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은우 鄭殷宇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herevoice@naver.com

 

 

 

하비의 책

 

 

아주는 하비의 스마트폰 보안 패턴을 단번에 풀었다. 패턴은 단순했다. 날렵하고 가볍게 브이 자를 그리던 하비의 검지. 똑똑히 기억했다. 정작 하비의 부모님 연락처를 찾느라 한참 걸렸다. 하비의 아버지는 전화번호부에 본명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아주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처럼. 수술 동의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직계가족뿐이었다. 전화 한통 덕분에 하비는 무사히 수술실로 올라갔다. 병원 역시 직계가족에게만 출입을 허락했다. 아주는 병원 앞 주차장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병원 인근 상가들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지고 가로등만 남아 번득일 즈음 차 한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둘이었다. 그들이 쓴 마스크만 또렷하게 보였다. 아주는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저, 전화 드렸던.” 그녀는 우선 명함부터 내밀었다. “은영이 친구예요.”

하비의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명함을 받았다. 그는 아주의 이름을 소리 내서 읽었다. 최현주씨? 아주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하비의 어머니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예요? 아주는 그들을 응급실 입구로 데려갔다.

직계가족이라도 한명만 드나들 수 있었다. 아주는 바깥에서 하비의 아버지와 함께 기다리기로 했다. 유리문 너머로 열을 재고 명부를 작성하는 하비의 어머니가 보였다. 아주는 하비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다. 가는 눈매와 끝이 올라간 눈썹이. 자칫 사납고 예민해 보이기 쉬운 인상이었다. 하비는 누구 앞에서든 볼을 한껏 끌어올리며 열심히 웃곤 했다. 하비의 아버지가 넌지시 물었다.

“범인은 잡혔나?”

“네,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래요.” 범인은 바로 앞 빌라에 사는 남자였다. 그는 하비나 아주와는 아무 일면식도 없었다. “실수였다고.”

하비의 아버지가 혀를 찼다. 사람이 어떻게 실수로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놔? 경찰은 범인을 바로 경찰서로 연행하는 대신 병원부터 데려왔다. 아주는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전해 들었다. 범인은 술에 취했다. 그는 홧김에 주차 금지용 조형물에 올려둔 벽돌을 던지다가 손목을 삐었다. 하비는 언덕을 내려가던 도중 그 벽돌에 뒤통수를 맞았다. 범인은 도망치다가 언덕에서 굴러 도로 한복판으로 떨어졌다. 용케 교통사고는 면했다. 가벼운 찰과상과 염좌뿐이었다. 범인은 운이 좋았다.

하비의 아버지가 탄식했다. 우리 애는 왜 이렇게 복이 없나. 아주는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하비의 아버지가 멋쩍게 웃었다.

“세무사가 그렇게 돈을 잘 번다던데. 남자친구가 좋아하겠네.”

“아.” 아주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는 세무사가 아니라 세무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원이었다. 그러나 정정한들 괜히 분위기만 어색해질 터였다. “작년에 헤어졌어요.” 결별은 재작년이었지만 일부러 늦춰서 말했다.

“능력 있으니까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지.” 하비의 아버지는 숱이 얼마 안 남은 머리를 문질렀다. “우리 은영이는 만나는 사람 없나?”

“헤어졌다고 들었어요.” 아주는 대충 둘러댔다. 사실 하비에게 애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마 올해 초였나.”

“정말이지 요즘 애들은 너무 약아. 무직인 건 둘째 치더라도. 이게……”

하비의 아버지가 말끝을 흐렸다. 아주는 화단에 걸터앉았다. 수술이 시작된 지 두시간은 족히 지났으나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녀는 허리를 수그렸다. 하비의 코트가 어깨를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얇고 가벼운 홑겹 코트였다. 둘은 같은 코트를 샀다. 하비는 짙은 남색을, 아주는 검은색을 골랐으나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구별하기 어려웠다. 누군가가 아주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그만 들어가봐요. 아주는 고개를 들었다.

“기다릴 수 있어요.” 그녀는 하비의 아버지가 택시비라며 내미는 지폐를 한사코 사양했다. “기다려야 해요.” 적어도 하비의 수술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는 기다리고 싶었다. “저, 은영이 코트에 제 사무실 열쇠가 있어서.” 허술한 핑계였다.

하비의 아버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몇분 후 하비의 어머니가 거무스름한 옷 뭉치를 들고 나왔다. 둘둘 말린 검은 코트를 털자 열쇠와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핏자국은 보이지 않았으나 유난히 축축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아주는 코트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하비의 어머니는 두 팔로 코트를 단단히 그러안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고마워요.

그나마 택시비를 받지 않는 것이 아주의 최선이었다. 아주는 하비의 코트를 걸친 채 하비가 없는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탔다. 잠깐 눈이라도 붙일 요량으로 숨을 가다듬었으나 도리어 정신만 더 또렷해졌다. 버스가 병원을 우회해 시내로 향했다. 아주는 눈을 감았다. 돌아가서 마주할 풍경이 눈에 선했다. 프라이팬 위에서 차갑게 식어버린 소시지와 김이 빠진 샴페인, 그리고 환하게 불이 켜져 있을 하비의 방. 하비의 책상과 방바닥에 쌓여 있을 책들이 떠올랐다. 하비 없이 하비의 책만 있는 하비의 방. 아주의 손이 코트 주머니 속에 든 하비의 스마트폰을 쥐었다. 차가웠다.

 

올해 초 아주가 근무하는 세무사무소는 예상치 못한 호황에 시달렸다. 원체 1월은 부가가치세 신고로 바쁜 달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난히 바빴다. 부가가치세 신고를 마친 중소기업들 태반이 청산을 신고했다. 아주는 지난 몇년간 담당했던 중소기업들의 매출 데이터를 삭제하고 파쇄기 옆에 폐기해야 할 서류들을 쌓아두었다. 파쇄기가 망가지지 않아서 다행일 정도였다. 작년까지는 파쇄된 종이 부스러기가 아깝다며 비닐봉지에 담아가는 직원도 있었다. 집에서 기르는 햄스터가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하비가 일하는 여행사도 그중 하나였다. 나름 강남에 주소를 두고 있었으나 몇년째 소규모 스타트업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직원은 사장을 포함해 다섯뿐이었다. 하비는 팸플릿이나 SNS에 배포할 광고 제작뿐 아니라 홈페이지 관리까지 도맡았다. 열평 남짓한 사무실은 사면이 불투명한 유리벽이었다. 하비의 말에 따르면 한층에 그런 사무실이 족히 열개는 넘는다고 했다. 그 사무실에 입주한 회사들의 업종이나 취지는 서로 달랐으나 비슷한 처지였다. 대부분 청년 벤처 사업가들이었다. 그들은 버틸 뿌리도 없이 줄지어 선 도미노 패 같았다. 작년 말부터 방역 문제로 공용 라운지가 폐쇄되었고 사무실도 하나둘씩 비워졌다. 하비가 다니는 여행사도 1월을 무사히 넘기지 못했다. 하비는 결국 휴가 마지막 날 실직자가 되었다.

“올해 연차까지 끌어다가 쉬길 잘했지.” 그녀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우리 사장님이 망할 줄 알았어.”

아주는 간신히 부츠를 벗은 후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이 찼다. 입춘이라는 말이 무색했다. 그녀는 법랑 냄비를 꺼내서 우유를 부었다. 푸른 가스 불이 냄비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희멀건 우유에 조그만 거품이 일 때까지 부엌은 조용했다. 아주가 가스 불을 한단 줄였다.

“몇년 일했지?”

“오년 조금 안 됐네.” 하비가 선반을 뒤지면서 대답했다. “우리 같은 여행사치고는 오래 버틴 거지. 사장님이 퇴직금은 챙겨준대.”

아주는 말없이 초콜릿 파우더를 평소 넣는 양보다 두 숟가락 더 넣었다. 단내가 부엌 구석까지 고르게 퍼졌다. 그녀는 시린 발바닥을 종아리에 대고 비비면서 냄비를 응시했다. 초콜릿 파우더가 엉기지 않고 다 녹을 즈음 가스 불을 껐다. 잔에 나누어 담자 하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핫초코에 칠리 파우더를 뿌렸다. 아주는 하비가 멕시코에서는 이렇게 핫초코를 마신다고 말했을 때 쉽게 믿지 못했다. 핫초코는 혀가 녹을 만큼 달고 코끝이 찡할 정도로 매웠다. 그러나 날씨가 서늘해지고 기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때면 아주도 자연스레 이 맛을 떠올리곤 했다.

하비가 잔을 내려놓았다.

“잘됐어. 계획한 것도 있고.”

“뭔데?”

계획을 세우는 건 하비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아주는 의자를 바투 당겨 앉았다. 하비는 요가나 외국어를 배우겠다는 흔한 목표부터 한옥을 짓는다거나 잠수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특이한 목표까지 가리지 않고 정한 후 계획을 세웠다.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지 아무리 멀고 허황한 목표라도 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왜 그런 목표를 정했느냐고 물어보면 하비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서. 그러나 하비의 계획 중 다수는 실행을 앞둔 채 중단되기 일쑤였다. 하비는 단념한 즉시 즐겨찾기 목록과 엑셀로 정리한 계획표를 삭제했다. 열심히 만든 모래성을 발로 차서 무너뜨리듯. 슬퍼하기는커녕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이내 다른 계획을 세웠다.

“아주야, 내 소원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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