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현주소

민족문학의 현단계 과제와 관련하여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현재 미국 블루밍턴 소재 인디애너대학 영문과 방문연구원. 주요 평론으로 「李箱과 식민지근대」 등이 있음. jatw19@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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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비에뜨연방 해체(1991)와 사회주의국가들의 연쇄적 몰락 이후 끊임없이 운위된 민족문학의 위기는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민족주의문학과 민족문학의 혼동이야 7, 80년대에도 흔했고, 양자를 구별하면서 후자의 ‘태생적인’ 후진성을 질타한 논자 역시 적지 않았다. 그같은 혼동과 오해를 자초한 언설을 과거 민족문학 진영 일부가 숱하게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논자들이 민족문학을 간판처럼 써먹는 것을 찜찜해하면서 그 유효성만은 기를 쓰고 옹호하는 현상 자체가 뭔가 예전만 못한 민족문학의 ‘쓰임새’에 대한 방증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 또한 현재 문단의 실감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발칸반도에서의 ‘인종청소’를 비롯해 보스니아, 르완다, 코소보 등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든, 각지에서 준동하는 민족주의·종족주의의 폐해 및 지역적·혈연적 경계에 기반한, 민족개념을 의심케 하는 인터넷 시대의 본격화와 그에 ‘부응한’ 국내의 민족해체 담론을 보노라면, 민족문학의 위기도 이전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국면으로 돌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이 선다.

국내 문단에서 왕년의 민족문학론자들이 민족문학을 입에 올리기 꺼려하고 시대를 직시하려는 젊은 문학인일수록 한반도의 뜻깊은 변혁을 추동하는 데 일조한 민족문화운동에 불신과 회의를 표명하는 것도 바로 그런 세계적 추세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들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핵심은, 그 불신과 회의가 과연 얼마나 (민족모순이 한층 노골화된) 세계화시대의 우리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과정에서 발원한 것인지, 궁극적으로 대안에 이르는 ‘의심’을 우리 나름으로 다그치는 길이 무엇인지를 밝히고 모색하는 것이겠다. 예컨대 90년대 한반도의 ‘살아 있는 혼돈’이 지니는 의의를 탈중심성으로 풀면서 “민족을 정치의 중심으로 상정한 민족문학론의 원칙 때문에 그러한 갱신(민족문학의 자기갱신-인용자)은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1고 비판한 외쪽 진단은 그것대로 따져봐야 할 쟁점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이제는 창신(創新)이 가세하지 않은 과거 민족문학의 대의만으로는 어지러운 세계 및 한반도 정세에 맞서 창조적 돌파구를 찾기 힘들리라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지만, ‘민족을 정치의 중심으로 상정한 민족문학론의 원칙’이라는 발언도 국지적 삶에 충실하되 세계문학의 지평을 꿈꾸면서 이룩된 민족문학 최고수준의 창작 및 비평에 대한 ‘소박한’ 인식의 소산이다.

이런 때 시야를 ‘밖’으로 돌려 탈식민시대의 민족(문학)을 성찰하는 한 방편으로 한국계 미국작가들을 읽어봄이 어떨까? 이는 20세기 근대사가 남긴 우리 문학유산을 간접적으로 되돌아보는 방편도 된다. 조선인들이 하와이에 사탕수수밭 노동자 신분으로 첫발을 디딘 것이 1895년 11월이지만 대한제국(1897〜1910)의 수민원(綏民院)에서 추진한 최초의 공식 이민선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것은 1903년 1월 13일이니, 올해는 때마침 미국이민 백주년이 되는 싯점이다. 하와이에서의 한인 정착과정 자체도 눈물 없이 읽기 어렵지만,2 미국에 뿌리박는 과정에서 태동한 한국계 미국문학은 우리 근대사의 무수한 희망 및 좌절의 복합적 산물이다. 4월혁명 이후 축적된 민족문학의 전통을 진지하게 ‘의심’하는 비평에서 바로 그런 좌절과 희망의 자식인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현주소를 찾아가보는 것은,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그들이 ‘민족을 작품의 중심으로 상정’한 장본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세계화시대의 참뜻에 부응하는 우리문학의 진로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해외 동포문학의 기여가 요구되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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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와 민족해방 및 동족상잔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근대사의 명암을 떠난 동포문학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한국계 미국작가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가장 큰 공통점이 식민체험 및 개발시대의 어두움이라는 사실에서도 그 점은 단적으로 확인된다. 해방 전후 독일에서 활동하며 『압록강은 흐른다』를 내놓은 이미륵(본명 李儀景, 1899〜1950)을 포함하여 일본·러시아·중국 등에 집중된 동포작가들이 주로 그러하듯 조국에 대해 이중적 자아를 내면화한 한국계 미국작가들 역시 근본적으로 20세기 세계체제의 요동이 낳은 문화적 산물이다. 세계체제가 주변부 국가들에 강요한 비극적인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에서 나이폴(Vidiadhar. S. Naipaul)이나 루슈디(Salman Rushdie) 같은 출중한 작가들이 탄생했거니와, 따지고 보면 “근대 서구문화가 대부분 망명객·이민자·난민 들의 산물”3이다. 우리 교포문학에 열려 있는 ‘세계적 보편성’의 반증을 ‘서구문화’에서 확인하는 셈이다. 또 이런 사실은 다종의 언어로 이루어진 겨레의 이산문학이 우리말 근대문학과 맺는 역사적 고리를 시사한다.

한국에서 이들 작가를 읽는 경험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역사의 가해자이면서도 가해의 과정에서 스스로에게도 불행을 자초한 일본과 미국의 존재가 배후에 어른거리는) 식민지근대라는 한반도의 ‘현재적 과거’가 독서과정에서 끊임없이 환기되기 때문이다. 전래의 구전설화·전설·민담 등이 거의 어김없이 스민 작품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온전한 모국을 느낄 수 없는 이들이 이국땅에서 갈갈이 찢긴 ‘정체성의 충격’4을 감내하면서 쓴 이야기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읽히는 현상은 여타 서양문학의 수용과는 성격을 달리하여 생각해야 할 사안이다. 한편 제3세계의 민중들에게 ‘새로운 땅’의 꿈과 희망을 일깨우면서 때로는 자랑스런 민족애가 꽃피는 현장이기도 했지만 우리들 기억 저편에서 ‘황구의 비명’과 ‘분지(糞地)’를 불러일으키는 나라, 신은 멀고 미국은 가깝다고들 하는 중남미 국가와는 또다른 차원에서 20세기 한반도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나라—수많은 이민문학을 탄생시킨 ‘새로운 땅’으로서의 미국에 뿌리내린 한국계 미국작가들이 한반도의 과거에 연루되는 방식은 여타 지역의 동포문학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계 미국작가가 미국문단에 첫선을 보인 경우로는 일제치하에서 유한양행을 설립한 류일한(Il-Han New, 1895〜1971)의 「한국에서의 소년시절」(When I was a boy in Korea, 1928)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다고 하겠지만, 지명도나 작품성으로 볼 때 효시로는 역시 강용흘(Younghill Kang, 1898〜1972)의 『초가 지붕』(The Grass Roof, 1931)과 연작인 『동양이 서양으로 가다: 동양인 양키의 형성』(East Goes West: The Making of an Oriental Yankee, 1937)을 꼽아야 할 것이다. 『사진신부』(Picture Bride, 1983)로 일약 명성을 얻은 캐시 송(Cathy Song, 1955〜 )이나 『깃발 아래에서』(Under Flag, 1991) 이후 독특한 실험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김명미(Myung Mi Kim, 1957〜 ) 같은 주목받는 시인들이 있지만, 소설 분야에 한정하면 출간 당시 미국언론이 크게 주목하고 국내에서도 베스트쎌러가 된 김은국(미국명 Richard E. Kim, 1932〜 )의 『순교자』(The Martyred, 1964)를 포함해 사후에 소수민족문학의 전범으로 떠오른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1951〜82)의 『딕떼』(Dictee, 1982), 퓰리처상 후보작에 오른 김난영(Ronyoung Kim, 1926〜87)의 『토담』(Clay Walls, 1987), 메어리 백 리(Mary Paik Lee, 1900〜 )의 자서전인 『조용한 편력: 미국의 한 선구적 한국여성』(Quiet Odyssey: A Pioneer Korean Woman in America, 1990) 등이 대략 1990년대 초까지 나온 대표적인 작품에 속한다.

하지만 ‘민족을 작품의 중심으로 상정한’ 재미 한인작가들에 대한 국내 학계의 연구는 이제 시작단계인 듯하다.5 미국비평계에서 한국계 소수민족 작가들이 순전히 작품성만으로 주목받은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을 감안할 때, 그 때늦음을 탓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김은국을 비롯한 몇몇 한인 작가에게 쏟아진 찬사 중 많은 부분은 지금 한창인 아시안 미국학(Asian American Studies) 분야의 발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바,6 현재 캘리포니아 지역 중심의 소수민족 문화 및 문학 연구가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학의 성격규정을 놓고 ‘본토’에서도 논란은 분분하다. 한국계 미국문학이 미국문단에서 소수인종문학으로서 차지하는 위상이 애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국내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단순한 소개를 넘어 옥석을 가려야 할 만큼 수적으로 많아지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 일본계나 중국계 미국문학에 비하면 아직껏 미국문단의 변방을 제대로 탈피했다는 인상을 받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점증하는 이들의 활약은 미국에서 하나의 분과학문으로 당당히 자리를 잡아가는 한국학의 일부다.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해소되는가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는데 향후 전망도 결코 어둡지 않다.

한국의 독자들이 이런 한국계 미국작가를 동포의 애정으로써 읽는 행위가 간단하달 수는 없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 돌리기 힘든 곡절이 켜켜이 쌓여 있기는 하지만 번역으로 접하기 마련인 대다수 독자에게 이들 작품은 영어라는 장벽이 가로놓인 엄연한 외국문학이다. 동시에 이들의 이질적 근대체험은 동포니까 이해하고 포용한다는 자세 정도로는 올바로 수행하기 어려운 ‘독법’을 요구하기까지 한다. 망국과 일제시대, 6·25, 60년대 보릿고개 등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근대사를 고스란히 담은 1세대 작가들에 관한한 언어의 장벽을 넘어 20세기 한국근대문학의 일부를 형성하며, 이들을 잇는—세계화시대에서 난마(亂麻)처럼 얽힌 민족·국민·인종적 현실과 그 혼란의 실상을 실감케 하는—2세대의 작품은 분단체제에서의 민족을 대국적으로 생각하는 데 남다른 암시를 줄 수 있다는 인식도 단순한 동포애 이상을 지향할 때 비로소 구체적인 내실을 확보할 수 있다.

지난 30년간 쇄신을 거듭해왔고 세계화시대를 맞아 위기국면에 접어든 민족문학에 뜻깊은 암시와 북돋움을 줄 수 있는 동포의 문학자산들을 한국근대문학의 적자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기는 비평작업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데는, 이들이 되살린 역사의 진실이 분단체제 극복에 종요로운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1세대의 경우만 해도 망국의 설움과 몰락하는 전통 지식인계급의 절절한 형상화가 주를 이루는 『초가 지붕』을 비롯하여 ‘기계시대’를 선도하는 미국문명에 대한 매혹과 ‘동양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동시에 드러낸 『동양이 서양으로 가다』, 6·25의 비극을 기독교적 실존주의 시각으로 묘파한 『순교자』, 1920년대 LA를 배경으로 이후 동란 전까지의 (그 자체가 식민지 조선의 착잡한 정세를 비추어주는) 이민사(移民史)를 한눈에 조감케 하는 『토담』, 3·1운동에서 6·25, 광주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사를 파격적인 형식실험을 통해 한바탕의 해원굿처럼 노래한 『딕떼』 등은 우리 근대사의 생생한 현장증언이다.[7. 그러므로 소수인종으로서의 차별과 수난 및 적응과정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대만·필리핀·베트남 등 미국 내 여타 동아시아 작가들과 상통한다고 하겠지만, 망국과 식민체험에서 비롯된 한국계 미국작가들의 변별성은 좀더 엄밀하게 규정될 필요가 있겠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주요 동아시아 작가들의 소개로는 특히 Emmanuel S. Nelson (ed.), Asian American Novelists: A Bio-Bibliographical Critical Sourceb

  1. 황종연 「살아 있는 혼돈을 위하여–––최원식 평론집 “문학의 귀환”을 읽고」, 『문학동네』 2001년 겨울호 460면.
  2. 이에 대한 육성증언은 申星麗 「하와이 사탕밭에 세월을 묻고–––韓國女性 北美 初期移民 實話」,『창작과비평』 1979년 봄호 269〜97면 참조.
  3. Edward W. Said, Reflections on Exile and Other Essay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173면.
  4. 이에 대한 인상적인 성찰은 Meena Alexander, The Shock of Arrival: Reflections on Postcolonial Experience (Boston: South End Press 1996) 참조.
  5. 그중 발품이 돋보이는 최근 국내 연구로는 유선모 『미국 소수민족 문학의 이해–한국계 편』(신아사 2001) 참조.
  6. 2차대전 이후 냉전질서 유지의 일환으로 채택된 지역학(Area Study)의 성격을 띠면서 60년대 제3세계운동의 성과라는 양면이 있는 아시안 미국학에 대해서는 특히 추(K. Chuh)와 시마카와(K. Shimakawa)가 공동 편집한 Orientation: Mapping Studies in the Asian Diaspora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1) 1〜21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