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학벌사회와 서울대 개혁

 

 

안상헌

충북대 철학과 교수 ahnsah@chungbuk.ac.kr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hknsong@snu.ac.kr

김상봉

철학자·‘학벌 없는 사회’ 운영위원 oudeis@daum.net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사회 jykim@hanshin.ac.kr

 

때: 2002년 1월 9일

곳: 창작과비평사 회의실

 

 

김종엽 쌀쌀한 겨울 날씨에 창비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것, 깊이 감사드립니다. 먼저 사회자로서 오늘 좌담의 참석자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소개가 약간 길어질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오늘의 주제인 학벌사회와 서울대 개혁에 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좌담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좌담자 인선에 나름대로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체제는 매우 복잡합니다. 국립과 사립이 혼재하며 이에 따라 입장차이도 크고 이해관계의 분할과 대립도 심하며, 여기에 수도권에 과도하게 집중된 사회발전 과정으로 인해 생긴 수도권대학과 지방대학 간의 입장차이와 대립이 겹쳐 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이런 점을 고려하여 토론자들을 모셨습니다. 각자가 처한 입장으로 인해 좁아질 수 있는 전망을 서로 부딪쳐봄으로써 더 나은 논의를 전개해보자는 뜻이지요.

먼저 사회자인 저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서울대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모두 마쳤고, 지금 수도권 사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안상헌 선생님은 외국어대를 나온 뒤 서울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 지방 국립대학에서 재직하고 계십니다. 김상봉 선생님은 학부와 석사과정을 연세대에서 마치고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리스도신학대 재직중에 비리재단에 의해서 해임되었으며, 지금 ‘학벌 없는 사회’ 모임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송호근 선생님은 서울대의 학부와 석사과정을 거쳐 육사에서 교수로 재직하다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서울대에 재직하고 계십니다. 1차적으로 고려한 것은 아닌데 모셔놓고 보니 안선생님과 김선생님은 철학을 전공했고, 송선생님과 저는 사회학을 전공했네요. 아마 오늘 좌담이 철학과 사회학, 각각의 접근방식간의 대화로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安相憲  서울대가 학벌 네트워크의 힘에 기대어 대외적인 기득권이나 명성을 유지해왔고, 그러다보니 결국 대학의 본래적인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데에는 매우 태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安相憲
서울대가 학벌 네트워크의 힘에 기대어 대외적인 기득권이나 명성을 유지해왔고, 그러다보니 결국 대학의 본래적인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데에는 매우 태만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우리들이 오늘 다룰 주제인 학벌사회와 서울대 개혁 문제의 윤곽을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학력사회이며, 더 나아가 학벌사회의 성격이 아주 강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이런 학벌문제가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사회 전체의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창비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기획한 오늘의 좌담주제에 대해, 몇몇 일간지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신년기획 등으로 다루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학벌문제의 경우 그 꼭지점에 서울대가 있기에 서울대 개혁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학벌사회와 서울대 사이의 깊은 연관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문제는 학문정책 문제라든가, 대학의 통치체제(governance) 문제 같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울대 문제가 학벌문제와 등치되기는 어렵다는 거지요. 다시 말하자면 학력과 학벌, 그리고 서울대 문제는 연장선상에 있지만 일정한 위상차이를 가진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학력사회의 특성과 학력과 학벌의 연계 문제를 먼저 논의하고 이어서 서울대 문제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학력주의는 근대사회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만큼, 사회학자인 송선생님이 먼저 학력사회의 구조적인 특질 그리고 그것과 학벌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지요.

 

宋虎根  서울대가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들여 교육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성적·지역적·계층적으로 안배된 다양한 형태의 자질을 갖춘 학생들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宋虎根
서울대가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들여 교육시키는 기관이 아니라, 성적·지역적·계층적으로 안배된 다양한 형태의 자질을 갖춘 학생들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근대의 산물, 학력주의

 

송호근 글쎄요, 저는 서울대 재직중이라 이 좌담에서 아무래도 방어적인 입장이 되기 십상일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서울대에 대한 비판이 많이 제기되었을 때 “너무 그러지 마라”란 글을 좀 썼다가 완전히 보수주의자로 찍혀 있어서, 저부터 이야기를 하라니 좀 껄끄럽네요.(웃음) 저는 학벌이 문제지, 근대사회와 더불어 형성된 학력주의 자체는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대사회는 아무래도 인적 자원과 지식, 기술을 가지고 경쟁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학력을 중시하는 풍토가 매우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학력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역사적인 중심국가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력주의가 특히 강한 유럽 선진국을 든다면 프랑스가 대표적일 테고, 영국도 알게 모르게 귀족주의와 학력주의가 깊이 결합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의 경우는 학력주의가 한국보다 훨씬 강하게 작용하는 사회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학력주의는 학력과 능력을 연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전제에 입각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도적으로 장기화되면 고착화 현상과 부조리가 생겨나며 학벌주의로 변해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프랑스처럼 관료사회를 장악하는 몇몇 학교가 생겨나고, 영국처럼 ‘옥스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엘리뜨군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미국 역시 ‘아이비리그’라는 동부지역의 엘리뜨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죠. 이런 엘리뜨 카르텔에 들어가는 데 학력이 가장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고 레스터 서로우(Lester Thurow)가 1975년에 진단했는데, 25년이 지난 이 싯점에서 그것은 더욱 강해진 것 같습니다.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중국·일본·한국 중에서 한국이 제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가 강하지 않은가 싶네요. 학력주의의 학벌주의로의 변형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기준이 비합리적인 준거인 연고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이 현상태의 문제로 보입니다. 사회자가 말씀하셨지만 변질된 학력 내지 학력이라는 공식적인 준거의 비공식적 전용으로 나타난 것이 학벌주의라면, 그같은 ‘전용’은 동시에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발전에너지의 ‘사적 전용’이기도 합니다.

 

金相奉  학벌은 돈이면서 권력이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부모나 형제, 자식의 삶에도 영향을 주니 대학서열에 따른 불평등이 사회 자체의 불평등보다 훨씬 정도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金相奉
학벌은 돈이면서 권력이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부모나 형제, 자식의 삶에도 영향을 주니 대학서열에 따른 불평등이 사회 자체의 불평등보다 훨씬 정도가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극심해진 것은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왜곡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공식적이고 합리적인 준거의 사적인 유용이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그것이 보이지 않는 사회조직 원리가 되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학벌은 그 자체로 하나의 폐쇄적인 계급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계급 재생산의 핵심적인 고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만큼 학벌문제가 현재 한국사회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라는 진단은 정확합니다.

김종엽 업적주의(meritocracy), 즉 학력과 능력을 일반적으로 등치시키는 체제와 제도는 근대사회의 일반적 현상입니다. 매우 급진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것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문제를 발본적으로 검토하는 철학의 견지에서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상봉 원론적으로 근대사회에서 학력주의는 급진적인 입장이 아니면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하셨는데, 저는 어떤 뜻인지 이해하기는 하지만 이제 그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근대가 인간의 지적 능력의 계발이라는 것을 중요한 화두로 삼았고 그것이 근대사회 발전의 견인차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이면에 어떤 개인적인 동기가 있든간에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학교에 들어가고 자기계발을 하려고 한 것이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발전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력이 능력과 비례한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학력으로 환원되기에는 너무 다양한 것입니다. 전통적 구분법에 따르기만 해도 인식(episteme)의 능력, 기술(techne)의 능력, 예술의 능력이 있는데, 그 모두를 어떻게 학력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싸잡을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회가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에 훨씬 더 분화된 재능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에 비해 대학의 울타리 내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이 계발할 수 있는 능력 중에서 굉장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학력과 능력을 등치시키는 신화에 이의를 제기할 때가 되었습니다.

 

金鍾曄  서울대 내부의 개혁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바깥의 논의가 활성화되어 기대와 압력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개혁논의가 연계된다면 학벌로 인해 겪는 고통의 시간은 좀더 단축될 것입니다.

金鍾曄
서울대 내부의 개혁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바깥의 논의가 활성화되어 기대와 압력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개혁논의가 연계된다면 학벌로 인해 겪는 고통의 시간은 좀더 단축될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학력과 학벌이 정치적인 권력과 깊이 유착되어 있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의 경우 학력, 그중에서도 학벌 엘리뜨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이죠. 과거(科擧)제도의 전통 탓으로 지금까지도 공부를 한 사람들이 정치적인 권력을 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막연한 합의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서양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학문과 정치권력이 밀착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근대 이후 학문 또는 학력과 정치권력이 아무리 가까워졌다고 해도 “저 친구는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하니까 평생 공부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 나중에 커서는 전부 법대 나오고 일류대학을 나와서 정치에 참여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엘리뜨를 충원하는 방법, 혹은 권력 배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관련해서 보면 과거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군인이었습니다. 나라를 지킬 능력이 있고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군인들이 정치를 했죠. 서양의 경우 이는 학문에 일정한 의미의 진보성을 가지게 했고, 정치권력과의 긴장 또는 분업 때문에 학문도 전문성과 비판성을 담보하게 되었던 것인데, 우리의 경우에는 수백년 전부터 정치권력과 학력 혹은 학문이 같이 맞물려 있어서 정치에 전혀 재능이 없고 책상머리에 앉아서 집요하게 전문 분야만 탐구해야 할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어가, 정치는 정치대로 이상해지고 학문은 학문대로 그야말로 수단화되어 전문성이 자꾸 저하되었습니다. 지금처럼 학문 또는 학력이 권력이나 출세와 더불어 동심원을 그리는 사회에서는 학문이 전문성을 추구하면서 자기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벌주의와 학벌사회의 정착과정

 

김종엽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중세 유럽의 경우에는 기사계급과 상인계급 혹은 승려계급이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권력을 분점했고, 그것이 중세 봉건사회에 역동성을 주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조선 사대부의 경우에는 유학자로서 이데올로기적인 권력, 관료로서의 정치권력, 그리고 재향 지주로서 경제적인 권력을 다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사회의 역동성을 떨어뜨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앓고 있는 학벌문제 같은 병리현상들이 조선조 혹은 그 이전의 전통에서 유래하는지는 한번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는 학력주의가 한국사회에 어떤 경로로 정착했는지에 대한 규명과도 관련됩니다. 초·중등 교육 그리고 대학교육으로 이어지는 학력체제 자체는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형성된 씨스템인데, 이 체제가 신식교육의 도입과 더불어 들어왔다고는 해도, 학력이라는 것은 가질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 안에 언제 어떻게 확립되었는가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의 학력 팽창속도는 세계적인 수준이거든요. 유럽이 2백년에 걸쳐 이룩한 것을 우리는 5,60년 만에 후닥닥 해치웠는데, 학력과 능력을 등치시키는 제도에 대한 믿음이 왜 우리 사회에서 빠르고 강력하게 자리잡았는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송호근 그 문제를 다루기 전에 한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김상봉 선생님이나 사회자는 학문과 여타 사회권력 간의 분화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학력 내지 학문이 높은 사람, 조선시대의 선비와 같은 사람이 경제적·사회적 권력과 힘을 다 지녔던 것은 우리의 독특한 상황이었고, 많은 문제를 야기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유럽의 분점구조도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중세 유럽처럼 무사계급이 정치를 해야 합니까? 그건 아니잖아요? 일반적으로 정치·경제·이데올로기, 이 세 가지 권력은 각각 분점될 수도 있고 다양하게 융합하기도 합니다. 중동지역의 칼리프체제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된 것이죠. 그중 어느 유형이 특별히 우월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제도는 그 사회의 상황에서 발원하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경우 식자에 의한 지배를 인정했던 전통이 있다면, 그것은 그 상황에서 사람들에 의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메커니즘으로 인정받고 제도로서 채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왜 그런 식의 제도화가 일어났는지는 상세히 탐구해보아야 하지만, 현재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달라진 사회상황에서 왜 그런 제도적 유산이 왜곡·변형되어 나타났는가 하는 문제인 듯합니다. 제 생각에 그것은 우리의 혹독했던 현대사 경험, 특히 한국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전쟁 전의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이 전쟁으로 폭발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회의 제도와 관습이 파괴되었습니다. 전후에 겨우 수습된 사회는 다시 군부통치 아래 들어갔습니다. 이런 와중에 권력 배분을 둘러싼 경쟁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의 부재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이 공감하며 말썽이 일어나지 않을 최소한의 합의는 무엇이었을까요? ‘학력’이 그것이지요.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신분의식이 제거되었고, 그것이 우리 사회 전체에 강력한 평등주의 문화를 확산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누구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이 강력한 평등주의가 가져온 격심한 경쟁의 기준으로 학력이 채택되어 학력경쟁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문제는 이런 경쟁이 점차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지 않는 쪽으로 변화해갔다는 것이지요. 가령 군부통치는 정경유착뿐 아니라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강화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당성 없고 실질적인 사회관리 능력이 약했던 군부가 통치를 위해서 지식인들을 요직에 등용하면서 그런 등용을 학력에 근거해서 합리화했습니다. 이런 엘리뜨 충원방식에 학벌이 강하게 관여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군부통치가 등장하지 않고 시민사회가 나름대로 발전하면서 학력을 대체할 수 있는 또다른 기준을 가다듬어갔다면, 학력과 학벌을 둘러싼 경쟁이 현재처럼 치열해지지도 또 이처럼 병리적으로 되지도 않았을 겁니다.

김종엽 학력주의의 발생과 관련해서 송선생님이 주로 5,60년대 특히 전쟁 후의 상황을 강조하셨는데,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까 그 시기는 좀 앞당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910년대에 일제는 본토에서 그랬듯이 식민지에서 보통학교를 설립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근대적인 교육체제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주로 서당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1920년이 되면 상황이 반전됩니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열’이라는 말이 상당히 많이 쓰이는데, 이 말이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잘 안 쓰이게 된 것이 ‘학구열’이라는 좋은 말이죠. 우리 사회는 교육을 열심히 시키려는 열망만 두드러진 사회인데, 이런 ‘교육열’이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이 식민지 총독이었습니다. 1920년대에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이 벌어졌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요인이 있었습니다. 남들이 안 가던 시절에 보통학교를 간 사람들이 사회적인 보상을 확실하게 받았다는 것, 또 하나는 3·1 운동 때 신식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열심히 독립운동을 함으로써 신식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상당히 없앴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당시 학교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주로 식민지 말단관료, 예컨대 면서기로 취직하게 되는데, 식민지 농촌현실에서 면서기는 매월 현금으로 월급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가 몰고 다니던 자전거는 지금으로 치면 거의 쏘나타 승용차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식민지 민중에게 상당히 매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통학교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시작됐고, 이게 나중에 가면 식민지체제에서 중등교육 팽창까지 불러오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경쟁이 극심해진 것은 송선생님 말씀처럼 학력과 능력을 등치시키는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보상이 학력에 연계되어 있다는 확실한 인식이 형성된 해방 이후입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신을 항상 박사라고 불렀던 것이 상당히 의미있는 상징조작이자, 사회적 신호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해방후 일제라는 지배층이 통째로 사라졌을 때 경기고라든가 경복고 출신 등 식민지시대에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지배계급으로의 진입에 성공했는데, 이런 점도 하나의 사회적 신호가 되어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확산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이런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후에는, 노동운동을 통한 집합적 지위상승이 반공주의로 인해 이루어지기 어렵고 가족을 제외하면 아무런 복지제도도 없던 시대에 모든 계급이 교육을 통해서 개인적인 지위 상승을 꾀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안상헌 물론 우리 사회가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라면 지식이 우대를 받고 학력이 능력을 대변하는 현상이 부정적이거나 터부시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역시 학벌이고, 또 학벌이 배타성을 지닌 하나의 거대한 권력의 속성을 띠게 됨으로써 그것에 속하지 못한 다른 집단은 차별받는 사회적 병리현상이지요.

제가 지방 국립대에 재직하기 때문에 늘 보는 현상인데, 지금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서울대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모든 대학을 ‘서울대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여러 종류의 대학들을 모두 ‘서울대학’이라고 하고, 지방에 있는 대학은 국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지방대학이라고 한단 말이죠. 이는 지방대학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 취업하려고 할 때 면접이나 서류전형에서 완전히 찬밥 신세가 되는 데서 비롯된 것이죠. 어떤 학벌집단에 소속되는가가 대학입시에서 완전히 결정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뒤에 대학에서 자기 능력을 얼마나 함양했느냐 못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방대학생들의 심리적 조기좌절은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를 좋게 하는 DHA가 들어가 있는 분유를 먹여야 한다는 광고를 한번 보세요. 이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입시전쟁에서 이기게 하기 위한 모습의 한 극단을 잘 대변해줍니다. 이런 풍토의 근저에는 어느 학벌집단에 귀속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시되는 사회가 버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벌사회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학벌과 사회적 불평등

 

김종엽 학력 이야기를 다소 길게 나눈 까닭은 학벌사회의 뒤에 학력사회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서였습니다. 학벌을 좀더 분명하게 정의한다면, 학교의 이력을 중심으로 해서 생기는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겠고, 학벌사회는 그런 네트워크가 권력에 접근하는 굉장히 중요한 징검다리가 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사회의 경우 서울대를 나온 사람들이 서울대 학벌을 형성해서 배타적으로 권력을 향유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서울대가 좋은 학교이고 거기에 들어가려면 공부도 잘하고 시험도 잘 보아야 한다는 식의 정당화 기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학벌문제를 논파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학력과 학벌이 연계되어 작동하는 한, 학력의 형성 혹은 그 정당성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학부모에게는 꼭 서울대나 연대·고대 같은 명문대가 아니라 해도 자식을 대학교에 보내는 일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학벌 못지않게 학력 또한 신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졸 남성이 대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