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인터뷰

 

한국사회, 시장만능주의의 덫에 걸리다

 

이정우 李廷雨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경제학. 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저서로 『소득분배론』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공저) 등이 있음.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정치학.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한국형 개방전략』(편저) 등이 있음.

 

ⓒ이영균

ⓒ이영균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인터뷰를 하기로 해놓고는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꽤 심란해졌다. 그가 참여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거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거물이어서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 브레인 역을 맡았을 정도로 엄청난 지력을 지닌 대학자여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의 정갈하고 겸손한 인품을 평소부터 존경해오던 터라 그를 상대로 ‘도전인터뷰’를 하기가 거북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도전인터뷰라 함은 어느정도 도전적 혹은 도발적 성격이 기대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라리 그와 아예 모르는 사이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알고 싶고 묻고 싶은 것도 많았던 참이었다. 그러나 그 상당수가 그에게는 매우 민감한 질문일 수 있고, 만약 그렇다면 그에게 그런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두려웠다.

어쨌든 드디어 도전인터뷰는 시작되었다. 한미FTA협상을 타결시킨 노무현정부에 대한 그의 비판은 객관적이고 날카로웠다. 놀랄 정도였다. 관료제와 권력구조 등 정치개혁에 대한 태도 역시 단호했다. 명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안으로서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분석적이고 힘찼다.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다고 여겨졌다. 그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명했고 성실했다. 일부러‘도전’이나‘도발’을 할 필요도 없었다. 스스로 모두 말해주었다.

 

최태욱 청와대에 계시다가 학교로 돌아오신 지 2년이 지났죠? 교수로 재직하던 분들이 고위공직자 생활을 하다가 다시 학교에 돌아가면 허전함을 느낀다는 분들도 계시고, 답답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또 예외적으로 어떤 분들은 잘 적응하시고요.(웃음) 선생님께서는 어떠신지요?

이정우 저는 학교에만 있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훨씬 편하고 즐겁고 물고기가 물로 돌아온 느낌이죠. 인수위에서 일할 때 근무 마치고 밤 10시쯤 숙소로 걸어가는데, 저절로 흥얼거리는 노래가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라는 곡이었어요. 이제 고향으로 돌아온 거죠.(웃음) 나중에 안 일인데, 윤동주가 일본 쿄오또에 있는 도오시샤(同志社)대학 유학시절에 애창곡이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였답니다.(웃음)

최태욱 우리나라에는 교수 생활을 하다가 고위공직을 경험하신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잖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정우 저는 좋았다고 봅니다. 늘 책만 보다가 현실의 정책을 접해보니까 이론과 다른 점도 많고 그걸 통해서도 많이 배웠죠. 학교에 돌아와서 가르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그래서 학자들이 정부와 학교를 왕래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그렇게 하는 나라가 미국이고요, 일본이나 유럽은 드문 것 같습니다. 사실 조선시대도 그런 미국 방식이었죠. 사대부라는 게 뭡니까? 사(士)로 있다가 정부에 들어가면 대부(大夫)가 되고, 다시 재야에 나오면 사가 되는 거죠. 어떤 선비는 그렇게 수십번 왕래했는데 그런 모델이 좋다고 봅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잘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학자가 들어가서 잘해내겠느냐, 책상물림이 장(場)거리에 가서 배겨내겠느냐 하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학자들이 들어가서 큰 방향을 잡아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해방후 지금까지 너무 안되어 있었던 거죠. 작은 건 실수할지 몰라도 큰 방향을 잡는 데는 학자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미FTA는 참여정부의 자기부정

 

최태욱 예, 그렇겠군요.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한미FTA문제인데, 결국 협상은 타결됐습니다. 물론 정부 쪽에서는 자화자찬을 하고 있지만,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럴 만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얻은 건 별로 없고 내준 게 너무 많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것들 중에 치명적인 독소조항이 상당히 들어 있다는 등의 우려가 있습니다. 한미FTA협상이 개시된 것은 선생님께서 학교로 복직하시고 몇달 후의 일이죠. 협상 초기에 직접 대통령을 찾아가서 신중론을 펼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핵심 브레인으로서 정책 결정과정에서 큰 역할을 하다가 물러나신 뒤에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셨던 거겠죠? 소회가 정말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이정우 정부에서 2년 반이나 일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정부의 일에 대해서는 협조해야 하고, 또 침묵을 지키는 게 상식이겠죠. 그러나 한미FTA경우에 저는 굉장히 심각하고 중차대한 문제라 보고 찾아가서 신중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몇달 뒤에 민교협에서 교수들이 반대성명을 발표하기에 저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예상외로 큰 파문을 가져왔어요. 어떤 보수언론에서는 그걸 가리켜‘등 돌렸다, 배신이다’하는 식으로 표현해서 이용하는 것도 봤습니다. 그런데 옛날 우리 선비들은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늘 나랏일이 잘못될 때는 비판합니다. 그게 선비의 소임이죠.

저는 한미FTA는 다른 FTA와는 다르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와의 FTA는 비교적 피해가 작습니다. 그리고 장점이나 실익이 꽤 크죠.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그리고 로드맵에서도 중장기적으로 추진한다 했던 것을 갑자기 앞당겨서 그렇게 속도를 올리는 걸 보고 저는 굉장히 큰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리게 된 거죠.

지금 불과 1년 만에 타결까지 갔는데요. 어마어마한 속도죠. 이를테면 한일FTA나 한-싱가포르FTA의 전례를 보더라도 이건 과속입니다. 미국 TPA(무역촉진권한) 시간표에 맞추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속도를 낼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떤 시인의 표현에‘속도는 영혼을 망친다’는 게 있는데, 우리가 모든 일에 너무 속도를 내는 바람에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많이 생겨요. 지금은 심지어 노무현 때리기를 4년간 해온 보수언론들까지 앞장서서 찬양하고 있는데, 아마 오래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기면서 국민들도 본질을 알게 될 겁니다.

저는 참여정부에 대해서 지금까지 계속 옹호해왔고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고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한미FTA는 방향이 크게 잘못됐고, 사실 참여정부가 지금까지 4년간 일해오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반대로 돌리면서 자기부정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최태욱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것이 다른 나라와 FTA를 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중에서 특히 어떤 부작용을 걱정하세요?

이정우 한미FTA는 높은 단계의 통합입니다. 이를테면 관세철폐라든가 무역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제도나 정책, 법률까지 국내의 많은 제도틀의 수정을 요구합니다. 말하자면 심층통합을 요구하는 것인데, 그것이 미국의 소위‘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의 핵심입니다. 이런 과도한 요구에 대해 우리가 동의하고 FTA를 맺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나라 국민경제의 기본틀을 미국식으로 가져가겠다, 미국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미국경제가 바람직한 모델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많은 단점이 있고, 미국 모델보다 좋은 모델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우리가 문제 많은 미국 모델에 동의하는가 하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그리로 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죠. 국가의 운명을 이렇게 다른 나라와의 조약을 통해서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 저는 근본적으로 회의가 듭니다. 어떤 점에서는 우리 헌법과 충돌할지도 모릅니다. 특히 경제체제에 관한 몇가지 조항 중에는 시장경제 모델을 취하면서도 사회적 시장경제의 철학을 받아들이는 내용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산업의 피해나 이득, 예컨대 농업, 제약업의 피해, 자동차나 섬유의 이득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우리나라의 미래 체제를 결정하는 것인데 과연 이 길이 옳은 것이냐 하는 거죠. 오히려 지금보다 우선회하는 길로 가겠다는 것인데,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좌선회하는 길이 맞습니다. 좌선회란 북구형 모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온갖 시장경제의 실험이 있습니다. 그 실험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우수하다고 판명난 것이 제가 보기에는 북구 모델입니다. 한국에서 당장 실행하기는 어렵겠죠. 그러나 그쪽으로 가야 하고, 그 길이 먼 장래 우리의 이상일 텐데, 그 길에서 멀어지는 것이죠. 한미FTA는 그 길과 반대편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는 제일 아픈 점입니다. 한마디로‘꿈은 사라지고……’지요. 진보의 꿈을 포기하고 아주 삭막한, 비인간적인 미국 모델로 우리나라의 운명을 정하자는 겁니다.

 

미국화가 우리의 살길인가

 

최태욱 미국식 FTA는 말씀하신 것처럼 단순히 교역을 자유화하자는 정도가 아니라 상대국의 제도, 정책, 심지어는 관행까지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는 결국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체제의 미국화, 따라서 우리 사회체제의 미국화로 갈 거라는 우려가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이걸 추진하는 사람들은‘바로 그게 우리가 살길이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통상교섭본부나 재경부 고위관료들의 상당수가 그런 확신에 차 있는 것 같더군요. 말하자면 우리는 더이상 일본식이나 다른 식이 아니라 미국식으로 가야 한다, 그게 민족의 미래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이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깥에서 보더라도 참여정부 초기에는 말씀대로 북구형 모델이 많이 연구됐고, 학계에서도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의 학자들이 사실은 그게 가장 나은 대안이라는 데 동의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미FTA가 북구형이 아니라 미국형으로 가는 거라고 한다면, 참여정부 내에 있었던 미국형 모델과 북구형 모델의 갈등과 대립에서 결국 미국형 모델이 승리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옳은 건가요?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승리의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웃음)

이정우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제가 참여정부 초기에 일했기 때문에 전반기 참여정부 안의 분위기는 알 수 있는데요. 학자들과 관료들 사이에 그런 생각의 차이는 분명 있었습니다. 학자들은 좀더 진보적·이상적이고, 관료들은 좀더 보수적·시장지향적이고……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고, 제가 만난 일부 관료는 아주 개혁적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숫자가 아주 적다는 겁니다. 미국에서 훈련받은 관료들이 많죠. 통상이나 경제부서에 특히 많습니다. 그분들은 굉장히 유능한데 미국에서 훈련받은 까닭에 미국식 주류경제학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미국식 시장모델은 실현가능한 전체 시장경제 모델 중 일부일 뿐이고,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고 문제점이 매우 많은 모델입니다. 그런데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교재는 시장주의가 이상적인 것처럼 아주 치밀한 논리로, 휘황찬란한 논리로 사람들의 혼을 빼죠. 거기서 훈련받은 경제·통상관료들은 혹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 모델의 장점을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혁신역량이나, 성장, 고용, 일자리 창출, 이런 것은 미국경제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워낙 짙기 때문에 우리가 쉽사리 취할 수 있는 모델은 아닙니다. 그런데 관료들이 미국에서 훈련받으면서 거기에 너무 반해서 돌아오는 것 같아요.

그전에는 안 그랬습니다. 과거의 한국 발전모델, 박정희식 관치경제하에서야 시장주의가 오히려 이단이었죠. 이를테면 김재익(金在益) 경제수석이 처음에 시장원리를 주장했을 때는 이단으로 몰려 관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공공의 적’처럼 되었다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흐른 지금은 정반대로 시장주의가 판을 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단이 되는 구도입니다.

참여정부 전반기에는 학자와 관료 들의 두가지 철학이 그런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어느 한쪽도 우위를 점하지 않고 건설적인 경쟁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됐어야 하는데, 후반기에 와서는 급속히 학자들이 퇴조하고 관료들이 힘을 얻으면서 시장주의가 다시 확실한 우위를 차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태욱 한국의 경제체제가 미국화된다고 할 때 일반 시민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양극화입니다. 한미FTA로 인해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게 아니냐는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서 처음에는 정부도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결국은 극복해낼 수 있을 거라고 다소 조심스럽게 응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더욱 공세적으로 오히려 한미FTA를 통해서 양극화가 해소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이 점을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