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식민주의

김철·황종연의 담론틀에 관한 비판적 검토

 

 

김흥규 金興圭

고려대 국문과 교수. 저서로 『문학과 역사적 인간』 『한국 고전문학과 비평의 성찰』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 등이 있음. gardener@korea.ac.kr

 

  • 이 글의 초고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의 HK월요모임(2010.1.11)에서 발표되었다. 그날의 토론자 정병호 교수와 한국문화연구단 동료 교수들이 베풀어준 논평·조언에 감사한다.

 

 

1. 논의의 출발점

 

한국문학 연구는 1990년대 후반 무렵부터 그 앞 시기와 뚜렷이 구별되는, 그리고 그러한 차별성을 적극 강조하는 학문적 지향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이 새로운 조류에서 비판 대상이 된 선행단계의 문제성은 ‘민족이라는 인식단위에 집착한 연구, 근대를 향한 단선적 진보사관, 그리고 이들을 희망적으로 결합시킨 내재적 발전론의 구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비판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여 별다른 논쟁 없이 학계에 안착하고, 2000년대 중엽에는 주류적 담론의 위상을 차지했다. 이와 병행하여 조선후기 문학 연구의 좌표가 모호해지고, 근대문학이 한국문학 연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아울러, 근대문학의 여러 국면들은 ‘번역된 근대’와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개념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담론 공간에 재배치되고 있다.

1960년대의 후반부터 80년대까지 한국문학 연구를 주도한 내재적 발전론이 90년대에 와서 심각한 회의와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은 불가피한 귀결이었다. 거세게 쏟아진 비판의 내용이 모두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해도, 내재적 발전론이 20여년간의 공헌과 더불어 산출하거나 넘어서지 못한 문제들 또한 가볍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논란은 내재적 발전론의 기본 지향에 동의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80년대부터 오가고 있었으나, 패러다임의 외부로 완전히 나가지 않은 토론으로는 환골탈태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후반 이래의 한국문학 연구에 등장한 새로운 흐름은 문제설정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촉구하는 저항담론으로서 기여한 바가 중대하다. 비판적 언사의 격렬함이나 논리의 편향성이 다소 있었다 해도 별로 문제될 바는 아니다.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적절하게 다루지 못한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주류담론의 전일적(全一的) 타당성을 문제삼기 위해 전략적 강조가 과도하게 구사되는 것은 학문적 변혁의 국면에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저항담론이 성장하여 주류적 담론의 위상을 획득하게 될 때, 당초의 의도와 무관하게 새로운 책임이 발생한다. 주류담론은 해당 학문분야에서 현저하게 우월한 전망을 보유하고 의제와 그 실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내재적 발전론은, 그 이월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별도로 하고, 살아있는 담론틀로서의 역할을 떠나 이제 연구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불가피하게 90년대 후반 이래의 새로운 연구동향 속에 새로운 주류담론으로서의 설득력과 전망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아울러, 그것이 저항담론으로 기능하던 단계에 대한 관용은 이제 폭넓은 연구를 이끄는 담론틀로서의 역량에 대한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글은 그런 시각에서 김철(金哲), 황종연(黃鍾淵)이 90년대 후반 이래의 연구에서 제출한 주요 논점과 명제들을 ‘담론틀’의 차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물론 해당 시기의 한국 근현대문학 연구가 모두 이들의 영향력 범위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두 학자 사이에 학문적 지향의 동질성이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함께 거론하는 이유는 위에 언급한바, 내재적 발전론과 ‘민족주의적 국문학 연구’에 대한 비판에서 협력의 실질이 뚜렷할 뿐 아니라, 대안적 사유의 주요 항목으로서 ‘타자로부터의 작용’을 중시한다는 점에 있다.

이들의 학문적 성과를 담론틀의 차원에서 고찰한다는 것은 특정 논저의 타당성을 개별 연구의 차원에서 다루기보다 그것이 함축하는 전제와 문제인식 구도에 주목하고, 그 범례적 가치를 평가한다는 뜻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문제를 제출하는 방식은 담론의 방향과 귀결에 대한 한정을 내포하며, 그러면서도 그 한정성은 담론 내부자의 시야에서 안 보이기 쉽다. 내가 희망하는 바는 두 학자의 담론틀을 이웃의 시각에서 살핌으로써 오늘날의 한국문학 연구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2. 식민주의의 특권화

 

김철과 황종연은 학문적 개성과 관심사가 상당히 다른 학자들이다. 김동리(金東里)의 「황토기」에 대한 해석에서 그 차이가 예각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김철은 이 작품에서 파시즘의 야수성과 파괴·소모의 미학을 읽어냈고,1 황종연은 작중인물들의 “자멸에 이르는 행동은 바로 그 소모적인 성격을 특별히 강조하는 서사적 절차 때문에” 파시즘 같은 이데올로기를 “오히려 의심과 반성의 거리를 두고 지각하게 만든다”고 옹호했다.2 이런저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약속되지 않은 협력’이 가능했던 까닭은 80년대까지의 ‘국문학’ 연구에 대한 비판에서 입장과 논리구성 방식이 유사하거나 상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시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을 문제화하는 저항담론으로서의 의의가 충분했다.

이하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지적 도전이 주류적 담론틀의 위상을 가지게 된 시점에서 피할 수 없는 ‘포괄적 적용력’의 문제다. 이 장에서는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견지하는 관점을 먼저 다루고, 다음 장에서 황종연의 개별적 논리를 따로 검토하기로 한다.3

김철과 황종연은 민족주의와 근대문학이 모두 식민지시대의 산물일 뿐 아니라, 식민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달리 말하면, 이들은 모두 식민 기원(紀元) 이후의 것이며 식민성의 발현형태라는 인식이 담론틀의 대전제가 된다. 김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우리가 읽고 쓰고 말하는 한국어와 한국문학은 일제 식민지 기간에 그 기본적인 틀이 형성되고 자리가 잡혔다. 식민지가 근대며 근대는 식민지이다.4

 

위의 인용에서 첫 문장은 자강운동기(1890~1900년대)의 비중을 상대적으로 절하하면서 식민지시대의 변화를 강조하기 위한 얼마간의 과장으로 이해될 법하다. 그러나 “식민지가 근대며 근대는 식민지”라는 명제로써 김철은 이러한 수사학적 양해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식민지〓근대’라는 구획을 선언한다. 윤해동(尹海東) 역시 “모든 근대는 당연히 식민지 근대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5 한국사는 물론 세계사를 두루 포괄하는 이 전칭명제의 논거나 참조된 연구의 출처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황종연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논했다.

 

민족문학론의 소재는 물론 민족에 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바로 민족문학으로 인식하는 기술 또한 민족에 내재한다고 보는 것은 검증이 필요한 생각이다. 민족문학론은 근대적 민족을 ‘발명’하는 모든 정치적, 문화적 기술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에티엔느 발리바르는 민족 형식의 발생을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서열적 편성과 관련하여 설명하는 가운데, “어떤 의미에서 모든 근대적 민족은 식민지화의 산물이다. 그것은 언제나 얼마만큼은 식민지가 되었거나 아니면 식민지를 가졌으며, 때로는 식민지가 되는 동시에 식민지를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출처표시 생략-인용자〕 민족문학의 담론을 포함한 모든 민족의 테크놀로지는 어쩌면 식민주의의 산물인지 모른다.6

 

인용된 마지막 문장에서 “…인지 모른다”고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후일에 쓴 글들까지 참조하면 황종연의 입장은 확신에 가깝다. 그렇게 보도록 하는 근거가 발리바르의 말인데, 내가 보기에 이 대목은 부적절하게 전용(轉用)된 혐의가 있다.

월러스틴과의 공저에서 발리바르는 근대세계의 민족국가(nation)가 대두하는 요인을 논하기 위해 우선 맑스주의적 접근방법을 비판하고 다음과 같이 논리를 전개했다.7 ‘민족(국가) 형성을 일국(내지 한정된 지역) 내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기초한 부르주아의 기획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브로델과 월러스틴의 견해처럼, 세계체제의 주변부에 대한 중심부의 지배 속에 상호간의 경쟁적 도구로서 민족국가들이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부르주아가 선택하는 국가형태는 역사의 국면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민족부르주아가, 산업혁명 이전일지라도, 궁극적으로 승리한 것은 그들이 현존하는 국가의 무력(武力)을 국내외적으로 구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농민과 변두리 시골까지를 새로운 경제질서에 복속시킴으로써 시장과 “자유로운” 노동력의 공급처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민족국가 형성은 순수한 경제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나라마다 다른 역사와 사회적 변화를 동반한 계급투쟁의 구체적 결과다.’

황종연이 인용한 대목은 이 중에서 ‘세계체제의 불평등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경쟁이 민족국가 형성을 촉발했다’는 내용 뒤에 첨부된 수사학적 보충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In a sense)’이라는 표현이 명시하듯이 그것은 사실명제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불평등성이 전지구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과장 내지 비유일 따름이다. 이 대목을 앞뒤의 맥락으로부터 분리하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의 유보적 기능이 모호해지고 인용문은 사실명제처럼 오인되는데, 황종연의 논리는 바로 이 어긋남의 자리에 발딛고 있다.

식민지를 가졌거나 식민지인 지역에서만 민족주의가 발생한다는 주장은 몇몇 나라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지탱될 수 없다. 16세기부터 시작되는 근대 식민지경영의 역사에서 가장 앞섰던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한때는 아메리카대륙에 최대의 식민지를 보유했던 스페인 역사에서 민족주의의 모습은 매우 늦고도 희미하다. 스페인은 식민제국의 영광이 참혹하게 추락한 뒤 1807년에는 나뽈레옹의 지배 아래 놓였으며, 1820년대에는 아메리카대륙의 식민지 대부분을 상실했다.8 그런 가운데서 19세기 중엽에 까딸루냐와 에우스까디(바스끄) 지역에서 종족적 민족주의의 움직임이 형성되었으나, 그것은 스페인 국가의 일체성에 균열을 초래하는 것이었다.[9. Anthony D. Smith, National Identity (Reno: University

  1. 김철 「김동리와 파시즘」, 『국문학을 넘어서』(국학자료원 2000), 31~59면.
  2. 황종연 「문학의 옹호」, 『문학동네』 2001년 봄호, 396~98면.
  3. 이것은 지면 제한 때문에 김철의 ‘민족주의-파시즘’구도에 대한 검토를 본고에서 유보한 결과일 뿐, 두 사람의 학문적 공헌도에 대한 평가와는 무관하다.
  4. 김철 『복화술사들: 소설로 읽는 식민지 조선』(문학과지성사 2008), 9면.
  5. 윤해동 외 엮음 『근대를 다시 읽는다』 1권(역사비평사 2006), 31면.
  6. 황종연 「문학이라는 譯語: ‘문학이란 何오’ 혹은 한국 근대 문학론의 성립에 관한 고찰」, 『동악어문논집』 32호(동악어문학회 1997), 473면.
  7. Étienne Balibar, “The Nation Form: History and Ideology,” Étienne Balibar and Immanuel Wallerstein, Race, Nation, Class: Ambiguous Identities (London: Verso 1991). 이하의 내용은 87~91면 요약.
  8. 레이몬드 카 외 『스페인사』, 김원중·황영조 옮김(까치 2006), 246~57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