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우애령 禹愛玲

1945년 서울 출생.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 『행방』 『갇혀 있는 뜰』, 단편 「당진 김씨」 「가로등」 등이 있음.

 

 

 

학자

 

 

“애기 모꺼정 다 죽게 생겼으니 이 일을 워쩌문 좋대유.”

바둑판만한 모판에 옹송거리고 있는 여린 모 끄트머리가 시들기 시작하는 걸 보고 있던 김주사네가 한탄 섞어 내뱉었다. 마을 모임마다 나타나 한 사발 막걸리를 거리낌없이 들이켜고 동네 일 대소에 안 끼는 곳이 없는 할머니였다. 이즈음에는 무릎 아픈 관절통에다 오줌소태까지 걸려 오줌이 나오지 않아 사색이 되기가 일쑤인 터수였다.

큰아들이 엄니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집에 들를 때마다 노상 채근이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시원스레 병원에 모시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무슨 연고인지 아들만 와 있으면 막혔던 오줌발이 거짓말처럼 다시 술술 나오는 바람에 잊고 지내던 것이 날씨마저 원수처럼 가물자 오줌발도 질금거리며 다시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다.

숨이 차게 바쁜 농사철에도 『논어』며 『주역』을 끼고 앉아 있는 김주사는 평정을 찾는 점잖은 선비 티를 노상 내더니만 이번 가뭄에는 두 손 다 들었는지 얼굴에 근심의 기색이 짙었다. 그래도 식자를 쓰느라고 한마디 하기는 했다.

“아, 칠년 가뭄에도 사램들은 살아남게 되어 있는 거여. 호들갑을 떨어봤자 다 하늘이 그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이지. 공자께서도 원래 군자는 어려움을 겪게 마련인데, 다른 점이 있다면 소인배처럼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사리에 어긋나는 짓은 안헌다구 허셨지.”

하늘을 바라보던 김주사가 뒷짐을 지며 꺼질 듯 한숨을 내쉬더니 마누라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주섬주섬 뇌었다.

“천제 아들인 환웅이 원래 곰이 변한 여자허구 신단수 아래서 혼례를 올렸잖어. 이게 곧 천신과 지물이 화합헌 것인데 거기서 단군이 태어났잖은가. 하늘과 땅이 잘 화합을 해야 곡석도 잘되는 것인데…… 시상이 이토록 어지러우니 하늘도 노염을 타신 게여.”

“시절이니 하늘이니 그른 소리 이제 그만 신물이 나네유.”

김주사네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뒤퉁그러진 소리가 비어져나왔다. 그동안 하늘같이 섬기려고 애써온 영감이었지만 이제 몸이 시답지 않고 보니 손이 북두 갈고리가 되게 살아온 평생이 억울하기만 했다. 김주사는 마누라의 버릇없는 말투를 달리 탄하지도 않고 쩟쩟 혀를 차더니 돌아서서 집 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집 저집 할 것 읎이 말세여, 말세.”

뒤를 따르던 김주사네는 꺼뭇꺼뭇 죽어가는 안색으로 있는 힘을 다해 영감을 흘겨보았다.

“그릏게 점잖은 척하고 생전 민족이니 학자니 유세를 허구 살아서 이제 얻은 게 무어유. 마누라 오줌소태나 들어 다 죽게 맨들어놓구 말유.”

김주사는 귀먹은 척을 하는 겐지 못 들은 겐지 쓰다 달다 대꾸가 없이 그저 휘적휘적 걷기만 했다. 길가 옆 밭에서 이제 여물어가는 마늘의 삐죽한 대 끄트머리가 오늘따라 유독 더 휘드레하니 시들어 보였다. 옥수숫대는 벌써 어른 허리께까지 자라오르면서 이 가뭄에도 아직은 청청하게 짙푸른 녹색을 띠고 있었다. 그 곁에 잎새가 너풀너풀 자라나고 있는 담배밭도 겉보기에는 가뭄을 안 타고 제대로 자라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논들은 물이 모자라 그동안 한꺼번에 모내기를 하지 못했다. 겨우겨우 하루에 한 단씩 내려오며 양수기를 틀고 밤을 도와 번을 서며 겨우 모를 심어놓았던 터였다. 모를 심어놓은 논바닥도 가뭄에 물기가 바작바작 마르기 시작하는데다가 양수기도 힘을 잃었는지 헐떡거리며 제대로 물을 쏟아놓지 못했다. 삽교천에서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인 동리 입구 넓은 논에 모가 찰랑찰랑 잠겨 있는 걸 볼 때마다 김주사네는 똑 자기 자식만 일이 안 풀리는 걸 바라보는 부모 심정처럼 편편치를 못했다.

서산에 나가 청과물 장사를 하는 큰아들은 사는 게 그저 그렇지만 이즈막에는 어째 몸이 신신치 않아 보이고 나이보다 안색도 안 좋은 게 은근히 걱정이었다. 서산에 사는 큰딸은 근근이 살고 있지만 서울로 여읜 둘째딸네는 사위가 벤천가 뭔가를 해서 떼돈을 버는 바람에 이즈막에는 아주 부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제 농사구 뭐구 다 그만 거두고 아들딸들한테 용돈이나 받아쓰며 편안히 살라고 동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지만 김주사는 사람을 사서 놉을 대어가면서도 농사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마을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김씨네며 박씨네가 일손이 조금 비기라도 할 때면 김주사집 일을 거들어주기도 했지만 김주사네까지 이제 일을 제대로 못해 품앗이도 못하는 터수라 작은 일손 빌리기도 어려웠다.

“아, 무슨 영화를 볼라구 그르시유. 듣자 허니 사위가 당대 발복을 하였다등만 이참저참 서울로 솔가를 허시든지 농사일을 아주 도지루 내어놓구 그 머이냐, 생전 좋아허신다는 그 학문인가 무언가 허시지 멀러 그러구 기신대유, 그래.”

입바른 김씨는 오다가다 김주사를 보면 한마디씩 하고는 했다. 이제 나이 오십이 넘어 삭신이 쑤시기 시작하니 어떤 때는 농사일이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작년 장마 때 산사태에 밀려 작은 대로 어엿한 기와집을 반실이나 잃은 후에 정부 보조금을 보태어 텃밭 앞에 조립식 주택을 지은 다음부터 김씨도 너그러운 마음이 줄어들었는지 말말이 곱지를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양반 티를 내는 김주사가 마누라를 사방 일터에 빼어돌리는 꼴을 평소에 곱지 않게 보던 시선들이 적지 않았다. 이 노인네가 그래도 언젠가는 마을을 빛낼 무슨 터전이라도 닦지 않을까 하고 숨은 기대들도 하다가 이제 보니 온통 방귀 새는 핫바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지 전에는 하지 못하던 이야기까지 면전에서 막 하기 시작하였다.

“그릏다구 손을 놓을 수는 읎지. 농자는 천하지대본이여. 시대가 악할 때는 기(氣)와 이(理)를 인간이 지배하고 조종하려구 드는 것이거든. 이럴 때 순허게 천리에 순종허는 건 농사밖에 없느니…… 근래 들어 사람덜이 여간 불경해져야 말이지.”

이런 김주사의 말도 이젠 파계한 중의 헛염불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당뇨에 고혈압이 겹쳐 몸이 마련이 없기는 마누라나 실상 다를 바가 없었다. 전에는 그래도 밖에 나올 때면 꼭 옷을 갖추어입고 한여름에도 속옷바람으로 남 앞에 나서는 적이 없다가 이제 기력이 쇠잔해지니 의관을 정제하는 학자 노릇을 하는 것도 힘에 부치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는 김주사라고 부르지만 그것도 어쩌다 별칭처럼 따라붙은 것이지 이렇다 하게 뚜렷한 학문을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어디 가서 무슨 학위나 자격 시험에 합격한 것도 아니었다. 칠십 고개를 넘은 김주사는 원래 이곳 토박이였다. 집안은 가난했지만 어려서부터 총기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 지주집 큰사랑채에서 여는 서당에 다니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주집 아들하고 둘이 당진읍에 나가 한 몇년 제법 이름있다는 선생 밑에서 한문공부를 해본 것이 제대로 배운 것의 전부였다. 김주사의 평생 꿈은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학자가 되어 우리나라의 사상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었다. 그의 넓지도 않은 방안 윗목은 『맹자』며 『논어』 『주역』 『삼국유사』, 이율곡과 이퇴계며 최제우에 관한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선비의 도리라는 것이 스스로를 갈고 닦는다는 데 있다고 굳게 믿었다. 평생 벼슬을 하거나 스승이 되어본 적은 없지만 촌 무지렁이들과 자신 사이에 마음의 경계를 그어두고 살아왔다.

전에는 그래도 김주사가 권위있게 공자며 맹자를 들먹거리며 인륜이며 천륜을 찾으면 그런대로 다소곳이 승복하던 기미를 보이던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 안테나가 서면서 텔레비전이 요란스러운 프로그램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그의 가르침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러니 세상이 말세가 되었다는 김주사의 신념은 점점 더 굳어가기만 했다. 우리를 사람답게 해주는 기본 예의는 목숨을 걸듯 지켜야 한다는 신념에 젖은 김주사는 저번에 김씨가 마누라 죽은 지 일년도 안되어 서산 어디에선가 끌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그 집 새아낙 보기를 쓴 외 보듯 해온 터였다. 그러니 김씨 내외도 맞받아 김주사를 보는 눈이 곱기가 어려운 건 정한 이치였다.

대학에서 가르치며 소설을 쓴다는 심선생이 몇해 전 이 골짜기에 빈 농가를 하나 차지하고 드나들기 시작할 때 김주사는 무릎을 칠 듯 기뻐하며 몇번이나 마누라에게 말하고는 했다.

“이제야 이 캄캄한 곳에서 말을 건네볼 사램이 생기는구먼그리여.”

그리고 김주사는 동네 나들이를 별로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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