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한국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루스 배러클러프 Ruth Barraclough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 대학원 졸업. 현재 씨드니대학 일본-한국학과 코리아 파운데이션(Korea Foundation) 박사후과정 연구원. 이 글은 2004년 11월 12일 오스트레일리아 월롱공대학에서 열린 한국학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것을 토대로 한 것이며, 원제는 “When Korean Working Class Women Began to to Write…”임. ruth_gemma@hotmail.com

ⓒ Ruth Barraclough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이 논문을 쓰는 데 소중한 조언과 격려를 해준 정진욱, 리암 디(Liam Dee), 로럴 캔덜(Laurel Kendall), 미리엄 랭(Miriam Lang), 백낙청, 그리고 케네스 웰즈(Kenneth Wells)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영국 소설가인 버지니어 울프(Virginia Woolf)는 1928년 젊은 여대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는데, 이 강연은 훗날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이라는 평론으로 출간되었다. 그녀는 청중에게 소설이나 시 혹은 희곡을 쓸 야심이 있다면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만일 글을 쓰고 싶다면 자기만의 방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1 그녀는 더 나아가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이 근대성의 시작을 알린다고 주장했는데, 낸씨 암스트롱(Nancy Armstrong)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순간은 “근대 세계를 창조하는 데서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흔히 생각하는 사건들보다 더욱 연관성을 지닌” 것이다.2 버지니어 울프는 이렇게 쓰고 있다. “18세기 말엽에 변화가 일어났는데, 만일 내가 역사를 다시 쓴다면 이를 십자군 원정이나 장미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서 생각하고 더 충실하게 묘사할 것이다. 중산층 여성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 말이다.”3 버지니어 울프에게 이 순간은 진정으로 근대적인 중산층 사회에서 중산층 여성이 맡게 될 중요한 역할을 예시(豫示)해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새로운 목소리인 동시에 새로운 문화적·사회적 힘에 관해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한국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문화적 순간은 ‘자기만의 방’에서가 아니라, 서너 명이 함께 사는 방이나 때로는 여성 기숙사에서였다. 버지니어 울프가 자신의 평론 『자기만의 방』에서 그 형성을 기록한 중산층 여성작가와는 달리 한국의 노동자 작가는 문화적 헤게모니 속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진입시킨 것이 아니라 그 바깥에서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 여성들은 자신을 도외시하는 사회에서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아로새기는 데 자서전 형식을 택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사회에서 이 책들의 범상치 않은 위상을 검토하며 작품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나는 여성노동자들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싯점에 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미리 밝혀둘 것은 내가 다루려고 하는 대상이 무슨 대표적인 여성작가가 아니라,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 서로의 작품을 접했고 거의 동시에 작품을 발표한 별도의 세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중 1982년 형성사에서 출판한 송효순의 자서전 『서울로 가는 길』은 한동안 가장 뛰어난 여공 수기로 손꼽혔다. 장남수의 『빼앗긴 일터』는 저명한 문학출판사 창작과비평사에서 1984년에 출간되었다. 석정남의 『공장의 불빛』(일월서각) 또한 1984년에 발간되었다. 이 세 권의 책은 파업 및 빈민층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1970년대 서울 공장지대의 세계를 널리 알렸고, 준비된 독자층을 만나게 되었다.4 그러나 나는 이 작품들에 한국문학 정전 속에서의 소수의 목소리나 다른 어떤 것으로서의 위상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정치와 문학의 접점에서 이 작품들이 그 자체로 얼마나 힘있게 서 있는지 입증하고자 한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걸친 남한의 급속한 산업화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의, 미천한 대접을 받는 직장에서 주변적 존재로 취급됨으로써 이들이 수행한 핵심적 역할은 그간 주목받지 못했다. 자본축적에서 이들이 행한 결정적인 역할은 이들이 받은 보수나 직업의 안정성, 혹은 직장에서의 진급 가능성으로는 간파할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이들의 가치나 의의를 인정해준 증거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이들은 이른 나이에 학교를 떠났고 이들의 관심사는 언론보도에서 대부분 무시되었다. 이들은 공적 문화나 ‘고급예술’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들의 고용주나 국가는 가장 냉소적 방식으로 이들의 가치를 매겼으니, 이들이 국가번영을 위해 애국적이고 이타적으로 헌신하는 상징적 존재라는 식이었다. 이들은 길에서조차 ‘공순이’라는 비아냥과 조롱에 시달리며 돈이 필요해 육체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비하되었다.5

여성노동자들이 자서전을 쓴 것은 바로 이런 무시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미래의 번영을 위해 젊은 남녀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한 한국의 국가 주도의 급속한 산업화의 맥락 속에 이들의 자아 세우기를 자리매김하고자 한다.6 여공들이 처한 제반 모순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즉, 이들은 수출시장에서 핵심이었고, 이들이 집에 송금한 월급이 농촌경제를 지탱하는 데 일조했지만, ‘진정한 노동자’로 결코 간주되지 않았고 공장의 말단 임시직을 맡았던 것이다. 노동하는 여성들이 동일방직, YH, 여타 현장의 노조운동에서 자신을 노동자로 주장하기 시작하자 공장주와 경찰의 반응은 가혹했다. 여성노동자 탄압은 한국의 성공적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의 핵심적 측면인데, 이에 맞서 이 여성들이 구사한 투쟁전략을 보면 그들 삶의 일부인 성·계급 이데올로기에 그들이 비판적이면서도 그 속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서전은 자기표현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그 자체가 실로 오랫동안 이들을 무시해온 세상에 저항하는 거점이었다. 그러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문학으로서 이들 자서전은 엘리뜨적 ‘고급문화’와의 단순한 이분법적 관계, 혹은 1980년대 국가의 엄격한 문학검열에 대한 전복으로만 볼 수 없는 훨씬 복잡한 것이었다.7 왜냐하면 이 책들이 출간되던 당시에는 전두환 장군 치하(1980~88)의 국가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발버둥쳤을 뿐 아니라, 이 시기의 ‘고급문화’ 혹은 최소한 문단문화의 한 흐름이 바야흐로 노동자 서사와 민중미술 운동을 새로운 활력의 원천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8

여기서 검토하는 세 편의 자서전은 1980년대 노동계급에게서 나오는 문화적 창의성을 대표한다. 상당한 규모인 한국 반체제 문화시장의 일부로서 연극, 거리공연, 대중 무속행사, 노래패 활동, 수필집, 단편, 시선집, 심지어 「파업전야」 같은 영화까지 공연되거나 은밀히 유포되었다. 이것들은 1970년대, 80년대 자생적인 ‘서민적’ 문화전통을 대중화하여 이를 일상적 삶의 일부로 만들고자 했던 폭넓은 민중운동의 일부였다.9 이 글에서 논의하는 세 권의 책은 모두 ‘진보적’ 출판사들에서 나왔고, 교보문고와 종로서점 같은 초대형서점에서 판매되었다.10

문학사가인 권영민은 노동문학을 한국의 산업화가 낳은 문학이라는 좀더 넓은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동문제에 대한 소설적 인식과 그 형상화 방법 자체도 상당한 변화를 드러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민주화 운동과 정치적인 체제개방은 권위주의적 사회체제의 청산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실감하게 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야기된 사회문제로서, 노동자들의 삶의 불균형이 더욱 직접적인 문학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현대문학사: 19

  1. Virginia Woolf, A Room of One’s Ow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2. Nancy Armstrong, Desire and Domestic Fiction: A Political History of the Novel,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255면.
  3. Virginia Woolf, 앞의 책 84면.
  4. 이 시기에 출간된 다른 작품들로는 유동우의 『어느 돌멩이의 외침』(1984), 박영근의 노동자 글모음 『공장 옥상에 올라』(1984), 김경숙 선집 『그러나 우리는 어제의 우리가 아니다』(1986), 나보순 외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근로자의 글모음 I』(1983) 등이 있다. 이 외에도, 1980년대 공장, 야학과 문학써클 등에서 읽혀진 미출간 단편과 수기 들이 포함된다. 김병익은 이 과정에 대해 「최근 한국노동소설: ‘노동’문학 대 노동 ‘문학’」, 『한국인』 1989년 3월호 12~13면에서 논했다.
  5. 한 젊은 여성은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다. 내가 차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갔을 때다. ‘야! 공순아 이제 오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남학생 몇명이 서 있었다. ‘야, 공순아! 왜 쳐다보니? 싸가지 없게스리’라고 말을 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을 했다. ‘그래 나는 공순이다. 그러는 너희들은 뭐 잘난 것 있니? 학교 뺏지만 달면 학생이냐? 천만에 말씀이야. 너희들 그 썩은 정신상태부터 뜯어고쳐야 돼! 알았니?’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또 몰상식스런 말을 했다. ‘못 배운 기집애가 어디서 큰 소리야. 배우지 않은 기집애라서 말하는 싸가지가 되먹지 않았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속에서 욕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집에 왔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억울해서 막 울었다. 왜 우리는 그런 소리를 들어야만 되나? 왜 공순이란 소리를 들어야만 하나?”(나보순 외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근로자들의 글모음 I』, 돌베개 1983, 47~48면)
  6. 육군소장이었다가 이후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이들의 희생이 일시적이고 결국 보상받을 것임을 약속했다. “우리의 수출규모 신장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저임금으로 양질의 상품을 만들어야만 하는데, 만일 임금이 높다면 이는 불가능합니다. 고임금과 높은 상품가격 때문에 수출규모가 줄어든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근로자들의 생활이 개선되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은 국가발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국가건설의 긍지와 책임을 지고 협조해주기 바랍니다. 수출의 계속적 신장으로 경제가 빨리 성장하면 우리 3백만 근로자들에게 번영된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 확신합니다.”(박정희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한림출판사 1970, 2~3면).
  7. 이러한 문학검열의 한 예로 1920년대와 30년대에 출간된 한국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판금조치를 들 수 있다. 이 조치는 1987년에 해제되었다.
  8. 전두환정권을 타도하는 데서의 중산층의 결정적 역할을 논의한 글로는 Jang Jip Choi, “Political Cleavages in South Korea,” Hagen Koo (eds.), State and Society in Contemporary Korea,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 13~50면.
  9. Chungmoo Choi, “The Minjung Culture Movement and the Construction of Popular Culture in Korea,” Kenneth Wells (ed.), South Korea’s Minjung Movement: The Culture and Politics of Dissidence,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5, 105~18면 참조.
  10. 정확한 판매부수는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까지 주류 서점들에서 이 책들을 모두 사볼 수 있었다.