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 연속기획 · 한국사 100년 다시 보기 ①
한국전쟁의 기억과 탈냉전
한국전쟁 사진집을 중심으로
정근식 鄭根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항쟁의 기억과 문화적 재현』 『지역전통과 정체성의 문화정치』 『8·15의 기억과 동아시아적 지평』(공편) 등이 있음. ksjung@snu.ac.kr
1. 60년이라는 세월
201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부터 10년 전, 그러니까 한국전쟁 50주년이 되던 2000년에 남북정상회담으로 남북간 화해가 이루어지면서 역설적으로 전쟁의 기억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들이 있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최근 부상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론 역시 전쟁 기억의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국가간 협력은 주로 사회·문화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초기단계를 벗어나 정치·군사적 문제를 다루는 중간단계로 진입하고 있지만, 유럽연합 같은 좀더 수준 높은 공동체적 지역구상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지역구성원들의 역사적 기억, 특히 한국전쟁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전쟁이 끝나면 평화가 온다고 생각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전후체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2차대전이 끝난 후 평화가 온 것이 아니라 중국의 내전과 한국전쟁으로 점철되었고, 이후에도 ‘냉전’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치열한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탈식민과 국가형성, 전쟁이 중첩되는 동아시아적 이행기를 거쳐 형성된 것이 남한/북한 및 중국/대만이라는 두 쌍의 분단국가, 그리고 미군의 오끼나와 점령을 핵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분단체제’다. 이 동아시아의 냉전-분단체제는 1971년 미중회담, 1972년 중일수교와 오끼나와의 일본 복귀, 1979년 미중수교로 제1차 해체를 겪고 1990~92년의 한러, 한중수교로 제2차 해체국면으로 나아갔지만, 여전히 북미 및 북일간 갈등관계는 지속되고 있으며 두차례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한간 평화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해체가 지연되는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핵심에는 한국전쟁의 경험과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동아시아의 한국전쟁 기억은 교전당사자로서의 경험과 전쟁 당시의 국가주의적 관점들, 그리고 전쟁 이후 약 40년간 지속된 상호경쟁과 대립의 관점들에 의해 재생산되어왔다. 이를 어떻게 미래를 향한 상호소통과 이해의 관점들로 바꾸어낼 수 있는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미래적 관점은 국민국가 차원의 상호이해뿐 아니라 시민적 차원의 상호소통을 확장함으로써 가능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의 실태를 정확히 인식하고 기억을 재생산하거나 재구성하는 사회적 장치들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이에 대한 응답이 가능해질 것이다.
전쟁 기억은 사회제도나 일상생활 속에서 작동하는 각종 문자매체나 시각매체, 또는 물질적 재현을 통해 이루어진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기념물과 기념관, 기념의례 등은 과거의 기억을 재생산하는 핵심적 장치들이다. 그렇지만 기억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진집과 다큐멘터리 영상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다른 매체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이런 맥락에서 한국전쟁을 다룬 사진집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떻게 변화됐는가를 살펴보려 한다.
2. 국민적 기억과 전쟁사진집
사진은 실제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준다는 특성 때문에 사회적 기억의 형성이나 재구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어떤 매체보다도 대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속에 담겨 있는 장면이 진실이라고 믿도록 하는 힘이 강하다. 그러나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항상 특정 시각에서 바라본 것, 전체 현실 중 어느 한 부분을 선택한 것만을 보여준다. 사진은 현실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른 현실은 보여주지 않으려는 성격을 지닌다. 그런 점에서 사진은 항상 현실을 변형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전쟁사진은 그것을 찍은 주체의 위치가 전선(戰線)에 의해 제약되므로 시각(視角)과 사각(死角)이 구조적으로 결정되어 있지만, 일상적으로 이런 한계는 감추어지거나 간과되기 쉽다. 전쟁사진은 많은 경우 보도사진으로 활용되는 탓에 사진가의 ‘시각’은 ‘우리의 시각’으로, 사진가의 ‘사각’은 ‘그들의 시각’으로 발전하여 전쟁을 바라보는 두개의 대립된 시각으로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사진은 심리전의 수단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종종 의도적으로 조작되기도 한다. 사진의 조작은 의도적인 연출, 원래의 사진에 포함된 인물이나 배경의 일부 삭제, 다른 사진과 합성하기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진은 보통 낱장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진들과 더불어 연속적으로 배치되면서 특정한 정치적 메씨지를 생산한다. 전쟁을 수행하는 집단이나 국가는 자신의 입장을 담은 일련의 사진들을 대중에 제시하며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내면화하도록 유도한다. 이로써 국가는 자신의 지배영역에 포획된 사람들의 모호한 기억을 선명하게 하고 이질적 기억을 동질화하면서 자발적으로 국가와 자신의 운명을 일치시키는 ‘국민’을 만들어낸다. 국민형성에서 중요한 과제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표준어를 만들어내고 동질화된 역사적·지리적 감각을 배양하는 것이므로, 특별전이나 사진집 발간, 상설전시관 건립 등은 이런 과제를 수행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실제로 전쟁을 주제로 한 사진집이 자주 출판되는 것은 그것의 국민형성 효과가 상당함을 말해준다.
개별 사진에 대한 분석이 그것을 생산한 당시 사진 주체의 시각과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진집에 관한 연구는 과거의 사진을 바라보는 편집자의 시각과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 사진집은 대부분의 경우 개별 사진들을 특정한 질서에 따라 배치하고 각각에 설명을 추가함으로써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동일한 사진도 어떠한 맥락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담게 된다.
전쟁사진에 대한 연구는 선전기능이나 집합적 정체성을 표현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에 주목한다. 레빈스키는 전쟁사진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전쟁사진가들이 ‘먼 곳의 목격자’(1848~1912), ‘객관적 관찰자’(1차대전~스페인내전), ‘입대한 군인’(2차대전), ‘친밀한 친구’(한국전쟁~북아일랜드전쟁), ‘굉장한 탐험가’(베트남전쟁)로 점차 변화했다고 보았다.1 한국전쟁은 사진가들이 전투하는 군인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사진을 찍게 된 중요한 계기였다는 것이다.
근래 한국전쟁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사진집이 다수 출간되었다. 특히 개인적 기록사진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40여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개인사진집으로 나오는 추세다. 또한 전쟁 직후 외국에서 나왔던 사진집들이 번역되고,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소장한 전쟁사진들도 재발견되어 새로이 출판되고 있다. 전후 분단체제하에서 전쟁 기억은 남북간에 지속된 심리전과 국가보안법체제 그리고 ‘특별국민들’에 대한 통제로써 관리되었다. 한국전쟁 사진들도 이런 거시적 관리체제하에 놓여 있었는데, 2000년 이후 급증하는 한국전쟁 사진집 출간은 기존의 전쟁 기억에 대한 국가주의적 관리체제의 균열을 나타내는 지표이자 탈국민국가적 관점을 확보하려는 시민주의적 현상으로 접근할 수 있다.
- J. Lewinski, The Camera at War: A History of War Photography from 1848 to the Present Day, NY: Simon and Schuster 19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