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 ②

 

민주적 통제 밖의 한국군대

 

 

김종대 金鍾大

정의당 20대 국회의원,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주요 저서로 『안보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등이 있음.

 

여석주 余奭周

웰스글로벌(주) 대표이사. 전 국정상황실 정세분석담당, 주미대사관 무관.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공저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등이 있음.

 

 

이태호(사회) 『창작과비평』은 창간 50주년을 맞이해 올 한해 동안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하는 연속기획을 이어나가려 합니다. 지난호에 ‘한국 종교의 보수성을 어떻게 볼까’라는 주제를 다룬 데 이어 이번호에는 한국의 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시민단체에서 다소간 관련된 활동을 했던 때문인지 오늘 사회자 역할을 겸해 초대받아 나오게 됐습니다. 김종대 의원님은 군사전문가로서 여러 활동을 하셨고 곧 국회에 등원하시게 돼 더 많은 활약이 기대됩니다. 여석주 대표님은 군에 오랫동안 몸담으셨던 분으로 오늘 특별히 모셨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들려주시길 기대합니다.

 

여석주 창간 5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문예지 『창비』와 군은 멀리 떨어진 별개의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 남성 대부분이 인생의 절정기인 이십대에 수년을 몸담는 군복무 시기를 빼놓고 한국의 문화를 논한다면 적잖은 공백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창비』가 군 관련 대담에 지면을 할애하는 것에 상당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습니다.

 

왼쪽부터 김종대, 여석주, 이태호.© 이영균

 

김종대 『창비』 좌담에 함께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군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다 짚자면 무척 방대해질 텐데, 각계에서 더 많은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게 필요하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이태호(李泰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공저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등이 있음.

이태호 군대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나라를 막론하고 군대는 대체로 보수적 문화와 체질을 갖고 있습니다. 항상 최악의 씨나리오에 대비해야 하고 극단적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한국의 군은 역사적으로 보수성이라는 표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불행한 역사가 대표적인데, 지난 대선 때도 국군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 등이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불신을 다시금 키웠습니다. 또한 군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징병제로 대부분의 성인 남성이 입대해야 하는 상황에 비해 군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우려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기구매 스캔들과 군내 인권침해 사례가 반복되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작전지휘권 반환 관련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군이 대미 의존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동북아를 비롯한 국제질서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가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군이 한국사회 발전에 장애요인이라는 인식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보수세력’을 진단한다는 기획취지와 관련해 군의 성격이나 특성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군의 ‘보수성’, 어떻게 볼 것인가

 

김종대 군대라고 하면 대체로 그 핵심주체를 장교단으로 보지요. 저는 장교단에 세가지 성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수성, 전문성, 책임성입니다. 이 세가지가 갖춰지면서 군대조직에 집단정신과 자기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군이 보수적이냐는 질문은 어폐가 있습니다. 높은 윤리적 덕목으로서의 책임성과 직업군인으로서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거고 그런 만큼 어느 나라 군대도 보수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그 보수의 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근대국가가 상비군 제도를 채택한 이래, 군대는 민주주의와 국가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됐습니다. 그전에는 왕정, 귀족의 계급성을 대표하는 것이 군대였거든요. 그러나 지금은 대리인으로서 국민의 군대이지요. 요컨대 군의 보수성은 근대 민주주의체제 내에서의 보수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여석주 저도 동일한 맥락에서 봅니다. 보수(保守)라는 용어를 앞으로 나가거나 발전하는 것에 대한 반동으로서의 의미로 한정한다면 군의 과도한 보수 경향이 분명히 문제겠지요.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킨다는 의미에서의 보수라고 하면 당연히 군은 보수여야지요. 물론 이 또한 국가에서 인력을 제공하고 예산을 지원해서 군이라는 집단을 만든 기본 목적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보수여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군을 구성하는 국민 또는 시민 개개인에게 정치·사회적 보수성을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군인도 결국 군복을 입은 시민이니까요. 이런 점을 구별해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종대(金鍾大)
정의당 20대 국회의원, 전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주요 저서로 『안보 전쟁』 『시크릿 파일: 위기의 장군들』 등이 있음.

김종대 그러면 여기서 얘기하는 보수의 대비 개념은 진보가 아니라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쌔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이 미국 군대에서의 대립항은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라 진단한 바도 있습니다. 미국 자유주의 전통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군대를 전쟁이 일어났을 때 소집하면 되는 거고 평화시엔 낭비라고 봤습니다. 남북전쟁이나 독립전쟁도 다 의용군이 수행했지 상비군이 한 게 아닙니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 어느정도의 상비군과 방위산업을 유지하는 것이 전문성을 유지하는 데 좋다는 입장이 보수주의에서 표방됐습니다. 그래서 헌팅턴이 군대는 대규모 상비군으로 존재하는 한 보수주의 집단이라고 규정한 거고요. 결국 군대가 유지되고 그 나름대로 하나의 전문가 집단으로 존중되고 발전하는 한 그 이론적 토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보수주의가 된 겁니다.

 

이태호 말씀하신 대로 상비군은 근대국가와 함께 출현했죠.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진취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군대는 자유주의를 전파하는 군대이기도 했고 그 자체로 근대적인 조직이었죠. 말하자면 역사적으로 근대국가의 산파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군대가 국가를 지키는 존재인 동시에 점차 국가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강제력을 지닌 집단이 되면서 거부감이 생겨난 것 같아요. 군대가 이미 형성된 국가라고 하는 굉장히 추상적인 실체를 보호한다는 건데, 국가라는 게 사실은 물신화되기 쉽잖아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전체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다른 한편으로, 군의 보수성과 관련된 논란은 결국 군은 남자들이 힘을 사용하는 집단이라는 점과 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여군이 있습니다만,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그렇고 상명하복을 비롯한 운용·작동원리에서는 마찬가지지요. 그러다보니까 가령 성() 인식도 차별적이고 성폭력 문제도 자주 발생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석주(余奭周)
웰스글로벌(주) 대표이사. 전 국정상황실 정세분석담당, 주미대사관 무관.

여석주 군에서 몇년 전부터 ‘성군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저는 이 용어에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군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와 군이 정한 규율을 스스로 잘 지키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거든요(군인복무규율 제4장). 가령 위병소에서 헌병이 목소리 크게 내면 군기가 있다고들 하는데 그런 것도 사실 정확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지요. 군기는 공자가 말한 신독(愼獨, 홀로 있어도 삼가라)에 가까운 겁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예를 들어서 누구를 성추행하는 걸 성군기 위반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럼 성군기 준수는 뭐냐는 겁니다. 애당초 규정할 수 없는 영역인데, 아마 우리나라에만 있는 용어일 거예요. 미군은 그냥 ‘sexual harassment(성희롱)라 하죠. 인권에 관한 문제지 군기하고는 무관한 문제를 두고 성군기란 용어로 접근하는데 이런 건 보수성보다는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부족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모든 걸 군기 차원에서 접근하면 오히려 역방향으로 가게 될 수 있어요. 아랫사람은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윗사람은 얼마든지 지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김종대 원래 부르주아라고 하면 애초에 진보성을 담은 계급이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는 보수라 인식하지 않습니까. 군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다른 왕정 군대를 파죽지세로 격파해나가고 유럽 전역을 제압했던 것은 근대세계 최초로 채택한 징병제의 힘이 분명하고, 그 시기에 프랑스혁명의 결과로 나타난 진보의 혁신적인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현대에 와서 징병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므로 군대가 어떤 제도와 조직을 운영할 때 그것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제를 혁파하기 위해 징병제를 통해 ‘국민을 닮은 군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나폴레옹의 징병제에는 진보성이 있는 겁니다. 반면 한국의 징병제는 국민에게 의무만을 부과하면서 감시·관리하고, 교화의 대상으로 병사들을 바라봅니다. 자율과 창의를 논하기가 대단히 어렵죠. 국가가 국민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동원하면서 사용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는 한,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가 군에 작용하게 된다고 봅니다.

 

이태호 이야기가 좀 어렵게 들리기도 하는데 단도직입적으로 접근하면, 군에 계셨던 분들에게는 자극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군은 어쨌든 전쟁하는 집단 아닙니까. 전쟁을 준비하거나. 국민개병제로 규모가 커졌다는 것은 살육의 규모 또한 늘어났다는 뜻이죠. 국민개병제 이후의 전쟁에서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죽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군을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여석주 제가 시민운동가라면 군이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군대 내에서도 헌법과 민주주의를 좀 가르치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당신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는데 그럼 국가의 무엇을 지키려는 것이냐. 정부종합청사를 지키려는 거냐, 태백산맥을 지키려는 거냐. 군이 지켜야 하는 국가의 본질이 뭔지를 군에 제대로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우스갯소리입니다만, 구 일본제국의 군인들은 죽을 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고, 영국 군인들은 “여왕폐하 만세” 하면서 죽고, 한국군은 그냥 “엄마” 하고 죽는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태호 가장 인간적이네요.(웃음)

 

여석주 우리가 지켜야 할 건 헌법, 좀더 좁히면 헌법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대한민국 헌법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자유롭게 행동하고 의사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잖아요. 그런데 군의 작동원리를 보면 헌법에서 말하는 가치와 상충하는 것들이 많아요. 사람을 지배하는 것, 필요하면 사람의 목숨을 수단으로 쓰는 것,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것 등등. 이렇게 상충되는 부분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할 때의 기본은 역시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헌법에 대해서 군인들한테 정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사이버사 댓글 사건도 우리 헌법이 군의 정치개입을 왜 금지하고 있는지를 군이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일어나지 않았겠죠.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은 전사(戰史) 연구를 통한 저의 신념인데 병사가 절대로 적개심을 우선해 싸우지 않습니다. 병사들은 전우애라고 표현해도 되고 동료의식이나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그 무엇으로 뭉치게 되지요. 그런데 군에서는 흔히들 적개심 때문에 싸운다고 착각해서는 우리의 주적인 북한은 공산독재국가고 북괴군은 악랄하다, 뭐 이런 적개심 고취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게 전투력으로 승화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애초 국민개병제의 힘도 우리 사람, 우리 것, 우리 땅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거예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군대가 강했던 거죠. 주변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나 프랑스 왕정군대에 대한 미움이 아니고 ‘우리 프랑스’ ‘우리’에 대한 애정이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을 군에서 북돋아주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특히 정훈병과에서 목표를 적개심 고취에만 치중해서는 안됩니다.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군

 

이태호 불행하게도 우리 역사에서 군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집단이었습니다. 군이 어떤 입장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정치적 결과가 달라지기도 했을 정도로요. 그 와중에 군이 정치적 편향성을 보였던 사례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가 왜 계속 발생하는 것일까요? 말씀하신 전우애만 해도, 제가 느끼기에는 이게 자기 내부의 동력이잖아요. 그런 것 말고, 우리가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문민통제를 강조하는데, 거대한 물리력과 상명하복체제와 기밀성을 가진 군을 실제로 통제하는 수단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 걸까요?

 

김종대 한때 온갖 지탄의 대상이 됐던 남재준(南在俊) 전 국정원장이 육군 참모총장으로 있을 때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바 있습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그 논리에는 많이 공감하는데, 어떤 장교가 명령을 수행할 때 고민해야 될 게 정당성과 합법성입니다. 군인은 상관이 정당하지 못한 명령을 내렸다 하더라도 복종해야 한다는 게 정설입니다. 반면에 합법성은 따질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아무리 상관의 지시라 하더라도 법에 어긋난다거나, 어떤 법에서 정한 지휘통제 범위를 초월한다면 합법적이지 못한 명령이거든요. 이것에 대해서 군인은 당연히 이의를 제기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합법적이기는 하지만 정당하지 못한 명령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럴 때는 일단 복종해야겠지만 그 와중에도 고위 장성은 최대한 직언을 하고 창의력을 발휘해서 정당하지 못한 요인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군이 수많은 규범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렇게 복잡한 나라가 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급박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예를 들어 서해 NLL(북방한계선)에서 북한 함정을 격침시켜야 할지 말지 판단해야 하는 경우에 장교들이 혼란을 겪었단 말이죠. 순수하게 군사적으로 판단했다 하더라도 외부에선 정치적인 의미로 보기도 하지 않습니까. 정당성 논란은 항상 있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군인들한테 일정 정도 재량권을 줄 필요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 군대는 그런 지점이 아니라 주로 합법성 면에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합법성과 정당성이 다 결여된 상태로, 말하자면 군대권력의 과잉행사가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또 우리가 군대를 보고 온순해지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독사에게 독을 제거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요. 그것을 어떻게 컨트롤하느냐가 숙제지요. 군대는 국민을 대리해서 안보를 담당하는 일종의 에이전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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