걸 짐작도 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

 

그날 이후 하나에게서는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고, 나 역시 하나와 통화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무겁게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기현씨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오고 가길 원했지만 나는 그에게 내 얄팍한 통장과 예정된 실업을 알리는 것이 주저됐고, 동시에 그 주저가 견딜 수 없이 불편해지곤 했다. 하나와 통화하고 한달여 뒤 교무실에서 그 전화를 받으면서도 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을 도무지 해석할 수 없었고 그 사고의 진동이랄지 파고를 현실적으로 감각하지도 못했다. 그때 나는 교육청에서 내려온 서류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은 채 휴대전화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오후 수업을 모두 취소하고는 학년부장 선생의 차를 타고 바로 평택에 있는 병원으로 내려갔지만 그날은 하나의 응급수술 직후여서 하나 어머니만 겨우 만나고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자꾸만 밀려들었으므로 서울을 떠날 수 없었다. 하나가 취업하면서 그 회사로부터 받은 계약서니 협약서를 검토해야 했고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적용범위를 알아봐야 했으며, 교감이나 교장뿐 아니라 교육부와 노동부에도 사고경위를 보고해야 했다. 통곡하듯 우는 학생들을 달래는 일과 전교생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성금을 관리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나흘 뒤에야 나는 다시 평택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번엔 나 혼자였다. 하나 어머니가 병원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먼저 알아보고는 다가와 반겨주었다. 안으로 말려 있는 사람, 처음 봤을 때처럼 나는 그녀에게서 그런 인상을 받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이 손끝으로 내리누르고 있는 사람인 듯 어깨가 미묘한 곡선으로 굽은데다 뒷목이 그 어깨에 파묻혀서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를 따라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면회시간에 맞춰 중환자실로 들어갔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는 하나를 십분 정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응급수술 이후에도 출혈이 있었다는 하나의 뇌는 회복되지 못했다. 하나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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