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성숙 鄭成淑
1964년 전남 진도 출생. 2013년 『한국소설』로 등단. 소설집 『호미』가 있음.
suny1392@hanmail.net
하찮은 찔레꽃은 피고
애옹애옹! 애오-옹! 애옹애옹! 애오-옹! 새끼 고양이가 또 어미를 부른다. 이틀째다. 어미 고양이는 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건넌방의 만식씨가 잠이 깼는지 카악! 칵! 가래침 뱉는 소리를 내자 새끼 고양이가 잠잠해진다. 춘희씨가 머리맡에 놔뒀던 핸드폰을 열어 보니 2:35. 연락이 잘 되지 않아 걱정된다며 며느리가 사다 준 핸드폰은 잠 깬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다. 들에 갖고 나간들 전화를 걸거나 받을 일이 거의 없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그냥 밤에 잘 때 자리끼 놔두듯 머리맡에 둔다.
4월 말경에 대파를 심으려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춘희씨는 업은 아기 찾듯 허둥댔었다. 그것도 비라고 서너바가지 퍼붓고는 6월 중순이 되도록 비 소식이 없다. 가뭄에 콩 나듯 한다더니 정말로 콩이며 참깨가 오다가다 간혹 싹이 나 있었다. 더러는 싹이 나왔다가 말라 죽고.
춘희씨는 잠들기 전에도 잠이 깬 후에도 비 소식이 궁금했다. 열흘 동안의 날씨를 알 수 있다며 핸드폰으로 일기예보 보는 방법을 며느리가 가르쳐줬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영감탱이한테 묻는 수밖에. 영감탱이도 잠이 깬 것 같으니 건넌방 문을 열고 비 소식을 물어볼까 하다가 앓느니 죽지 싶다. 눈을 치뜨고 쯔쯔쯧! 혀를 차는 영감탱이 얼굴이 미리 보여 저절로 몸서리가 났다. 밝은 달밤보다 흐린 낮이 낫다는, 효도하는 자식보다 툴툴대는 서방이 좋다는 속담에 일면 수긍하면서도 자주 의구심이 드는 춘희씨다,
TV를 켠다 한들 일기예보를 해주는 시간도 아니다. 춘희씨는 불을 켠 후 전 지질 때 쓰려고 챙겨뒀던 달력을 공책 삼아 연필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입으로 외면서 제초제 살충제를 쓰고 또 쓴다. 쓴다기보다 글자를 그리는 셈이다. 박만식이라는 글자를 그린다. 영감탱이 이름이다. 박재우 박재석 박재철은 세 아들, 김춘희는 예전부터 아는 글자라 수월하게 써진다. 안영미는 며느리 이름이다. 잠이 일찍 깬 날마다 손가락에 힘을 줘서 쓰고 써도 눈에 익지 않고 낯설기만 하다. 땡볕을 등에 지고 콩밭 매는 일보다 고되다.
춘희씨가 대파밭 고랑에 엎드려 풀을 매는데 송충이처럼 생긴 파밤나방 벌레가 급하게 기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춘희씨가 호미를 든 채 구부정하게 엎드린 상태로 가만히 대파 잎들을 살펴보니 크고 작은 파밤나방 벌레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대파 잎을 갉아 먹고 있다. 파밤나방 벌레는 날이 더운 한낮에는 흙이나 진 잎 속에 숨어 있다가 서늘해지는 밤과 새벽에 기어 나와서 대파 잎을 먹었다. 춘희씨는 풀을 뽑으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엄지와 검지로 벌레를 눌러 죽여보지만 개체수가 많아 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싶었다. 굴파리 벌레도 종이처럼 얇은 대파 잎 거죽에 무명실 늘어놓듯 굴을 뚫어가며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춘희씨는 밭을 매던 곳을 표시 삼아 밭고랑에 호미를 그대로 놔두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풀보다 벌레를 먼저 없애야겠기에 남편한테 농약을 챙겨주라고 했다. 만식씨는 창고에 사다 놓은 것이 있으니 갖고 가서 쓰라고 했다. 누런 박스 안에 허연 비닐봉지에 들어 있다고. 볼가지가 많으면 농약을 조금 더 독하게 타서 하란다. 영감탱이는 방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소리쳐 일렀다. 영감탱이는 간이 부어서인지 썩어가는 솔방울 낯빛인데다 위에 염증까지 생겨 쓸개 씹은 인상으로 시난고난 병치레하면서도 목소리만은 짱짱하다.
“볼가지 약이 맞으요? 저번에 했던 약하고 다른데 말이요!”
카악! 칵! 영감탱이가 가래침을 뱉어냈다. 군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이다.
재작년까지 농약 칠 때만큼은 만식씨가 경운기를 끌고 와서 농약 줄을 연결해줬다. 물에 섞은 농약이 나올 수 있게 경운기 시동을 걸어주면 춘희씨가 농약대를 들고 뿌렸다. 새벽에 나와 별문제 없이 시작하면 해뜨기 전에 농약 30말을 다 뿌릴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립선까지 고장 나서 오줌을 잘 누지 못하게 된 작년부터 만식씨는 방 안에서 농사를 지었다.
등허리에는 농약 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을 담은 비닐봉지는 오른손에 들고 춘희씨는 뛰다시피 걸었다. 춘희씨 손에 들린 허연 비닐봉지가 춘희씨 보폭만큼 앞뒤로 심하게 흔들거렸다. 분무기를 짊어지고 한통씩 30번을 뿌려야 하는 춘희씨는 마음이 급했다. 파밤나방 벌레들이 대파 잎에 들러붙어 있는 오전에 농약을 뿌리는 게 효과적이다. 게다가 햇볕이 사나워지기 전에 농약을 쳐야 사람이 덜 지쳤다.
집을 나서 10여분을 걸어 산 밑에 있는 밭에 도착하자 집 안에서 맡아졌던 백합 향기가 춘희씨를 따라온 것 같았다. 수년 전에 마당 한쪽 수돗가 옆에 백합 뿌리 한덩어리를 묻어놨는데 이제는 식구가 늘어서, 이맘때는 대문 밖에서도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요망한 것이 먼 데까지 따라왔네.”
마음이 급한 와중에도 꽃향기 속으로 들어온 춘희씨가 싫지 않은 한마디를 뱉었다.
춘희씨는 고무통에 미리 받아둔 물을 떠서 농약 두가지를 섞은 후 분무기를 짊어지고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어깻죽지를 찍어 누르는 것 같다. 춘희씨가 농약을 뿌리는 동안, 밭 주변 곳곳에 하얀 무더기로 핀 찔레꽃들이 사방의 벌을 부르며 춘희씨 하는 양을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찔레꽃의 향내가 떼 지어 합창하듯 들판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춘희씨가 밭을 맬 때는 풀만 보였는데 농약을 치면서 보니 새삼스럽게 벌레 천지였다. 경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짐승 쫓는 사냥꾼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더니 영락없다. 춘희씨는 아주 찬찬하고 꼼꼼하게 농약을 뿌렸다. 농약을 5통까지 뿌리고 나니 햇볕이 따가워 벌레가 은신처로 숨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기력이 다 떨어졌다. 앞으로 20번은 넘게 농약통을 더 짊어져야겠지만 때려죽인다 해도 더이상 무거운 분무기를 짊어질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춘희씨는 해거름 때 나와서 대여섯통, 다음 날 새벽에 또 몇통이든 힘이 닿는 대로 뿌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춘희씨의 조바심을 날씨는 헤아려주지 않았다. 오후에도 다음 날 새벽에도 바람이 거칠게 불어서 농약 치는 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 날 이른 아침에 춘희씨는 백합꽃 향기의 배웅을 받으며 빈 분무기를 짊어지고 바쁘게 집을 나섰다. 춘희씨는 대파밭에 도착하기 전, 먼발치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농약을 뿌렸던 곳의 대파와 뿌리지 못한 곳의 색깔이 확연히 달랐다. 농약을 뿌렸던 곳의 대파 잎이 익어가는 살구색, 그러니까 풀에 제초제를 뿌리면 서서히 죽어갈 때 보이는 색깔이었다. 춘희씨는 살충제 아닌 제초제를 설렁설렁도 아니고 아주 꼼꼼하게 뿌렸던 것이다. 작년 이맘때의 실수였다.
초여름의 열기가 마른 흙마저 데우는 한낮에는 마을회관에 나이 많은 여자들이 모였다. 에어컨을 틀어놓고 한숨 자거나 쉴 때면 동네 소식들이 천장에서 그네도 타고 널뛰기도 했다. 그런 무리에 끼는 것이 춘희씨 구미에는 맞지 않았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고 늙은 여자들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자식 자랑 아니면 돈을 물 쓰듯 하는 며느리 걱정이 대부분이다. 춘희씨 생각에, 남의 흉을 만들어내는 공장이 마을회관이었다. 남의 흉은 앞에 두고 내 흉은 뒤에 둔다고 하더라도 입에 도끼를 물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가 자라목이 되느니 속 편하게 일감 하나라도 축내는 게 상책이었다. 나이 칠십이 넘도록 춘희씨는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었다. 어느 한해 대파 농사가 장원이었던 적이 있긴 하다.
진즉 뿌려놓은 참깨와 콩이 제대로 싹을 내지 못해서 따로 모종을 키워 다시 심어야 할 성싶었다. 춘희씨는 그늘진 창고 앞에 앉아서 구멍이 128개인 플라스틱 포트에 상토를 담았다. 상토를 담은 포트를 차곡차곡 잰 뒤에 맨 위쪽 포트를 꽉꽉 눌렀다. 그러자 상토를 담은 플라스틱 포트에는 씨앗을 넣을 수 있는 넓은 구멍이 생겼다. 참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