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개혁문화, 이렇게 만들자

 

한국 시민사회의 개념과 현실

 

 

조효제 趙孝濟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 NGO대학원 교수.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조사과 연구위원 역임. 편저로 『NGO의 시대』, 역서로 『전지구적 변환』 등이 있음. hyojecho@hotmail.com

 

 

들어가면서

 

‘시민사회’란 말은 역사 속에서 부침을 거듭한 개념이다. 고전적 의미의 시민사회는 ‘자연상태’가 아닌, 법과 질서 및 공적 생활이 실천되는 ‘개명된 사회’(societas civilis) 또는 ‘정치의 집’(politike koinona), 즉 국가 그 자체와 비슷한 뜻으로 쓰였다. 그후 시민사회는 자본주의의 부상과 함께 재발견되었고(애덤 퍼거슨), 국가의 공공영역에 대비되는 인간의 사적 영역(헤겔) 또는 부르주아사회(맑스)로 이해되었다. 20세기 들어 그람시가 국가의 헤게모니를 놓고 투쟁이 벌어지는 공간으로서 시민사회론을 전개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의 시민사회론은 1970~8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민주화운동과 동유럽의 전체주의적 공산지배 반대투쟁을 통해 점화되었다.

현대 서구의 시민사회론에는 신사회운동의 권력 소재지, 자원동원의 새로운 쎅터, 민주주의의 재활성화를 위한 공간, 국가와 시장 간의 균형추, 국가 축소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민사회 등이 혼재되어 있다. 개발도상권에는 민주주의의 정당화, 정치발전과 인권을 위한 풀뿌리 민주주의 공간, 제3세계 개발원조와 관련된 정치적 수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투쟁을 지속해가는 대안담론 등으로 시민사회론이 존재한다.1

한국에서는 크게 네 갈래의 시민사회론이 공존한다. 첫째, 해방공간의 대체물로서 헤게모니적 시민사회를 주장하는 ‘사회운동형 버전’이 있다.2 둘째, 민주화의 후속기획으로서 ‘참여민주주의형 버전’이 시민운동론과 맞물려 있다.3 이들 양대 버전은 고전적 자유민주주의를 급진화하려는 공통점이 있다. 셋째, 국가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할 자원동원 출처로서 ‘비영리 제3쎅터 버전’4과, 그중에서도 비정부기구 활동을 시민사회의 핵심 특성으로 강조하는 ‘NGO 중심형 버전’5이 있다. 넷째, 국가와 시장을 다스리고 개화하려는 ‘윤리적 시민사회 버전’도 확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시민사회와 관련된 개념과 시민사회론의 윤곽을 스케치한 다음, 현대 한국 시민사회의 특징과 도전을 기술하고,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의 개혁역량을 높이기 위한 제안을 할 것이다. 이 글은 시민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주체적인 시민사회론을 정립하려는 기초작업에 속한다.

 

 

시민사회의 개념과 윤곽

 

‘시민사회’라는 개념은 한국에서 시민운동이 전개되는 장소 또는 시민운동의 대명사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본래 의미의 개명된 사회(civil society)가 아닌 ‘시민(운동)의 거처’(citizen society)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공간적으로 보면 시민사회는 ‘제3쎅터’와 비슷하며 국가·시장·가정을 제외한 영역으로서 시민단체를 포함한 모든 결사체가 공존하는 곳으로 간주된다.6 ‘시민운동’은 한편으로 시민단체들의 개별활동을 기계적으로 지칭하는 대명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정한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단체들의 집합적 운동이라는 특정한 의미가 있다. 시민운동을 개량적 운동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에서는 ‘사회운동’이라는 전통적 용어를 고수하려 한다.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말로 ‘시민사회운동’이 있다. 이 글에서 시민운동은 기실 시민사회운동을 뜻한다. 아마 시민사회 내의 모든 결사체를 표현할 수 있는 용어는 ‘시민사회 행위자’(civil society actors)일 것이다. ‘정치사회’는 시민사회와 국가의 점이지대에 있고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투쟁의 영역이다. 이 글에서 시민운동은 일정한 가치를 공유하는 시민단체들의 집합적 운동이라는 특정한 의미로, 시민사회는 공간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시민사회 내에 어떤 종류의 행위자들이 있을까? 시민사회 분류학은 복잡한 논쟁거리지만7 지면상 단순하게 도식화해보자. 단체의 성격으로 보아 제3자 이익추구인지 또는 구성원 스스로의 이익추구인지, 그리고 조직의 활동양식으로 보아 주창활동 위주인지 또는 현장활동 위주인지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이 나온다. ① 제3자 이익추구형 주창활동을 편의상 ‘운동형’ 영역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들은 구사회운동을 계승하고 신사회운동의 요소를 도입했으며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회구조를 따라 성장한 특징이 있다. 흔히 시민사회단체·NGO·평화운동·사회운동·노동운동·주민운동·노사모와 같은 준정치조직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은 주로 비판·감시·조사·집회·홍보·청원·시위·농성·로비 등의 활동을 한다. ② 제3자 이익추구형 현장활동 중심의 ‘봉사형’ 영역은 대중에게 복지를 제공하고 사회써비스를 대행한다. 이들은 구휼, 인도적 지원, 대인활동, 시민사회의 물적 인프라 창출을 위해 일하며 복지단체·공익재단·비영리법인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사회복지의 전통에서 비롯되었으며 국가나 시장으로부터 자원의 일부를 조달받는 경우가 많다. ③ 구성원 스스로의 이익추구형 주창활동을 벌이는 ‘권익형’ 영역에는 조직된 이익단체, 전문직능단체, 그리고 소수자·장애인·소외계층의 자조집단 등이 있다. 이 영역은 로비·선전·홍보·청원·시위 등의 활동을 전개하며, 특히 약자들의 권익형 활동은 보편적인 권리담론과 결합할 소지가 많다. 노동운동은 역사적 뿌리와 사회변혁 지향성 때문에 운동형과 권익형에 모두 속한다. ④ 구성원 스스로의 이익추구형 현장활동에 치중하는 ‘자익형(自益型)’ 영역이 존재한다. 생활세계에 존재하는 혈연·지연·학연 등의 연고집단, 레저, 문화, 동호회, 축구클럽, 사내 친목모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생활협동조합은 봉사형과 자익형의 중간 정도에 속한다. 자익형은 숫적으로 가장 많고 탈정치적이며 시민사회적 동질성이 낮은 영역이다. 지금까지의 구분은 이상형에 따른 분류이고, 현실에서는 그 성격이 중첩되거나 모호하다. 세계적으로도 이런 유형화의 경계가 흐려지는 추세다. 위의 모든 유형을 혼합한 ‘잡종형’(hybrids) 단체가 건강한 조직이라는 이론도 있다.

우리나라 시민사회는 전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발전단계에 위치할까? 시민사회 쎅터의 건강도를 파악하려는 대표적인 시도로 헬무트 안하이어(Helmut Anheier)와 씨비쿠스(CIVICUS)라는 NGO가 개발한 시민사회의 4대 지표가 있다.[8. Richard Holloway, Using the Civil Society Inde

  1. 헬무트 안하이어 외, 조효제·진영종 옮김 『지구시민사회』(근간).
  2. 조희연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당대 1998.
  3. 참여사회연구소 엮음 『참여민주주의와 한국사회』, 창작과비평사 1997.
  4. 주성수 『시민사회와 제3섹터』, 한양대출판부 1999.
  5. 박상필 『NGO와 현대사회』, 아르케 2001.
  6. 유팔무·김호기 엮음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한울 1995.
  7. 시민사회 결사체의 분류에 대해서는 1910년부터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을 조사해온 국제결사체연맹(UIA)의 작업 참조(www.u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